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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포드, 그가 남긴 '어두운 유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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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포드, 그가 남긴 '어두운 유산'들

부시·체니·럼스펠드 중용…'전쟁의 씨' 뿌려

미국의 38대 대통령을 지낸 제럴드 포드가 26일 아흔 셋을 일기로 세상을 떴다.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면서 대통령을 맡게 된 포드는 76년 말 대선에서 민주당의 지미 카터에게 패배함으로써 미국 유일의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이란 별칭을 얻었다. 부통령이었다가 대통령의 유고로 대통령에 올랐던 해리 트루먼이나 린든 존슨이 다음번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던 것과는 다른 경우다.

2년 반 가량의 짧은 재임기간 동안 포드 대통령은 베트남에 마지막까지 남은 미군 병력을 철수 시키는 등 전임 닉슨이나 존슨이 벌여놓은 '사고'를 수습하는 일을 맡았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를 두고 "온화한 손으로 닉슨 시절의 소모적인 열병에서 국민들을 벗어나게 했다"고 평가했다.

포드는 특히 1975년 당시로서는 진보적 성향의 존 폴 스티븐스를 대법관에 임명함으로써 연방대법원의 보수성을 탈피하는 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티븐스는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플로리다 무효표 재검표 요구가 위헌이라는 연방대법원의 판결 당시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스티븐스 대법관은 또 올해에도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에서 실시하는 테러 용의자에 대한 군사재판이 제네바협약 위반이며 위헌이라고 판결해 조지 부시 행정부에 타격을 가했다. 스티븐스의 이같은 판결은 그를 선택했던 대통령의 혜안을 다시 한번 조명케 하면서 포드 대통령이 남긴 '좋은 유산'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만난 후 함께 걸어나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포드 재임 시절 CIA 국장에 임명된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됐다. ⓒ연합뉴스

"체니와 럼스펠드, 약한 대통령 설움에 대한 보상 심리"

그러나 포드는 없어도 됐을 일을 '저질러' 오늘날의 미국, 특히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에 너무도 부정적인 유산을 남겼다. 그것은 바로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를 중용했던 일이다.

포드는 1974년 대통령 직에 오르자마자 도널드 럼스펠드를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42세에 불과했던 그를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미국 역사상 최연소 국방장관이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했던 럼스펠드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야인 생활을 하다가 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또 다시 국방장관에 기용돼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침공을 주도하며 '실패한 전쟁'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럼스펠드의 뒤를 이어 포드의 비서실장이 된 인물은 딕 체니 현 부통령. 당시 34세였던 체니 역시 최연소로 대통령 비서실장이 됐다. 체니는 이어 아버지 부시 행정부 시절 국방장관으로 1991년 걸프전을 이끌었고,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 때에는 군수회사인 핼리버튼의 최고경영자로 활약하다가 2000년 조지 부시 현 대통령과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통령이 됐다. 체니 부통령은 현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쥐락펴락했던 네오콘(신보수주의)의 대표주자로 공격적인 전쟁 정책을 폈다.

럼스펠드와 체니는 포드 대통령 시절 이후 계속 같이 일해 왔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네이션은 27일 "부시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럼스펠드와 체니가 미국의 최근 역사상 가장 힘이 없었던 대통령과 일했던 때의 경험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부시 대통령이 제왕적인 대통령 권력을 휘두르게 함으로써 힘이 없던 포드 대통령과 일할 때 느꼈던 좌절감을 보상받으려는 심리라는 것이다.

포드는 또 아버지 부시를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임명하며 부시 가문의 전성시대를 열어줬다. 부시는 1976년부터 77년까지 CIA를 맡았고 그렇게 얻은 권력을 바탕으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러닝메이트로 1980년 대선에 출마해 8년간 부통령을 한 뒤 1989년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 그렇게 마련한 입지는 아들에게까지 탄탄대로를 열어줘 부자(父子) 대통령을 만들어 내며 부시 일가의 위세를 과시했다.

베트남에 남아 있는 미군 철수는 그 결정의 불가피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사이공에 있던 미국 대사관 옥상에 내린 구조 헬기를 타기 위해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나 넬슨 록펠러 부통령, 그리고 체니, 럼스펠드는 또 포드 대통령을 설득해 1975년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침공한 일을 묵인하게 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의 호전성을 잘 다스려 또 다른 사태의 확산을 막은 것은 포드의 '인간경영' 덕택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2001년 9.11 사태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의 패권을 휘두르는 일에 앞장선 이들을 처음으로 발탁하고 앞길을 열어준 것은 포드가 미국 역사에 남긴 어두운 유산임에 틀림없다. 이에 네이션은 "그들이 미국에 끼친 영향은 포드 시절보다 지금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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