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현지언론들은 최근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고 있는 무슬림권 교포들과 레바논계 기독교인들로부터 전쟁피해복구자금을 지원받고 있다"고 밝힌 헤즈볼라 최고위급 지도자 측근(Muafak Jammal)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그동안 막연하게 소문으로만 떠돌던 아르헨 거주 아랍계 이민자들의 헤즈볼라 지원설이 사실로 밝혀지자 아르헨 내 유대인 교민사회가 발끈하고 나서서 "아르헨 내 아랍계 이민자들이 테러리스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게 사실로 드러났다"고 비난의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에 아랍 이민자대표들은 "우리의 지원은 이스라엘의 무차별한 폭격으로 폐허가 된 베이루트 등 레바논 재건을 위한 것이며 이는 인도주의적인 지원일 뿐"이라고 즉각적인 반발에 나서는 등 양측 교민대표들 간에 설전이 가열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양상이다.
남미에서 상권을 주름잡고 있는 유대계와 아랍계 교민들 간의 대립구도는 지난 1948년 이스라엘공화국이 수립되면서부터 이어져 내려 온 해묵은 갈등. 유대인 연합회는 아르헨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과 유대인 상조회관 폭탄테러에 아랍계 교민들의 연관성을 주장하고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활동과 헤즈볼라의 무장활동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게 남미, 특히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아랍계 이민자들이라고 눈을 흘기던 상황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아랍계 교민들의 자금동원 능력은 유대인 교민들을 앞선다는 평가도 있다. 1980년대 후반 중동(시리아) 출신인 까를로스 사울 메넴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에서 이들로부터 천문학적인 액수의 정치자금을 지원받았다는 것은 이 지역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메넴은 재선 후 친미파로 돌변해 이스라엘 지원에 나섰고 이에 분노한 아랍계 교민들이 반메넴주의자로 돌아선 뒤 메넴은 정치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레바논 피해복구 지원 놓고 유대-아랍계 교민들 힘겨루기
재아르헨 유대인연합회(DAIA) 호르헤 키르센바움 회장은 "헤즈볼라 관련 각종 테러들이 이곳 아랍계 교민사회와 연관성이 있음이 드러났다"고 주장하고 지난1992년 주아르헨 이스라엘대사관 테러사건과 1994년 유대인 상조회(AMIA) 폭파사건을 상기시켰다.
키르센바움 회장은 "이스라엘은 이웃국가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희망한다"면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번 사태 같은 대규모 공격행위가 이루어졌다"고 해명했다. 최근 이스라엘 군의 무차별한 레바논 폭격은 '방위 차원'이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재아르헨 아랍연맹의 로베르또 아우아드 부회장은 "우리는 흉포한 이스라엘 군의 무차별한 폭격에 폐허가 된 도시 재건과 사상자들을 위해 전 교민사회가 나서서 모은 구호품과 구호금을 전한 것뿐"이라고 반박하고 "유대인들이 헤즈볼라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한 것은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헤즈볼라는 테러집단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침공으로부터 레바논을 지키기 위한 방위군이자 정당한 정치단체라는 주장이다.
이어 아우아드 회장은 "남미 3국의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뿌리내린 우리 교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유대인들은 미국을 등에 업고 테러리스트 소탕을 내세워 미군을 파라과이로 끌어들였다"고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파라과이의 국경지역인 이과수폭포 인근 3국 공동경비구역은 한때 아랍계 이민자들이 상권을 장악했으나 9.11테러 이후 미국 수사기관과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의 테러리스트 지원세력 체포작전으로 인해 아랍계 이민자들의 상권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아르헨 거주 아랍계 교민들은 유대인 교민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레바논 지원을 놓고 공개적인 비난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면서 "우리의 가족과 친척들이 전쟁피해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우리더러 그냥 보고만 있으라는 얘기냐"고 목청을 높이고 "고통 중에 있는 우리의 가족을 돕기 위한 구호금 모금용 은행구좌까지도 테러지원금 취급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행패"라고 비난을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물론 남미의 정치계와 재계에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는 유대인들과 아랍계 교민들의 해묵은 앙금이 최근의 레바논사태로 표면화되면서 상호 감정싸움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9.11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의 서슬에 눌려 숨을 죽이고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던 남미의 아랍계 이민자들이 이번 레바논 공습사태 이후 변화된 모습을 모이면서 레바논 재건에 공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태세다. 하지만 아랍계 이민자들의 이런 공개적인 경제지원은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한 유대계 이민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지역에서는 전운이 걷히고 있지만 남미에 거주하고 있는 양국 출신 교민들은 '피해복구 지원'과 '테러단체 지원중지'라는 엇갈리는 시선 속에 '새로운 전쟁'을 벌일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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