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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합의 1주년, '한반도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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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합의 1주년, '한반도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한반도 브리핑 <20> 先 남북관계 복원 - 後 북핵문제 해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9.1 공동성명이 채택된 지 1년이 지났다. 2002년 발발한 2차 북핵 위기 이후 가장 큰 성과로 평가되었던 9.19공동성명이었다. 2005년 7월 어렵게 재개된 4차 6자회담에서 최종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자 회담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합의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해 결렬이 아닌 휴회를 선언하고 두 달 뒤 '2단계' 4차 6자회담이라는 기발한 제목으로 다시 만나 결국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었다.

단지 북한의 핵개발 의지와 핵능력을 포기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과 북미, 북일 관계 개선 및 대북 경제협력 등 그동안 북핵 문제로 난마처럼 얽혀 있던 다양한 요구와 이슈들이 총망라되어 합의를 봤다. 더욱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국제적 논의틀과 함께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각국의 협력 등도 명시되어 있어 합의대로만 실천·이행된다면 9.19공동성명은 그야말로 동북아시아판 '평화장전'으로 칭송받을 만 했다.

하지만 9.19합의는 각국 대표의 서명에 잉크가 마르기 전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합의 당일 저녁 종결발언에서 힐 차관보는 마지막까지 쟁점이었던 북한의 경수로 건설 시기에 대해 NPT(핵무기비확산조약) 복귀와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 수용으로 국제사회에 투명성을 확인받고 핵포기가 완료된 후에나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북한은 그 다음날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경수로를 먼저 제공해줘야' 핵포기가 가능하다는 강경입장을 표명했다. 최적의 합의문이 도출된 직후 북미는 또다시 끝없는 신경전을 시작해야만 했던 것이다.
▲ 11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천영우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만찬회동을 가진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화파' 힐 차관보는 최근 6자회담 '피로감'을 내비치며 회담 재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경수로 건설 시기를 놓고 벌이던 신경전은 미국의 금융압박에 비하면 단지 설전에 불과한 것이었다. 경수로 제공이 본격화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시기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갈등은 말로만 하는 것이었다.

2단계 4차 회담이 막바지에 다다르던 9월 15일 미국 재무부가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 아시아(BDA) 은행을 '자금세탁우려' 기관으로 지정하면서 시작된 이른바 '대북 금융제재'는 그야말로 북미대결의 최전선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 이후 11월에 개최된 5차 6자회담은 시작부터 끝까지 북한의 금융제재 해제요구와 미국의 해제불가 입장이 맞서면서 결렬되고 말았고 지금까지 6자회담은 열리지 못하고 있다.

그 후 지속되던 북미간의 대결은 급기야 2006년 7월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하면서 이제 최악의 극단적 상황에 다다랐다. 미국은 보다 본격적인 대북 제재를 준비하는 한편 아시아 국가들의 도움을 받아 북한계좌 전반에 대한 동결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이에 맞서 북한은 중국과의 심상찮은 이상기류를 감수하면서까지 핵실험 카드를 꺼내들고 또 다시 위협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시작하고 있다.

결국 1주년을 맞은 9.19 합의는 논의의 진전을 위한 회담 한번 제대로 열지 못한 채 어디론가 실종되어 버리고 북미간의 끝없는 대결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구조적 악순환에 놓인 북핵 문제

9.19공동성명이 실종되어 버린 원인은 무엇보다 북미간의 대결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가 압박과 봉쇄에 의한 근본적인 체제전환 쪽으로 기울었고, 이에 대해 북한은 체제수호 차원에서 대미 강경 대결을 불사하고 있는 데에서 비롯됐다. 즉 미국의 대북 체제전환 의지와 북한의 대미 체제수호 의지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점이 지금 북미간 대결의 핵심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보다 구체적인 쟁점으로는 6자회담에 무조건적으로 복귀하라고 요구하는 미국과 6자회담 외에 북미 양자협상을 요구하는 북한, 그리고 불법활동에 대한 금융제재를 고수하고 있는 미국과 금융제재 해제 없이 회담에 참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북한 사이의 간극도 존재한다.

기저에서는 미국의 대북 압박 기조와 북한의 대미 대결 기조가 맞부딪치고 있고, 그것이 표출되는 방식에서는 6자회담과 양자협상, 금융제재 고수와 금융제재 해제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이들 3가지의 쟁점이 타결될 수 있는 묘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구조적 악순환에 놓여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북미간 대결이 심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완충하거나 중재할 수 있는 중국의 역할도 약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반도 긴장완화의 마지막 보루였던 남북관계마저 경색되면서 이제 한국정부의 적극적 역할마저 크게 쇠퇴하고 있는 형편이다.

바로 1년 전 9.19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중국과 한국의 역할이 크게 돋보였던 것에 비하면 현재의 북미대결 구조 속에서 중국과 한국은 문제해결과 위기완화는커녕 상황관리에도 힘이 버겁다.

1년전 4차 6자회담이 장기 공전되고 있을 때 한국정부가 나서서 이른바 중대제안 등으로 북한을 설득하면서 6.17 김정일-정동영 면담으로 6자회담 복귀를 얻어내고, 동시에 한미정상회담으로 조지 부시 대통령을 설득해 북한의 회담 참가를 전제로 평화적 해결의지를 재확인해냈던 나름의 역할은 지금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북한에게는 미사일 발사의 책임을 물어 섣불리 '대화의 끈'을 놓아버려 당국간 대화가 중단된 상태고, 미국에게는 작통권 환수 논란과 끊임없는 한미관계 불협화로 인해 북한과 '다양한 형태'의 대화에 나서라고 섣불리 요구하기도 어색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대북 설득과 대미 설득 모두 난관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한반도 프로세스란 무엇인가

그러나 상황이 어렵다고 뒷짐만 지고 있기엔 지금의 국면이 너무도 엄중하다. 북한과 미국의 극적인 타협을 무조건 기다리고 있기엔 너무 비관적인 구조를 맞고 있다. 이제 막 대북 금융제재의 효과를 실감하면서 체제전환의 가능성마저 기대하고 있는 미국이 저절로 대북 정책의 방향을 바꿀 리 만무하다.

미국의 금융제재가 바로 북한체제의 근본전환을 도모하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북한이 머리를 숙이고 미국에 굴복할 가능성 역시 전무하다.

이처럼 완강한 북미 대결의 구조적 악순환에서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9.19 1주년이 암담하게도 비관적 전망으로 채워지고 있을 때, 과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가장 어려운 때가 오히려 모든 노력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시기가 된다. 꽉 막힌 대결 국면을 극적으로 호전시킬 모든 가능성을 최대한 시도해봄직한 때인 것이다. 이런 각오로 이제 한국 정부는 한반도 정세에 주도적으로 개입하려는 적극적 의지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시기 '한반도 프로세스'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프로세스는 북한과 미국이 선의의 타협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한국이 나서서, 남북이 주도해 한반도 정세를 호전시키려는 시도를 마지막으로 시작해보는 계획이다. '선(先) 남북관계-후(後) 북핵문제'의 접근법으로 더 이상 돌파구가 없어 보이는 북미대결을 해소해 보려는 계획이다.

1999년에 제출된 페리 프로세스가 북미간 '상호 위협 감소'라는 대원칙 하에 당시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미국의 대북 접근법이었다면, 2006년 우리가 시도하고자 하는 한반도 프로세스는 '남북관계 진전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원칙 하에 남북관계와 북핵·미사일 문제 및 북미관계 개선까지 한꺼번에 풀어보려는 한국의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즉 '한반도 프로세스'는 남북관계 진전으로 당면 현안의 선순환 해결구조를 모색해보는 '극적인 포괄해법'이자 '종합적 상황 돌파 전략'인 것이다.

급선무는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북정책

그렇다면 한반도 프로세스를 추진하기 위해 당장 필요한 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무엇보다 한반도 프로세스의 첫 시작은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질적 발전을 모색하는 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은 보다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당국간 대화 복원과 남북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북이 절실히 원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보다 전향적인 조치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핵문제와 미사일 문제의 '출구'가 보여야만 대북지원을 재개하고 남북관계가 정상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 아니라, 쌀 지원 및 경공업 원자재 제공 문제와 북이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근본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의 전향적인 조치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조건을 걸어 놓고 긍정적 변화가 있어야만 남북관계가 복원된다는 소극적 기다림이 아니라 북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기 위한 우리의 선(先)조치를 추진하는 적극적 개입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 현 정부 외교·대북정책의 사령탑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이종석 통일부 장관(오른쪽).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연합뉴스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해 남북관계를 복원하면서 동시에 한반도 프로세스의 다음 단계인 북한의 태도변화를 얻어낼 수 있는 극적 계기도 마련해야 하는 바, 이 맥락에서 여전히 남북정상회담은 당위성과 가능성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정상회담 등을 통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긍정적 입장을 도출하는 것은 사실상 한반도 프로세스의 성공을 가늠하는 '필수' 조건이 된다. 북핵과 관련해서는 최소한으로는 김정일 위원장의 6자회담 복귀 천명과 핵폐기 의지 재확인을, 최대한으로는 핵동결 조치 선언 정도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남북정상이 '한반도 평화선언'에 합의하고 그 내용에 상호 불가침과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및 한반도 비핵화 실현 등을 포함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이나 기타 계기를 통해 북한이 개혁개방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실리 사회주의'라는 개혁노선을 천명하고 이에 입각해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에 진지하게 나서겠다고 국제사회에 선언한다면 이 자체로 미국의 대북 체제전환용 압박정책은 상당부분 약화될 수 있다. 북한이 적어도 중국식의 개혁노선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실제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곧 미국이 원하는 체제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대미 설득의 명분과 순서는?

그 다음 한반도 프로세스의 진전은 북한의 태도변화를 바탕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대미설득에 나서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의사와 개혁개방 의지를 미국에게 설명하면서 6자회담 재개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좀 더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도록 요구해야 한다.

우선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금융제재 문제를 '불법과 합법'의 범주로 구분해서 북한의 명백한 불법 활동에 대해서는 엄정한 제재를 가하되, 정상적인 경제활동과 관련된 계좌는 허용하는 이중 접근을 미국에게 설득할 필요가 있다. 그 정도도 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북한의 완전굴복 이외는 답이 없는 만큼 6자회담 재개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미국의 일정한 유연함을 전제로 6자회담이 재개되면 이와 별도로 북미간 양자 회담을 병행하는 것도 미국에게 진지하게 설득할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북미간 뜨거운 쟁점들은 양자의 정치적 타결을 통해 접근하는 게 효율적임을 설명해야 한다. 말끔한 문제해결을 위해 북미간 정상회담을 포함한 (최)고위급 협상이 북한정치체제의 성격상 훨씬 효율적이며 북한은 형식에서 양자협상을 들어준다면 내용에서 미국이 원하는 바의 양보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설명해줘야 한다.

또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미사일 이슈는 9.19공동성명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만큼 불가불 6자회담 이외의 장에서 북미가 직접 논의해야 함을 설명해야 한다. 이상의 과정이라면 앞서 언급한 3가지의 북미간 핵심쟁점이 상호 수용가능한 선에서 접점 찾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황이 호전될 수 있는 구조적 선순환 구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남북관계의 진전과 북한의 태도변화 및 대미 설득이 성공했다면 일단 한반도 프로세스는 제 궤도를 찾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9.19 프로세스'가 복원되면 거기에서 실천·이행을 위한 6자간, 북미 양자간 논의가 진행되고 결국은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에 진입해야 한다.

북핵문제는 단순히 북한의 핵포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북미 적대관계의 청산과 북미 평화공존의 시작으로 나아가야만 제2, 제3의 북핵문제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장전'이라 할 만한 9.19공동성명이 북미관계 정상화를 주요 내용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상호 외교관계 수립을 통해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고 최종적으로 그것이 다시 피드백되어 남북관계를 더욱 진전시키게 됨으로써 '한반도 프로세스'는 일단 종결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에서 시작된 '한반도 프로세스'는 한 바퀴를 돌아 결국 남북관계의 또 다른 진전으로 귀결되는 셈이다. 어렵지만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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