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핵실험을 하는 국가들의 동기에는 공포, 명예, 이익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 파키스탄이 인도의 핵실험 이후 2주 만에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행동에 나선 것은 공포였다. 전통적인 분쟁국가였던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했다.
명예도 작용한다. 1998년 인도가 핵실험에 나선 것은 집권기반이 취약한 인도인민당(BJP)이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파키스탄 역시 인도의 핵개발에 자극받은 강력한 국민적 요구가 있었다.
북한의 핵실험 동기 : 공포, 명예, 이익
공포와 명예, 그리고 이익이라는 요소를 북한에 적용해 보자.
북한의 핵실험에는 그들이 바라보는 현재의 국면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미래의 위협에 대한 공포에 의해서 움직이기도 한다"라고 적었다.
금융제재의 효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금융제재가 북한의 정상적인 무역거래를 심각히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음은 분명하다. 몇 주 전 중국에서 만난 북중 경제관계 전문가는 최근 들어 중국기업들이 북한과의 무역거래에서 선금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금융제재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결제능력을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점차적으로 교역조건이 까다로워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북한은 금융제재 해결 없이는 6자회담에 참가할 수 없다는 방침을 최종적으로 정리한 바 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한 한국 측의 의미부여는 보도됐지만, 미국이 금융제재 해법을 모색할 것이라는 입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아가 라이스 장관은 11월까지 외교적 해결노력, 즉 북한의 6자회담 복귀요구를 해보고, 안 되면 보다 강화된 제재 국면으로 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마도 북한이 핵실험을 결정했다면 이러한 발언이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11월 중간선거 이후 보다 강화될 미국의 제재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핵 억지력의 확보를 선택한 것이다.
국내적인 내부결속도 중요한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최근 북한의 공식적인 담론은 선군정치로 집약되고, 자체적인 핵 억지력의 확보는 김정일 정권의 성과로 선전될 것이다.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점차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사회적 이완 현상에 대한 조정효과도 노렸을 것이다.
경제제재의 부정적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계산했겠지만, 우선은 억지력의 확보와 대내적 체제단속이 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지난 1년간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행동패턴은 규칙적이다. 앞으로 북한의 선택 역시 예측 가능하다. 북한은 교착의 장기화를 위기로 판단하고 있다. 협상이든, 핵보유든 분명한 결론을 국제사회에 요구하고 있다. 단기간에 긴장을 조성해 미국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예측하는 객관적 전망과 북한이 생각하는 정세전망은 다를 수 있다. 제재와 압박이 강화되면, 북한은 추가적인 위협 조치를 실행할 것이다.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의 양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핵실험을 여러 번 하기는 어렵겠지만, 추가적으로 실시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영변의 5MW 원자로에서 연료봉을 인출하여 플루토늄 양을 늘릴 가능성도 있고, 공사 중단상태인 50MW 원자로 건설을 재개할 수 있다.
제재와 압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대북 유화정책이 북한의 핵 실험을 초래했다는 평가가 있다. 그래서 제재와 압박을 보다 강화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9.19공동성명 채택 후 지난 1년은 그같은 주장과는 정반대로 지나왔다. 서로의 입장차이만 확인한 채 헤어진 5차 6자회담 이후 협상은 없었다.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올해 3월의 뉴욕접촉에서도, 4월 도쿄에서 있었던 6자회담 대표들간의 비공식 회동에서도 제대로 된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은 6자회담과 금융제재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6자 회담 밖의 양자대화를 철저하게 거부했다. 압박으로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지난 1년 미국의 북핵 정책은 해결이 아니라, 관리에 초점을 두었다. 미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적대적 무시전략을 지속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라크 문제를 비롯해 이란 핵문제 등으로 실질적인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었을 것이고, '불량정권'과는 협상하지 않겠다는 도덕적 접근 방식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를 관리하면서 금융제재와 인권문제로 북한 정권의 성격을 변화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6자회담 참여국 모두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특히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북핵 관리정책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워졌다. 협상인가? 아니면 강화된 봉쇄인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군사적 선택은 현재 상태에서 배제되겠지만 사실상 강화된 봉쇄와 군사적 개입은 경계가 불분명하다. 유엔헌장 7장 41조의 비군사적 강제조치는 통상적으로 42조의 무력개입으로 넘어가는 근거를 제공해 왔다. 나아가 봉쇄의 강화가 가져올 한반도의 긴장은 장기화되기 어렵다.
당장 한국의 입장에서도 북한의 핵실험을 강력히 규탄하고 있지만 방법으로는 여전히 평화적 해결이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동북아의 불균형은 안정을 추구하는 중국의 이해와 상충한다. 북한이 굴복하지 않는 이상 압박과 제재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북한 문제는 역시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함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지난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전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무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협상하라는 반어법적 표현으로도 들렸다.
1994년의 제네바합의나 1999년 이후의 페리 프로세스, 그리고 2005년의 9.19공동성명의 사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반복된 역사적 교훈을 이제 다시 위기의 문턱까지 넘어가서 확인해 보기에는 잃을 것이 너무 많다.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상황이 어려워졌다. 시점이 늦춰질수록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평화적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어서는 안 된다. 포용정책의 기조를 둘러싸고 국내적 논란이 있지만, 그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은 아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기능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긴박해지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보다 밀도 있는 정책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게 단호한 대응을 예고하는 동시에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협상안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국제사회의 선택을 요구했다면, 이제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역시 협상과 단호한 대응 가운데 양자택일을 북한에 제시해야 한다.
협상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외교적 해결 노력이 소진되었다고 결론 지을 수 없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해서 북핵 폐기를 위한 9.19공동성명의 기본틀이 무력화된 것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평화적 해결원칙을 확고히 하는 것은 기본이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상응 조치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중 양국이 미국에 대해 북한과의 직접협상을 요구해야 한다. 어렵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것은 정부뿐만 아니라, 정치권에도 해당된다. 시민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아직 평화적 해결의 가능성에 대해 포기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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