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은 3일 오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연구 부문에서는 앞으로 안전성이 철저히 담보된 핵시험을 하게 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로써 북한 핵실험문제가 이제 추측의 단계를 넘어 현실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북 핵실험 예고의 정치적 배경과 향후 전망을 정리해 본다.
북한은 핵실험 능력을 갖추었는가?
북한 외무성은 이날 성명에서 △미국의 제재에 대한 방어적 대응조치로서 핵 억제력 확보의 필수 공정상의 요구인 핵실험을 안전정이 철저히 담보된 상태로 할 예정이며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고 핵무기를 통한 위협과 핵 이전을 철저히 불허할 것이며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세계적인 핵군축과 종국적인 핵 무기철폐를 위해 노력할 것이며 △대화와 협상을 위해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북한 외무성이 핵실험 의지를 공식적으로 천명함에 따라 이 문제는 이제 추측의 단계를 뛰어 넘어 현실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에 따라 과연 실제로 북한이 핵실험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한반도에서는 지하 핵실험도 방사능 유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어 이 문제가 중요한 초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백승주 북한실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무기급 플루토늄과 이를 핵병기로 제작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본다"며 "북한이 지난해 2.10 핵보유 선언을 한 것도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 이 연구원 김태우 박사도 "북한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핵실험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핵실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며 "플루토늄 핵실험을 할 여건과 시설은 충분히 갖춰진 것으로 평가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대부분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안전하게 핵실험을 할 기술적 능력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 핵실험 문제는 이미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순수 정치군사적 차원의 문제이며, 북한이 핵실험을 하겠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게 되면 언제라도 핵실험이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상황의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져 핵실험의 필요성이 없어지지 않는 한 북한의 핵실험은 불가역적인 과정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핵실험 선언은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한 답변
북한의 핵실험 예고성명은 그 시점이 매우 시사적이다. 한중 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는 지난 9월 29일 회담을 갖고 한미 양국이 추진하고 있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회담 이후 중국의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은 기자들에게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지지한다고 표명했고,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은 "북한이 진정으로 북핵문제를 외교적인 해결에 관심이 있다면 앞으로 올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점을 북측에다 잘 설득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실험 예고성명은 바로 한중 양국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협의한 바로 직후에 터져 나온 것으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한 북한의 답변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것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한 명백한 거부라고 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주 기자회견에서 북한에서도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 부정적 반응이 없다며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주관적 희망이었음이 드러났다.
북한의 왜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을 거부했는가? 그것은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보면 자명해진다.
<연합뉴스>는 1일 '윤곽 드러나는 포괄적 방안과 북미 상응조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 내용을 밝히고 있는데, 문제가 되고 있는 BDA(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동결계좌에 대해 "북한은 불법행위(달러위조)에 가담한 관련자를 처벌하고 관련 장비를 압수한 후 통보하며. 이에 맞춰 미국은 조사과정에서 분류된 합법-비합법 계좌 가운데 합법적인 것으로 판명난 자금을 BDA가 풀도록 사실상 용인한다"는 것이다. 또 북한이 5메가와트 원자로 가동을 정지하면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한다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들은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금융제재 해제 요구와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북한의 불법행위(달러위조)를 기정사실화함으로서 미국의 주장에 정당성만을 부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불법행위(달러위조)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불성설이다.
북한은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그 어떤 타협안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 언론에서 보도된 대로 이러한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는 방안이라면, 명백히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방안이라기보다 대북 제재를 확대하기 위한 명분축적용에 불과하다.
필자는 '공동의 포괄적 대북접근방안'은 미국의 시간벌기 전략의 산물이며, 더 나가 국제적인 대북제제를 확대하기 위한 명분축적용이라는 점을 누누이 주장했던 바, 이것이 사실로 점차 드러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방안에 대해 북한이 긍정적으로 나올 리 없다.
이번 핵실험 예고성명으로 북한은 현재의 추진되고 있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 일종의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다.
핵실험 예고 성명은 미국에 대한 최후통첩
북한의 핵실험 예고성명은 확실히 이례적이다. 지난 7월 5일 미사일 시험발사가 전혀 예고 없이 행동으로 보여준 것에 비하면 예고성명 자체가 그 어떤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미국에게 전략적 선택의 공을 넘긴 것이며, 행동하기 전에 마지막 최후통첩을 보낸 것이다. 즉 북한이 핵무장 국가로 되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그 이전에 금융제재 해제(북미평화공존)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선택의 공을 미국에게 던졌다는 것은 이미 핵실험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한 전략 전술적 계산이 끝났다는 것이며, 그 계산에서 볼 때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핵실험으로 잃어버릴 것은 별로 없는 반면 얻을 수 있는 것은 많다고 본 것 같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언론과 연구자들의 일반적인 분석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언론과 분석가들은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한다.
어떤 분석법이 올바를지는 실제로 역사가 진행되어야 판명날 것이지만, 지금까지 북미 핵 대결과정에서 발생한 결정적 국면에서 북한은 언제나 이익을 보아왔다. 가까운 예로 지난 해 '2.10 핵무기 보유선언'에서도 북한은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고 북한에게 유리한 9.19공동성명을 얻어냈다.
물론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경우 미국이 양보로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강경대응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조지 부시 미 행정부는 핵실험 여부와 관계없이 미사일 발사를 핑계로 어차피 대북제재를 강화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핵실험을 한다 한들 상황이 크게 달라질 바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아직까지 시간은 남아 있고, 이제 공은 미국에게 넘어갔다. 대북 금융제재 해제의 결단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북한 핵실험 상황을 맞을 것인가?
언제 핵실험을 할 것인가?
북한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발표한 이상 관심은 그 시기가 언제가 될 것인가 하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핵실험을 하는 데에는 기술적 준비 기간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본다. 북한이 그러한 성명을 발표했다는 것은 기술적 준비작업은 이미 완료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단추만 누르면 언제라도 핵실험은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단추를 누를 것인가? 그것은 이 마지막 최후통첩에 대한 미국의 답변을 명확히 확인할 때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최후통첩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여 대북 적대정책을 북미평화공존정책으로 바꾸고, 구체적 행동으로 대북 금융제재 해제를 위한 가시적인 행동조치를 취하게 된다면, 북한은 핵실험 계획을 중단하고 6자회담에 나올 것이며, 반대로 미국의 최후통첩에 불응해 대북강경대응태세를 강화한다면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 시기는 몇 달을 넘기지 않을 것이며, 가까이는 미국 중간선거 이전시기에 가부가 판가름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회는 남아 있다. 미국이 대화와 협상을 선택하여 대북금융제재를 해제하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게 되면 북한 핵실험은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정부는 북한 핵실험 이후의 대응에 대한 논란에 휩싸이기보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한 마지막 외교적 노력에 모든 힘과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금융제재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우회하지 말고 정공법으로 돌파해야 한다. 금융제재 해제만이 핵실험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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