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책과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NLL의 근원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를 추적해본 결과 NLL은 시작부터가 의문투성이다. NLL은 정전협정 체결 한달여 후인 1953년 8월 30일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라는 인식이 통념처럼 받아들여져왔다.
그런데 정작 NLL를 선포한 당사자인 미국에서 이러한 통념을 뒤집는 문서가 나왔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서재정 교수가 발굴해 <프레시안>에도 일부 내용을 소개한 바 있는 1974년 1월 1일자 중앙정보국(CIA)의 문서가 바로 그것이다.(☞바로가기)
CIA, "NLL은 1965년에 설치"
이 문서에는 NLL의 성격과 근원을 다시 따져봐야 할 세 가지 내용이 담겨 있다. 첫째는 "1960년 이전에 NLL이 설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떠한 문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남한은 1953년 정전 이후 북한이 NLL를 인정해왔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이 공식적으로 NLL를 인정했다고 볼 수 있는 어떠한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CIA의 결론이었다. 이러한 당시 미국 정부의 입장은 "우리는 북한에게 NLL을 공식적으로 설명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1973년 12월 23일자 미국 국무부/국방부의 외교전문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둘째는 "NLL은 1965년 1월 14일 한국의 해군사령관(COMNAVFORKOREA, 당시 한국 해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보유한 유엔사령부의 해군구성군사령관을 의미함)에 의해 설치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NLL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12년 늦게 그어졌다는 것이어서 주목을 끄는 부분이다. 동시에 CIA는 NLL과는 다른 이름의 선이 "1961년 해군사령관에 의해 설치되었다"고 적었는데, 이는 헨리 키신저가 말한 "북방정찰한계선(Northern Patrol Limit line)"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셋째는 "NLL의 유일한 목적은 유엔사령부 함정이 특별한 허가 없이는 NLL의 북쪽을 항해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사고를 피하는데 있었다"고 명시한 것이다. 그러면서 NLL을 사실상의 해상 경계선으로 간주하는 남한의 입장은 "국제법적으로도 어떠한 근거가 없고 NLL 길이의 일부는 영해에 관한 최소한의 조항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NLL은 해군구성군사령관의 명령과 작전통제하에 있는 군사력에만 구속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 고영대 평화·통일연구소 상임위원 |
이는 NLL이 북한이 넘어와서는 안 되는 선으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남한이나 유엔군이 넘어가서는 안 되는 선으로 설정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거듭 확인해준다. "북한이 NLL를 넘어와도 정전협정과는 무관하다"는 김영삼 정부 시절 이양호 국방장관의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더구나 CIA는 "북방한계선이 적어도 두 군데에서 북한 주권하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수역을 가로지른다"고 지적했다.
CIA가 말한 두 군데란 백령도 동북쪽과 연평도 북쪽을 의미한다. 남한은 이들 섬 이북으로 3마일의 영해선을 주장했지만, "이는 (북한의 주권이 완전한-원문 그대로 인용) 북한의 내해(內海) 안에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해주항에 자유로운 접근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백령도와 연평도 이북)은 특히 민감한 지역"이라며 "확실히 잠재적인 충돌 지역"이라고 덧붙였다.
CIA가 검토한 중간선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들에 따르면 남-북-미 간에 서해 해상경계선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시점은 1973년 하반기부터였다. 북한은 그해 10월 하순부터 서해 5도 인근 수역에 함정을 보내기 시작했고, 12월 1일 열린 군사정전위원회(MAC)에서는 "서해 5도 인근 수역은 자신의 영해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면서 "이들 섬을 지나거나 들어가기 위해서는 북한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유엔사령부는 NLL이 영해선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지만 "서해 5도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권"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입장을 전달했다고 CIA 문서는 기록했다.
북한이 서해 5도 인접수역에 대한 영해권을 주장하고 나선 시점과 배경도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리처드 솔로몬이 헨리 키신저에 보낸 1973년 12월 3일자 극비 문서에는 주목할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데탕트에 접어든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유엔 총회 결의안을 상정·채택을 주도하면서 "유엔사와 주한미군의 미래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미국 NSC는 "한국에게 매우 우호적인 내용"이라며 이러한 내용 채택에 동의한 중국의 태도에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미국 NSC는 "서해 5도에 대한 북한의 도발적 행동"의 원인을 바로 여기에서 찾았다. "북한 정부는 미해결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중국 정부와 다소 독립적인 행동을 취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미해결 문제란 바로 서해 해상분계선 설정이었다.
CIA가 서해상의 남북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중간선"을 검토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CIA가 검토한 중간선은 "사실상의 주권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국제법과 관습에 부합하고, 북한의 해안과 유엔의 군사적 통제하에 있는 서해 도서들의 사이의 등거리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CIA는 "중간선을 사용해 영해 분쟁을 해결하면 남한의 서해 5도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고 공해로부터 북한의 해주항의 접근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의의를 부여했다.
CIA의 예언을 입증하기로 하듯, 1999년 서해교전 발생 이후 NLL은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리고 있다. 또한 최근 논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내 정치적으로도 '뜨거운 감자'이다. 이에 따라 남북한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NLL 문제를 풀려고 할 경우 국내에서 초당적인 협력과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구할 것이냐는 숙제가 남는다. 반면 남측이 NLL을 사실상의 '영토선'으로 간주하면서 사수 의지를 밝힐수록 한반도 평화는 요원해진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대한민국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이자 차기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딜레마를 풀 수 있는 단초는 NLL을 그은 당사자인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들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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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책 소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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