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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진보주의 가치에서 후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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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진보주의 가치에서 후퇴하는가?

[김민웅 칼럼] 조지 맥거번, 그리고 한국의 대선

미국 진보정치의 상징

미국 진보정치의 상징 조지 맥거번(George McGovern/1922-2012)이 21일(현지시간) 향년 90세로 타계했다. 그는 197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가 닉슨에게 패배했지만, 닉슨의 지시에 따른 민주당 선거 사무실 침입이 드러난 워터 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은 불명예 사퇴하게 된다.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가가 가려진 사태였다.

▲ 1972년 4월 조지 맥거번 전 상원의원이 메사추세츠주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뒤 딸 테레사와 함께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뉴시스
그러나 맥거번은 그의 대통령 선거출마와 워터 게이트 사건을 중심으로 한 닉슨과의 관계로만 파악할 수 없는 존재다. 그는 무엇보다도 보수 일변도의 미국 정치에 진보정치의 힘을 확산시키고 진보적 가치에 헌신할 새로운 세대를 길러 낸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베트남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소수의 정치인이었다. 1960년대 말 미국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고, 이러한 흐름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여론의 방향이 바뀌면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를 외치는 정치인들이 하나 둘 늘어났지만, 전쟁 지지 분위기 속에서 반전의 의지를 표명하기는 어려웠던 때부터 맥거번은 군사 강국의 미국이 아니라 사회복지제도를 건강하게 갖춘 미국을 꿈꾸었다. 뿐만 아니라, 기아에 허덕이는 빈곤지역에 대해 유엔 차원의 식량 지원을 적극 추진한 주역이기도 했다.

민초들의 힘을 믿은 정치가

맥거번은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고,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후 다코다 웨슬리안 대학에서 정치학과 역사학 교수를 지내다가 나이 34세에 정치에 들어서게 된다. 이 시기 그는 공화당 일색이었던 사우스 다코다에 민주당 세력 확장에 엄청난 공헌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그의 정치경험은 정당의 지도부보다는 밑바닥 민초들의 역할이 보다 커야 정당정치의 동력이 생겨난다는 평생의 신념을 만들어 낸다.

그가 197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저변에는 이러한 정치경험과 신념이 정당제도 내부에 실현된 것도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민주당 개혁을 위해 그가 시도한 제안은 후보 선출 예비선거에서 시민, 흑인들을 포함한 다양한 인종, 젊은이들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훗날 대통령이 되는 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 등 젊은 세대가 맥거번 선거를 자발적으로 적극 지원하게 되는 기초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맥거번이 대통령 후보가 되었던 과정에는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이 계기가 되었다. 민주당 지도부와 케네디가는 1968년 케네디 암살 사건 이후 맥거번에게 대통령 후보를 제안, 그를 지지했지만 당시 부통령 출신이던 험프리를 경선에서 이기지 못했고, 4년 뒤 1972년에는 이미 전국적 명성을 얻은 뒤라 어렵지 않게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진보의 신념을 끝까지 지킨 인물

그러나 부통령 후보 선임 과정과 민주당 내부의 분란은 그의 선거를 매우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선거에서 지고 말았다. 선거 결과가 패배로 나타나자 이후 미국 보수정치권은 맥거번을 진보정치 실패의 모델로 낙인찍어 진보주의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고, 1980년 레이건 등장의 과정에서 1970년대의 진보적 가치를 부정하는 보수주의가 재등장함에 따라 맥거번 정치는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맥거번은 자신의 패배가 곧 진보정치의 패배가 아니라는 입장을 확고히 했고 이후 반전운동과 사회복지제도 강화에 대한 그의 정치철학을 설파하는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도 반기를 들었으며, 그런 돈이 있다면 그 돈을 미국의 의료보장제도 강화, 빈곤층을 위한 재정정책, 주택과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 교육 개선에 써야 함을 역설해왔다.

그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후 강연과 저술활동을 해왔으며, 미국의 연방정부는 미국사회에서 취약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해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또한 베트남 전쟁이라는 역사적 과오에서 배우지 못한 미국이 또다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였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으며, 빌 클린턴 정부 아래에서는 세계 빈곤지역 식량 지원을 위한 유엔 특사로서의 활동도 감당했다.

공화당의 공격

공화당은 맥거번을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좌파요, 시장의 자유에 반기를 드는 인물이자 미국 주류 정치에서 벗어난 일탈자라고 공격했으나, 맥거번은 자신이 사랑하는 미국이 올바른 국가가 되기 위한 길을 공화당이 어긋나게 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을 펼칠 때, 공화당 보수파들은 그를 향해 그럴 거면 미국을 떠나라고 하자 그는 이렇기 말했다.

"'미국을 사랑하던지, 아니면 이 나라를 떠나든지 하라'는 식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 나라를 바꿉시다. 그래서 이 나라를 더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러한 그의 정신과 자세는 다시 조명되어 2000년 그는 미국 시민으로서는 최상의 영예인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 메달'을 받았으며,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평화운동의 지도자요, 양심과 확신의 정치 지도자"라고 추모했다.

맥거번이 대통령이었다면

맥거번의 일생을 이 자리에 자세히 기록하는 일은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미국의 진보운동을 기반으로 해서 정치적 위치를 만들어 냈으며 선거의 과정에서도 공화당의 공세와 민주당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진보적 가치를 끝까지 지켜나갔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거번의 태도는 선거의 시기에는 중간을 선택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던 상황을 역행하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그것이 그의 진보정치에 대한 강조 때문이 아니라 부통령 후보 문제로 곤경에 처했던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의 진보정치에 대한 민주당 내부의 반발기류와 선거 관리상의 문제가 겹쳐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사실 당시 미국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이 매우 컸고, 맥거번의 등장은 미국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매우 중대한 기회였기도 했다. 그랬다면 오늘날 우리는 전혀 다른 미국을 볼 가능성이 있었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없었고 한반도 평화도 새로운 방향으로 나갔을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적 가치의 의미란?

그런 점에서 보자면, 지금 야권 후보인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는 진보적 가치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나 철학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 물론 이들이 각기 개혁적 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상식의 입장을 가지겠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는 만큼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이 어려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복지에 대한 국가의 파격적인 노력,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역사적 정책의 천명, 노동자와 민중의 삶에 대한 전격적인 정책 발표, 교육과 문화에 대한 획기적 발상의 선언 등은 기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러한 사안들은 그간 우리의 역사가 어려운 고비를 넘어 획득해온 진보적 가치의 목표물이며 내용이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사실상 이와 같은 우리 역사의 진보적 전환의 큰 틀 위에 존재하는 정치인들과 세력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보세력과의 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기도 하다.

입을 열고 연설하면, 듣는 이들이 명쾌한 생각을 갖게 되고 속이 시원한 정치가의 모습을 볼 수는 없을까? 이번 선거의 의미가 역사적으로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나게 되는 사건인지 좀 더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을까? 정치쇄신 정도의 화두로 이번 선거의 의미를 규정할 수 있을까? 거대한 목표를 내세우고 그 목표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그런 열정적 정치가 더 윗길이 아닌가?

그런 목표와 열정이 일어나면 정치쇄신은 방법론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지 않을까?

맥거번이 노력한 것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민초들의 의지를 정당의 구조 속에 들어설 수 있는 문을 열었고, 또 하나는 국가의 모델 자체를 바꾸려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세대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우리는 지금, 이 나라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나라인지를 명확히 설정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무엇을 깨끗이 청산하고 무엇과 결별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위대한 꿈을 꾸는 나라와 국가가 되어야 하는지 그것을 듣고 싶다.

단일화, 연대-연합을 둘러싸고 두 후보 간에 벌어지는 정치는 우리의 마음을 다소 갑갑하게 하고 있다. 역사를 통쾌하게 밀고 나가는 힘을 느끼고 싶다. 그러자면, 목표도 확실하고 방법도 뚜렷한 정치가 이 답답한 속을 뚫어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뭔가 정치의 규모나 방식이 왜소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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