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헤즈볼라 분쟁의 결산 : 이란의 得, 미국의 失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Hejibullah, '알라의 黨'이라는 의미)의 교전은 결국 유엔의 개입에 의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번 사태를 평가할 때 실질적 승자는 헤즈볼라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의 실질적 군사력 비교 시 100대 1정도의 열세로 평가되던 헤즈볼라는 카튜사 로켓포와 파즈르(Fajr) 단거리 미사일 등으로 갈릴리 지역과 심지어 이스라엘 북부 중심도시 하이파에까지 포격을 가하며 이스라엘을 경악하게 할 만한 타격능력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헤즈볼라가 보유하고 있는 젤잘-2 (Zelzal-II) 미사일이 텔아비브를 비롯한 이스라엘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스라엘은 공포에 빠지게 되었다.
헤즈볼라를 이끌고 있는 하산 나스랄라(Hassan Nasrallah)는 레바논 내 시아파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및 인근 수니 이슬람국가의 대중들로부터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이스라엘 항전의 전위대로서 헤즈볼라는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으며, 향후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시아 연대 구상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리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스라엘의 손익계산은 좀 복잡하다. 먼저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헤즈볼라를 무력화시키지 못했다는 점과, 과잉대응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야 했다는 점에서 부담을 안았다. 그러나 아리엘 샤론(Ariel Sharon) 전 총리의 유고 이후, 집권 카디마(Khadima) 당을 이끌고 있는 에후드 올메르트(Ehud Olmert)는 군사부문 근무경력이 전혀 없는 테크노크라트 출신의 첫 총리다. 그는 국제사회와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헤즈불라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통해, 이번 이스라엘의 대헤즈볼라 전투는 이스라엘의 생존문제와 직결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음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내부적으로 90%를 상회하는 이스라엘 유권자들이 이번 대헤즈볼라 강경노선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나아가 대다수의 유럽 국가 등 국제사회도 점증하는 이스라엘의 안보불안, 특히 이란의 신행정부 등장 이후 패닉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의 인식에 대해 상당부분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여주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외려 역외 세력인 미국과 이란의 손익이 극명하게 갈렸다는 점이다. 먼저 현재 중동지역에서 헤게모니 획득을 위해 진력하고 있는 이란의 경우 헤즈볼라의 선전을 통해 시아파 연대의 맹주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했다. 나아가 역내에서 거대한 반미 축을 이끌어갈 리더로서의 기반도 얻게 되었다. 반면 미국의 중동정책, 즉 부시행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확대 중동구상, 소위 민주화 확산 구상은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미국의 중동 민주주의 확산정책은 이슬람세력의 약진만 초래
미국의 확대중동구상(Greater Middle East Initiative)은 기본적으로 민주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에 기초하고 있다. 즉 체질적인 불안정성(inherent quality of instability)에 시달려 온 중동에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분쟁과 관련된 구체적 쟁점 중심의 해결책보다는, 중동 각국의 체질 변화, 즉 민주화의 확산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킴으로써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이라크에 민주화된 정권을 정착시킴으로써 인근 시리아와 이란에 민주화를 확산시킴으로써 반테러 반확산 정책을 완성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를 위해 반미, 반서구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반정부단체 지원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접근을 시도했다.
2003년 조지아(Georgia)의 시아일랜드(Sea Island)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구체적으로 제안하여 본격화된 확대중동구상의 후폭풍은 상당히 강했다. 먼저 기존의 친미 권위주의 정권인 이집트에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집트의 경우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대통령의 차남인 자말 무바라크(Gamal Mubarak)에의 권력 승계가 예상되었으나 미국의 강력한 압력으로 무산되었고, 이집트는 미국의 압력으로 헌법 개정 및 선거법 개정을 통해 복수 대통령 후보 제도를 채택하고 국회의원 선거제도도 정비했다. 이집트를 필두로, 레바논, 사우디, 쿠웨이트 등지에서 유권자의 참여를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중동 전역은 민주주의 선거제도 도입의 열풍이 불었다.
그러나 상황은 미국의 의도와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민주화의 열풍에 따라 선거 참여 및 제도권 진입을 표방하며 전면에 등장한 이슬람 정치세력들이 약진한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불법 이슬람 과격세력인 무슬림형제단(Ikhwan al Muslimin, Muslim Brotherhood)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88석의 의석을 차지하며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착근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밖에도 레바논에서의 헤즈불라의 의회 및 내각 진출, 팔레스타인 하마스 정부 등장 등 이슬람 세력의 정치참여가 확대됨으로써 '민주화=이슬람정치의 심화'라는 도식이 점차 힘을 얻게 되었다. 단순 다수의 의사에 의해 지도자가 선출되고 정책이 결정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적용하다보니, 이슬람의 신앙적 순수성을 주장하며, 이슬람 정치의 수월성과 과거 아랍 문명 흥성기(興盛期)의 영화(榮華)를 주장하는 이슬람 정치세력들의 약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미국의 구상과는 배치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미국은 이라크의 민주화를 통해 다원주의적 가치와 세속화, 그리고 자유시장 경제의 틀을 인근 아랍국 및 이란으로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라크의 안정화가 지지부진할 뿐 아니라 향후 내전 가능성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외려 이라크 주변부가 이슬람 정치세력에 의해 장악되는 결과로 진행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의 하마스 집권 및 레바논 헤즈볼라의 약진은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구도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거대한 역내 반이스라엘, 반미 전선이 구체적으로 조성될 경우 외려 이라크가 종파별로 분리되며 극도의 혼란상태로 들어가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헤즈볼라 충돌 사태가 일어났다. 이슬람 정치세력의 전면 진출과 과격 무슬림들의 결집현상이 가시화되면서 미국의 입장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결국 더 이상 이슬람 정치세력의 영향력 확대를 방관할 경우 전반적인 중동 관리가 어려워진다는 판단 하에, 고전적인 동맹관계였던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집권세력을 위무하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먼저 사우디아라비아 압달라(Abdallah) 왕정 및 최대 집권 세력인 수다이리(Sudairi) 계열 왕자군에 대해 인권 문제 제기를 중단했다. 나아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의 둘째 아들인 자말을 미국으로 초청하기까지 함으로써 은연중에 대통령직 세습도 용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다. 만일 사우디 왕정이 붕괴하고 권력투쟁이 일어날 경우, 아라비아 반도 남부 아시르(Asir) 지방을 거점으로 하는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세력들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하다. 더불어 반도 동부 걸프연안 지역 알 하싸(al Hassah) 지역의 시아파들의 동향도 불투명해지기 때문에 현재 미국으로서는 아라비아 반도의 민주화를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커진 상태다.
여기에 이집트 의회에 무슬림 형제단이 대거 진출해 4년 후 이집트 대선에서 독자적인 후보를 출마시킬 수 있게 됨에 따라, 자칫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집권처럼 이집트에서도 과격 이슬람 계열 정치세력이 집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없지 않게 되었다. 이는 미국으로서는 대재앙을 의미한다. 이스라엘과 수교관계를 맺고 있고, 북아프리카 마그레브지역과 아라비아 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이집트에 이슬람 정권이 세워진다면 이란 이슬람 공화국과 연동되는 대규모 이슬람 연합 정치세력이 가시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의 대중동 민주화 구상의 역설이 담겨 있다. 즉 민주화의 확산을 통한 체질 개선은 곧바로 대중들의 정서가 반영된 이슬람 정치세력의 합법화와 등장과 연결되었다. 이는 미국이 이식하고자 하는 가치와는 상반되는 가치와 세계관의 확산을 의미한다. 2006년 초 카렌 휴즈 국무부 홍보담당 차관이 중동지역을 순방하면서 민주화의 가치를 역설하던 공공외교는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채 반미 정서만 재확인하고 돌아온 결과를 낳았다. 결국 외삽된 민주주의의 강제이식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미국의 중동민주화 정책은 이슬람의 부상이라는 변수와 맞물리면서 현재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여기에 이번 레바논 사태를 전향적으로 중재하지 못하고 편파적인 이스라엘 편들기에만 급급함으로써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확대되는 이란의 대중동 영향력, 곤혹스런 미국
이란의 급부상은 미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대중동외교 핵심은 이란의 봉쇄다. 이란을 제어함으로써 걸프 지역의 안정적 원유공급을 보장하고, 이슬람 혁명노선의 전파를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라크 민주화 프로젝트 역시 다분히 이란을 의식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란의 핵개발 시도를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즉 핵무기를 보유하는 순간 이란은 역내에서 명실상부한 패권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다른 여타 국가의 핵개발과는 달리, 이슬람 이념의 본산이자 역내 강력한 영향력을 형성하고 있는 이란의 핵개발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막아야 할 당위가 된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현실은 낙관적이지 않다. 이란은 크게 두 가지 축을 가지고 대외관계를 구성해나가고 있다. 첫번째 축은 확대 시아 연대(Grand Shiite Coalition) 구상이다. 즉 이란과 이라크,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알하싸 시아 밀집지역을 연결하는 거대 시아파 연대 프로젝트인 것이다. 현재는 이라크 시아 정권이 친미 노선을 채택하고 있지만, 미군 철수 후 내부 권력투쟁이 가시화 될 경우 현재의 알리 알 시스타니(Ayatollah Ali al Sistani) 계열의 친미 시아파 대신 무크타다 알 사드르(Muqtada al Sadr) 계열의 젊은 과격 시아파가 집권할 가능성이 있다. 이 계열은 오래 전부터 이란의 물질적, 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으며 자체적 민병대를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사드르 계열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 이란-이라크 연대는 실현될 가능성이 크고, 이 세력이 사우디 동부까지 연결될 경우 걸프 지역을 둘러싼 편자 지역(horse-shoe area)은 이슬람 시아파 세력에 의해 완전 점령된다. 이란은 현재 이와 같은 구상을 조금씩 구체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다른 축은 역내 반미 세력의 결집화다. 이는 비단 시아 세력뿐 아니라 역내 반미 세력을 흡수하며 그 중심에 이란이 위치하는 형국을 의미한다. 즉 서쪽으로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시리아와의 강력한 반미 연대, 동쪽으로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반정부세력 지원을 통한 세력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여전히 탈레반 잔존세력의 영향력이 건재하며, 파키스탄은 무샤라프 정권의 불안정성이 가중되면서 정치적 불안요소가 상존하는 형편이다. 이러한 불안정성 속에서 이란의 강력한 패권이 명시적으로 드러나면 일종의 반미 연대 구심력이 발생하게 되며 이는 시아 연대 구상과 병행해 이란을 명실상부한 역내 최대 패권국으로 부상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와 더불어 더욱이 최근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회의에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Mahmoud Ahmadinejad) 이란 대통령이 초청받아 후진타오와의 정상회담이 열렸고, 중국이 주최한 아랍협력포럼에 팔레스타인 하마스 정부의 외무장관이 초청받는 등 중국, 러시아 등과 이란 및 반미 아랍권의 연대가 조금씩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 테헤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이란의 부상과 패권추구는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란이 중동에서 맹주로 자리 잡을 경우 이슬람 혁명노선 전파와 반미 축의 결집이라는 파급효과는 중동정치질서의 완전한 재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 이집트ㆍ사우디 등에 대한 민주화 압력 중단할 듯
이번 레바논 사태에서 미국이 보여준 친이스라엘 행보는 예견되었던 것이었지만 국제사회의 비판을 초래했다. 언필칭 미국이 주장하는 '민주주의 전파'와 맞물려 레바논은 아랍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주장하는 '민주국가 간의 전쟁 부재'라는 민주평화론의 전제 자체가 오류임을 입증하는 사례가 되어버렸다. 물론 헤즈볼라의 성격이 레바논 정규군과는 별도의 게릴라 부대이며, 전체 레바논과는 상관없다 할 수 있겠지만 베이루트 국제공항과 항만 등에 거의 전면전 수준의 군사적 대응을 했던 이스라엘의 과잉대응에 대한 최소한의 비판을 피력했어야 향후 미국의 입지가 넓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이 불편부당한 선의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중동아랍 국가는 현재 전무하다. 결국 최강자인 미국의 중재를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외려 이스라엘에 편파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미국을 보며 중동 각국은 외부세력의 중재와 타협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결국 역내 최대 세력에 대한 자연스런 관심으로 이어지며, 이 관심은 자연스럽게 이란으로 쏠리고 있다.
미국은 이란을 비롯한 역내 반미, 반서구 세력의 정권 변환을 추구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확대중동구상이 추진했던 '민주화의 확산' 전략은 상당부분 재구성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본원적 민주주의의 이식과 확산을 통해서는 미국이 원하는 형태의 자유주의 가치보다는 이슬람 정치세력의 강화로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권교체나 변환외교의 구체적인 전략을 새롭게 채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고, 이는 사실상 현재의 친미 권위주의 공화정과 왕정에 대한 더 이상의 민주화 압력을 중지함을 의미한다.
결국 상황은 원점으로 회귀했고 이슬람 과격 세력의 전면 등장이라는 큰 과제만 덤으로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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