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폐기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긴장해소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다. 북핵 폐기뿐 아니다. 일반적으로 핵무기 폐기는 국가간 긴장해소는 물론 인류평화에 긴요한 일이다. 평화운동가인 데이비드 코트라이트(노트르담대학 국제평화연구소 연구원)는 최근 미 가톨릭계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아메리카>(America)에 기고한 '새로운 핵위험'(The New Nuclear Danger)이란 제목의 글에서 "북한 핵폐기뿐 아니라 미국도 핵확산금지조약(NPT) 합의에 따라 핵을 폐기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이 글에서 코트라이트는 미국의 핵관련 대외정책에 매우 비판적이다. 북한과의 직접협상에 나서야 하는데도 부시행정부가 이를 소홀히 해 왔음을 나무라면서, "부시행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의 거듭된 협상(1994년, 1998년)을 통해 북핵 동결에 부분적으로나마 성공을 거두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지금의) 북한 핵은 부시행정부의 외교정책의 실패를 뜻한다"고 주장한다. 채찍보다 직접 대화가 중요하다는 논리다.
나아가 코트라이트는 미 부시행정부가 인도를 일방적으로 봐주고 북한과 이란을 몰아세우는 등 편향적으로 핵정책이 이뤄져 왔음을 비판한다. 한마디로 미국의 "선택적 강제 전략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A strategy of selective coercion is fundamentally flawed)는 지적이다.
다음은 <아메리카> 지 11일자 기사의 요약이다.
<본문 보기> http://www.americamagazine.org/gettext.cfm?articleTypeID=1&textID=5182&issueID=596
제2차 핵시대에 접어들어
북한 핵실험은 한반도뿐 아니라 전세계에 핵 위험이 다시 시작된다는 경종을 울렸다. 이란은 우라늄 증폭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적 압력을 버티면서 꾸준히 핵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매우 정교한 핵운반 능력과 더불어 200기로 추정되는 핵무기를 비축해 왔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98년 핵실험에 성공한 이래 핵무기 비축량을 늘려가면서 미사일과 항공운반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러시아는 핵미사일 생산을 재개했고, 아울러 냉전시대 무기체계를 바꾸는 중이다. 미국은 '신뢰할만한 대체 핵탄두'(reliable replacement warheads)를 만들어낼 새로운 설비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느슨한 핵무기'(loose nukes, 국가의 통제력을 벗어난 핵무기)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러시아와 구소련연방 소속 공화국들에서는 냉전시대에 만들어졌던 핵무기가 '핵 밀수업자'(nuclear smugglers)의 표적이 돼 왔다. 파키스탄에서는 핵기술자 A. Q. 칸 박사가 리비아와 아마도 다른 몇몇 국가에 핵기술을 퍼뜨리는 역할을 맡았다.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이 핵무기를 손에 넣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제로 알 카에다는 핵무기를 가지려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는 지금 제2차 핵시대에 접어들었다. '제2차'란 지난 냉전시대와는 달리 핵 위험이 더욱 퍼지고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에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앗아가는 전면적인 핵 학살(nuclear holocaust) 위험은 줄어들었지만 실제로 핵무기가 사용될 위험은 늘어났다.
미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암 페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핵무기가 미국의 도시에 터질 것이라고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전례 없는 재앙(unprecedented catastrophe)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의 상황이 두렵다."
실제로 어느 도시에서 핵폭탄이 터질 위험은 냉전시대보다 훨씬 커졌고, 해를 거듭 할수록 그 위험은 커져만 간다.
"북한 핵, 부시행정부의 외교정책 실패작"
북한 핵무기는 그런 위험을 훨씬 키웠다. 북한은 10개의 핵무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북한은 이웃 국가들을 타격할만한 미사일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만약 북한의 핵 위험이 더 커지면, 일본, 한국, 타이완 안에서 핵무기 개발압력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동북아 지역 국가들은 이미 재래식 무기증강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북한 핵은 생겨선 안 될 재앙이며, 부시행정부의 외교정책의 실패를 뜻한다. 부시행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의 거듭된 협상(1994년, 1998년)을 통해 북핵 동결에 부분적으로나마 성공을 거두었다. 부시행정부가 출범할 당시 북한은 겨우 한두 개의 핵폭탄을 만들 만큼의 핵물질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부시행정부는 북한과의 직접협상을 거부했고,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낙인찍었다.
'무장해제를 위한 전쟁'?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으려는 부시행정부의 대응은 특정 국가들을 선별적으로 골라 강제적인 압력(coercive pressures)을 늘리는 방식이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사담 후세인을 무장해제한다는 명분 아래 이뤄졌다. 말하자면 '무장해제를 위한 전쟁'(war for disarmament)을 벌였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북한과 이란의 핵보유 야망을 더욱 키워주었을 뿐이다. 그 메시지는 분명히 이러했다. "만약 당신이 사담 후세인과 같은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길 바라지 않는다면 핵무기를 갖는 데 주저하지 말라."
미국이 북한이나 이란에 대해 압박하면서도, 인도나 파키스탄에 대해 핵무장을 중지하라는 압력을 가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오히려 미국은 인도에게 전혀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 핵확산 방지법을 거슬러 인도에게 핵물질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핵거래는 인도의 핵무장 길을 더욱 터주었고, 인도의 라이벌 국가인 파키스탄으로 하여금 핵무장을 추구하도록 움직였다.
이렇듯 미국의 선택적인 핵강제 정책은 근본적으로 결함을 지녔다. 핵위험을 줄이려면 모든 형태의 군비확장에 대해 보편적이고도 지속적인 반대(universal, consistent opposition)가 요구된다. 이와 더불어 북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직접적인 협상의지가 요구된다.
군사적 압박이냐, 외교협상이냐
지난날 성공적인 핵확산방지는 군사적 압력이 아니라 '당근과 채찍'(carrot and stick)에 바탕한 외교적 협상에 의존해 왔다. 리비아의 카다피 체제가 테러리즘과 핵무장 추구를 포기하겠다고 나선 것도 외교적 협상의 성과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1990년대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한 것도 미국의 폭격 때문이 아니라 외교와 국제적 압력에 바탕한 10년에 걸친 유엔의 사찰 때문이었다. 남아프리카, 우크라이나,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핵무기 보유 열망을 지닌 국가들이 핵개발을 포기한 것도 외교적 압력 때문이었다.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이 적용돼야 한다. 북한은 지난날 여러 차례 거듭 밝혔듯이, 미국이 직접협상을 통해 외교관계와 경제관계를 정상화한다면 핵개발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북한은 이같은 입장을 핵실험 바로 이틀 뒤에도 분명히 했다.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워싱턴과 평양 사이의 직접대화를 주문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이같은 주문을 거절했다. 그러면서 부시행정부는 6자회담에서 중국이 북한에게 압력을 행사해줄 것이라 주장했다. 압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은 대북 유인책 내놔야
미국은 북한이 마음을 바꾸도록 유인책을 내놓아야 한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국제사찰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미국은 대북 경제제재를 풀고,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고, 대북 군사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확인해줘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나 이란처럼 체제안보를 걱정하는 나라들에게 고립정책을 펴선 안 된다. 미국이 북한과의 직접현상을 통해 북한의 무장해제를 이끌어낸다면, 동북아 지역안보는 물론 국제안보의 걱정스런 부분들을 상당히 덜어낼 것이다.
북한 핵폐기와 아울러 미국도 핵확산금지조약(NPT) 합의에 따라 1995년과 2000년 거듭 약속했듯이, 핵무장 해제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미국도 그동안 국제사회에다 거듭 약속한대로 핵무장해제를 이행할 시간이 됐다. "내가 말한 대로 따르지,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하지 말라"(Do as I say, not as I do)는 투로 미 부시행정부가 대외정책을 편다면 그것은 도덕적 권위(moral authority)를 지닐 수가 없고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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