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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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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복"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1/05] 2번의 암 투병 끝에 활동 재개한 장영희 교수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한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공부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았지만 보란 듯이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두 번이나 암과의 투병을 이겨내 다시 강단에 선 오뚝이 교수. 우리 시대 희망의 상징.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장영희 교수를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희망의 상징으로 불려지는 걸 불편해 합니다. 세상에 장애 없는 사람은 없고 희망은 자신만의 특별한 힘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본능적인 힘이라고 말하는데요, 두 번째 암투병 중 펴낸 영미번역시집 생일과 축복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하는 법과 희망을 읽는 법을 일깨워 줬던 장영희 교수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장영희 교수를 초대해서 그녀가 말하는 희망은 무엇인지 그녀에게 문학은 어떤 의미인지. 또 올바른 영문학 교육의 방향은 무엇인지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장영희 교숩니다. 장영희 교수는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를, 미국 뉴욕 주립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수필가와 번역가로활동하면서 1993년 한국문학번역상, 2002년 올해의 문장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저서로는 수필집 내 생애 단 한 번, 문학의 숲을 거닐다 등이 있고 지난 해 영시번역서 생일, 축복 등을 출간했습니다. 1985년부터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안녕하십니까?

장영희 :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박인규 : 장교수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무엇보다도 계속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2년 전인가 척추암 선고를 받으셨고 잘 이겨내셔서 작년부터 다시 강의활동을 시작하셨는데 건강은 회복하신 건가요?

장영희 : 일단 작년 5월에 항암치료는 끝났구요, 어렵사리 24번 항암치료를 했는데 다행히 잘 끝냈고. 척추암에 완치라는 건 없다고 해요. 그래서 계속 조심하면서 인위적으로 칼슘을 투여하는 주사를 자주 맞으면서 자체 내에서 칼슘을 자생적으로 만들 수 없다고 해서 열심히 병원을 들락거리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안정권에 들었다고 말씀해 주시고.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다시 발병 전의 바쁜 삶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박인규 : 암이라는 걸 알고 나서 장교수께서 어떤 신문칼럼을 통해서 본인이 암이라는 걸 공개하셨는데, 당시 칼럼을 읽어보면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번번이 죽을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이렇게 쓰셨는데요... 암을 두 번이나 다시 일어서신, 대부분 고마움을 느낀다고 하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장영희 :
글쎄요. 제 생각에 저는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단 제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왜 이런 어려움이 닥쳤는가 생각하기 전에, 지금 현 시점에서 내가 여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2004년 9월 8일 다시 병원에 입원하면서, 어쩌겠어요 일단 암에 걸렸는데, 다시 시간을 돌릴 수도 없고. 그래서 지금 이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최선을 다해 병을 이겨낼 것인가를 나름대로 생각했구요. 그래서 하루하루 열심히 정말 성실하게, 그리고 또 저는 재미있게 사는 걸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통스러워도 오늘 하루를 정말 재밌고 성실하게 살면 고통이 끝날 날이 있을 거라고 열심히 믿었고, 그리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지만 쌓이고 쌓이니까 세월이 지나서 정말 고통이 끝나는 날이 있었구요. 그래서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돌아오는 날 저희 학생들이 생일축하 플래카드를 붙여놓고 반짝이 달아 놓고 환영해 줬는데, 정말 어떤 의미에서는 다시 태어난 것 같이.. 어찌보면 발병 전보다 열심히, 재밌게, 그리고 아주 순간순간 내가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쁨과 보람을 느끼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박인규 : 제가 듣기로, 암 같은 중병에 걸리게 되면 몇 번의 심리적인 단계를 거친다더라구요. 강한 부정. .그럴 리 없어. 그러다가는 왜 또 나만 걸리느냐. 그런데 장교수는 일찍부터 수긍하시고 오히려 담담하게 싸워가신 것 같아요.

장영희 : 그렇죠. 부정하는 마음, 또는 하필이면 왜, 내가 무슨 했기에..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리고 병원에서 투병생활하면서 벽에 갇혀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래서 바깥세상과의 단절 같은 것, 두려움 등을 느끼지 않은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스스로에게 분명히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밝은 쪽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스스로 흥미있는 일을 찾으면서 깊은 생각보다는 재밌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재밌는 책과 TV프로그램을 보고 하루하루를...

박인규 : 마음을 잘 다스리셨군요.

장영희 : 네. 이겨내는 데 커다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박인규 : 장영희 교수님은 신체장애를 이겨내셨고, 두 번이나 암을 이겨냈고. 그래서 오뚝이 교수다. 우리시대 희망의 상징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누군가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는 게 좋은 일인 것 같은데, 불편하십니까?

장영희 : 일단 희망의 상징이라고 여러 언론에서 많이 저를 보고 있는데, 그게 희망의 상징이라는 것 자체가 제가 아주절망과 불운을 겪고 다시 일어선 상황을 전제로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한 번도 절망해 본 적 없고. 그리고 저는 행복을 너무 많이 느낄 수 있고 행운을 많이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불운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치열한, 절망적인 삶에서 다시 일어난 장영희라고 말할 때, 저는 그 전제조건 자체가 아주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일단 저는 너무나 행복하고 행운을 만힝 타고났고 제가 사랑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주변에 많고. 그래서 제가 왜 절망을 딛고 일어서야 되는지 애당초.. 전제조건이 별로 맘에 안 들어서 하는 말입니다.

박인규 : 절망에 처한 적이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처지를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군요.

장영희 : 그리고 아까 저를 소개하실 때도 잠깐 말씀하셨지만, 저의 어려움은 가시적이기 때문에, 제가 신체장애를 갖고 있고 병이라는 가시적인 어려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확대돼서 알려져 있지만 그 정도 어려움을 겪지 않은 어려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시적이 아니라도 인간관계 또는 심리적, 재정적으로 누구나 어려움을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만 불운하고 절망해야 하는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절망과 반대되는 의미에서의 '희망으로 간 사람'으로 여겨지는 게 불편하다는 말이죠.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박인규 :
일단 암을 이겨내시고 작년에 다시 활동하시면서 책을 세 권이나 내셨어요. 수필집, 영미번역시집인 생일, 축복...

장영희 : 네 권 냈어요. 나중에 크리스마스 때 어린이를 위한..'산타클로스는 정말 있단다'라는 아동용 도서를 한 번 냈습니다.

박인규 : 문학관련 작업을 하신 게 본인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장영희 : 일단 굉장히 재미가 있구요. 제가 생각할 때 문학은 삶의 교과서거든요. 어떤 의미에서 대리경험이구요. 왜냐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세상 모든 경험을 다 하고 모든 사람을 다 만나고 살 순 없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문학작품을 통해서 여러 가지 유형의 사람을 만나고 여러 경험과 모험을 하는 대리경험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는가. 내가 나로서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남이 돼보는 연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살아가는 방법, 나와 남의 벽을 허물고 함께 공통점을 발견하고 아, 나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 사람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하는, 이해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또는 화합하는 마음을 가르쳐주는 학문이라기보다는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학생들에게 얘기하고, 물론 우리 학생들이 문학을 전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새는 영문학을 하면서 문학 자체에 관심있다기보다는 영어를 기능적 수단으로만 배우려 드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래서 뭘 해도, 어떤 전공을 해도, 나중에 그 어떤 직업을 가져도 문학이라는 게 얼마나 인간의 기본적인 교양은 물론 삶에 대한 자세를 가르쳐줄 수 있는가를 강조하려고 노력하죠. 왜냐면 남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갈등을 겪으면서 그걸 어떻게 극복하고 해소하며 살아가는가를 배울 수 있다는 건 나중에 꼭 문학교수가 돼서가 아니라 이공학을 하거나 의사가 돼서도 마찬가지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거든요.

박인규 : 삶을 이해하는 데 문학만큼 좋은 것이 없다.

장영희 : 그럼요.

박인규 : 작년에 내신 책이 생일하고 축복, 영미번역시집을 두 권이나 내셨는데 각각 나름대로 주제가 있다면서요?

장영희 : 네. 생일은 부제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거든요. 우리가 육신적으로 태어나는 생일도 중요하지만 정말 사랑을 느끼고 사랑에 눈뜬 바로 그 날도 내 영혼의 생일이란 의미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사랑에 관한 영시들을 모아서 짤막한 코멘트를 달아서 낸 책입니다. 그리고 축복의 부제는 '희망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축복입니다'라는 희망에 관한 시를 모은 책입니다 .그래서 축복이라는 책을 내면서 희망에 관한 시를 모아놓고 제가 제목을 어떤 걸로 할까 너무너무 고민했어요. 그래서 그냥 희망이라는 제목을 할까, 그렇지만 너무 싱겁잖아요. 희망에 관한 시라고 해서 희망으로 제목을 쓰는 것이. 그런데 제게 오는 팬레터 중에서 대부분의 편지들이 수인들, 교도소에 계신 수인들이 보낸 것이 거의 90% 이상을 차지하거든요. 그런데 그 중 어떤 분이 제게 편지를 주시면서 어디선가 제가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제 글을 가끔 읽는 분이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이곳에서 선생님께 드릴 건 아무 것도 없지만 희망을 저는 선생님께 드립니다. 희망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축복이니까요. 이런 말을 써보내 주셨어요. 제가 그 편지를 읽으면서 너무 가슴에 와닿았고, 아 정말 그렇다.. 그래서 그분에게도 그렇고 제게도 그렇고 희망이란 게 없으면 우리가 살아가기 힘들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커다란 축복이 희망이로구나. 그래서 제가 제목을 축복이라고 지었습니다.

박인규 : 교도소에 계신 분이 교수님에게 희망을 드리겠다고 편지를 썼군요. 그분도 상당히 어려운 처지신데..

장영희 : 그렇죠. 물질적인 것을 저희가 줄 순 없지만 자기가 갖고 있는 희망,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기에 제가 필요로 하는 희망, 그리고 우리가 삶에서 가장 커다란 축복인 희망을 저에게 준다고 편지를 주셨어요.

박인규 : 사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하면 참 편할 수 있는데, 쉽지가 않죠. 축복에 있는 시 중에서 혹시 괜찮은 걸 하나 낭독해 보면 어떨까요? 하나 소개를 해주시죠.

장영희 : 좋죠.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19세기의 여류 시인이 있는데요, '희망은 한 마리 새'라는 아주 아름다운 시를 썼습니다. 이 시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박인규 :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영희 : 희망은 한 마리 새 - 에밀리 디킨슨 희망은 한 마리 새 영혼 위에 걸터앉아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 그칠 줄 모른다. 모진 바람 속에서 더욱 달콤한 소리 아무리 심한 폭풍도 많은 이의 가슴 따뜻이 보듬는 그 작은 새의 노래 멈추지 못하리.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들었다. 허나 아무리 절박해도 그건 내게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았다.

박인규 : 희망은 한 마리 새라고 번역하셨는데 원제는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어떤 건가요?

장영희 : 희망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우리가 기쁘고 행복할 때는 잊어버리고 삽니다. 하지만 슬플 때, 지금 이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주 추운 땅이나 절박한 바다에 나갔을 때 저절로 우리 마음에서 생기는 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희망은 우리에게 정말 빵 한 조각 요구하는 게 없지만 늘 우리가 힘들고 슬플 때 손 내밀어 주는 우리 마음 속의 작은 새와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시에 대해서 짧은 코멘트를 쓴 적이 있었는데요, 희망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거나 간절히 원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상처에 새살이 나오듯, 죽은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듯 희망은 절로 생기는 겁니다. 이제는 정말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할 때 가만히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기울여 보세요. 한 마리 작은 새가 속삭입니다. 아니, 괜찮을 거야. 이게 끝이 아닐 거야. 넌 해낼 수 있어. 그칠 줄 모르고 속삭입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우리가 삶에서 공짜로 누리는 제일 멋진 축복입니다. 제가 이렇게 쓴 적이 있는데요, 이와 마찬가지로 희망이라는 것은 우리가 늘 가슴에 품고 있어야 되는, 그렇지만 어떤 사람은 이 작은새가 가슴속에서 속삭여도 그걸 듣지 않고 그냥 포기해 버리거든요. 하지만 우리 가슴속에서 가만히 들어보면 늘 우리가 아플 때 힘들 때 어려울 때 괜찮아, 힘들어도 해낼 수 있을 거야, 이게 끝이 아닐 거야, 그런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에 우리가 귀기울이고 충실히 따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가장 어려울 때, 정말 막다른 골목일 때 희망이 저절로 생긴다고 하셨는데, 많은 분들이 이걸 못 느끼시는 모양이죠? 느낄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데요..

장영희 : 본능인데요, 저는 희망은 본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냥 주저앉아 포기하고 있는것보다 일어나서 한발짝이라도 걸으면 훨씬 더 마음이 편하고 오히려 희망을 가지면 힘이 더 생기는.. 포기하고 있으면 너무 슬프고 비참하죠. 하지만 희망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으니까..

박인규 : 세상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장영희 : 독이 두 개 있는데, 어떤 사람이 실험을 했어요. 그 독 위를 완전히 밀봉하고 각 독에 쥐를 집어넣었어요. 그리고 한 쪽은 아주 가느다란 빛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뚫었어요. 그런데 구멍을 뚫은 독 속의 쥐는 일주일을 살고 완전히 밀봉한 독 속의 쥐는 하루를 살았다고 합니다. 물론 쥐가 호흡하는 데는 둘 다 지장없게 만들어 놓고. 바로 그것이 희망의 힘이거든요. 정말 빛이 한쪽에 들어올 때 내가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정신적 영혼적인 힘. 그것으로 인해서 육체적인 힘까지 생겼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거든요. 이것은 실험결과니까. 희망이라는 건 어떤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정말 우리 육신에서 나올 수 있는, 가시적인 힘이라고 생각해요.

박인규 : 장영희 교수께서 중고등학교 다니실 때가 대략 60,70년대인데, 그 당시에는 상당히 장애인으로서 공부하기가 힘들었다고 해요. 장교수도 대학이나 대학원 가기가 많이 어려웠다던데 그때에 비하면 요즘은 많이 나아진 거죠? 어떻습니까, 장애인들 공부하기가..

장영희 : 각 대학교마다 장애학생 특례입학 제도도 있구요. 그리고 입학하면 여러 가지 시설면에서 또는 개인적으로 배려해 주기 때문에 제가 다닐 때와는 많은 차이가 있죠. 저 다닐 때는 일단 입학시험 보는 걸 아예 허락하지 않았어요. 어차피 신체검사에서 떨어질 거니까 학과시험을 볼 필요 없다는 논리였죠. 그래서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시험을 볼 때마다 너무너무...

박인규 : 서울대 같은 경우도 아예 응시를 못하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장영희 : 대학에 꼭 가고 싶어서. 또 공부를 웬만큼 했기 때문에, 저희 아버지께서 그 당시 서울대학교 교수님이셨구요, 그래서 당시에 총장님께 찾아가서 시험을 좀 보게 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때 총장님이 저희 아버지와 친분이 있으신 분이셨거든요. 그런데 일단 합격하고 나서 교직원과 싸워서 이겨줄 수가 없다고 시험을 보지 않는 게 좋겠다고, 괜히 상처받을 거니까. 그래서 나름대로 아주 예의바르게 거절하셔서 제가 시험을 보지 않았었습니다.

박인규 : 지금 장애인들의 교육환경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장애인의 한분으로서 지금 국내에서 장애인들을 가르치는 데 부족하다. 그런 게 있으십니까?

장영희 : 제도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고, 어떤 의미에서 직업선택을 할 때 너무나 차별이 심하기 때문에...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학교 들어가는 게 어려웠고, 물론 직업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어떤 의미에서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서 학교는 다닐 수 있지만 졸업하고 나서 취업할 때 그걸 활용할 수가 없으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더 심각하다고 할까요? 왜냐면 교육을 받았지만 교육의 결과를 자기가 직업과 연결시킬 수가 없어서 더욱더 좌절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박인규 : 요즘 국내에서 영어교육 대단합니다. 갓난아이에게도 가르치는데, 영어교육 전공은 아니시지만 영문학 전공하신 분으로서, 국내에서 부는 영어교육 열풍을 어떻게 보세요?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장영희 : 제가 보기에는 많은 분들이 영어에 대해서 많이 오해하고 계시거든요. 영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생이 생각할 능력이 없는데 영어만 잘한다면 그 영어는 단순한 기능이고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죠. 어렸을 때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어떤 면에서 더 중요한 것은 좀 더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하고 좀 더 재밌는 생각을 많이 하고 논리적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제대로 영문학을 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한테 문학이란 이런 거다.. 이런 조언의 말씀 마지막으로 부탁드릴까 합니다.

장영희 : 제가 면접을 하다 보면 우리 학생들이 영문학 자체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단지 영어를 배우는 과로 생각하는데, 문학을 통해서 영어를 배울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문학을 배우는 과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소설과 시를 읽고, 그리고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니까 인간다움이 무엇인가를 재미있는 작품들을 통해 배우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배움과 동시에 영어를 습득할 수 있는 그런 부차적인 효과도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생각할 때는 강요에 의해서보다도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많이 읽고, 재미있는 시도로 글과 일기도 좀 써보고. 그리고 일기도 좀 쓰고. 그리고 뭔가를 그냥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 요새 우리 학생들을 영상세대라고 하잖아요. 그냥 가만히 앉아서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그냥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비판할 수 있는, 이건 어떻고 저건 저렇다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보는 게 중요하구요.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건 책을 많이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아 여기서 왜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을까, 아니면 여기서 작가가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훨씬 더 책읽기가 재밌어지고 좀 더 이야깃거리도 많아지고..나중에 성인이 돼서, 대학교 졸업하고 직업을 가질 때 정말 든든한 밑천을 갖게 되는, 보물을 쌓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올해는 정말 시 한수라도 좀 읽고 자기 생활이나 다른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장영희 : 감사합니다.

박인규 :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장영희 교수와 함께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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