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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風', 87년으로의 퇴행…'역풍' 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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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風', 87년으로의 퇴행…'역풍' 불려나?

[대선감상법⑨]북한 변수, 대선에 영향줄까

선거에서의 '북한 변수'를 뜻하는 북풍(北風)이 최근 대선에서 뚜렷이 나타났던 경우는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대통령 선거일(12월 16일)을 불과 20일 앞두고 일어났고, 사건을 저지른 북한 공작원 김현희는 선거 하루 전날 서울로 압송됐다.

92년 대선에서의 북풍은 중부지역당 사건이었다.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 이선실이 서울에 잠복하면서 조직원 300명의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을 결성했다는 이 사건 역시 대선 2개월 전에 발표됐다.

97년 대선에서는 총풍(銃風)이 있었다. 여당 후보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대선 직전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총격시위를 하도록 북한 인사에게 요청했다는 이 사건은 실제로는 발생하지 않았다.

2002년에는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두고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됐고, 투표 1주일 전 북한이 핵동결 해제 선언을 함으로써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됐다.
▲ 1987년 대선 전날 있었던 김현희 압송 장면 ⓒ연합뉴스

이 사건들은 자체의 파괴력이나 양상이 조금씩 달라 대선에 미친 영향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87년과 92년 대선 당시 북한에서 불어온 찬바람이 노태우·김영삼 두 후보의 당선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두 후보는 여당이었고, 2위(권) 주자들의 대북정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경한 노선을 견지하고 있었다.

'97년 총풍 시도가 성공했더라면 이회창이 당선됐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한나라당이 풀무질을 해서라도 북냉풍(北冷風)을 일으키려고 했던 것은 앞의 두 선거와 같은 맥락이었다.

북풍 풍향계 돌아간 2002년 대선

이처럼 북풍이 불면 유권자들의 안정희구 심리와 반북(反北) 심리가 발동해 강경한 대북정책을 펴는 여당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단순 공식이 무너진 것은 2002년 대선이었다.

노무현은 여당 주자이긴 했지만 야당의 이회창 후보 보다 한층 온건한 대북노선을 견지했다. 그는 북핵위기가 다시 찾아온 상황에서 대통령을 누구로 뽑느냐는 것은 곧 전쟁이냐 평화냐를 택하는 것이라며 이회창의 소위 '전략적 상호주의'를 공격했고 결국 승리했다.

북풍이 불어 왔는데도 온건한 정책을 펴는 후보가 이기는 새로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에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대북정책의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수였다.

북풍과 대선의 관계가 이처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게 된 것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남북한의 화해·협력 무드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유권자들도 이제 북풍만 불면 반공주의 선풍에 휘둘려 민정당이나 민자당, 한나라당을 찍어야 하나 생각하던 고정관념을 버리게 된 것이다.

햇볕정책 이후 소위 '화해협력세력' 혹은 '평화의 지배블록'이 정치·사회세력으로 광범위하게 형성됐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들 '지배블록'은 화해협력정책을 계승하겠다는 후보의 흔들림 없는 지지층이 됐고 부동층을 끌어들이는 구심력으로도 작용했다.

그렇다고 화해협력정책이 무조건 표를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대선은 아니었지만 2000년 16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발표된 남북정상회담은 너무도 확연했던 '정략성'으로 인해 여당에 선거 패배를 가져다주었다.

이는 햇볕정책 이후의 북풍이 과거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으로 선거에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풍의 내용과 시점 자체만이 아니라 후보들의 대응 방식, 이전 대북정책의 성과와 영향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표심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북풍은 아니었지만 지난해 북한 핵실험 직후 고건 전 총리가 한나라당 '빅3'와 함께 포용정책을 비난했지만 한나라당 후보들은 지지도가 올라간 반면 고 전 총리는 지지기반인 호남의 지지도가 빠지며 전체 지지율의 하락을 초래했다는 사실은 해당 후보의 핵심 지지자들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도 중요한 변수임을 보여줬다.
▲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화해협력 분위기는 북풍의 풍향계를 바꿔놓았다. ⓒ연합뉴스

핵실험 여파와 협상국면의 힘겨루기

북풍은 이번 대선에서도 김대중 정부 이후의 양상대로 내용과 시점, 전략이 어우러져 복합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의 핵실험과 그에 따른 포용정책 회의론이 현재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북한이 지난해 12월 6자회담에 복귀하면서 위기·제재 국면이 협상 국면으로 전환됐다 하더라도, 핵실험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킨 부정적인 이미지를 떨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북핵 협상의 전도가 어둡다는 것도 그런 추세를 고착화하고 있다. 북한은 '선(先) 금융제재 해제-후(後) 핵폐기 협상'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만일 금융제재 문제가 가까스로 타협점을 찾아 핵폐기 협상에 임하더라도 영변 핵시설 가동중단 등 초기이행조치에 대한 대가로 경수로 및 대체에너지 제공을 요구할 것이라는 게 지난 6자회담에서 예고됐다.

반면 핵시설 동결만으로 경수로를 줄 수 없는 미국은 북한이 그렇게 나올 경우 그동안 보여준 '악의적 무시정책'을 이어갈 수밖에 없고,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는 중동 상황 역시 북한 무시정책을 피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미국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하면 북한은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추가 핵실험 카드를 쓸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2007년의 한반도 정세는 뚜렷한 출구가 보이지 않은 채 위기가 고조되거나 기껏해야 교착 상태에 머물 가능성이 더 크다. 이는 핵실험의 부정적인 효과가 대선 국면에서도 지속됨을 의미한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북한과 포용정책을 공격하는 후보가 화해협력을 역설하는 후보보다 더 큰 결집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북풍이 불어 강경한 대북정책을 펴는 후보가 유리했던 87년·92년 대선 양상으로 퇴행하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핵실험으로 인한 화해협력세력의 위축과 분열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 한미 FTA 추진 등 노무현 정부의 친미 일변도 정책에 따른 '평화의 지배블록' 와해 등은 반북(反北) 캠페인을 제압할 카운터파트의 결집력을 약화시켰다. 이로써 현 여권이 그나마 내걸 수 있다고 스스로 말하는 평화세력의 비전도 힘을 발휘할 수 없는 토양이 될 것이다.

한나라당의 남북정상회담 경계 이유 있나

이미 대세를 잡고 있고, 북한 변수도 불리하지 않게 돌아갈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유일하게 경계하는 북풍은 남북정상회담이다. 한나라당은 정상회담 가능성을 내비치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과 여권에 대해 연일 비난전을 펼치며 '정상회담은 차기 정부에서'를 외치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북한 비핵화를 위한 순수한 의도라면 해도 좋다"고 했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북핵 폐기에 대한 확고한 의지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약속 △국제공조라는 3대 전제조건이 해결되면 정상회담을 해도 좋다고는 했다. 그러나 '정략적'이라는 딱지는 언제든 갖다 붙이면 되기 마련이어서 '해도 좋다'는 말은 레토릭일 뿐 사실상은 역시 반대 입장이다.

한나라당이 정상회담을 그토록 반대하는 속내는 이렇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에 응함으로써 자신과 '그나마 코드가 맞는' 현 여권의 재집권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것에서 나아가 핵폐기에 대한 확약까지 할 경우 핵실험 이후 착실히 쌓아왔던 반북 분위기가 물거품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그같은 '불행한' 시나리오는 논리적인 가능성만 있을 뿐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우선 정상회담 성사 자체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금융제재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 재무부가 1월 말에 재개될 북미 금융협의에서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묶인 북한 자금 2400만 달러에 대한 해법을 내놓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게 된다면 어렵게 재개된 6자회담의 속개는 어려워지고 교착 국면이 이어질 것이다.

쌀·비료 지원 재개조차 해내지 못하는 우리 정부가 '북핵 해결 뒤 정상회담'이란 원칙까지 번복하며 정상회담을 추진하기에도 힘이 달린다. 본격 선거 국면에 들어서기 전인 상반기에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에 준비 정도와 역량은 제로에 가깝다. 청와대는 이미 개헌이란 승부수를 띄우며 정치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북미간의 줄다리기에 집착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도 쌀·비료를 받아내기 위한 남북장관급회담 정도에나 응할 의향이 있을 뿐 정상회담을 할 이유가 별로 없다.
▲ 2000년 남북정상회담 합의. 2007년 오늘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성사될 전망은 어둡다. ⓒ연합뉴스

한나라당, '오버'하다 제 발등 찍을라

이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그 효과가 현 여권의 득표로 이어질지 역시 미지수다.

북풍을 선거에 이용하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엄존하고,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악수와 포옹에 감동해 현 여권에게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심리가 발동할 이유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핵실험 이후 형성된 반북 여론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북한이 지지하는 정당'이라는 색깔론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같은 사실을 한나라당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정상회담에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그것으로 야기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미리 차단하는 동시에 북한에 대한 나름대로의 '원칙'을 부각시킴으로써 보수층 결집의 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2000년 총선 때 북한 변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실패했듯 한나라당 역시도 정상회담과 북한 때리기에 불필요하게 집착한다면 그 역시 정략적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한나라당이 세심하게 다뤄야 할 부분은 오히려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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