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이 3일 "안전성이 철저히 담보된 핵실험을 하게 된다"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7월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논리적 가능성' 수준으로만 언급되던 북한의 핵실험이 가시권 안으로 들어왔다.
지난달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마련키로 한 이후 한미 간의 협상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북한은 왜 핵실험 가능성을 공개 거론하게 됐을까.
'금융제재 해법 내놔라'
우선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비롯한 관련국간의 협의에서 금융제재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 놓으라는 것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한 한미간의 협의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특히 6자회담 복귀의 관건인 금융제재 문제에 대해 미국은 '법집행 차원'이라는 기존의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한국은 노무현 대통령이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을 만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계좌에 대한 조사를 조기에 종결해 달라고 요청하긴 했지만, 금융제재 자체를 해제하거나 유보하라는 요청은 하지 않은 채 '법집행'이라는 미국의 논리를 받아들였다.
금융제재를 미국의 대북한 적대시 정책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는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질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의 내용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제재 해소 조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취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미국의 반공화국 고립압살책동이 극한점을 넘어 최악의 상황을 몰아오고 있는 제반 정세 하에서 우리는 더 이상 사태 발전을 수수방관할 수 없게 되었다"는 외무성 성명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의 요구는 금융제재를 해제하라는 것으로 명확하고 일관됐다"며 "핵실험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현재의 상황에서 긴장도를 높이고 자신들의 카드를 내보임으로써 금융제재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도 "협상에 들어와서 빨리 금융제재부터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 역시 "북한으로선 미국이 BDA 문제에 대해 시원스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답답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간선거 후' 보다 '선거 전' 적극 활용
이처럼 북한 측이 금융제재의 해제를 요구함에 있어 조지 부시 미 행정부가 11월 중간선거를 목전에 뒀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지난 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대한 마지막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며 그 개략적인 시한이 6주라고 밝혔다. 이 6주의 시한은 바로 '중간선거까지'를 의미했고, 부시 행정부가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마련한다는 명분 아래 북한의 추가적인 행동을 6주간만이라도 막아보겠다는 의도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풀이했다.
하지만 6주 후가 문제였다. 전문가들은 북한을 움직이기에는 미진한 내용일 게 뻔한 '포괄적 접근방안'을 제시한 후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추가제재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자신들에 대한 '미진한' 접근법이 만들어질 6주 후를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중간선거 전(前) 기간에 핵실험을 압박해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같은 판단에는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이번 중간선거의 커다란 이슈 중 하나라는 관측이 깔려 있다. 북한 핵문제 하나가 실패했다고 해서 부시의 공화당이 표를 잃지는 않겠지만, 이란 핵문제와 이라크에서의 고전 상황 등에 더해져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비확산 정책이 공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를 핵실험이라는 카드로 적극 압박할 경우 최소한의 양보라도 얻어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백학순 실장은 "라이스 국무장관이 아시아를 순방하면서 북한 핵문제를 위한 최후의 노력을 하겠다고 한 것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핵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북한이 이를 간파해 중간선거에 영향을 주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김근식 교수은 "라이스가 말한 6주의 시한동안 미국의 화끈한 양보를 얻기 위해 압박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구 현대사연구소 이사장도 "미국의 군사전략이 잘못됐다는 선거 분위기가 돌고 있는 이때가 북한에게 호기"라며 "지연전술을 쓰는 미국에 압박전술로 되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은 6주 정도는 외교적 절차가 진행되는 걸 보다가 선거가 끝난 다음은 제재 기조로 완전히 가려고 한다"며 "북한은 미국의 그런 주도권에 끌려다니기보다 오히려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고 빨리 승부를 내겠다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대미 설득도 압박
그런가 하면 한국과 중국의 외교노력을 촉구하는 의미도 있다.
한국 정부는 '핵 불용(不容)'과 '6자회담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을 븍핵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중국도 북한의 핵보유 자체와 그에 따른 동북아 핵 경쟁을 막는 틀로 6자회담을 적극 활용해 왔고 회담 의장국으로 이 회담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해 왔다.
그러나 만약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6자회담은 물거품이 되고, 한국과 중국의 외교노력도 파탄을 맞게 된다.
6자회담에 대한 양국의 이같은 절실함을 알고 있는 북한은 핵실험 가능성을 천명함으로써 미국으로 끌려가는 경향이 있는 한국과 미온적인 태도의 중국을 긴장케 해 대미 설득 노력에 박차를 가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이같은 계산에는 자신들의 핵문제가 내주 있을 중일-한일-한중 연쇄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된다는 것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김연철 교수는 "핵실험은 6자회담과 한반도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깨는 것으로 동북아 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중국 입장에서도 외교적인 노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고 북한은 그걸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신화통신>, <중국통신> 등 중국의 언론들이 이날 북한 외무성의 발표를 긴급 뉴스로 타전하며 지대한 관심을 보인 것은 전문가들의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는 사례다. 미사일 실험발사에서 이미 뒤통수를 한번 맞은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어떻게 막으려 할 것인지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핵실험 기술 보유 및 실제 강행 가능성 높아
그렇다면 북한은 정말로 핵실험을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의견이 다소 엇갈리지만 핵실험 가능성이 있다는 데 무게중심이 쏠린다.
홍현익 연구위원은 "핵실험을 한다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우리 정부도 일방적으로 제재로 가자고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며 "따라서 핵실험 전후의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만약 북한이 핵실험을 하더라도 동아시아 지정학상 미국의 군사적 대응이 불가능함을 물론이고 경제적 봉쇄 외에 뚜렷한 제재 수단이 없다는 것도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편 북한이 핵실험을 할 수 있는 기술적인 능력을 확보했는지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별다른 의심을 하고 있지 않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김태우 박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핵실험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핵실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며 "플루토늄 핵실험을 할 여건과 시설은 충분히 갖춰진 것으로 평가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의 외교노력 절실
이처럼 위기가 한 차원 고조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상황의 '엄중함'과 심각성을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미국을 설득하고 북한과의 당국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학순 실장은 "아직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전이라는 것을 정부가 인식하고 이제라도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미국에 대해서는 북한이 실제 핵실험을 할 경우 미국의 핵확산 정책이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을 명분으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북한에 대한 전향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철 교수도 "우리도 긴장도를 갖고 외교적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홍현익 연구위원도 "북한에 대해 확실히 경고를 하는 동시에 핵실험을 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외교'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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