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쿠바처럼 비동맹국 지원을 못 얻었나?
이번 유엔 총회 제3위원회의 결의문에는 주목할 만한 결정이 더 있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인권 비난은 잘못이라는 결의안이 찬성 77, 반대 63, 기권 26표로 채택되었다. 비동맹 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인권 문제의 정치적 이용과 이중 잣대의 적용을 비판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것이다.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인권문제는 보편적 의미보다는 각국의 이해와 역학관계에 따라 논란이 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동안 국제사회의 인권논의에서 북한과 함께 단골로 등장했던 쿠바에 대한 인권결의안은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국제적인 인권논의에서 비동맹 국가들의 '수의 정치'가 나타나고 있고, 이런 부분에 대해 미국 등은 유엔 인권논의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 여전히 기권과 반대가 적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비동맹국가 다수의 반대여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에는 북한의 책임이 크다. 북한은 미국식 인권 접근법과 다른 유럽연합(EU) 방식의 인권 대화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의 접근법이 '정권 교체론'에 가깝다면, EU는 접촉을 통해 실태를 파악하고 가능한 영역에서 개선방법을 찾는 방식이다. 북한은 2000년대 초 EU와 인권대화를 하기도 했지만, 지속하지 못했다. 이번 결의안의 핵심내용인 유엔 대북 인권 담당관인 문타폰의 활동에 대해서도 무시전략으로 일관했다.
이에 비해 미국 주도의 쿠바 인권결의안에 대해 대부분의 비동맹 국가들이 반대한 것은 비동맹정상회의의 의장국인 쿠바의 국제적 위상도 작용했지만, 쿠바가 비록 제한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인권개선 노력을 해 왔다는 점 때문이다.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쿠바 방문을 계기로 카스트로 정부는 100명 이상의 반체제 인사들을 석방했다. 2001년부터는 다당제 인정, 언론자유 보장, 시민 개헌청원권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바렐라 프로젝트(Varela Project)'가 추진되기도 했다. 2002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했을 때 이 프로젝트의 성과물인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1만1000명의 쿠바 국민들이 서명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정권의 간섭을 받고 있지만 '인권과 민족화합을 위한 쿠바위원회', '인권을 위한 쿠바 위원회'와 같은 인권운동 단체들도 있다. 이러한 단체들은 쿠바의 체제전환을 추진하는 미국 내 망명 쿠바인들의 인권운동과 다르다. 쿠바 내에서 쿠바의 인권 개선과 동시에 미국의 대(對) 쿠바 강경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쿠바 스스로의 '영리한 전략'들이 국제사회에서 미국 주도의 인권결의안을 반대하는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최소한 비동맹 다수 국가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소한 EU와의 인권대화를 재개해야 하며, 비동맹 국가들의 여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행동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입장변화, 남북관계는 어디로 가나
정책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이 대북 인권결의안에 기권한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인권의 보편적 의미만큼이나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행위'보다는 접촉과 대화를 통해 실질적인 인권 개선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다른 나라들이 말로만 북한 인권을 주장할 때 한국은 꾸준하게 다수의 탈북자를 받아들였다. 2006년 말 기준으로 이제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는 1만여 명에 이르고, 매년 탈북자 정착 지원예산으로 4000만 달러 정도를 지출해 왔다. 그래서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 담당관은 한국 정부의 '실질적인 북한 인권 개선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국제사회의 인권 중시 흐름에 동참한다고 말을 하지만, 이번 결의안에서도 45%에 달하는 국가들이 북한 인권결의안에 반대하거나 기권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인권정치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그동안의 논리와 다른 선택을 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6자회담이 재개되는 시점에서 인권결의안이 북핵문제의 협상구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다르다. 2004년 북한은 남한의 탈북자 입국을 이유로 8개월 이상 남북관계를 거부한 경험이 있다. 남한이 북한 인권결의안에 찬성한 후에도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비롯해 연일 남측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인도적 지원 중단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는 남한의 북한 인권결의안 찬성으로 당분간 불신의 증폭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부재'는 6자회담 국면에서 한국의 역할을 제한할 것이다. 9.19 공동성명을 채택했던 4차 6자회담에서 한국이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200만KW 대북송전 구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6.17 면담으로 정상화한 남북관계의 활성화 때문이었다. 앞으로의 6자회담에서 한국은 미-중-북 삼각대화를 바라만 보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6자회담이 열리지만 많은 쟁점과 불신의 흔적들이 있다. 중국이 최근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역시 한계가 있다. 한국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에서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포기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6자회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먹을 권리라도 보장해야
그동안 한국은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정치적 인권 개선만큼이나 경제적 인권의 보장도 중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이 있지만, 생존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권개선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인도적 지원을 하고 교류협력을 지속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연례적인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하고, 핵실험 이후 수해물자 지원도 중단했다. 나아가 2005년 말에 약속한 세계식량계획(WFP)에 대한 옥수수 10만 톤 지원 약속도 해가 바뀌는 현재에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거의 모든 공적 차원의 인도적 지원을 중단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애초에 인권결의안에 찬성할 생각이었다면 경제적 인권의 필요성을 포함시켜 국제사회에서 인도적 지원에 대한 명분이라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한마디로 전략부재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식량수급 상황은 이제 악화될 것이다. 홍수피해도 있고, 한국의 대북지원도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인권 상황의 악화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적으로 WFP를 통한 대북지원을 재개해야 한다. 솔직히 2005년에 약속한 옥수수 10만 톤을 아직도 이행하고 있지 않은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북지원은 그나마 북한에서 WFP 활동의 명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라면, 내년 1~2월이면 WFP의 대북지원 활동은 완전히 종료되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WFP가 지금까지 해 왔던 중요한 조사사업도 종료된다. 유니세프(UNICEF)와 함께 실시해 왔던 '어린이, 산모 등 취약계층의 영양 개선 조사사업'과 세계농업기구(FAO)와 함께 추진해 왔던 '북한 식량작황 조사사업' 등이다. 이미 '식량작황 조사사업'은 작년부터 중단된 상태다. 지원하는 식량이 없으니 현장방문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국내적 갈등으로 양자지원이 어렵다면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지원이라도 조속히 재개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6자회담이 재개되는 시점에서 그동안 중단해 왔던 인도적 대북지원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면, 최소한 이산가족 만남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먹는 문제를 정치군사적 문제와 연계하는 발상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날 필요가 있다. 북한 인권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현실적이며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경제적 인권 개선노력을 더 이상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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