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정권이 여론조사 조작 사태에 휘말려 출범 두 달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우정민영화법에 반대했던 의원들을 복당시키고 도로특별재원의 일반 재원화 과정에서 자민당 내의 여타 계파와 밀실 타협을 하는 등 원칙 없는 정책 집행으로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한 달 새 10% 가까이 빠진 상황에서 여론조작으로 국민을 우롱한 스캔들까지 터지자 외신들은 "아베와 대중 간의 허니문이 끝났다"고 규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국민과의 대화' 한다더니 참가자 매수, 질문 조작
일본 내각부는 지난 13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에서 실시했던 '국민과의 대화(타운미팅)'의 과정에서 여론 조작 혐의가 짙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타운미팅'은 지난 2001년 5월 고이즈미 총리가 "국민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기반을 조성하겠다"고 선언한 후 그해 6월부터 9월까지 일본 전역에서 174차례 이뤄진 일종의 국민 여론 수렴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화 내용을 사전에 조정하고 대화 참가자를 동원하는 등 정부가 유리한 쪽으로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개입했을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사례까지 오간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내각부는 105차례 회의 과정에서 365명의 참가자에게 정부 측에 유리한 발언을 하도록 미리 의뢰했고 이 중 65명에게는 총 5000엔의 사례비가 지급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발언 내용을 아예 정부가 지정해 준 경우도 15차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이번 사건은 고이즈미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여론 조작의 정점에는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아베 총리가 서 있다. 이에 <요미우리> 신문은 "아베 개인의 도덕성은 물론 정권 전체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은 정부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아베 정권은 우정민영화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자민당에서 쫓아냈던 의원들을 다시 복당시켜 '개혁 퇴조'란 비판을 받아 왔던 만큼 이번 여론 조작 사건의 파괴력이 더욱 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아베 "사죄 의미로 석달치 급여 반납"
아베 정권의 위기에 야당이 잠자코 있을 리가 없다. 일본 정가는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기세싸움이 치열한 상황이다.
당장 민주, 공산, 사민, 국민신의 등 야 4당은 15일 오전 아베 내각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중의원에 제출했다. 참의원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문책 결의안을 제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일본 핵무장'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아소 타로 외상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도 제출됐다.
여당인 자민당이 중의원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내각 불신임안이 가결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출범 당시 70% 대였던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20% 이상 주저앉은 상황에서 야당이 초강수를 두고 나선 것이다.
이에 아베 총리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정치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킨 문제가 발생했다"고 사죄한 뒤, 사죄의 뜻으로 3개월간의 급여를 자진 반납하는 것으로 사건 진화에 나섰다.
여당도 지지율이 더 떨어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히데오 나카가와 자민당 간사장은 "이번 사건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유감스러운 사건"이라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그래도 총리가 적절한 조치를 통해 사건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지켜보자"며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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