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2차대전 당시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지난 13일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데 이어 14일에는 일본 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일본 정부의 왜곡 역사교과서 채택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청문회를 열어 주목을 받고 있다.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주최한 '일본과 주변국의 관계' 청문회에서 일리노이 출신 공화당 헨리 하이드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안에 있는 전쟁박물관 '유슈칸'은 일본이 서방 제국주의의 굴레에서 아시아 태평양 주민들을 해방시켜주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고 기술하고 있다는데 우리 세대들이 아직도 이런 내용을 학습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며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민주당 탐 란토스 의원은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것은 일본의 '기억상실증'을 보여주는 어처구니없는 사례"라며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헤르만 괴링이나 아우슈비츠 소장이었던 루돌프 헤스의 무덤 앞에 꽃을 바치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란토스 의원은 "전범에게 조의를 표하는 짓은 윤리적 파산 행위로 일본 같은 대국이 할만한 일이 아니다"며 "이제 끝내야 할 관행"이라고 강조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기도 한 란토스 의원은 난징 대학살을 부인하고 제국주의로부터 아시아 국가들을 보호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역사교과서를 승인한데 대해서도 일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일본은 과거사를 지혜롭게 처리하는 데 실패했다"며 "일본의 실패는 일본 스스로에게 큰 피해를 끼쳤을 뿐 아니라 동북아 주요 국가들에 상처를 입혔고 그 지역의 긴장도를 높여 미국의 국가 안보 전략에도 지장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美 의회 내 '일본 비판', 본류로 보기는 어려울 듯
국제관계위원회 중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을 받고 있는 제임스 리치 의원은 "과거사를 둘러싼 일본과 그 주변국의 분쟁은 워싱턴에서도 주목해야 할 사안"이라며 미국의 개입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답변자로 나온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국장은 "그러나 미국이 나서서 양국을 중재하려 든다거나 타협점을 마련해 보려고 들다가는 엄청난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린 전 국장은 "후임 총리로 확실시 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총리 계승 이후 첫 해외순방지로 한국이나 중국을 검토하는 등 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준비하고 있다"며 특히 중-일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 놓았다.
그린 전 국장은 "미국의 역할은 미국이 중-일간 긴장이 조성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6자회담이나 에너지 문제 등 공동의 협력 과제를 두고 일본이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도록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연일 미 하원이 일본 정부의 과거사 인식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 그간 미국 정가의 소수파였던 '합리적 세력'이 동북아 긴장 해소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국제관계위원회에 한정된 이 두 가지 '이벤트'만으로 일본을 중시 여기는 미 정가 내의 전반적 기류에 주목할 만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 정부 측에서는 전날 위안부 결의안의 여세를 몰아 이날 청문회 말미에도 일본 지도자들의 신사 참배를 규탄하는 결의안이 채택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로비를 펼쳤다는 후문이나 이날 청문회는 몇몇 의원들의 강도 높은 발언만으로 끝을 맺었다.
이에 15일자 <아사히 신문>은 "전쟁을 겪은 의원들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도 높게 비난했지만 전후세대 의원들 중에서는 '미국이 과거에 주목하며 일본을 비판하는 것은 중국이 바라는 바'라는 의견도 나왔다"며 "야스쿠니 비판이 미 의회 전체 소리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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