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내 노선 간의 입장차이가 부동산 정책,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이라크 파병, PSI 확대 참여 등 경제와 외교 안보 분야의 굵직한 사안들을 계기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같은 정책적 분화가 정치적 분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부동산-출총제, 경제정책 뇌관
부동산 정책과 출총제 등 등 경제정책 분야는 강봉균 정책위의장 등 경제관료 출신 의원들의 입김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반면 일부 개혁파의 간헐적 반발은 정책적 실효성을 거두기 힘들고, 일부 대권주자들의 '개혁 드라이브' 역시 자신의 대권 행보의 일환으로 해석되면서 전반적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공급확대 위주의 11.15 부동산 정책은 열린우리당의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특히 분양원가 공개 등이 이번 대책에서 누락된 것은 당정의 시장주의자들의 완강한 반대론과 무관치 않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공약으로 제시한 분양원가 공개는 강봉균 정책위의장 등 당내 시장주의자들이 "민간부문의 공급을 줄일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어 추가대책에 반영될지 여부조차 매우 불투명한 상태다.
김근태 의장이 "부동산 정책을 당이 주도하겠다"고 선언했고, 천정배 의원도 '고강도 분양가 인하대책'을 내놨지만, 실질적으로 부동산 정책을 쥐락펴락하는 경제통 의원들과 재경부의 구상을 뒤엎을 만큼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심받는 이유다.
출총제 논의도 마찬가지다. 아직 당론이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출총제의 사실상 폐지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정책위 라인은 물론이고 상당수 의원들이 "아예 조건 없는 폐지로 가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김근태 의장까지 17일 "우리당은 출총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재검토 하고 있다"고 가세했다. 소위 '뉴딜' 정책의 맥락에서 김 의장은 "이제는 재계가 답할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경기활성화를 위해 기업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강 정책위의장 등의 논리와 차이가 있으나, 결과적으로 김 의장은 이들과 보조를 맞춘 셈이 됐다.
물론 출총제에 대해서만큼은 계파를 떠난 반발론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천정배 의원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대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 기업집단의 동반부실화 우려 등은 계속되고 있다. 출총제가 기업투자를 위축시킨다는 재계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강경한 고수론을 밝혔다.
김현미 의원은 "당내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도 없이 (출총제 완화로) 분위기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대안없는 출총제 폐지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 조만간 성명 등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개혁파의 퇴조와 재경부의 전면부상과 맞물려 당내 '과천 출신'들이 경제정책을 장악한 흐름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파병', 철군이냐 연장이냐
이런 가운데 이라크 파병 연장 문제나 PSI 참여 확대 문제, 유엔 인권 결의안 등 외교안보 분야의 문제에서도 노선 분화가 발생하고 있다. 각 세력이 자신의 입장을 보다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유엔 인권결의안에 찬성 입장을 발표한 16일 만해도 개혁적 성향의 의원들 18명이 정부의 결정에 우려를 표한 반면 중도보수 성향의 의원 18명으로 이루어진 '희망21'은 환영하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친노 그룹으로 분류되는 참여정치실천연대는 17일 논평을 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남북관계가 이 문제로 더욱 경색되는 상황을 우려한다"며 "대북인권결의안 찬성은 신중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도 정부 발표 전에 있었던 당정협의에서 우려를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곧이어 불어 닥칠 이라크 파병 문제는 갈등의 골이 더욱 깊다. 철군결의안을 제출키로 한 '철군파'들은 야당 의원들과 공조를 통해 세몰이에 나서고 있고, 임종석 의원도 당내 철군론 공론화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반면 당내 보수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안개모'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파병 연장론이 고개를 들었고, 중도 보수성향의 '침묵하는 다수'도 파병 연장의 불가피성에 내심 손을 들고 있다.
폭풍의 핵, '한미 FTA'…정치적 분화로 이어질까?
경제정책과 외교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한미 FTA는 폭풍의 핵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선 어느 세력도 집단화된 의견을 표명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민감한 뇌관이다. 당 지도부 역시 당론을 모으기 위한 절차도 밟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한미 FTA를 고리로 한 정계개편까지 점치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발등에 떨어진 경제 및 외교현안, 그리고 조만간 다가올 한미 FTA 등에 대한 입장 차이가 정치적 분화로 이어질지를 예단하기는 힘들다.
이와 관련해 민병두 의원은 "각 사안마다 묶여지는 그룹이 달라 이들 사안이 정계 개편을 가속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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