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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란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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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란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것"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1/02] 낭송시 선집 펴낸 신경림 시인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농무> 와 <남한강> 의 시인 신경림씨가 지난 연말 자신이 평소에 즐겨 낭송하던 시 50편을 묶어서 "내 인생의 첫 떨림 처음처럼" 이란 낭송시 선집을 펴냈습니다. 평소 천 편의 시를 외운다는 신경림 시인은 '신경림의 소리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통해 읽고 싶고 읽기 좋은 우리 시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신경림 시인은 이미 10년 전부터, 정지용에서 천상병까지, 김지하에서 안도현까지 대표적인 시인들의 삶과 시를 해설한 <시인을 찾아?gt;라는 책을 펴내는 등 우리 시가 독자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신경림 시인을 초대해서 시작 반세기를 넘긴 그가 생각하는 시란 무엇인지, 시가 우리 삶에 어떤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 시와 가까워지기 위해서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등에 대해서 얘기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신경림 시인입니다. 신경림 시인은 1935년 충북 충주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 와 <묘비>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민예총 공동상임위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만해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시집으로는 [농무],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뿔]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민요기행], [시인을 찾아서]등이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200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하시는 것 다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지난해 말에 책을 한 권 내셨어요. 내 인생의 첫 떨림 처음처럼. 신경림의 소리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 한 한달쯤 됐는데 책은 많이 나가나요?

신경림 : 괜찮게 나간다고 얘길 들었습니다.

박인규 : 그냥 시선집이 아니라 소리내어 읽고 싶은 시라는 제목을 붙이셨는데, 특별히 이런 책을 내시게 된 계기가 있으십니까?

신경림 : 요즘 사람들이 시를 안 읽는다는 얘기들을 많이 해요. 시가 사람들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죠. 그러나 한 가지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원래 시는 옛날부터 눈으로만이 아니라 입으로 소리 내서 읽고 귀로 듣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너무 눈으로만 읽는 시가 돼서 소리 내서 읽고 귀로 듣는 것이 빠졌습니다. 그렇게 빠진 것이 시가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원인이 어느 정도 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눈으로 시를 많이 읽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아서 어떤 때는 소리 내서 읽고, 자기가 소리 내서 읽으면서 귀로 듣고, 그럴 때 진짜 시의 맛이 살아나거든요. 그렇게 한 번 해보면 사람들이 시를 좀 가깝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계기도 되지 않을까 해서 제가 평소 소리내서 잘 읽는.... 저도 눈으로 읽기만 하지 않고 소리 내서 읽는데요, 즐겨서 외우는 시를 중심으로 해서 한 번 독자들이 시를 가깝게 하는 뭔가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박인규 : '고기는 씹어야 맛이다.' 라는 얘기가 있는데, '시는 읽어야 맛이다.'이런 얘기도 될 수 있겠네요.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신경림 : 그렇지 않습니까? 시라는 게 다 눈으로 봅니다. 그런데 눈으로만 봐서는 조금 시의 맛은.. 말의 재미란 게 있으니까 역시 소리내 읽어야 그 맛이 있고, 또 귀로 들어야지 말의 맛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 맛을 더 살려서 음악적인 기준보다는 읽고 듣기 좋은 시를 고른 거죠.

박인규 : 예를 들면 시를 속으로 읽으면서 느끼는 것과 소리내 읽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까?

신경림 : 많이 다른 것보다는 눈으로만 읽으면 충분히 시의 맛을 다 만끽할 수 없는 거죠. 뭔가 좀 쳐지는 느낌이 있죠. 그래서 눈으로 읽어도 좋지만 소리 내서 읽고 귀로 듣고, 그래서 진짜 재미난 시를 한 번 찾아봤습니다.

박인규 : 아무래도 낭송시선집이니까 읽기 좋은 시.. 특히 신경림 선생님께서 평소에 즐기시던 시라고 하지만 나름대로 어떤 기준이 있을 것 같아요.

신경림 : 그렇죠. 시적 밀도가 약해서 시원찮은 시는 물론 안 뽑았죠. 아무리 낭송이 좋다고 해도 시로서의 품격이나 밀도가 있어서 시로서 우수한 시가 첫째 조건입니다.

박인규 : 모두 6부로 나누셔서, 예를 들면 암사슴처럼 뛰어다녀 보아라.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고. 이런 소제목으로 나누셨는데 6부로 나눈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신경림 : 특별한 의미보다는 그래도 애정시라면 애정시 비슷한 것. 자연을 노래한 시들 비슷한 것들을 함께 묶었죠. 전부 완전히 구별되는 건 아니고. 시라는 건 이건 애정시고 자연시다, 이렇게 구분되는 건 아니니까. 다 포함하고 있는 거니까요. 그렇게 조금씩 경향이 비슷한 시를 한 데 묶어서 만든 거죠.

박인규 : 그러면 이쯤 해서 이번 낭송시선집에 수록된 시 중에서 신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시를 한 번 낭송으로 들어보도록 할까요?

신경림 : 백석시인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이건 주소죠. 어느 어느 편, 박시봉편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박인규 : 남신의주 유동에 사시는 박시봉 댁의...

신경림 : 하숙을 살고 있는 거죠. 그것이 시의 제목이 되고 있죠.

박인규 :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성우: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깎지베개를 하고 구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아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박인규 : 평소에 낭송을 많이 하시니까, 우리 성우분이 하시는 낭송이 좋습니까?

신경림 : 아주 잘 하시네요. 들으니까 눈으로 읽는 것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박인규 : 쭉 들어보니까 시인이 굉장히 고단한 처지인데, 그래도 마지막에 가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뭔가 새롭게 삶의 의지를 다진달까요?

신경림 : 그렇죠. 뭔가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 자신이 새롭게 살아가는 뜻을 찾아내고. 그런 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정확한 정보는 아니고 제가 알기로는 이 시를 잡지에 발표한 게 시인 자신이 아니고 정현웅이라는 아주 친하게 지내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 화가가 발표했어요. 제가 추측컨대 그 화가한테 백석 시인이 아마 시를 보냈던가봐요. 그런데 제목도 없이 주소만 적어 보낸 거죠. 그래서 그 화가가 제목을 따로 정하지 않고 그 주소를 제목으로 해서 발표한 게 아닌가 추측합니다.

박인규 : 사실 백석이라는 시인은 문학가에서는 많이 아시지만 학교에서는 60, 70년대 공부하신 분들은 잘 몰라요.

신경림 : 해방 후 북한에 머물면서.. 그런데 백석시인의 시적 기량이 사회주의와는 관계없습니다. 큰 활동도 못하고. 제가 알기로는 해방 후에 쓴 시가 동요 몇 편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는 거의 활동을 안 했죠.

박인규 : 시작은 해방 이전에 하셨군요.

신경림 : 해방 뒤에는 몇 편 밖에 없었죠.

박인규 : 제 기억으로는 정지용 시인도 월북 시인이라고 해서, 제가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를 처음 읽은 게.....

신경림 : 옛날에는 한국에서 보이지 않으면 다 월북으로 쳐서, 죽었건 활동하지 않건 간에 무조건 못 읽게 했으니까요.

박인규 : 신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시작도 해오셨지만 10년 전부터 어떤 잡지에 '시인을 찾아서'라는 시인들의 전기랄까 해설이랄까, 그런 책도 쓰셨는데

신경림 : 아주 쉬운 시론이랄까 시인론 같은 거죠. 그걸 쓰게 된 계기가, 전교조 국어교사들 모임에 나가서 몇 번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국어교사들 전부 하는 얘기가 학생들이 시와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길이 없을까. 또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어떻게 하면 시를 더 재밌게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함께 얘기했죠. 그러다가 그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내가 그렇게 시인을 찾아서 다니면서 시를 소개하면 크게 도움이 되겠다고 해서 쓰게 된 거죠. 나중에 책으로 묶은 거고.

박인규 : 시라는 게 사실 어려서부터 시심이랄까요, 그런 걸 키워줘야 되는데 우리는 사실 모든 게 입시와 관련돼 있으니까. 어떻습니까? 우리 학교에서, 특히 초중등학교에서 하는 시교육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세요?

신경림 : 시교육을 하기가 어렵다고 해요. 시라는 게 다들 좋은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시를 알아야 된다. 그러면서도 막상 시가 왜 좋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르고. 그냥 있으니까 좋다고 하고 있으니까 시험문제도 내고. 너무 입시 중심으로 시도 가르치니까 시가 학생들에게 굉장히 재미없게 다가오죠. 이건 상징이고 이것은 비유가 어떻고 자꾸 이런 식으로 하니까 아이들이 참 싫어하죠. 그렇게 가르치지 말고 좀 더 재밌게 시를 가르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을 것 같아서, 그 노력의 일환으로 제가 한 거죠.

박인규 : 선생님께서 이번에 내시면서, 분명히 갈수록 시가 예전만큼 읽히지 않는 건 사실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독자들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시인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느냐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신경림 : 요즘 시인들이 해도 되는 소리 안 해도 되는 소리 떠들고. 말하자면 시 자체도 품격 없이 떠들고 시끄러워지고 수다스러워지는 거죠. 그러면 독자들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또 자기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소리를 종알종알 하니까 독자들이 좋아할 수가 없죠. 이런 걸 시인 스스로 반성도 하고. 물론 시인들 자신에게만 이유가 있는 건 아니죠. 여러 가지 미디어가 다양해지는 것도 시가 안 읽히는 이유겠지만, 그렇더라도 그런 좋지 않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시를 독자에게 더 재밌게 읽히는 방법을 시인들이 좀 연구하고 노력해야겠죠.

박인규 : 신년 초에 선생님을 모신 이유는 올해는 일반 시민들도 시도 좀 읽으면서... 물론 갈수록 살기 팍팍해진다고는 하지만 여유 있게 살아보자는 느낌에서..

신경림 : 시가 사람에게 여유도 꿈도 갖게 하니까, 아까 백석 시 같은 것 있지 않습니까.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꿈을 잃지 않게 만드는 역할도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시가 좀 더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서로가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시를 잘 모르시는, 진짜 생활이 바쁘신 분들이 시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어떤 수순이랄까 단계를 밟아야 될까요?

신경림 : 글쎄요. 많이 읽는 수밖에 없어요. 다른 왕도는 없습니다. 많이 읽고 친해지고 시집 몇 권 머리맡에 두고 늘 손때가 까맣게 묻도록 들춰보고 그런 가운데서 시와 친해지고 알게 되는 거지, 거저 되는 것도 아니고. 또 학교에서 국어시간에 몇 편 배웠다고 시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죠.

박인규 : 저도 대학생 때는 치기 어린 젊은이였기 때문에 친구들과 술 마시다가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같은 시를 낭송도 하고, 그때는 몇 편을 외웠던 것 같은데 지금은 거의 기억이 안 납니다. 새해부터는 시를 좀 읽어봐야 될 텐데.. 모르겠습니다. 저희 프로그램에서는 항상 개인적인 질문도 하는데요, 보니까 등단하신 게 제 나이와 같습니다. 우선 시인이 돼야겠다고는 언제부터 마음먹으신 건가요?

신경림 : 글쎄요. 대학 들어오기 전후 해서 내가 앞으로 할 일은 시 쓰는 일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확실히 언제부터 되겠다고 생각했는지는 잘 생각이 안 나고.

박인규 : 대부분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많이 읽으시고 그러셨겠죠?

신경림 : 그렇죠. 아까 들은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을 읽은 게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1학년 때인가였어요.

박인규 : 50년 동안 수많은 시를 써오셨을 텐데, 본인의 작품도 그럴 테고 특히 등단하실 때의 시작의 유행이랄까 추세가 요즘과는 달랐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신경림 : 그때만 해도 거의 서정시였고... 그때가 제가 집 나올 때가 전쟁 직후라 굉장히 열악할 때죠. 한 56년인데 어떤 통계자료를 찾아봤더니 그때 우리나라 소득이 50달러에요. 이해가 됩니까? 그렇게 어렵게 살 땐데, 저는 그때 갈대 같은 서정시를 쓰면서 그런 회의를 했죠. 우리가 살기도 어렵고 전쟁의 상처가 남아있는데 이렇게 우리 사회는 엉망진창인데 내가 아름다운 서정시만 쓰는 것이 과연 시인으로서 충분히 뭔가 다 해내는 일인가 하는 회의에 사로잡혀서 한동안 시를 못 쓰다가 결국 시는 그 시대의 목소리기도 하고 그 시대의 질문이고 대답이면서 그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지 않으면 진짜 감동을 주는 시는 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그 후 쓴 농무라는 시는 말하자면 사회적 성격이 깃든 시죠. 그러나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말이라는 건 사회적인 성격도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거든요. 자기탐구 같은 것, 내면의 탐구도 시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거죠. 저는 그런 시가 가진 사회성, 또 어떤 자기탐구 같은 성격. 이것이 다 같이 균형을 잡고 있을 때 가장 감동을 주는 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시대의 아픔이나 모순을 외면해선 안 된다. 그런 게 60년대에는 참여시냐 순수시냐 이런 논쟁도 됐는데...

신경림 : 그렇게 논쟁이 될 만한 것이 아니고 양쪽을 다 갖고 있어야지요. 순수하기도 하고 참여도 할 수 있어야죠.

박인규 :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를 보시면 어떤 느낌을 가지십니까?

신경림 :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일률적으로 얘기하긴 어렵죠. 젊은 시인들의 시도 좋은 시는 참 많습니다. 말 다루는 솜씨도 뛰어나고 상상력도 아주 기발한 것도 있고. 그런 게 좋은데 어떤 시인들은 자기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소릴 하는 시인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시를 독자들로부터 이간시키는 역할도 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박인규 : 제가 시집을 거의 안 보다가 신경림 시인을 모신다고 해서 최근 책방에 가서 시집을 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신선생님 책 말고도 김용택, 도종환, 안도현 이런 분들이 '시인이 가려 뽑은 시'라고 해서, 어떻게 보면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간다고 말할 수도 잇고

신경림 : 말하자면 독자들에게 뭔가 좋은 시를 알려줘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박인규 : 저희 프로그램에 도종환 시인이 한 번 나오셨는데, 인터넷으로 시를 배달하는 것도 하시던데요

신경림 : 도종환 시인도 열심히 하고 정말 좋은 시를 읽게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죠.

박인규 : 예전에는 그냥 시집이 나오면 시를 좋아하는 분들이 그냥 사면 되는데 지금은 나름대로 권위랄까 이런 걸 가지신 분들이 소개를 해서, 어떻게 말하면 떠먹여 주듯이 읽는 시대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시독자들이 많이 줄어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습니까?

신경림 : 글쎄요. 시독자가 시로부터 감동을 받는 게 좀 적어지긴 했지만 시독자들이 옛날보다 줄진 않았습니다. 원래 시독자가 많지 않은 거죠. 백석 시인이 시집을 낸 게 사슴이라는 시집인데 그게 아마 몇백부 밖에 안 찍었을 겁니다. 최근에 찍은 것밖에 없죠. 옛날에 시집을 내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은 없었는데 지금은 시집이 심심치 않게 베스트셀러가 되는 걸 보면 요즘 책의 독자가 엄청나게 넓어졌으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시독자가 반드시 적어진 건 아니죠. 물론 옛날같이 감동을 받는 시인이 좀 적어졌다는 얘기겠죠.

박인규 : 많은 분들은 방송 들으면서 구름 잡는 소리 하고 있네, 심하게는 시가 밥 먹여 주냐는 말씀을 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 시선집 내시면서 서문을 보니까, 시는 돈을 벌지도 쌀을 생산하지도 못하며 자동차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돈을 벌고 쌀을 생산하고 자동차를 만드는 주체인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들고 사람답게 살게 만든다. 이게 시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시라는 게 삶에서 어떤 것인지, 신경림 시인이 생각하시는 시란 우리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신경림 : 시라는 건 거기 써있는 것처럼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뭔가 꿈을 갖게 해주고, 또 사람답게 사는 자세를 갖게 해주는 역할도 하죠. 그런데 시는 독자들에게 뭔가 세상을 새롭게 보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하는 역할을 해야 되고. 그러니까 시라는 것은 남들이 한 소리를 똑같이 따라해서는 안되고 자기만의 독특한 눈으로, 또 자기만이 들을 수 있는 것들을 독자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시라는 건 남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는 것을 먼저 보고 듣고 만져서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참다운 시라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박인규 : 아직도 시는 계속 쓰고 계시죠?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신경림 : 그렇죠.

박인규 : 또 시집이 나올 계획 같은 게 있으신가요?

신경림 : 금년에 시집을 하나 묶을 생각으로 있죠.

박인규 : 시도 계속 쓰시면서 시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서 낭송시선집 같은, 또 시인을 찾아서 같이 대중들에게 시를 알기 쉽게 풀어주는 계획도 갖고 계십니까?

신경림 : 그런 책도 하나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시인들과 대화를 해서 시, 인생, 여러 가지 것을 주제로 대화를 해서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자는 구상을 하고 있죠.

박인규 : 그것도 또 다른 형태의 시인을 찾아서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신경림 : 그렇죠. 시인을 찾아서 세 번째 책이 될 수 있겠죠.

박인규 : 어제는 1월 1일이라 쉬었고, 오늘이 본격적으로 정해년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인데요, 시인으로서... 사실 작년뿐 아니라 계속 사회가 시끄럽고, 특히 서민들은 살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말씀도 하시고, 힘든데 시가 뭐 중요하냐는 말씀도 하실 것 같은데. 새해를 맞는 우리 국민들에게 힘이 될 만한 덕담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신경림 :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사람들이 너무 극단적으로 자기 생각만 하지 말고 그동안 자기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좀 보수 쪽으로 오고, 자기가 보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진보 쪽으로 와서 중도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넘치면 우리 사회가 좀 편안하고 평화스러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것이 제 금년의 꿈입니다.

박인규 : 극단적인 주장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보듬는

신경림 : 남의 자리에서 세상을 좀 보고. 자기자리에서만 보지 말고

박인규 : 역지사지.

신경림 : 자기 생각만 고집하지 말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이해하는 가운데서 새해에는 좀 더 아름답고 평화스럽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박인규 : 서로 이해하고 보듬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그러면서도 무엇보다도 시 한편을 외울 수 있는 여유있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신경림 : 그렇죠. 시가 바로 그런 역할도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합니다.

박인규 : 한 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낭송시선집 '내 인생의 첫 떨림 처음처럼'이라는 책을 출간한 신경림 시인과 함께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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