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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갯속 김정일 발언…라이스는 시치미 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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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갯속 김정일 발언…라이스는 시치미 떼기?

[해설] '추가 핵실험 없다'와 '놀라운 얘기 없다' 사이의 혼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실제로 한 말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하던 중인 지난 19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로 북한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탕자쉬안 중국 국무위원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전달받았다는 메시지를 둘러싸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탕 위원의 입에서 나온 공식적인 말은 "평양 방문이 헛되지 않았다"가 전부였지만 <연합뉴스>는 20일 중국의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탕 위원에게 "2차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다른 언론들과 한국의 언론들도 이와 유사한 언급이 있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이 "1차 핵실험에 대해 중국에 사과한다"고 말했다는 얘기도 있었고, 일본 <교도통신>은 김 위원장이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지키겠다"고 말했다고 2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22일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6자회담에 먼저 복귀할 테니 곧바로 금융제재를 해제하라"는 요구를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교토통신>도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조건으로 금융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비록 '금융제재를 푼다는 약속을 한다면'이란 전제가 붙긴 했지만 이런 보도가 사실이라면 '선(先) 금융제재 해소'를 줄기차게 요구해 온 북한의 기존 태도에 비춰볼 때 의미있는 상황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언론 보도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북한은 분명히 진전된 입장을 취했다.
▲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탕자쉬안 중국 국무위원과 20일 만나고 있다. ⓒ 연합뉴스

라이스는 "핵실험 안 한다는 말 듣지 못했다"

그러나 라이스 장관의 말은 다르다. 20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탕자쉬안 위원, 리자오싱 외교부장을 두루 만난 라이스 장관은 "북측으로부터 특별히 놀라울 만한 것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21일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라이스 장관은 "탕(위원)이 나에게 김정일이 핵실험에 대해 사과했다거나 핵실험을 다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CNN>과의 인터뷰에서는 "6자회담 복귀와 같은 제안을 (탕 위원으로부터) 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신문>은 탕 위원과 함께 평양을 다녀온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미야모토 유지 주중 일본대사에게 평양방문 결과를 설명했는데 '2차 핵실험은 없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22일 보도했다.

이처럼 엇갈리는 보도와 반응에 대해 일각에서는 라이스 장관이 고도의 협상전술을 펴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라이스 장관이 김 위원장의 태도변화를 보여주는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제재를 푼다면'이라는 식의 전제조건을 수용할 수 없으며, 보다 큰 폭의 태도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북한과 관련국들에게 천명하기 위해 '들은 말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이행에 그렇잖아도 미온적인 한국과 중국이 추가 핵실험이 없다는 김 위원장의 말을 근거로 미국·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북 제재 움직임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것을 그가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결국은 금융제재-6자회담 연계 문제

그러나 금융제재 문제와 6자회담 복귀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인식이 다르고, 따라서 김 위원장의 발언을 평가하는 북한(한국과 중국도 일부 포함)의 기준과 미국의 기준이 다른 데서 혼란이 초래된 것이라는 분석이 보다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금융제재를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규정하는 북한은 그간 금융제재와 6자회담을 철저히 연계해 왔다. "제재의 모자를 쓰고는 6자회담에 참여할 수 없다"는 백남순 외상의 지난 7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당시 발언은 그같은 북한의 입장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은 금융제재는 법집행의 문제로 6자회담과는 상관이 없고 연계할 수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라이스 장관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어떤 전제조건도 없이 언제든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금융제재 해소를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미국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그런 미국에게 '6자회담에 먼저 복귀할 테니 금융제재를 풀라'고 한 발짝 물러 선 김 위원장의 태도는 선후만 바뀐 것이지 "특별히 놀라울 만한 것"은 아니게 된다. 여기에는 김 위원장의 태도변화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미국을 설득하려 하는 한국과 중국의 움직임에 쐐기를 박겠다는 계산도 깔려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와 관련해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 연구교수는 "탕 위원의 평양 방문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반응이 다른 것은 평가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금융제재를 해소하고 6자회담을 진척시키는 문제는 실무적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이 인정하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인데, 라이스 장관의 말을 보면 기존 정책을 바꾸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발언 여부 상관없이 핵실험은 '일단' 유보된 듯

한편 '추가 핵실험은 없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은 실제 명확히 있지는 않았으나,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지키겠다'는 등의 말을 가공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런 발언이 있었다고 전해진 것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라이스 장관이 아무리 '시치미 떼기' 전술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실제 전달된 말을 공개적이고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외교관례상 있을 수 없고, 중국도 추가적인 반박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중 일본대사가 우다웨이 부부장에게 추가 핵실험에 관한 언급을 듣지 않았다고 밝힌 것도 그렇다.

이에 <니혼게이자이>는 탕 위원이 김 위원장에게 "재실험은 보고 싶지 않다"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김 위원장으로부터 아무런 답변이 없었는데도 중국 지도부가 상황을 종합판단해 재실험이 없을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고 전했다.

<교도통신>도 중국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지키겠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 '기초해' 6자회담 회원국들에게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추가 핵실험을 안 하겠다고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핵실험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무엇인가를 내놨을 가능성은 높다고 보고 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방북 취재 중인 미국 <ABC> 방송에 "우리는 또 다른 실험을 할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며 "추가 핵실험 얘기는 다른 사람들이 한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 근거다.

다만 북한이 뭔가를 내놓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의 동향을 주시하고 그에 따라 해당한 조치를 취해나가겠다"고 밝힌 17일 외무성 대변인 성명과 마찬가지로 조건부이자 한시적인 것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6자회담에 나갈테니 금융제재를 풀어라'와 같은 제안에 미국이 꿈쩍도 안 할 경우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는 '유보적 조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힐 차관보의 22일 홍콩 방문 주목

따라서 전문가들은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유보했을 가능성이 있고 '선(先) 금융제재 해소'에서 '선 6자회담 참여'로 다소간의 입장변경도 있었을 수 있다는 데에 무게를 두고, 그렇게 마련된 공간을 최대한 이용해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연철 교수는 "현재의 국면은 위기가 일시적으로 유보된 상태에 불과하다. 그 시간 동안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금융제재 문제에 대한 대미·대북 설득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금융제재 문제는 '목에 걸린 가시'와 같아 이 가시를 뽑아야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있고, 설령 뽑지 않고 회담을 재개해도 언젠가는 뽑아야 하는 것이다"라며 "앞으로의 국면은 미국이 이 문제에 대한 기존의 방침을 고수할지, 아니면 바꿀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제재 문제를 풀기 위해서 미국은 우선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며 "정상계좌와 불법계좌, 의혹계좌가 있을 텐데 정상은 풀어주고, 불법은 조치를 취하는 한편 북한과 재발방지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22일 홍콩을 방문해 마카오의 북한자금 동결 문제를 협의하고 있어 주목된다.

김 교수는 북한에 대해서도 "정치적인 협상으로 어물어물 넘어가려고 하기보다는 적극성을 보여줘야 한다"며 "위폐 거래 사실과 의혹이 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는 미흡하더라도 최선의 해명을 해야 한다. 불법으로 명확히 나오는 것이 있다면 그 결과를 수용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이스 장관의 아시아 순방 이후 북한의 핵실험과 6자회담 복귀 문제는 북미 간에 최후의 대결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미국 대북정책의 본질을 보여줄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미국은 핵문제냐, 북한의 불법행위냐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핵문제는 당면한 것이고, 불법행위를 개선시키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향후 미국의 선택은 미국이 핵문제를 풀려고 하는지, 금융제재를 통해 북한의 체제 변형을 추진하려고 하는지를 가늠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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