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및 양극화 문제에 대한 싱크탱크를 표방하는 '새로운 코리아 구상을 위한 연구원(코리아연구원)'은 일본의 아베체제 출범에 맞춰 '아베총리 체제와 동아시아'라는 이름의 특별기획 글을 발표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 등 국내 대표적인 일본 연구자들이 참여한 이번 기획에서 코리아연구원은 아베총리 체제의 등장이 정치·경제·외교안보의 측면에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진단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코리아연구원의 양해 아래 이번에 발표된 5편의 글을 차례로 전재하기로 했다. 발행순서는 다음과 같다. 원문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www.knsi.org)에서 볼 수 있다(☞원문 바로가기).
▣ 발행순서
<1> 아베총리 체제와 한일관계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2> 아베총리 체제와 북일관계 (조진구 고려대 평화연구소 연구교수)
<3> 아베총리 체제와 동아시아 FTA 추진 전망 (김양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4> 아베총리 체제와 중일관계(가제, 윤영덕 한신대 연구교수)
<5> 아베총리 체제의 평화헌법 개헌 구상과 외교안보전략 전망 (가제, 조양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편집자>
아베총리 체제와 한일관계 : 전망과 과제
정치인으로서의 아베
아베신조(安倍晋三) 신정권의 출범이 향후 한일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초래할 것인가를 두고 국내외에서 활발한 논의와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 대다수의 미디어는 대체로 아베의 이념적 우익 성향으로 말미암아, 그렇지 않아도 경색되어 있는 한일관계가 더 한층 악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의 기존의 행적이나 발언 등을 종합해 볼 때 아베가 야스쿠니 신사, 역사교과서, 자위대, 헌법개정 문제, 그리고 대북 정책 등 우리의 관심사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한일관계가 더욱 험악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널리 유포되고 있다.
아베의 출신지는 주지하다시피 과거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 침략 및 지배의 주역들을 집중적으로 배출한 야마구치(과거의 쵸슈 번) 현이다. 가계만 보더라도 동경재판에서 A급 전범의 판결을 받고서도 후에 수상을 역임한 바 있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그의 외조부이며 자민당 보수 본류의 전통을 잇는 사토 에이사쿠 또한 그의 작은 외조부에 해당한다. 부친은 80년대 자민당의 유력한 리더 중 하나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 전 외상이다.
그의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를 비롯하여 그가 행한 기존의 언행, 그리고 정치적 행보를 면밀히 분석해 볼 때 그의 성향이 일본적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에서 보면 복고적 국가주의의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우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아베는 전후 일본의 총리 중에서 가장 우파적 성향이 농후한 정치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는 정치이념 면에서 보면 평화헌법 개정 및 미일안보 개정에 헌신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를 가장 빼닮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막말 정한론의 대표적인 주창자이이기도 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라는 점도 그의 이념의 일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말하자면 그의 DNA 속에 내장된 정치이념이 골수 보수우파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베 신정권의 등장 의미
아베는 5년여 동안 성공적으로 장기집권한 고이즈미 정치의 충실한 후계자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아베는 고이즈미 정권 하에서 내각관방 부장관과 장관을 각각 역임했으며 자민당의 최고 요직이라고 할 수 있는 간사장 및 간사장 대리직을 맡아 누구보다도 고이즈미 정권을 떠받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해 왔다. 또한 고이즈미와 더불어 자민당의 잇따른 선거승리를 이끄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베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고이즈미의 후원에 힘입은 바 크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고이즈미와 아베는 자민당 내 모리 파 출신으로서 보수색이 짙은 정치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많지만 엄밀히 들여다 보면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이즈미 수상은 임기 내내 고집스럽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함으로써 우리에겐 우파적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긴 하지만 엄밀히 보면 고이즈미는 신보수주의적 성향보다는 신자유주의적 성향의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고이즈미는 수상에 오르기 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참배는 신념 차원의 행위라기보다는 자민당 총재 선거전략의 방편으로 활용된 측면이 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즉, 그의 신사참배는 어떤 의미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전통적 보수층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공학적 고려의 산물로 이해되기도 한다.
고이즈미는 임기 중 헌법개정 문제에 대해서 억제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주일미군 및 자위대의 재편과정에 대해서도 온건한 입장을 견지했다. 대북정책에 관해서는 일본 내 강경일변도의 대북 여론에도 불구하고 평양을 두 차례나 방문했으며 대북 경제제재에 대해서도 매우 신중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그 대신 고이즈미는 우정개혁을 비롯한 도로공단 민영화, 행정관료 기구의 축소 및 규제완화 등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정치적 에너지를 집중했다. 한편으로 그는 자민당의 파벌구조와 그를 뒷받침하고 있는 구시대적 정치관행을 타파하는 데 앞장섰으며 정치의 주도권을 관료집단이나 자민당의 파벌 영수로부터 수상관저로 가져오는 데 상당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집권기 내내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시장확대 전략과 낡은 자민당에 대한 혁신적 개혁 노선에 힘입은 바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아베는 고이즈미의 신자유주의적 개혁노선에 공명을 하고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아베 정치의 주안점은 오히려 신보수주의적 성향의 정책 추구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아베가 총재 선거전에서 최우선적 공약으로 내건 정책이 평화헌법의 개정을 위한 환경 조성과 교육기본법의 개정이라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아베는 평화헌법의 개정을 통한 군사적 보통국가의 실현과 교육기본법 개정을 통한 애국심의 고양을 주된 정치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정치지향은 향후 일본의 외교정책에도 상당히 크게 투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정권은 외교기구의 확대개편 및 외교력 강화를 통해 일본의 유엔 안보리 진출 추구, 방위청의 성으로의 승격 추진,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확대, 자위대 해외파병의 항구화 등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을 경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말하자면 아베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개혁 노선보다는 신보수주의적 외교안보 정책의 태세 정비에 정치적 우선순위를 부여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정권의 대 한반도 정책성향 분석
아베는 일본이 전후체제에 안주하여 대세에 영합하는 외교적 관성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 본격적으로 자기 입장을 주장하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성향이 대한 정책에도 여과 없이 그대로 표출된다면 현해탄의 파고는 더욱 거세고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한일관계의 당면한 현안과 관련하여 아베가 지금까지 보여준 태도 및 자세를 그의 저서나 언행 등에 비추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야스쿠니 참배 문제와 관련해서 아베는 기본적으로 "일국의 지도자가 순국한 사람들에게 예를 다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행해지는 행위이며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에 의거한 추도방식을 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혀있는, 노예제를 옹호했던 남군 장병에 대해 추도를 하는 미국 대통령의 행위가 노예제를 옹호하는 것과 연결된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야스쿠니 참배와 역사인식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고 야스쿠니 참배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둘째, 한일 간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가 기본적으로 국가 정체성을 중시하는 이른바 '정체성의 정치'를 일정 부분 구사할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지만 한편으로 독도 문제로 인해 한일 간 갈등이 증폭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표명하고 있다. 즉, 그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포기할 가능성은 전무하지만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간에 심각한 분쟁이 발생하는 사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독도분쟁 방지를 위한 시스템 개발 등에 힘쓰는 신중한 접근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봄 독도주변 해역의 일본 측의 해저측량 시도와 관련하여 발생한 독도 분쟁에 대해서는 아베 자신은 이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셋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 역사인식과 관련하여 아베는 기본적으로 이른바 우익세력이 주도하는 '역사수정주의 운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 관여해 왔다. 그는 역사교육 의원연맹 등 우익적 교과서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왔으며 A급 전범에 대해서도 저서에서 "동경재판에서 평화에 대한 죄와 인도에 대한 죄라는 전쟁 후 만들어진 개념에 의해 재판을 받은 사람들이다. 편의상 A급이라고 부를 뿐 죄의 경중과는 관계가 없다. 국내법상으로 그들은 범죄자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는 무라야마 총리의 과거사 사죄를 담은 담화문에 대해서도 "내각은 새로운 입장표명이 가능하다"고 언급함으로써 기존에 일본정부가 표명해 온 공식적인 사죄, 반성론 입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역사인식의 일단을 드러낸 바 있다.
넷째, 대북 정책에 관해서 아베는 초강경 정책을 주도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납치 일본인 문제에 대해 아베는 북한과의 교섭에서 일체의 비타협적인 자세로 일관해 북한을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하여 일본국민의 광범한 지지를 획득하였다. 핵,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도 아베는 북한에 대한 초강경 입장을 견지해 왔으며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태에 대해서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에 아베 스스로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는 미사일 사태에 대한 유엔의 대북결의안 채택을 일본 외교의 승리이자 전환점이라고 자평한 바 있다. 아베는 집권 후에도 대북 경제제재를 광범위하게 시행하는 등 북한을 압박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베 정권의 대한 정책 전망과 평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베의 우파적 정치이념과 대한반도 정책의 강성 태도만으로 보면 아베 정권 하의 한일관계가 순항할 것으로 보기는 매우 어렵다. 만약 그의 이러한 이념과 정책 성향이 대 한반도 정책으로 그대로 표출될 경우, 그렇지 않아도 경색된 한일관계는 갈등과 마찰이 격화되어 악화일로를 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우파 성향이 짙은 이념과 강성 정책성향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의 대한반도 정책이 한국과의 충돌을 마다 않는, 강경 일변도의 방향으로 질주할 것으로는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라고 생각한다. 역설적으로 아베 정권은 우파적 이념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 한반도 정책에서 의외로 유연하고 부드러운 자세와 접근으로 임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예상되는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에 관해서 우리가 지나치게 고정관념에 입각한 예단에 근거하여 대일 정책을 구상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된다. 즉, 우리 정부로서도 열린 마음으로 폭 넓은 옵션을 가지고 아베 정권과의 관계를 탐색하는 것이 요구된다. 필자가 아베 정권이 대한반도 정책과 관련하여 의외로 유연성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데는 몇 가지 근거와 이유가 있다.
첫째, 아베 정권은 극단적으로 악화된 한국,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어느 정도 복원시켜야 할 정치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고이즈미 총리의 거듭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으로 말미암아 현재 일본의 근린 외교는 파탄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과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중국의 반발로 정상회담이 단절된 상황이 5년째 지속되어 왔으며 한국과도 정상 간 셔틀 외교가 야스쿠니, 독도, 역사교과서 문제로 인해 작년 6월 이래 중단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외교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경제, 문화, 인적 교류는 여전히 활발하게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중단으로 상징되는 정부 간 관계의 경색 상황이 초래하는 제반 분야에의 악영향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아베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의 정치권과 재계는 물론이고 국민여론으로 제기되고 있는 한국, 중국과의 최소한의 관계 정상화 요구를 마냥 무시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둘째, 아베는 납치문제에 대한 단호한 자세로 일약 스타 정치인의 반열에 올라 단숨에 총리의 자리에 안착하긴 했지만 정치적 경륜이나 당내 지지기반으로 보면 그다지 탄탄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베 정권이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하여 순항하기 위해서는 9개월 앞으로 다가온 참의원 선거에서 선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민당 내에서도 52세의 최연소 총리의 등장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급격한 리더십의 세대교체에 대한 경계와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무시하기 어려운 변수가 되고 있다. 게다가 작년 9.11 총선에서 압승한 자민당으로서는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연속적으로 승리하기란 간단치 않은데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가 이끄는 민주당은 자민당의 근린외교 실패를 끈질기게 공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볼 때 아베 정권은 당내외의 견제 속에서 참의원 선거를 무난히 치루기 위해서라도 전격적인 대중, 대한 관계의 개선 조치를 단행함으로써 야당의 비판의 예봉을 꺾음과 동시에 가시적인 외교업적을 과시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셋째, 아베의 정치인으로서의 이념과 정책 성향이 아베 정권의 대한 정책으로 그대로 여과 없이 표출될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논법이 아닐 수 없다. 전후 일본의 보수외교의 전통에서 볼 때 수상 개인의 정치이념과는 무관하게 유연한 대외정책을 펼친 사례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1950년대 하토야마 수상은 보수적 이념성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경계하는 대소 국교 정상화를 단행하였다. 또한 전후 우익의 상징적인 인물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표류하고 있던 한일회담 재개를 위해 구보다 발언과 역청구권의 철회를 주장하는 이승만 정부에 전격적인 양보를 하는 정책을 취한 바 있다. 1980년대 보수의 원조 격인 나카소네 수상은 야스쿠니 공식 참배 이후 한국과 중국의 격렬한 항의에 직면하자 집권기간 중 참배 철회의 결단을 내리고 전격적인 한국 방문을 통해 한국과의 관계 복원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례는 일본 보수외교의 전통이 지도자의 정치이념의 원리주의적 실현보다는 당시의 국제정치적 상황과 국가 이익을 냉철하게 계산하는 리얼리즘에 충실한 노선을 답습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넷째, 아베는 이념적인 강성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주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부드러운 품성의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과도 알기 쉽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괴팍하면서도 자기 고집을 좀처럼 꺾으려 하지 않는 고이즈미와는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베는 한국에 대해서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의 저서에서도 "한일관계에 대해 나는 낙관주의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법의 지배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가 일본 외교에서 한국이 지닌 비중을 어느 정도 크게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한국과의 우호친선 관계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그의 사고 기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일관계 개선의 호기
아베 정권 하의 한일관계는 그의 이념적 성향으로 말미암아 낙관하기도 어려운 측면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관적으로 예단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된다. 지금 시점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야스쿠니 참배 문제에 관해 아베는 분명한 입장 표명을 삼가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한편, 적어도 내년 7월 참의원 선거까지는 참배를 자제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로써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푸는 계기는 일단 제공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는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 중국과의 정상회담 가능성 탐색을 통해서 고이즈미 총리가 일그러뜨린 한, 중과의 근린외교 복원의 분위기 형성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5년여 만에 찾아온 일본의 정권교체는 전략적 선택에 따라서는 대일관계 개선의 호기로 활용할 여지가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작년 봄부터 급속도로 차가워진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 제공자는 일본 측이었다. 독도, 교과서, 야스쿠니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의 출발점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고이즈미 정권의 무신경한 선제행위에서 비롯되었다. 분쟁이 지나치게 격화된 데는 한국 측의 역사 원리주의적인 과잉대응도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보수적 인사들은 사석에서 한일관계가 개선되기 위해서 포스트 노무현 정권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포스트 고이즈미 정권의 출범이야말로 한일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과 일본의 정상이 조건 없이 만나 솔직하고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데서 한일관계의 정상화는 시작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취임인사 차 최초의 방문지로 한국을 택한다면 한일관계 개선의 극적인 분위기 연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 경우 독도, 역사인식, 대북정책 등 민감한 대립현안에 대해서는 단기적 해법 도출이 어려운 만큼 원칙적인 입장만을 확인하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최근의 상황을 볼 때 머지않은 시일 내에 중일 정상회담의 재개가 예상된다. 이를 계기로 중일관계는 급속도로 풀려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측이 대일관계 개선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요구는 수상, 외상, 관방장관의 야스쿠니 공식참배 중단으로 요약된다. 중일관계가 정상화 되는 가운데 한일관계만이 경색 국면을 유지하게 된다면 우리의 외교적 옵션은 더욱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로 말미암아 한반도 정세가 예사롭지 않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일 간 대화 및 의견 조율은 우리에게 급무로 다가오고 있다. 아베 정권의 출범을 계기로 대일관계 개선에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기대해 본다.
▣ 새로운 코리아 구상을 위한 연구원(코리아연구원) 코리아연구원(www.knsi.org)은 2005년 연구자, 정책전문가, NGO 활동가 등의 연구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설립된 '네트워크형 민간 싱크탱크'로 외교안보 및 양극화 문제에 대한 정책대안 및 국가전략 제시를 목적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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