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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眞定) 법사의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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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眞定) 법사의 사모곡

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38> 효선편 '진정사 효선쌍미'조

포스트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현대'를 열었다고 평가되고 있는 세계적 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작품 중에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다시 저술하기 위해서, 시간여행으로 17세기로 되돌아가 스스로 세르반테스가 된 후, 17세기의 스페인어로 『돈키호테』의 한 부분을 한 글자, 한 글자 베껴 내려갔다는 삐에르 메나르의 작업이 얼마나 창조적인지에 관해서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세르반테스의 텍스트와 삐에르 메나르의 텍스트는 언어 상으로는 단 한 자도 다른 게 없다. 그러나 삐에르 메나르의 것은 전자(前者)보다 무한할 정도로 풍요롭다."

"메나르는 아마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테크닉을 통해 그때까지 여전히 초보적이고 불완전했던 '읽기'라는 예술을 풍요하게 만들었다. 고의적인 시대 교란과 잘못된 원저자 설정의 테크닉을 통해서 말이다."

내가 『삼국유사』를 늘 곁에 두고 여기저기 내키는 대로 읽던 중에, 삐에르 메나르가 사용했던 그런 테크닉을 써서, 초보적이고 불완전한 읽기를 보다 풍요하게 만들고자 욕심을 품었던 글들이 몇 편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효선편의 첫머리글 '진정사 효선쌍미(眞定師 孝善雙美)'조이다. 그래서 진정 스님의 애틋한 사모곡(思母曲)이라 할 수 있는 이 글을, 원문은 전혀 다치지 않고 나름대로 한번 새로이 써 보고자 한다. 다음은 내가 원저자인 척하면서 일연의 글을, 삐에르 메나르 식으로 다시 써 본 "진정사 효선쌍미"조 전문(全文)이다.
▲ 영전사 터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석불입상 ⓒhttp://www.youngjunsa.com/

법사 진정은 신라 사람이다. 집이 가난하여 중이 되기 전에 군졸로 적을 두고 장가를 들지 못하였다. 부역하는 틈을 타, 곡식을 받고 품을 팔아 홀어머니를 봉양했는데 집안에 살림이라고는 다리 부러진 솥 하나 뿐이었다.

하루는 어떤 중이 문 앞에 와서 절 지을 쇠붙이 시주를 청해서 그 어머니가 솥을 내어 시주하였다. 얼마 안되어 진정이 밖에서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그 사정을 말하고 아들의 생각이 어떤가를 걱정스레 살피니, 진정이 기쁜 빛을 보이며 말했다.

"불사(佛事)에 시주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데, 솥 없는 게 무슨 걱정이 되겠습니까."

그리고는 곧 질그릇 동이로 솥을 삼아 밥을 지어 어머니를 봉양했다.

진정이 일찍이 군대에 있을 때 사람들로부터 의상 법사가 태백산에 있으면서 설법을 하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따르고 싶은 뜻을 가졌던 적이 있어 어머니에게 고했다.

"어머님께 효도를 마친 뒤에는 의상법사에게 가서 머리 깎고 도를 배우겠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불법(佛法)은 만나기 어렵고, 인생은 무척이나 빠른 것이니, '효도를 마친 후'라면 너무 늦지 않겠느냐. 그러니 어찌 내 죽기 전에 네가 불도(佛道)를 아는 것만 하겠느냐. 주저할 것 없이 빨리 가는 것이 좋겠다."

"어머님 만년에 오직 제가 옆에 있을 뿐인데 어찌 버리고 출가할 수 있겠습니까?"

"나 때문에 출가를 못한다면 네가 나를 지옥에 떨어뜨리는 셈이다. 생전에 갖가지 고기 반찬으로 나를 떠받든들 그게 무슨 효도가 되겠느냐? 내가 남의 집 문간에서 비럭질을 하더라도 제명대로 살 만하니 네가 꼭 효도를 하려거든 그런 소린 아예 말아라"

진정이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는데 그 어머니는 바로 일어나 쌀자루를 털어서 모두 일곱 되 되는 쌀로 밥을 지어놓고 말했다.

"네가 밥을 지어먹으면서 길을 가자면 더딜까 두려우니, 내 보는 앞에서 한 되 밥을 먹고 나머지 여섯 되 밥은 싸 가지고 어서 떠나거라."

진정은 울음을 삼키면서 굳게 사양했다.

"어머님을 버리고 출가하는 것도 자식된 도리로 차마 하기 어려운 일인데, 더군다나 며칠 거리 건건이와 밥까지 모두 싸 가지고 떠난다면 천지가 저를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진정이 세 번이나 사양했으나 어머니는 세 번을 거듭 권했다. 진정이 어머니 뜻을 어기기 어려워 길을 나서서 밤낮으로 걸어 사흘만에 태백산에 이르렀고, 의상에게 의탁하여 머리 깎고 제자가 되었다. 의상 문하에서 지낸 지 3년만에 어머니의 부음(訃音)이 오자 진정은 가부좌를 하고 선정(禪定)에 들었다가 7일 만에 일어났다.

이를 설명하는 자가 말하기를 "추모하는 슬픔이 지극하여 거의 견딜 수 없었으므로 입정(入定)하여 물로 씻은 듯이 했다" 하고, 더러는 "선정에서 어머니가 태어난 곳을 관(觀)하였다"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이렇게 함은 어머니의 명복을 빈 것이다"라고 하였다.

진정이 선정에 들었다가 나온 뒤에 그 일을 의상에게 고하니 의상은 문도들을 거느리고 소백산 추동(錐洞)에 들어가서 초막을 짓고 제자 3000 명을 모아 90일 동안 화엄대전(華嚴大典)을 강론했다. 강론을 다 마치고 나니 그 어머니가 진정의 꿈에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이미 하늘에서 환생하였노라."

의상의 강론 요지를 문인(門人) 지통(智通)이 책 두 권으로 만들어 이름을 『추동기(錐洞記)』라 하여 세상에 널리 폈다.


이렇게 일연의 텍스트를 베껴 내려가면서 나는 몇 군데에서는 내 나름의 표현을 덧보태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예컨대 "길 떠난 진정이 도중에 주먹밥을 먹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다"라든가, "남의 집 문간에서 걸식하고 있을 노모를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든가 등등. 그러나 일연은 그런 감상적(感傷的) 표현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진정 모자(母子) 간의 이별이나, 진정과 의상의 사제지정(師弟之情)을 매우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일연의 그런 태도는 나의 감상적 글쓰기가 삐에르 메나르 식의 글쓰기와는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를 일깨워 주었다. 나는 '잘못된 원저자 설정의 테크닉'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고의적인 시대교란'은 시도조차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서툰 시도를 작파하고, 일연의 텍스트에 몇 가지 사소한 주석을 다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 초암사의 통일신라시대 3층석탑 ⓒ프레시안

1. 작고한 이기백 교수에 의하면 '효선 쌍미'라는 제목에서 효(孝)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선(善)은 '부처에 대한 선행, 즉 신앙'을 뜻한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진정 스님의 효도와 신앙의 두 아름다움"이 된다. 그리고 효선편 전체 기록들이 "세속적인 윤리와 종교적인 신앙과의 관계, 양자의 충돌 또는 조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일반적인 효행기록들과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 의상이 추동에서 행했다는 강론 요지를 책으로 묶은 『추동기』는 실전(失傳)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근래 동국대 김상현 교수가, 일본 경도(京都)대학 소장 『화엄경 문답』이 바로 의상이 추동에서 강론했던 내용을 싣고 있는, 『추동기』의 이본(異本)이라고 밝힌 바 있다.

3. 김상현 교수는, 의상이 진정의 이야기를 듣고 초막(草幕)을 지어 제자 3000명에게 90일 동안 화엄대전을 강론했다는 소백산의, 송곳 '추(錐)'자 추동(錐洞)을 현재의 영주시 풍기읍 영전동의 송곳골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석불 입상이 현재 풍기읍내 '영전사(靈田寺)'에 모셔져 있다.

4. 그런가 하면, 추동이 소백산 비로봉 아래 비로사에서 달밭골로 가는 계곡에 있다는 설도 있다. 또, 소백산 일대에는 부석사를 비롯, 비로사, 성혈사, 초암사 등 의상이 창건했다는 절들이 산재해 있는데 초암사의 초암(草庵)이라는 이름도 '초막'과 연관시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내 나름으로 한번 시도해 본 삐에르 메나르 식의 글쓰기는 전혀 성공한 것 같지 않다. 성공은커녕 형편없는 실패였다고 탓을 해도 나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만, 진정 스님의 이 애틋한 이야기가 읽히고 또 읽히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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