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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만이 해결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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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만이 해결책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꼭 챙겨봐야 할 외신기사 5選

북한의 핵실험 후에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헷갈린다. 9일 특별회견에서는 "이 마당에 와서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하더니, 10일 오전에는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가져왔다는 지적은 여유를 갖고 인과관계를 따져봤으면 좋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9일 밤 발표한 성명에서 '외교적 해결'을 강조한 데 따른 '미묘한 변화'라고 보기도 하지만, 핵실험이라는 메가톤급 폭풍 앞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노 대통령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일관된 구석이 없지는 않았다. 북한에 대한 대응에 있어 미국과 철저히 발을 맞추겠다는 것이 그렇다. 노 대통령은 9일 회견에서 '국제사회와의 조율된 조치'를 말했고, 그날 저녁 부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긴밀한 협력과 단합된 메시지를 강조했다.

이처럼 부시 미 행정부와의 협력만을 강조하고, "한국의 역할과 자율성이 많이 축소되는 쪽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9일 회견)며 정책결정자가 아닌 '논평가적' 태도를 보인 노 대통령이 꼭 읽어야 할 기사가 세계 유수의 언론들로부터 나왔다. 노 대통령의 일독이 요구된다.

<르 몽드> "부시의 대북정책이 낳은 '쓴 열매'"

우선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 몽드>. 이 신문은 10일자 사설에서 북한의 핵실험으로 미국이 추진해 온 대북정책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비판했다.

<르 몽드>는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의 '벼랑 끝 외교'는 부시 대통령의 집권 이래 추진된 미국의 대북 정책이 낳은 '쓴 열매'라고 규정하면서 핵 보유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이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은 만큼 정책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1994년 미국과 북한 사이에 플루토늄 생산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경수로와 안전보장을 제공하는 합의가 이뤄졌으나, 2002년 10월 미국은 북한의 비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주장하며 새로운 위기를 유발했다고 평가했다. 부시 행정부가 2차 북핵위기 발발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르 몽드>는 이로써 미국은 북한의 핵 야욕을 막는 유일한 빗장, 즉 플루토늄 프로그램 동결 상황을 국제원자력기구에서 감시하던 장치를 벗겨 버렸고, 그 이후 미국의 합의 무효 선언과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 재개, 금융 제재 조치 등 미국의 공세, 북한의 협상 복귀 거부 등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북한의 핵폭탄은 이제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에 중대한 위험 요소라면서 핵확산 및 테러 조직으로의 핵기술 이전 위험, 다른 나라들의 핵무기 보유 추진 가능성 등을 우려했다.

<가디언>, 부시 행정부의 이중적 핵정책 비난

영국의 <가디언>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실패와 핵확산 문제에서의 '이중잣대'를 비난했다.

<가디언>은 10일 '북한의 핵정책은 전혀 비이성적이지 않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공산정권은 지도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미국 정부에 맞서 북한은 억지력을 구축해 왔다"며 북한의 핵개발이 갖고 있는 자위적 성격을 인정했다.

이 신문은 이어 "부시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기 위해 빌 클린턴 시절 합의된 석유공급을 중단했다"며 "부시는 이미 '악의 축'이라고 지칭한 정권에 대해서 이라크에서처럼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한 바 있다"고 말해 문제의 핵심에는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 정책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 신문은 또 "부시 행정부는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기 위한 선제공격에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을 사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며 "이런 정책은 이라크를 침공하는 구실로 사용됐으며, 이란이나 북한에 대해서도 사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의 2002년 '핵태세 보고'에 등장하는 '비핵국에 대한 핵 선제공격' 정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미국의 이중적인 핵 정책에 대해 <가디언>은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배경에는 냉전이 끝난 이후 핵보유국들이 보여준 이중잣대가 있다"며 "자기들과 동맹국들은 핵무기에 매달리면서 다른 나라들에게는 핵무기 보유를 용납하지 않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 ☞전문 번역기사 바로가기)

<파이낸셜 타임스> "부시 정책 실패의 징표"

영국의 또 하나의 권위지이면서 진보적인 시각과는 거리가 먼 <파이낸셜 타임스>도 이날 분석기사를 통해 "북한의 핵실험은 부시팀이 선호했던 강경한(tougher) 접근 태도가 실패했다는 징표로 널리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파이낸설 타임스>는 또 다른 기사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야망이 레이건 전 대통령 시대로 거슬러 갈 수 있지만 부시 행정부가 지난 2002년 북한에 대한 대응에서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외교관계독립위원회(ICFR)의 게리 새모어 부위원장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는 압력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고 있어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새모어 부위원장은 미국이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에 대한 해상봉쇄와 관련해 "그것은 북한에 의해 도전받을 경우 걷잡을 수 없게 될 전쟁행위가 된다"며 "미국은 한반도에서 갈등을 시작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인도의 일간지 <더 힌두>의 평가도 눈에 띈다. 이 신문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근시안적인 금융제재를 가함으로써 김정일 정권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던 부시 행정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상당 부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유엔 안보리는 그런 미국이 '군사적 대결'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제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뉴욕타임스> "협상만이 희망이다"

9일 "북한 핵실험은 미국 20년 외교정책의 실패작"이라고 비판했던 <뉴욕타임스>는 10일자에 사설과 기사를 통해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까지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다시 한번 비판했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부시 행정부는 북핵에 관해서라면 무대응이나 임시변통으로 일관하는 데 습관이 돼 있어 북한의 핵보유 주장을 '관심끌기' 정도로 폄하해 왔다"며 "그동안 미국은 당근을 들든 채찍을 들든 협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이중의 손해를 봤다"고 협상 부재의 대북정책을 비난했다.

사설은 또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원하고 있는) 체제 보장 문제 등에 대해 북한 정부에 진지한 협상을 제의해 본 적이 없다"며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를 위해서는 협상만이 희망이다"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다른 기사에서도 "2003년 5월 '북핵을 용인할 수 없다'고 '레드라인'을 설정한 후 2년 5개월 만인 9일 나온 새 지침이 '핵무기와 핵물질의 이전은 미국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었다"며 부시 행정부의 '오락가락 북핵 정책'을 비난했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포용정책을 계속 해오긴 했나?

이와 같이 세계의 저명한 언론들이 북한의 핵실험은 부시 행정부 대북정책의 실패를 입증하는 것이며 핵 비확산 정책도 잘못됐다고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사태가 이럴진대 노무현 대통령은 그저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만을 운운할 것인가. "대화만 계속하자고 말할 수 없게 됐다"고 하면 되는 것인가.

노 대통령은 9일 회견에서 "지난날처럼 모든 것을 인내하고 양보하고 북한이 어떤 일을 하든간에 다 수용하고, 이제는 이렇게 해나갈 수 없게 된 것이 아닌가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지난 집권 시기 동안 '모든 것을 인내하고 양보'하지 않았다.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참여정부가 실제 취해 온 대북정책은 '포용' '햇볕' '평화와 번영'과는 거리가 있었다. DJ 정부가 햇볕정책을 통해 쌓아 놓은 성과를 갉아먹기만 했던 게 참여정부의 4년이었다.

참여정부는 그동안 실패해 왔고 앞으로도 회복의 기미가 별로 없는 부시 행정부를 따르기보다 세계 언론들이 부시의 정책을 왜 저리도 비판하고 있는지부터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협상만이 희망이다"라는 <뉴욕타임스>의 결론을 곰곰이 되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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