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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정책'이 도대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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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포용정책'이 도대체 뭡니까?

[시각] 포용정책에 관한 '해괴한' 논리 두 가지

DJ의 말을 빌자면, '해괴한 이론'이 횡행하고 있다. 포용정책에 관한 이론이.
  
  첫째,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불러왔다?
  
  북한의 핵실험이 감행된 9일부터 현재까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과, 그들에게 논리 공급의 '주유소' 역할을 하고 있는 보수언론들은 이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의 햇볕정책과 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이 '퍼준' 돈으로 북한의 핵개발이 이뤄졌고, '오냐 오냐' 하는 태도가 북한의 '도발'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 마당에 포용정책을 계속 주장하기도 어렵다"는 핵실험 당일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이같은 주장이 나오는 빌미를 줬다. 노 대통령은 다음날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불렀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말을 살짝 바꿨고, "포용정책이 무슨 죄냐"는 DJ의 항의에 '화들짝' 놀라 거둬들이긴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핵·미사일은 북미 양자 사이의 문제
  
  포용정책은 정말로 핵실험의 토양이 됐는가? 이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범위와 인과관계의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문제의 범위라 함은 한국 정부의 포용정책이 과연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해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지금 그 정책을 거둬들이면 핵실험을 막을 수도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다.
  
  포용정책의 목표는 남북이 상호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공존을 함으로써 북한의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다. 독일 통일의 뿌리가 됐던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수상의 '동방정책'과 유사한, '접촉을 통한 변화'라고도 표현된다.
  
  일반적으로는 김대중 정부 시절의 햇볕정책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지만, 김연철 고대 교수 같은 이들은 1989년 노태우 정부의 7.7선언에서부터 한국 정부가 지켜 온 점진적 평화통일 방법론이라는 시각을 제시하기도 한다. (포용정책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여기서는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으로 대표되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한정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미간의 적대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래식 무기 불균형의 확대,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배치, '비핵국을 핵으로 공격하는 초유의 시나리오'였던 팀스피리트 훈련, 사회주의권 붕괴 후의 경제난 등으로 북한은 '값싸고 강력한' 핵무기를 개발해 미국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하려고 했다.
  
  세계 최고의 '반미국가'가 핵을 개발하자 미국은 자국(자국 영토, 주한미군, 주한 미국인)에 대한 보호, 핵확산 방지, 동북아 핵경쟁 저지 등을 이유로 북한을 압박하거나 때로는 협상하며 현재까지 오고 있다. 미국 핵우산의 보호를 받고 있는 동맹국인 동시에 핵확산 방지의 대상이기도 한 한국은 이 문제에서 당사자가 될 수 없었다. 핵무기는 철저히 북미 양자간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1차 핵위기의 종착역이었던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나, 핵무기 운반수단인 미사일에 관한 2000년 북미공동커뮤니케 등이 기본적으로 북미 양국간의 합의였던 것은 북한의 '통미봉남'에 따른 한국 배제가 아니라 원래부터 미국과 해야 할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조지 W. 부시 현 미국 대통령 시기에 들어와서 미국은 북핵 문제를 6자회담이라는 다자틀 내에서 다루려는 시도를 해 왔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을 제외하고, 6자회담에 참석한 나머지 4개국을 북핵문제의 주역으로 보는 이들은 없다. 중국과 한국은 중재자에 불과하고, 일본은 미국의 '하수인'이며,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 영향을 잃지 않기 위해 참여하는 나라라는 점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사실이 이럴진대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가져왔다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거나 포용정책을 공격하기 위한 의도적 왜곡에 불과하다.
  
  뒤집어진 인과관계와 포용정책의 한계
  
  물론 핵개발이 북미간의 문제고, 포용정책은 남한의 대북정책이라고 해서 둘 사이가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포용정책을 통해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고, 남북한이 주도해 한반도의 긴장을 의미있는 수준으로까지 완화시켰다면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했을 수 있다. 그 대신 그 정력을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에 쏟았다면 북한의 변화는 더욱 가속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같은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포용정책의 최종 목표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포용정책의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고 우리는 '핵보유국' 북한과 살게 됐다.
  
  그러나 포용정책이 만들고자 했던 북한이 실현되지 못한 것은 포용정책의 능력이 아직 거기에까지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포용정책의 '한계'다.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가져왔다는 주장이 인과관계 측면에서 잘못됐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핵실험은) 화해·협력정책의 결과라기보다는 이를 일관성 있고 더욱 과감하게 실행하는 데에 한계를 보였기 때문에 이런 사태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박순성 동국대 교수는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포용정책 만으로는 핵실험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부시 미 행정부 들어 더욱 거세진 대북 압박 정책이 있는 한 아무리 포용정책을 추진했더라도 핵실험을 막을 수 없었지만, 그것은 포용정책이 가진 한계이지,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가져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포용정책에 강한 신념을 가졌다"는 한 고위 당국자
  
  핵실험 이후 횡행하고 있는 두번째 '해괴한 이론'은 노무현 정부가 포용정책을 '최선을 다해,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는 주장이다. 주로 정부 당국자들로부터 나오는 이같은 주장은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가져왔다는 것 만큼이나 황당하다.
  
  왜 그런지를 따져보기 위해 "포용정책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정부 고위 당국자의 13일 발언을 들어보자.
  
  이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뜬금없이'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와 2005년 6자회담 9.19공동선언이 담긴 인쇄물을 나눠줬다. 그러면서 "포용정책이 한 일은 이 두 가지가 잘 되라고 밀어준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포용정책 때리기에 여념없는 보수 여론에 대해 스스로의 표현대로 "하소연"을 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핵실험에 대해 국민들에게 책임을 지겠지만 적어도 이 상황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이 당국자가 소개한 사례는 현 정부의 포용정책이 어떤 것이었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아니 현 정부가 포용정책을 과연 제대로 밀고 왔는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사례는 2004년 6월 설악산에서 남북장성급회담이 열려 서해안 우발충돌 방지 및 선전수단 제거를 논의하고, 같은 시각 평양에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를 열어 쌀 40만톤 차관 제공을 논의하던 일이었다.
  
  이 당국자는 "우리는 쌀 한 톨을 줘도 그냥 주지 않았다"며 "그 때 우리는 일단 장성급회담 합의에 도장을 찍고 나서야 경추위 도장을 찍었다"며 장성급회담 합의에 쌀 차관 제공을 연계시켰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2005년 200만kW 대북 직접 전력송전을 약속한 것도 6자회담 복귀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고도 말했다.
  
  '포용정책'이 아니라 '상호주의'
  
  경제협력 혹은 인도적 지원과 정치·군사 사안의 철저한 연계. 이것이 바로 참여정부의 '이른바' 포용정책이었다. 이는 DJ 시절 햇볕정책이 견결하게 고수해 왔던 정경분리 원칙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참여정부의 이같은 연계전략은 오히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2002년 대선 공약이었던 '상호주의'와 더 가까웠다. 따라서 어떤 이들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두고 '신(新)상호주의'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햇볕정책의 계승'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가 "포용정책에 대한 신념"을 갖고 "왜 포용정책이 매를 맞아야 하는가"라고 억울해 하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아예 햇볕정책과는 전혀 다른 개념에 근거한 주장일 뿐이다.
  
  물론 정치·군사적 현안을 두고 남북이 줄다리기를 할 때 인도적 지원이나 경제협력을 지렛대 삼아 남측의 의지를 더 반영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인도적 지원이라고 해서 덮어놓고 주는 것은 그야말로 '퍼주기'다.
  
  그러나 그같은 전술은 합의를 위한 '촉진제' 역할에 머물러야지 모든 현안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으로 연계시킨다면 포용정책의 범주를 벗어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서해교전이 발발한 상황에서도 경제협력과 지원을 계속했던 DJ 정부 햇볕정책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지난 5월 철도·도로연결을 위한 군사적 안전보장 조치를 해주면 경공업 원자재를 지원하겠다거나, 7월 미사일을 쏘면 쌀·비료 제공이 없다는 등의 사례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연계전략에는 햇볕정책이 그 동안 거둔 성과에 대한 과신, 즉 '북한은 돈만 주면 다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연계정책의 성공사례는 그 인식을 더 굳혔는데, 지난해 5월 비료지원의 대가로 10개월간 끊겼던 남북대화를 재개했다거나, 정부 당국자의 말대로 전력지원으로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복귀시켰던 경험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개발을 계속 해 오지 않았느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두 사업은 이전 정부의 성과를 '경로의존적'으로 받은 것일 뿐 현 정부 들어 질적으로 도약한 부분은 거의 없다. 전 정부에서 이미 터를 닦아 놓은 이 두 사업을 계속했다는 것으로 포용정책을 꾸준히 해 왔다고 하기에는 낯뜨겁다.
  
  현 정부가 포용정책을 정말로 했는지 가장 의심케 하는 것은 7월 미사일 발사 이후 단행한 인도주의적 쌀·비료 지원의 중단이다. 현 정부가 포용정책을 해 왔다는 것을 백번 양보해 받아들이더라 하더라도 쌀·비료 중단은 그나마 명맥을 이어 왔던 포용정책에 사실상 종말을 고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틀어진 남북관계는 7월 남북장관급회담을 조기 종결시켰고 그 후 남북 당국간 회담은 사실상 없어졌다. 핵실험 가능성이 나오던 때, 최소한 그것을 자제하라고 설득 혹은 회유라도 할 수 있는 남북간 대화 창구는 닫혀버렸다. 비록 그 문제가 북미간의 문제였다 해도 말이다.
  
  현 정부의 이같은 대북정책을 과연 포용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엔 안보리 결의안의 초안이 어느 정도 합의되고, 그에 따른 대북 제재의 수위에 대해 정부 내 강경파와 온건파 간의 각축을 예고하고 있는 13일, '티타임'을 자처해 '포용정책의 파수꾼' 역을 자처하고 나선 정부 고위 당국자의 '이론'을 또 한번 듣고 싶다.
  
  포용정책에 관해 횡행하는 '해괴한 이론'들이 핵실험에 따른 대책 마련, 평화적 해결로의 길에 짙은 안개를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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