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7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12년 만에 상·하원을 장악한 사건을 두고, 그 의미에 대해 거의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른바 "네오뎀(neo-Dem)"으로 대표되는 민주당의 보수화를 이번 선거의 특징으로 규정하면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했다 해도 정책적으로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실제 선거결과를 분석해보면 이같은 전망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아직 일부 하원 선거구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민주당은 1석도 잃지 않으면서 상원 6석, 하원 28석을 추가로 얻었다. 비교적 온건파로 분류되는 기존 공화당 의원을 물리치고 동북부와 중서부에서 약진한 것이 민주당 승리의 비결이었다.
선거과정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이라크전쟁 등 외교분야, 건강보험과 최저임금 등 경제분야에서 부시행정부의 기존 정책과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중 일부가 낙태나 줄기세포 연구처럼 가치의 문제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외교·경제 분야에서 진보적인 노선을 내세운 것이 선거승리의 원동력이 된 셈이다.
중간선거의 함의가 이처럼 명확하기에 앞으로 부시행정부가 외교분야에서 기존 노선을 고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그들이 극적인 정책 전환을 꾀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부시 대통령은 무능과 독선의 상징인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사임을 받아내면서도, 골수 공화당 지지자를 위해 보수적인 법관들과 볼턴 유엔 임시대사의 인준을 추진하는 등 다소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가올 청문회정국에 대비해 유연한 면모를 내비치는 한편, 인사 인준과정에서 민주당과 논쟁을 벌이며 그들의 무책임성을 부각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공화당 차기 대선주자나 의원들도 이라크전쟁이나 인사 인준에 관한 부시행정부의 경직된 태도에 식상해하고 있으므로, 2008년 대선을 앞둔 이들이 생존을 위해 부시 대통령을 얼마나 압박할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이다.
미국 정치지형의 변화는 한반도 정책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미FTA와 관련해서는, 공화당에 비해 보호주의적 성향이 강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함에 따라 한미FTA 자체가 무산되리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미국이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미 의회에서 한미FTA 체결에 가장 적극적인 보커스 상원의원은 민주당 소속이고, 현재까지 미국이 체결한 가장 큰 규모의 FTA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도 민주당 클린턴행정부 때 성사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FTA를 통해 얻는 이익이 크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 민주당이라고 FTA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미국 노조가 중시하는 노동 및 환경조건 관련 조항을 강화하고 미국상품의 한국시장 진출은 촉진하는 한편, 자동차·섬유 등 한국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관세철폐시한을 연장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도 민주당의 의회 장악을 들어 "한미FTA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한국이 더 양보해야 한다"는 식으로 나올 공산이 크다. FTA 협상개시 전부터 협상력을 스스로 낮추는 과오를 범한 우리 정부로서는, 중간선거 이후 미국의 압박이 더 거세질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한미FTA를 체결해야만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미FTA와는 달리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미 의회와 행정부 간에 상당한 신경전이 예상된다. 이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해밀턴 전 의원을 중심으로 이라크문제를 다루는 초당적인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이란과 북한에 관해 정보·전략 보고와 정책조정관의 임명을 요구하는 조항을 2007년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삽입한 바 있다. 이처럼 주요 외교·안보사안에 대한 의회의 영향력은 앞으로 한층 강해질 것이다.
10월 17일 발효된 국방수권법은 60일 이내에 대북정책조정관을 임명하도록 되어 있었다. 중간선거 전만 해도 부시행정부는 이에 큰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었지만 이제는 6자회담 재개와 맞물려 뭔가 실질적인 행동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1월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을 맡을 민주당 랜토스 의원은 "의회에서 북한문제가 최우선과제가 되도록 힘쓰고, 부시행정부가 내부 정책불화를 해소하도록 앞장설 것"임을 밝히면서, 힐 대표에게 협상전권을 부여하고 그의 방북을 허용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라크전쟁을 틈타 폭리를 취한 핼리버튼(딕 체니가 5년간 CEO로 재직한 에너지기업)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고 체니 부통령의 영향력이 약화되면 대북 협상파의 입지가 더욱 커질 것이다. 부시 대통령 입장에서도 고위급 정책조정관을 임명해 초당적인 차원에서 정책대안을 내놓게 하고 이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체면을 살리는 길이다.
하지만 미 중간선거 이후 개선된 정치지형에도 불구하고 북한문제 해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첫째, 미국에서 북한문제는 현재 이라크나 이란문제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린다. 공화당 입장에서도 이라크문제는 2008년 대선 전에 반드시 풀어야 하지만 북한문제는 현상관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길 것이다.
둘째, 미국이 대북협상에 본격적으로 임한다 해도 양쪽이 다 만족할 결과를 내오기는 쉽지 않다. 북측은 핵실험으로 몸값을 올린 만큼 자기들이 협상의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미국은 미국대로 금융제재 해소 같은 실질적인 조치 대신 한국전 종식 합의 등의 상징적인 조치를 취하는 댓가로 북한의 원자로 가동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적극적인 대북협상을 종용하는 랜토스 의원도 나찌 대학살을 경험한 헝가리 출신 유대인으로서, 신임 하원의장 펠로씨 의원과 더불어 인권문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경제·안보협력, 인권개선을 포괄하는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998년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해 제1차 북한 미사일위기에 대처한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정부는 이번 기회에 미국을 상대로 적극적인 설득작업을 벌여야 한다. 상호위협 감축과 동시행동의 원칙에 기반해 북미 양측이 관계정상화 및 비핵화에 관한 행동을 주고받아야 하며, 인권문제는 "접촉을 통한 변화"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임을 강조해야 한다.
중간선거 이후 부시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안팎의 비판이 진행되고 있는 공간을 적극 활용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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