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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도착(時代倒錯)의 이론가, 다니엘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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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도착(時代倒錯)의 이론가, 다니엘 벨

[김운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14>

제 6 장. 시대도착(時代倒錯)의 이론가, 다니엘 벨

□ 일곱 번째 공주(The Seventh Princess), 그 후

엘리너 파전(Eleanor Farjeon)의 <일곱 번째 공주(The Seventh Princess)>, 그 후의 이야기를 한번 해봅시다.

드디어 세계의 왕자가 와서 이 나라 여왕과 결혼하고 싶다고 하여 머리 길이를 잴 날이 왔습니다. 그런데 여섯 명의 공주의 머리털 길이가 모두 똑같았죠? 그래서 아무도 여왕이 되지 못했고, 결혼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에도 여섯 명의 공주들은 유모들의 시중을 받으며 머리털을 가꾸는 것으로 일생을 보냈습니다. 결국 공주들의 머리털은 그들을 따르던 여섯 마리의 백조처럼 하얗게 새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 세계의 왕자도 그 여섯 공주의 머리카락이 가장 긴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죠.

그런데 이 세계의 왕자도 재미있습니다. 그는 말하지 않고 대신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시종이 늘 그를 대변합니다. 답답한 왕이 물었습니다.

"왕자님은 말씀을 못하시오?"

그러자 시종이 말합니다.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왕자님이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어 본 일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세상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말을 하는 사람, 말하지 않는 사람, 돈 있는 사람, 돈 없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일하는 사람, 위를 보는 사람,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 … 그런데 우리 주인은 저를 시종으로 뽑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주인님과 저 사이에 우리 주인님이 왕자인 세계를 우리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왕자님은 부자이고, 저는 가난뱅이, 왕자님은 생각하고 저는 그것을 실행하고, 왕자님은 내려다보시고 저는 우러러 보고, 왕자님은 말씀을 안 하시고, 제가 이야기합니다.(Now my master has chosen me for his servant, because between us we make up the world of which he is Prince. For he is rich and I am poor, and he thinks things and I do them, and he looks down and I look up, and he is silent, so I do the talking.)"

그리고 왕비가 직접 돌보아온 일곱 번째 공주의 머리털은 아예 사내아이처럼 짧은 머리였던 것 기억하시죠? 그녀는 빨간 수건으로 머리를 묶고 궁궐을 뛰쳐나와 언덕으로 강으로 그리고 시장으로 숲속으로 신나게 달려 나갑니다. 그녀 곁에는 비둘기와 세계의 왕자의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시종이 따라 다녔고요.

일곱 번째 공주가 시종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요, 당신이 곁에 없으면 왕자님은 어떻게 하시지요?(But what with the Prince of the World do without you in the palace?)"

그러자 그 시종은 말했습니다.

"왕자님은 아마 최선을 다할 겁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안에 있는 사람도 있고 밖에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요.(He will have to do as best he can, for it takes all sorts to make the world, those that are in and those that are out.)"

제 생각에는 아마도 집시였던 왕비는 왕이 아무리 자기를 끔찍이 사랑해 주어도 궁궐 속에 갇혀 지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했을 것입니다. 이미 다른 세상을 보았던 왕비는 궁전 지붕에 올라가 동쪽 목장이나, 남쪽의 강, 서쪽에 굽이굽이 펼쳐진 언덕, 북쪽 시장 등을 바라보면서 여러 시간씩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막내딸은 왕비와 꼭 닮은 아이였습니다. 다른 공주들은 왕을 닮아 몸이 크고 금발인데, 막내인 일곱 번째 공주는 왕비를 닮아 작고 진한 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비는 막내 공주를 볼 때마다 머리를 가위로 잘랐던 것입니다. 왕비는 아마도 막내 공주를 통해서 자기의 꿈을 이루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시종의 말은 어쩌면 보일 듯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어딘가에 있는 어떤 실체를 찾아서 끝없이 방황하는 저 같은 사람의 독백처럼 들립니다. 마치 플루브록(Alfred Prufrock)이 슬프게 읊조렸던 것 같이 말입니다.

"그래 아니다!
나는 햄릿 왕자가 아니고 되고 싶지도 않다.
그렇기는커녕 나는 그런 왕자의 하인배,
한 두 장면 얼굴이나 비치고 왕자를 받들어 모셔야 하는,
틀림없이 만만한 왕자의 머슴,
굽실굽실 심부름이나 즐겨하고,
빈틈없고, 조심성 많고, 소심하고
큰소리로 떠들기도 하지만, 좀 바보 같기도 하고
때로는 정말 바보 같기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때로는 틀림없이 '어릿광대' "

No! I am not Prince Hamlet, nor was meant to be;
Am an attendant lord, one that will do
To swell a progress, start a scene or two,
Advise the prince; no doubt, an easy tool
Deferential, glad to be of use,
Politic, cautious, and meticulous;
Full of high sentence, but a bit obtuse;
At times, indeed, almost ridiculous—
Almost, at times, the Fool.

- 엘리오트(T.S.Eliot)의 <플루브록의 연가>(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 중에서 -

(1) 이데올로기의 종언

미국의 사회학자였던 다니엘 벨(Daniel Bell·1919∼2011)은 1960년대 이미<이데올로기의 종언>(End of Ideology·1960)이라는 책에서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진리가 될 수 없음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 패러다임을 이야기할 때 이 사람을 뺄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벨이 말하는 요지는 ① 소비에트 세력들의 반인권 유린 사태, ② 수정자본주의에 의한 복지국가(welfare state)의 대두, ③ 전통적 중산층 문화의 붕괴와 반문화(counter-culture)의 대두, ④ 새로운 중산계급의 출현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가능성의 약화 및 후기 산업사회의 대두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벨은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이데올로기란 사상을 사회적인 목적달성의 수단으로 전환시킨 가치와 신념의 체계로 사회구성원 사이에서 의심받지 않는 채 수용되는 신성불가침한 성격을 띤 것이라고 봅니다. 이 책은 당시 지식인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저술된 것입니다. 미국과 서유럽 사회에서는 기술(Technology)의 발전과 복지사회의 등장에 따라 사회 양극화, 극단화에 의한 자연혁명론에 입각한 마르크스주의는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즉 과학기술 혁명에 의해, 정보와 지식이 중요하게 되는 탈산업사회로 이동하게 됨에 따라, 미래 사회에서는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선진산업사회에서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전면적인 대립과 투쟁이 첨예화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극복되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죠.(1) 정치적인 성격이 강했던 노동자들은 사회복지 제도의 정비와 노사분쟁에 대한 조정 제도 등의 발달로 보다 사회적이고 개별적인 방향으로 관심이 돌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벨에 의해 시작된 것은 아니고 1955년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개최된 국제회의가 발단이 되어 미국의 다니엘 벨(Daniel Bell·1919~2011), 새무어 립셋(Seymour Lipset· 1922∼2006), 프랑스의 레몽 아롱(Raymond Aron·1905~1983) 등에 의해 제기되었습니다. 이 이론은 1950년대 후반기에 출현했던 수렴이론(Convergency theory)으로 사회구조의 형성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는 경제나 기술적인 요소들이 더 영향력이 있으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점차 유사해져서 하나의 형태로 수렴해갈 것이라는 것을 주장합니다. 산업 사회는 산업 엘리트와 이윤 추구에 의해 지배되는 반면, 탈산업사회는 과학과 기술 간의 한층 밀접해진 관계로 과학자와 기술 관료라는 새로운 엘리트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 관료는 이른바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로 과학적 지식이나 전문적 기술을 소유함으로써 사회 또는 조직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말하고 있는 '탈산업화 사회'에서는 이들 테크노크라트가 관료인 뷰로크라트(bureaucrat)를 대신하는 새로운 사회계층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벨은 비록 이데올로기는 종언을 고하겠지만 그것이 인간이 가진 유토피아(Utopia)에 대한 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단지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소련에서도 사회의 유지 발전에 있어서 이데올로기보다는 기술적 기능이 더욱 우선시되므로 이데올로기는 급진적인 지식인(intellectuals)들에게도 정당성이 상실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벨의 견해를 본다면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벨은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주저인 <후기산업사회>(The Coming of Post-Industrial Society·1973)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2) 이 책은 여러 모로 중요한 저서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1970년대 초반에 나온 것인데 우리가 앞서 본 여러 패러다임의 이론가들의 주요 사상들을 대부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벨 이후의 패러다임의 이론가들은 사실상 벨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계승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다니엘 벨의 이론을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는 교량으로서의 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벨은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에서 설립한 '2000년대 위원회'의 의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벨은 산업사회 이후를 '후기 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 또는 '탈산업사회'라고 합니다. 여기서 탈(脫) 또는 후기 산업사회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종언으로 고하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사용한 용어라고 합니다.

벨은 사회를 각 사회의 특성에 따라 ① 산업화 이전형, ② 산업사회, ③ 탈산업사회 등으로 구분합니다. 산업화 이전형의 사회는 생존을 위해 자연과 투쟁하는 (a game against nature) 형태로 인구의 60% 이상이 농업·광업·어업·임업 등에 종사하는 사회를 말하고 산업사회는 "조작된 자연과의 게임(a game against fabricated nature)"을 하는 사회로 대량 생산을 위해 기계에 에너지를 가하는 사회를 말한다고 합니다. 산업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기계에 얽매어 있으며 반숙련공이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특징을 가진다고 합니다. 이에 비하여 탈산업사회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게임" 사회로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서비스가 증가하는 사회를 말한다고 합니다.

벨은 탈산업사회의 특징으로 ① 산업 부문에 비해 서비스부문이 우세해져 새로운 서비스경제의 대두(제품생산중심에서 서비스생산중심으로)(3), ② 전문직 노동자 역할의 중요성 증가, ③ 연구와 개발이 중심 역할(기술혁신에 기여하는 이론적 지식에 중점), ④ 높은 수준의 복지 실현가능성 증대, ⑤ 교육 기회의 확대에 따른 새로운 지적 기술의 창출 가능성 증대 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벨은 1970년대 초반에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대부분의 이슈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시 수많은 이론가들이 마르크스에 함몰되어 자본주의와 세계의 미래를 논의하고 있을 때 벨은 이미 정보화 시대, 디지털 시대를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벨의 저서들은 1980년대를 휩쓴 토플러(Alvin Toffler)의 <제3의 물결>, 1990년대 리프킨(Jeremy Rifkin)의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1995)(4) 등과 더불어 미래학의 대표적인 저서로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이론들은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너무 미래를 빨리 내다 본 것이죠. 왜냐하면 벨은 이전에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상호 투쟁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베트남 전쟁이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로 확대되었고 세계적인 반미 투쟁과 프랑스의 혁명적 학생 운동, 일본의 전공투(全共闘) 결성 및 적군파(赤軍派) 등장 등이 나타나고 미국은 대규모 흑인운동(Black movement)이 일어난 것입니다.

▲ 베트남군의 디엔비엔푸 승리 장면

이 모든 사건들의 정점에는 제2차 베트남 전쟁(Vietnam War·1960∼1975)이 있습니다.(5) 이미 국가 체제를 갖춘 나라에 프랑스가 시대착오적으로 구식민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베트남을 침공하였다가 디엔비엔푸(Dien Bien Phu)에서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물러나더니(6) 다시 새로운 침입자 미국이 자유주의 수호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며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할시킵니다. 이 전쟁은 지식인들의 거센 반발을 초래하여 전세계적으로 반전운동을 확산시킵니다.

▲ 미국에서 일어난 베트남전 반대 시위 ⓒ위키피디아

1965년 급진적 흑인 운동가인 말콤 엑스(Malcom X)가 암살당하고, 3년 뒤 온건파 흑인운동가였던 킹 목사가 암살당합니다. 이 사건들은 흑인들에게 인종적 자각을 심어주어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 흑인운동의 두 지도자, 왼쪽이 킹 목사이고 오른쪽이 말콤 엑스. ⓒ위키피디아

1968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는 약 1000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서는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는데 여기에는 대학생과 노동자와 시민이 모두 참가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대학 내의 학사문제로 촉발된 것이기는 하나 여러 부조리한 사건들에 대한 반발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입니다. 무장경찰의 탄압으로 사태가 오히려 더욱 악화되어 거의 한 달 동안 파리가 무정부 상태로 되었습니다. 이 사태는 미국과 서독, 이탈리아, 영국과 아일랜드, 인도, 일본 , 멕시코, 브라질 등지에서도 연쇄적으로 발생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식민지였던 알제리와 '7년 전쟁'(1954∼1962)을 치른 상태에서 많은 알제리계 프랑스인들이 상처를 받았고 여기에 마치 학생 시위대들을 아이를 다루는 듯한 프랑스 대통령 드골(Charles De Gaulle·1890∼1970)의 말투, 베트남 반전 시위 등등이 대규모의 학생운동으로 폭발한 것입니다. 이 혁명적 학생시위는 "부르주아지는 모두를 타락시키는 쾌락밖에는 모른다."는 구호는 있었지만, 애당초 정권탈취를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었고, 기존의 사회주의 정당들의 정치적 개입도 없어 드골 대통령이 사임하고 일정한 요구들을 수용한 후 끝이 났지만 각종 이데올로기의 좌파들이 번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랑스 68혁명 당시 구호. "금지하는 것은 금지된다" ⓒ위키피디아

일본의 전공투(全共闘) 즉 전학공투회의(全学共闘会議)는 1968년에서 1969년에 걸쳐 일본의 각 대학에 좌파학생들에 의해 결성된 공동 투쟁 조직이나 운동체를 말합니다. 전공투는 일본 공산당을 보수정당으로 규정하고 토쿄대학(東京大學)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야스다 강당(安田講堂 やすだこうどう) 사태로 파국을 맞았다가 다시 더욱 과격한 적군파(赤軍派, JRA)가 창설되어 1970년 4월 민항기 요도호(淀號)를 북한으로 납치하고 팔레스타인(PLO) 단체와 연계하여 이스라엘 항공기의 무차별 공격(1972) 합니다. 이데올로기로서는 가장 극렬했던 시기가 1960년대에서 1970년대였습니다. 한국은 당시 저개발 국가라 이보다 늦게 1980년대가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 불탄 야스다 강당 (安田講堂·やすだこうどう)
아이러니하게도 벨이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발표하고 다시 <후기산업사회>를 발표할 때까지가 세계적으로는 가장 극렬한 이데올로기적 대립의 시기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벨은 너무 앞서 간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 사람의 이론을 지금에서야 소개하고 분석하고 그 새로운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죠.

벨의 <후기산업사회>가 출간될 당시에도 이 분석은 일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분석에 불과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저개발 국가들에서 본격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이 시작된 시기기도 합니다. 한국의 경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대담한 남민전(南民戰) 사건(7)이 발생하고 필리핀의 신민인군(NPA)(8), 라틴아메리카의 광범위한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9) 등이 화려하게 수놓았던 시기이니까요.

벨의 이론은 사회주의 몰락 이후 본격적인 정보사회에 진입하면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IT와 인터넷혁명으로 벨의 저서들은 하나의 필독서로 자리메김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2) 탈산업사회의 새로운 계급

벨의 가장 큰 관심은 사회적 의사 결정에 있어서 기술(Technology)이 미치는 영향 또는 중요성이었습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기술은 이데올로기에서 중립적(neutral)이므로 만약 기술의 역할이나 영향력이 광대하다면, 이데올로기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러시아 혁명 후 러시아 장군들이 "도대체 러시아 공산당사(共産黨史)를 들고 어떻게 독일군을 쏜단 말이요."라고 당 지도부에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모택동 사상으로 비행기가 뜨지는 않는다."는 식의 팽덕회(彭德懷)의 유무기론(唯武器論)도 같은 입장입니다. 전쟁의 경우만 봐도 현대전은 기술의 싸움이며 정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기술과 이데올로기는 정반대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즉 기술이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며 계산적이고 도구적이라면 이데올로기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이며 감정적인 것입니다.

특히 벨이 왕성하게 연구했던 시기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1930년대 후반에서 한국전쟁(1950)까지의 세계의 무대는 신무기(神武器)의 경연장이기도 했습니다. 누가 신무기에 대한 기술을 가지는가에 따라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UN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Douglas MacArthur·1880~1964)는 중공군(中共軍·중국공산당군)을 원자탄으로 저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 생각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었고, 이것은 맥아더가 두고두고 비판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철학이 부족하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회 환경으로 인하여 미국은 기술 우위에 기반한 군사전(軍事戰·military war) 중심의 전쟁 전략에 경도되어 결정적으로 베트남 전에서 큰 실패와 파국을 맞이합니다. 전쟁은 단순히 물량만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정치전(政治戰·political war)에서 이기지 못하면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국이 자각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젊은이들의 희생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설령 군사전에서 승리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정치전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끝없이 점령지에 주둔해야하고 천문학적인 주둔비를 감당해야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벨은 현대 사회에 있어서 기술의 영향력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1950년대 초의 노동인구의 구성변화에 대해 분석하였는데, 그 결과 산업 노동자가 감소하는 반면, 기술 및 전문직 종사자가 증가하고 있는 사실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벨은 기술과 전문 인력의 사회적 확산과 지배능력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벨은 탈산업사회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앞서 본대로 현대 사회 변화의 중요한 특성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① 경제부문에서는 산업사회에서 일반적인 상품 생산경제에서 서비스경제로의 변화하고 있고, ② 직업적으로는 전문·기술직계급이 부상하고 있으며, ③ 혁신과 사회정책수립의 원천으로서의 이론적 지식이 중심적 요소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즉 탈산업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노동인구가 농업이나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무역, 금융, 운송, 보건, 오락, 연구, 교육 및 정부 등)에 종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보건·교육·연구·정부라는 범주가 크게 성장한다고 합니다. 탈산업사회의 핵심집단은 전문·기술직 직업들이며 이중에서도 과학자와 엔지니어(engineer)의 성장률이 가장 높아서 이들이 향후에 지배적인 중추세력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나아가 탈산업사회는 사회를 통제하고 혁신과 변화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지식(Knowledge)이 중심이 된다고 합니다.

벨이 말하는 탈산업사회의 지식인은 기술적 능력과 교육을 받은 새로운 계급이라고 합니다. 사유재산을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재산과 상속을 통해서 체제를 유지하는 구조를 가졌다면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교육이 지위와 권위를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합니다. 지식인들은 문화적인 범주에서 본다면 ① 성직 지식인층(종교인), ② 정책 지식인층(10) ③ 이데올로기적 지식인층(11) 등으로 나눌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다시 직능이나 제도 등으로 나눠보면 매우 복잡해집니다.(12) 그래서 마르크스의 용어를 빌면 상부구조를 견고하게 수호해야할 지식인들이 서로 조직화된 것처럼 보여도 활동의 영역은 매우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성분 또한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이들 사이에서 공통된 이해관계를 찾아내기란 상당히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나아가 벨은 두 가지의 양식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경제(학)화 양식(economizing mode)' 또 다른 하나는 '사회(학)화 양식(socialogizing mode)입니다. 기본적으로 사회화 양식은 경제화 양식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지만, 이 역시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벨은 이 두 양식을 균형 잡는 것이 탈산업사회의 주요한 과제라고 주장합니다. 경제화 양식은 효율성을 사회화 양식은 공공적(public)이며 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경제화 양식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한쪽이 이익을 얻으면 한쪽은 손해)에 기반하고 있는데 반하여 사회화 양식은 비제로섬 게임(non- zero-sum game·어느 쪽도 피해를 보지 않고 이익을 볼 수 있음)을 기초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화 양식은 국민소득의 계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산업화의 결과 발생하는 환경오염에 대한 비용도 국민소득으로 계산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즉 자유재(free goods)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오염되거나 했을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마이너스 외부 경제효과(externality)가 발생해도 경제화 양식에서는 이를 고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13) 쉬운 예를 들면 불산(Hydrofluoric Acid)을 이용하여 금속 도금을 100만 원어치 생산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불산 가스가 누출이 되어 환경업체를 동원하여 이를 제거하는데 200만원이 들었다고 합시다. 실제로 사회 전체적으로는 100만 원의 손실이 발생했는데도 국민소득의 계산에서는 300만 원으로 계산됩니다.

이런 부분은 사회화 양식이 다루어야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사회화 양식이 다루는 공공부문의 영역도 단순히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를 보완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그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경제학에서는(경제화 양식)은 개인의 만족의 단순한 합이 사회적 만족이라는 식으로 보는데 이것은 잘못이라고 합니다. [경제학의 예를 들면 개인의 무차별 곡선(indifference curve·개인 만족도)의 합은 사회적 무차별 곡선(social indifference curve·사회 만족도)라는 식입니다]. 즉 개인의 영역은 개인의 영역이고 공공의 영역은 공공의 영역으로 공공의 영역은 개인에게 팔 수도 없고 나눌 수도 없기 때문에 공적으로 투자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경제화 양식의 견지에서 보면 기업은 이윤추구의 동기를 가진 조직이지만 벨은 기업이 좀 더 사회적 양식으로 발전해가야한다고 봅니다. 즉 사회적 양식의 견지에서 기업은 하나의 사회적 기구이므로, 기업을 단순히 상품을 만들어 내는 사회적 도구로 생각되어서는 안 되고 사회정의, 사회 안보, 개인에 대한 존중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포드(Henry Ford)의 생각을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탈산업사회는 정보 산업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사회전체가 시스템화(system) 될 것이며(14) 이에 대한 관리 사회가 도래하고 지식의 수명이 짧아져서 연구 또는 두뇌 집단이 생성될 것이라고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스템화(Systemization)되면서 네트워크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합니다.(15)

벨은 역사의 발전 과정을 연속적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고 질적인 변화를 중시합니다. 하나의 사회가 다른 사회로 이행할 당시에는 그 두 가지의 특징이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에 변화의 중심에 있는 사회의 기능을 하나의 일반화된 이론으로 정의하는 것은 지극히 형식적이고 추상적이라고 말합니다.

즉 마르크스와 같이 사회 변화의 근본 동인을 생산력(production force) - 생산양식(production mode)이라고 분석 파악하는 입장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회의 변화를 보는 일부일 수가 있으며 또 다른 관점에서도 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지요. 특히 디지털 사회(Digital Society)의 경우를 보면 마르크스의 이론으로는 매우 혼란에 빠지기 쉽습니다.

즉 노동의 가치 - 생산력의 발전 - 생산양식의 변화 - 하부구조의 변화 - 상부구조의 변화 등으로 이어지는 마르크스의 이론으로 보자면 인터넷의 등장·지식 기술·생산양식의 변화 등이 동시에 일어나고 상호 보완하는 특성을 가진 디지털 사회의 경우를 해명하기가 어렵죠. 사실 디지털 시대의 변화는 정보기술이나 커뮤니케이션 행태의 변화를 정점으로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가 왔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적절할 수도 있죠.

(3) 정보화 사회(Information society)

정보화 사회란 이런 탈산업화 사회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벨 자신은 <후기산업사회>에서는 정보사회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글들을 통해서 벨은 정보사회를 많이 언급하면서 탈산업사회와 거의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벨은 지금까지 ① 제임스 와트(James Watt)의 증기기관 발명, ② 전기와 화학 분야의 발전, ③ 컴퓨터와 전기 통신 등의 세 차례의 기술혁명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제3차의 기술혁명이며 이것이 바탕이 되어서 나타난 사회가 바로 '정보사회'라는 말입니다. 즉 기술의 발전으로 사회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관점에서 벨은 정보사회가 나타난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것은 제3의 기술혁명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벨뿐만 아니라 오늘날 대부분 미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사회의 주요변동 요인이 정보와 지식이라고 보고 있습니다.(16) 이 말이 가지는 의미를 좀 더 경제학적으로 분석한다면 향후 지식이 매우 중요한 생산요소가 될 것이고, 국민총생산(GDP)이나 고용에서도 지식 분야의 비중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지식이라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 지 매우 어렵습니다. 지식은 전통적인 생산 요소(production factor) 개념으로 보자면 노동(Labor)도 될 수 있고 자본(Capital)도 될 수 있으며 때로는 사회간접자본이나 공공재(Public goods)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경제·경영학의 패러다임의 혼란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이 부분은 디지털 재화(digital goods)를 분석하면서 본격적으로 거론하기로 합시다.

따라서 지식사회가 도래했다고 하면 이 지식사회는 보다 분명히 다른 형태의 패러다임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개념의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를 만든다고 할지라도 그것의 효용성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소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성이 얼마나 난해해질지 현재로서는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미래학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다니엘 벨의 패러다임 이론들을 검토하였습니다. 이제 좀 더 냉정히 그의 이론을 봐야할 때입니다.

무엇보다도 벨의 견해는 저개발 국가의 현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견해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대립기에 있어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너무 과소평가했으며 (흔히 미국인 학자들의 일반적인 경향이기도 하지만) 사실에 대한 현상 분석에만 치우쳐 당대에는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벨의 한계이자 대부분 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이론가들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중심에서만 세상을 보려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대지(Good Earth)가 보일 리가 없겠지요.

그 어떤 변명이 있다하더라도 벨의 주저인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후기산업사회>는 분명히 시대착오적인 저술이었습니다.

벨은 미국 뉴욕, 유태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의 입장에서 미국의 이데올로기의 개발에 주력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본 것이죠. 존 레논(John Lennon·1940~1980)이 "지금 세상을 정말 혐오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사랑하는 게 아니지"라고 할 때(17), 벨은 그저 이데올로기는 의미가 없고 기술의 세상이 온다고 과학을 찬미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본다면, 현실적인 소비에트(Soviet) 세력들은 몰락하였고 복지국가가 대두한 것은 분명히 사실이지만 유럽의 상당수의 나라가 사회주의 정권입니다. 그리고 보다 본질적으로 본다면, 복지국가는 가장 반(反) 테크노크라트적인 사회(anti-technocrat society)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이슬람권,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나타나고 있는 광범위한 저개발과 빈곤은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아니라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출현을 고대하는 상황이라고 해야겠습니다.

▲ 세계의 빈곤 (기아와 슬럼인구비율)

그림에서 보면 대충 보아도 200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세계 전체 인구 60억여 인구 가운데 아시아에 38억(60.7%), 아프리카에 8억(13.5%), 유럽에 7억(11.5%), 남미 5(8.6%), 북미에 3억(5.1%) 정도로 분포되어있으니, 전체 세계 인구의 85% 정도가 기아와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서 슬럼에서 살아가는 인구비율이 거의 50% 이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는 거의 인구 절대 다수가 슬럼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 장에서 이미 살펴보았던 세계 지니계수 지도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인구수와 같이 살펴보면, 세계의 경제현실은 심각한 수준을 이미 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보시겠지만 정보사회는 빈익빈 부익부를 더욱 가속화 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저개발 국가들의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이 현상은 더욱 견고히 되겠지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화 사회는 오직 최고만이 살아남는 환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승자독식(winner take all)의 환경입니다.

* 필자 주석

1. 다니엘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1999・범우사 펴냄)

2. Daniel Bell. The Coming of Post-Industrial Society: A Venture in Social Forecasting, (New York: Basic Books, 1973)

3. 산업 사회의 서비스업은 운수업(철도와 트럭), 공익사업, 은행업 등과 같이 제품생산을 보조하는 것이었지만 탈산업사회의 서비스업에는 인간서비스업(human service)과 전문서비스업(professional services)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인간서비스업은 교육, 건강 등 사회적 서비스를 말하며, 전문서비스업은 시스템분석이나 시스템 설계, 프로그래밍, 정보처리 등의 서비스업을 말한다. 이 분야의 고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4. 리프킨(Rifkin)은 <노동의 종말>에서 첨단기술정보 사회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유토피아를 낳을 것인가 라는 핵심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전 세계 실업자가 10억 명으로 늘어난 지금, 기술 진보가 실업자를 양산한다고 리프킨은 말한다. 즉 첨단기술과 정보화 사회, 경영 혁신 등이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제 산업사회의 줄기찬 행진이 막이 내리고 공장이 노동자들을 방출하는 동안, 제3의 부문(시민사회 즉 사회·문화적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공식적, 비공식적인 비영리적 활동들)은 유사경제(parallel economy)로서 공동체적 유대와 사회적 질서를 창출한다. <노동의 종말>은 제3차 산업혁명으로 정보통신 기술로 인한 대량 실업사태를(제2부), 생산 관행의 재구축 및 기계에 의한 노동력 대치를(제3부)를 검토하고 있다. 진보의 대가로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세계시장은 결코 화해할 수 없고 전쟁까지 불사할 두 개의 집단으로 빠른 속도로 양극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제4부). 리프킨은 자본과 노동의 변화과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현대는 세계 시장과 생산 자동화라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으며 노동자 없는 경제로 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계가 새로운 노동계급이다. 리프킨은 "자유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실업이냐 레저이냐가 유일한 선택이다. 불행하게도 현재까지 그 선택권은 자본이 가지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노동의 종말>(2005·민음사 펴냄)

5. 베트남전쟁은 '30년 전쟁'이라고도 부르며 시기적으로 2개로 구분한다. 1차 베트남 전쟁은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도 부르며 1946~1956년까지 주로 베트남과 프랑스 간에 일어난 전쟁을 말하고, 2차 베트남 전쟁은 1960~1975년까지 주로 베트남과 미국 간에 일어난 전쟁을 말한다. 이 전쟁의 과정에서 전장이 캄보디아와 라오스로 확장되었다.

6.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의 우위권을 확보하기 위해 베트남(베트민) 군대와 교전한 사건을 말한다. 베트남에 진주한 프랑스군과 미국 군사고문단의 작전계획에 의하여 1953년 11월 프랑스군의 낙하산부대가 디엔비엔푸에 투하되어 폭 13km에 달하는 요새를 구축하고 정예부대 6000여 명을 주둔시켰다. 이 해 겨울부터 1954년 4월까지 3회에 걸쳐 베트남 군대와 프랑스 군대 사이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지만 결국 열대밀림에서 탄약과 보급품이 떨어져 고전 끝에 1954년 5월 7일 프랑스군이 항복하였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약 1만 1000 명이 항복하고, 약 5000명이 전사하였다. 이 전투로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는 종말을 고했다.

7. 1976년 3월, 대구를 중심으로 이재문 등이 적화통일과 민족해방을 구실로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남민전)를 비밀리에 조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7년 1월, 반유신 투쟁을 전개하다가 1979년 10월 이재문, 김남주 등 84명의 조직원이 구속되었다. 남민전은 유신 독재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북한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생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무장 게릴라 방식의 봉기를 전술로 하는 베트콩(남베트남 인민해방전선)과 같은 성격의 공산혁명 조직이었다.

8. 신인민군(NPA·New People's Army)은 1968년 필리핀 공산당 산하 군사 조직으로 창설되었다. 노동자와 농민이 혁명의 주체가 되어 추구하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군대이다. 모택동 사상에 입각하여 중국의 홍군(紅軍)의 전통과 전략에 따르는 군사조직이다. 소극적이고 레닌이즘에 충실했던 필리핀 공산당에서 이탈해 나와 곧바로 신인민군(NPA)을 결성했다. 주로 모택동의 군사 전술에 입각한 게릴라전을 주요 전술로 하고 있다. 1971년 350명이었던 부대원들이 1980년대에 점점 힘을 길러 1980년대 말에는 2만 명이 넘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활발하게 군사활동을 전개했지만 1986년 아키노 정권이 수립된 뒤 집권 체제가 안정되면서 정부군의 군사압력, 세계적인 공산주의의 퇴조, 지도부의 노령화 등으로 활동이 위축된 상태에서 2002년 8월 미국에 의해 필리핀 공산당(CPP)과 함께 해외 테러집단으로 지정되었다.

9. 해방신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와 콜롬비아에서 열린 제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1968년)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전하다가 로마 교황청에서 1984년과 1986년 두 차례에 걸쳐 마르크스주의와의 연관성을 우려하는 경고가 발표된 후,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10. 엘리트층이나 정부에 밀착하여 정책 목적으로 자신의 지식을 이용하는 전문가 및 조언자.

11. 사상투쟁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기존의 제도를 공격하거나 수호하기 위하여 사상이나 가치관을 동원하는 지식인.

12. 예를 들면, 비판을 주요 특성으로 하는 지식인들은 ① 지식인과 지식창조자, ② 문화 창조자와 비평가, ③ 문화 지식전달자, ④ 뉴스와 오락관계자, ⑤ 지식 응용자와 전달자, ⑥ 기업, 공공기관, 비영리기관의 경영자 등으로 나눌 수가 있다. ① 지식인과 지식창조자란 새로운 지식의 생산과 평가, 연구 수준에서의 지식전달 및 응용에 관계하는 사람들로, 자연과학자 및 인문과학자 , 수학자 및 경제학자, 이론물리학자, 그리고 법학자 등이 여기에 속한다. ② 문화 창조자와 비평가는 주로 예술가들 예컨대, 소설가, 화가, 음악가, 비평가들로서 예술세계에서 상호-비평체계를 형성한다. ③ 문화 지식전달자란 문화 및 지적정기간행물, 박물관, 출판사, 도서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⑤ 지식 응용자와 전달자란 공학자, 의학자, 변호사, 교사, 그리고 사회사업가들이 속하며 이들은 동업자단체나 조합을 조직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런 전문직 분야에 참여하려면 특정 자격증이 요구된다.

13. 여기서 외부효과(externality)는 어떤 경제활동과 관련하여 다른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은 이익이나 손실(loss)를 주면서도 이에 대한 대가를 받지도 않고 비용(cost)을 지불하지도 않는 상태를 말한다. 외부효과는 외부경제(external economies)와 외부비경제(또는 외부불경제, external diseconomies)로 구분된다. 독자의 이해가 쉽도록 본문에서 사용된 마이너스 외부효과는 외부비경제를 말한다. 가령 양봉업자가 과수원 옆에서 득을 보고 있으면서 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 이것이 외부경제 효과이다. 그런데 서울의 매연 때문에 자주 옷을 갈아입어야한다면 외부비경제가 있는 것이다. 이 비용을 청구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서울 시민이면 누구나 치러야하는 마이너스 외부 효과이기 때문이다.

14. 탈산업사회의 특징은 시스템분석 및 의사결정이론의 주요도구로서 새로운 지적기술들이 창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20세기 후반에 들어 시스템의 복잡성과 수많은 변수를 가진 이론의 복잡성들을 관리하는 지식이 그 예다. 1940년 이후 정보이론, 사이버네틱스,의사결정이론,게임이론,효용이론,확률과정등이 나타나며 이러한 연구 분야와 방법에서 선형계획법(LP),통계적 의사결정이론, 마아코프연쇄, 몬테칼로법, 미니맥스전략등과 같은 독특한 기법들이 탄생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기법들은 대체적 최적성과 불확실한 상황 하에서의 합리적 행위를 도출해 낼 수 있는 방법론들이다.

15. Daniel Bell The Windingpassage : Essays and Sociological Journeys 1960-1980 (1980·Cambridge, Massachusetts 펴냄) 이 책은 다니엘 벨(Daniel Bell)이 쓴 논문 모음집이다.

16. 벨은 정보를 넓은 개념으로 보았을 때 '자료처리(Data processing)'라고 말한다. 자료의 처리, 저장, 검색은 모든 사회적, 경제적 교환에 있어 중요한 자원이 된다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자료 처리는 ① 기록에 대한 자료처리(월급, 사회보장비, 은행결제 등), ② 계획을 위한 자료처리(비행기 예약, 생산일정계획, 제품믹스정보 등), ③ 데이터베이스(DB : 시장조사, 여론조사) 등이 포함된다. 다니엘 벨이 말하는 지식이라는 개념은 '사실이나 아이디어의 논리적인 진술(statement)'이다.

17. 송충기외 <세계화 시대의 서양현대사> (2010·아카넷 펴냄) 3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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