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9일 치러진 브라질 대선에서 룰라 대통령은 5800만 표(61%)를 획득해 사민당의 제랄도 알키민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오는 2010년까지 브라질을 다시 이끌게 됐다.
1차 임기기간 내내 미국이 추진했던 아메리카지역자유무역협정(FTAA)과 남미공동시장(MERCOSUR)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던 룰라는 이날 오후 당선 사례에서 "이제 그 누구도 미국이 추진중인 자유무역에 대해 논할 사람은 없다"며 "남미 공동시장이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남미공동시장을 위해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3국이 주도권 확립을 향한 대립구도보다는 상호협력이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하며 3국의 결속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아르헨티나의 네스또르 키르츠네르 대통령도 "3국은 이제 국내문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대외적인 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놓고 경제와 문화 등 지역 통합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며 "룰라의 재선 확정으로 전략적인 맹방의 특권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화답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궁은 "룰라-키르츠네르-차베스로 이어지는 3인방의 정치적인 핫 라인은 예전에 비해 더욱 공고해질 것이며 향후 정치일정에 구애됨이 없이 장기적인 통합포석을 다질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룰라의 재선에 이어 차베스 역시 재집권이 확정적이며 키르츠네르 또한 내년 대선에서 재임을 확신하고 있어 이들 3인방의 정치적인 통합 연계가 더욱 확고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현지 정치평론가들은 현재 브라질과 볼리비아가 에너지 공급 문제를 놓고 벌이는 파워 게임에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의 중간 역할이 기대된다면서 룰라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베스와 키르츠네르의 훈수를 기대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래저래 룰라의 재선으로 차베스가 주도하고 있는 중남미 통합 작업은 본격적인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국내 정치 안정돼야 중남미 통합 작업도 가능
그러나 중남미 통합 작업에 우선돼야 할 것은 브라질의 정국 안정이다. 룰라 대통령이 대선 기간 중 일어났던 선거 잡음과 이에 대한 야권과 보수 언론들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정국 안정을 되찾아야 다른 나라와의 통합 작업에도 힘을 실을 수 있는 것이다.
룰라의 지지층들은 룰라가 지난 4년간 토지개혁 등 농촌혁명과 정치권개혁에는 실패했지만 '배고픔 없애기 운동'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고 극빈층구호프로그램도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룰라의 재선을 바라보는 브라질 엘리트층들의 눈길은 곱지 않다. 룰라 집권기간 중 빈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고 룰라는 더 이상 극빈자들의 상징이 아니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룰라는 이미 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에다 3개의 고급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가 하면 소액이지만 주식에까지 투자했고 퇴임 후 연금까지 계산하면 룰라는 이미 상류층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브라질 빈민층의 희망이라는 얘기는 구호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집권여당인 노동자당이 야권후보들의 조작된 비리문건 구입을 위해 거액을 건넨 '도시어 스캔들'도 룰라 대통령의 족쇄다.
만일 수사 과정에서 룰라가 이 사건을 사전에 인지했거나 이를 묵인한 것이 드러날 경우 브라질 선관위는 룰라의 당선을 취소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남미 사법기관들의 수사행태로 볼 때 최고권력자에게 집적적으로 칼날을 들이댈 수야 없겠지만 룰라는 재집권기간 내내 야권과 보수언론들의 집요한 공격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10월 20일 자 '룰라 재선돼도 사임 가능성 있다' 기사 참조)
결국 '반(反)룰라'와 '친(親)룰라'로 나뉜 빈부 간, 사회계층 간의 깊은 골을 봉합하는 문제가 룰라 정권의 최대 과제인 것이다.
여기에 '브라질 역사상 가장 부패한 정당'이라는 노동자당의 이미지 혁신도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으니 룰라가 재선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축배를 들기엔 아직 이른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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