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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조영길의 '작통권 기억상실증' 왜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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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조영길의 '작통권 기억상실증' 왜 생겼을까

'말바꾸기' '모르쇠' '적반하장'의 나날들

'전직(前職)'들의 '기억상실증'이 전시 작전통제권 논란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최근 그 '증세'가 두드러졌던 인물은 현 정부에서 초대 국방장관을 지낸 조영길.

조 전 장관은 지난 4일 <동아일보> 기고문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양국이 작통권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작전권은 북한이나 미국 모두의 상호 무력억지에 기여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해 작통권 환수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백히 했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의 이같은 입장은 장관 재임 시절의 행태와 180도 다른 것이라는 사실이 <동아일보> 기고문이 나온 바로 그날 드러나 많은 이들을 아연케 했다.

그는 2003년 7월 작통권 환수 목표시점을 2010년으로 제시한 '자주국방 추진계획'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5일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며 "조 전 장관의 기고문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의 2010년 환수 안은 현재 정부가 환수 시점으로 삼고 있는 2012년보다 2년 이른 것이다.

그의 '기억력 손상'을 의심케 했던 일은 그 전에도 있었다.

그는 작통권 문제가 촉발됐던 지난 8월 2일 전현직 국방부장관 간담회에서 작통권 환수를 추진하는 현 정부의 정책을 옹호한 것으로 전해졌었다.

윤 장관은 다음 날 조 전 장관을 거론하며 "이 분은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깊었다. 정부의 요직을 경험한 분들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은 그 후 돌연 입장을 바꿔 작통권 환수에 반대하는 전직 국방장관들의 기자회견과 성명서 발표 등에 동참하며 '입장이 도대체 뭐냐'는 비난을 받았다.

YS의 견강부회

그러나 오락가락한 기억으로 갈지자 행보를 보인 조 전 장관의 증세는 '중증 기억상실증'을 의심케 하는 한 사람의 등장으로 경미한 것이 돼버렸다.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6일 작통권 환수 문제와 관련해 "한미연합체제가 있었기 때문에 (지난 94년 북핵위기 때 전쟁을 일으키려는) 미국의 단독행동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94년 클린턴 미 대통령이 북에 대한 전쟁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한미연합체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때도 전쟁을 막을 수 있지 않았느냐'는 박진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고 배석자들이 전했다.

그러나 이 말은 김 전 대통령 본인이 주역이었던 역사를 망각한 것이다.
▲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김일성 북한 주석이 1994년 평양에서 선상(船上) 대화를 하는 장면 ⓒ연합뉴스

94년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못했던 것은 한미연합체제를 이루고 있던 한국의 반대를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중재가 극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의 단독행동을 막는 데에 별 일을 하지 않았거나, 혹은 위기를 부추겼을 뿐이었다. 한미연합체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카터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을 만나 미국과의 타협을 설득하던 94년 6월 16일 미국의 정·부통령과 국무장관, 국방장관, 합참의장, CIA 국장 등 빌 클린턴 행정부의 최고 수뇌부들이 백악관에 모여 대북 공격 계획을 구체적으로 논의했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제임스 레이니 당시 주한 미국 대사는 이날 아침 남한에 거주하고 있던 세 명의 손자·손녀에게 3일 후까지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사실은 전쟁으로 가는 카운트다운이 얼마 남지 않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연합체제가 전쟁 막았다' 논리 자체 성립 안 돼

그러나 이같은 위기 상황을 전후해 김 전 대통령이 취한 정책은 전쟁을 막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은 위기가 고조되던 그해 6월 13일 수 년 만에 처음으로 전시 동원에 대비한 사상 최대 규모의 민방위 훈련을 하겠다고 발표해 국민들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증시는 이틀만에 25%로 곤두박질쳤고 국민들은 쌀과 라면, 양초 등을 사재기하기 위해 가게로 몰려갔다.

김 전 대통령은 평양 방문에 앞서 서울에 들를 예정이었던 카터에 대해 그의 방북이 '시기적절하지 못한 것'이며 북한의 '지연전술'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말하며 전쟁 위기를 타개해 보려는 그의 행보를 마땅치 않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터는 김일성으로부터 △핵개발 동결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북한 체류 허용 △북미 회담 재개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의 약속을 받아내 한반도에 불어 닥친 전쟁 위기를 일순간에 날려버렸다.

이런 서슬 퍼런 역사가 있는데도 한국이 미국의 군사행동을 막았다거나, 한미연합체제가 그를 가능케 했다는 김 전 대통령의 주장은 견강부회도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또 굳이 이런 역사를 되짚어 보지 않더라도, 한미군사동맹이 연합방위체제냐 혹은 작통권 환수 뒤의 공동방위체제냐의 문제와, 북한을 공격할지 말지와 같은 전략적 수준의 의사결정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사실은 김 전 대통령의 논리 자체를 성립할 수 없게 한다.

'말바꾸기' '모르쇠' '적반하장'의 나날들

사실 작통권 논란에서 말을 바꾸거나 과거의 행적을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은 김 전 대통령이나 조 전 장관만은 아니다.

최근 작통권 환수를 맹렬히 반대하고 있는 전직 장성들이나 보수언론들이 과거 작통권 환수를 당연시 했다는 사실은 더이상 거론하기조차 식상할 정도다.

대표적으로 노태우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지냈던 최세창 씨는 장관 재임 시절이던 92년 9월 국방대학원 특강에서 "평시 작통권을 93~95년 중에 이양 받은 뒤 전시 작통권도 96년부터 2000년 사이에 한국이 이양 받게 될 것"이라며 "한국군이 전시 작통권을 넘겨받더라도 미군은 동북아 지역 분쟁의 억제를 위해 한반도에 계속 주둔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달 10일 전직 장관 모임에서 "작통권을 단독행사함으로써 한미연합사의 해체를 가져오고 결국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며 14년전의 말을 뒤집었다.

자기 자신을 참담케 하는 수준을 넘어 국민을 끝없는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이들의 역사 망각증은 과연 언제쯤 끝이 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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