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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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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커피'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23>

나는 커피를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아침에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남은 하루는 홍차와 약초 차에 의존한다. 전에 한국을 방문하여 가져온 인삼차가 떨어져서 요즘은 백리향, 아니스(지중해 연안의 약초), 생강으로 차를 끓인다. 70년대 말 레바논의 베이루트에 살 때에는 커피를 꽤 마셨는데, 커피를 마시는 게 지식인이라는 티를 내는 행위가 돼가는 것을 깨닫고 끊었다. 보통 사람은 차를 마시지만 엘리트라면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발상이 나는 싫었다. 당시에 우리는 우스운 방식으로 심각했다.

커피라는 말은 술 또는 알코홀이라는 뜻의 아랍어 '커후아(Qehwa)'에서 왔다. 커피의 원래 아랍어 이름은 '(본 Bonn)'이다. 16세기 초 아랍의 학자들이 커피를 자기들의 특별한 음료로 채택했다. 그들은 늘 자기들에게는 금지된 술을 간절히 마시고 싶어 했으므로, 커피를 끓인 음료를 '커후아틸 본 Qehwat-il-Bonn(커피 술)'이라고 부르며 즐겼다. 나중에 이 이름이 '커후아'로 단축되었으며, 터키를 통해 유럽에 전해지면서 '커피'로 변형되었다.

16세기의 문인 '알자지레'는 다른 문헌을 인용하여, 예멘의 항구 아덴의 학자 '디바니'가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다고 기록했다. 당시 학자들은 새벽까지 깨어 있기를 원했고 그렇게 만들어주는 물질을 찾았다. 위대한 학자 '시블리'는 밤에 자지 않으려고 눈에 소금을 넣기까지 했다. 디바니가 커피의 각성 효과를 발견함으로써 학자들은 드디어 뜻을 이루었다.
▲ 아랍 커피 주전자

몇 년 안에 커피가 전 아랍에 유행했다. 메카의 학자들은 기도를 올리면서 커피를 마시거나 노변 찻집에서 커피를 즐길 때, 마치 술을 마시는 듯한 격식을 차리고 기분을 냈다. 이것이 커피가 역사상 몇 번씩이나 금지된 이유이다. 한 판사는 말하기를 심지어 젬젬(메카의 성스러운 우물) 의 물로 만들지라도 이 음료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알자지레의 책 제목은 '커피를 합법화해도 되는 확실한 이유'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커피에 대한 제재가 엄격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수십 년이 걸리기는 했지만, 커피가 승리했다.

예멘을 포함한 전 아랍과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했던 이집트로부터 커피가 유럽에 전해졌다. 17세기에 유럽인들은 커피나무를 유럽에서 기르고 싶어 했으며, 성스러운 커피나무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프랑스 원정대가 파견되었다. 그 당시 아랍인들은 커피나무의 해외 유출을 막으려고, 커피의 씨가 발아하지 못하도록 볶은 후에야 외국인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 노변 카페

프랑스 원정대는 마침내 커피나무가 재배되던 예멘의 산에 도달했으며, 가져갈 수 있는 만큼 씨를 가져갔다. 훗날 '장 드 바로크'가 이 여행에 대해 책을 썼다. 그의 어조는 콜럼버스가 이른바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말할 때만큼이나 승리감에 격앙돼 있다. 1715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은 1926년에 영국에서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재발간되었다.

'1708, 1709, 1710 프랑스인들이 최초로 감행한, 동쪽 대양 건너 홍해를 지나 행복의 아라비아로 가는 여행의 기록, 1711, 1712, 1713, 두 번째 원정대가 모카 항에서 예멘 왕의 조정까지 가는 여정에 대한 상세한 진술과 함께, 커피나무와 그 열매의 가치에 대한 설명 수록. 또한 커피의 최초 이용, 그 이후 아시아와 유럽 양 지역에서의 발달, 프랑스로의 도입과 파리에서의 확산 등등 커피의 역사에 대한 논문 수록.'

오늘날 아라비아 커피는 터키 커피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아랍이 터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커피를 재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1999년에 라틴 아메리카의 콜롬비아에서 열린 '메딜린 시 축제'에 참가했을 때, 처음으로 커피나무를 보았다. '앙지 플란타티옹(Angi plantation)'이라는 젊은 콜롬비아 시인이 나를 자기 아버지의 커피 플랜테이션(plantation) 농장에 초대했다. 멋진 여행이었다. 나는 나무에 달린 커피 열매를 만지고, 따서 입에 넣고 씹어도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농장 저택의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우리 옆에 토마토나무가 있었다. 그 전까지 나는 토마토나무라는 것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런데 그것이 거기 있었다. 나는 그 열매를 맛보았다. 보통 토마토 맛과 거의 비슷했다. 문득 나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를 보았다. 검은 새였다. 나는 새를 가까이 보려고 일어나서 조금 다가갔다. 새는 날개를 퍼덕이더니 날아갔다. 그때 나는 새 날개 밑에 있는 불꽃을 보았다. 그래서 앙지에게 말했다. "새가 자신을 불태우려 해요, 앙지. 자기 자신을 불태운다구요." 앙지가 내 눈을 바라보며 답했다. "모든 사람이 날개 밑에 자기만의 타오르는 불꽃을 갖고 있지요."

나중에 나는 한편의 시를 썼다.

모든 이의 날개 밑에는 숨겨진 불꽃이 있다네
그 불꽃은 잘 간수해야 하지
불꽃이 번져 자신을 태워버리지 않도록
또는 그 불꽃이 꺼져 자신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그것은 은밀한 불꽃
남이 그 불꽃을 알아챌 때는
오직 당신이 날려고 날개를 퍼덕일 때뿐

날개 밑에 숨겨진 은밀한 불꽃이 커피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아무 관계 없다. 앙지가 커피 농장에 나를 초대해준 덕분에 내게는 둘이 연관지어졌을 뿐이다.

커피로 돌아가서, 나는 이 난에 글을 쓰는 동료 작가의 이름, '아다니아(아다니아 쉬블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아다니아는 커피의 다른 이름이다. 역사적으로 커피를 예멘의 도시 아덴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우리는 커피를 아덴에서 온 것, 곧 아다니아라고 부르곤 했다. 아다니아의 아버지는 커피 애호가였으며, 그의 딸은 태어났을 때 커피처럼 갈색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딸의 이름을 아다니아라고 지었다.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www.palbridge.org)> 기획·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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