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 관방장관이 1일 저녁 히로시마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20일에 있을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외견상 판세는 아베 장관과 다니가키 사타카즈 재무상, 아소 다로 외상 간의 3파전으로 요약되지만, 이미 아베 장관의 당선이 기정사실로 여겨질 만큼 아베 장관에 대한 자민당 내 지지는 압도적이다.
중의원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1당 당수가 총리가 되는 관례 상 아베 장관은 자민당 총재가 되는 동시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후임이 된다.
당연히 주변국들의 관심은 총재 선거 자체가 아니라 새 총리가 이끌 일본의 미래에 쏠리고 있다. 특히 한국의 언론들은 아베 장관이 2차대전 A급 전범을 외조부로 둔 '원조 우익'인 데에다가 대북 강경책으로 스타덤에 오른 '북풍(北風)의 최대 수혜자'임으로 부각시키며 가뜩이나 경색돼 있는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것으로 예상하며 경고음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의외로 <프레시안>이 접촉한 국내 일본 전문가 그룹에서는 "아베 집권 후 한일관계는 고이즈미 총리 때보다 오히려 나아질 수 있다"는 의견이 대종을 이뤘다.
즉, △아베가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대중적 지지를 획득해야 하고 △'평화헌법 개정'이란 최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주변국들과의 갈등은 줄여가려고 할 것이며 △고이즈미처럼 '논리를 초월하는' 인사가 아니라는 점이 주장의 근거였다.
"'신사참배 안 한다' 공언 않겠지만 참배 않을 것"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아베가 우파인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아시아 관계 외교를 경직시키는 것은 정치적으로 적잖은 부담을 안겨주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유연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지난달 15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한일, 한중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한국과 중국 모두 일본 지도자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계속하는 한 양국간 정상회담은 없다고 공언했다. 그 와중에 아베 장관도 지난 4월 신사 참배를 감행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언론들은 순탄치 않은 한일관계를 예견하게 됐다.
그러나 진 센터장은 우익을 의식해야 하는 아베 장관이 '신사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는 힘들겠지만 당분간 직접 신사참배를 하지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모호하게 입장을 흐리는 전략을 쓰면서 물밑에서는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란 얘기다. 신사 참배는 일년에 한 번 꼴이니 내년 12월까지는 이 전략이 가능한 셈이다.
진 센터장은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해야 하는 아베가 주변국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원하는 대중적 요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경제개혁을 앞세우며 소비세 강화를 예고해 놓은 아베 장관이 외교에서까지 '표 떨어질 짓'을 했다가는 조기 낙마할 수 있다는 부담감에서라도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유연성을 발휘할 것"이란 관측이었다.
진 센터장은 또 "아베의 본 목적은 평화헌법 개정에 있기 때문에 대외 관계는 편하게 가져가는 것이 개헌에 온 힘을 쏟는 데에도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베는 '이성적인 사람'…고이즈미처럼 막무가내 아냐"
호사카 유지 세종대 일본학 교수 역시 "아베가 '야스쿠니 신사 개혁론'을 적절히 이용해 참배에 대한 우익들의 압력을 피하면서 중일관계 모색을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베 장관과 함께 출마한 아소 외상이 "종교법인인 야스쿠니 신사를 비종교 법인으로 만들고 A급 전범 합사 문제를 해결한 뒤 국가가 관리하자"고 주장하면서 '야스쿠니 개혁론'은 총재 선거전에서도 쟁점이 된 만큼, 이 논란이 계속된다면 총리가 야스쿠니를 찾지 않아도 대의명분이 서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호사카 교수는 자민당을 '극우단체'로 조망하는 경향에도 제동을 걸었다. 여러 정치 파벌의 집합체이다 보니 자민당 내에는 '보수 꼴통'도 있지만 '친중파(親中派)'와 '친한파(親韓派)'도 엄연히 존재하고 이 모든 파벌의 전적인 지지를 받게 된 점에서 아베 장관의 태도가 예전보다 훨씬 유연해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호사카 교수의 판단이다.
호사카 교수는 "자민당 내 '친중파'들이 처음에는 아베가 총재가 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최근 들어 아베를 지지하는 쪽으로 선회했다"며 "아베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친중파'의 주장에 동의를 했으며 한국과도 험악한 관계를 계속해 나갈 수 없다는 마음을 먹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호사카 교수는 한-일관계 개선 가능성을 아베 장관의 개인적 자질에서도 찾았다. 호사카 교수는 "고이즈미가 논리를 초월한 사람이라면 아베는 논리에 성실한 사람"이라며 "우파이긴 하지만 논리상 맞지 않는 얘기는 안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 고이즈미처럼 8.15에 신사 참배를 하는 식의 막무가내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일본에 '뛰어넘을 수 있는 허들'을 제시하라"
이들의 전망대로 집권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문제에 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관계 개선을 시도한다면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일본 앞에 '일본이 뛰어 넘을 수 없는 허들'을 세워 놓고선 관계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사참배 문제뿐 아니라 독도, 역사교과서 왜곡 등 한일관계 전반의 문제를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일괄 타결하려는 태도는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하겠다고 이 모든 문제에 팔 걷고 나설 일본도 아니다"며 "아베가 야스쿠니 문제만 해결한다면 다른 문제들은 순차적으로 풀어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서 훨씬 적극적인 중국 정부의 태도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이미 한국과 중국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 경쟁에 돌입했는데 중일관계만 개선될 경우 동북아에서 한국의 입지가 어정쩡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호사카 교수 역시 "일반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신사참배 문제와 독도나 교과서 문제를 일부러 분리한 후 일본이 반응을 보이는 쪽부터 대응해 나가야 한다"며 "'역사문제'로 엮으면 다 같은 문제이기도 하지만 일본 내 비난 여론이 높은 신사 참배와 찬성 여론이 높은 독도 문제를 한 틀에 묶어서 대결 양상으로 가는 것은 손해"라고 주장했다.
진 센터장은 "양국간 접촉이 없는 상황에서 불신관계가 오래 가면 인식차가 더욱 커져 갈등이 불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진 센터장은 "신사참배 문제가 해결되고 양 국이 만날 상황이 되면 한국에서 일본이 넘지 말아야 할 타협선을 만들어서 갈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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