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데게이 마을에는 뜻밖에도 예술인들이 많았습니다. 600여 명이 사는 시골 마을에 화가 1명, 조각가 2명, 무용가 6명이 살고 있었고 샤만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더 있을 것도 같은데 우리가 만난 사람들만 그렇습니다. 우리는 미리 방문 약속을 받고 차례로 만나러 다녔습니다. 우데게이 예술가는 평범한 마을 사람들과 다른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그 지역의 자연과 자민족의 신화와 전설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시 예술가들은 어디를 가나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이성과 과학으로 이루지 못하는 꿈, 무의식 심층 속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려는 문화원형의 재현자들입니다. 그리움과 사랑, 서러움과 기쁨, 방황과 귀향, 죽음과 재생 같은 '원형의 영혼'을 찾아서 떠나는 드넓은 내면의 여행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종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해하려면 원형의 재현자인 이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빠를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일상의 생활이나 과학과 이성은 물질세계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학과 예술은 인간의 내면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각 민족의 주관적 심층세계를 읽게 합니다. 각 민족마다 시대와 국가 안에 갇혀 있게 마련이라 종족의 숨어 있는 정체성을 잘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주는 상징들을 예술가와 샤만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의식으로 분명히 드러낼 수 없는 것, 숨겨져 있는 것을 이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들을 예술가들과 샤만은 상징으로 찾고 있었습니다. 맨 처음 방문한 사람은 우데게이 화가입니다. 이름은 뚬가이 이바누이치 발라빈, 1952년생, 그는 허름한 목조집 전체를 화실로 쓰고 있었습니다. 우스리스크에서 같이 온 슬라브 청년을 제자로 데리고 있었습니다. 뚬가이는 살림집이 우스리스크에 있고 부인은 거기서 의사를 하고 있으며 자기가 왔다 갔다 하며 산다고 합니다. 저도 산골에 화실을 두고 도시와 시골을 왔다갔다 하는 처지라 만나자말자 공감이 갔습니다. | ▲ 우데게이족 화가 뚬가이, 그는 소설 발해를 삽화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프레시안 |
우리가 온다고 그림들을 미리 꺼내서 침대와 책상에 좍 펼쳐 놓았습니다. 얼추 50여 점의 그림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으니 우리는 수지 맞았습니다. 연해주 우데게이 족의 본격적인 화가인 그는 지금 소설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는 중으로 마감을 앞두고 있어서 상당히 바쁘답니다. 소설은 러시아 소설가 발래비나가 쓰고 있는데 주제가 발해 역사랍니다. 여기 펼쳐 놓은 그림들도 발해역사 소설에 들어갈 그림이랍니다. 소설 삽화라고 하기에는 정성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본격적인 그림들이 많았습니다. 우데게이, 즉 말갈족이자 고구려의 후손인 대조영이 주동해서 세운 발해의 건국에서부터 여진족 금나라와 전쟁도 하고 다시 숲으로 흩어지는 역사소설이랍니다. 그림 중에는 전쟁 그림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발해의 영광을 우데게이족의 역사로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대조영은 우데게이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발해가 부족 연합국가이었으니 우리의 역사이면서 우데게이의 역사였습니다. 과거 발해의 영광이 두 민족에게 직접적인 자랑이었습니다. 그림에서 자기민족의 신화와 풍속을 표현하려고 무척 애를 쓰는 흔적이 그림 곳곳에 있습니다. 유화로 그리지만 발해의 문양과 우데게이의 풍속을 곳곳에서 읽게 하는 그림들입니다. 발해를 상징하는 원소들과 우데게이족을 상징하는 원소들을 집요하게 찾아 파편화된 자기종족문화의 원형을 퍼즐 맞추듯 끼어맞추기 하는 것 같았습니다. 발라빈은 나무 조각도 아주 잘 만들었습니다. 자기가 만든 신화조각을 들어 보이며 사진을 찍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우데게이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컸습니다. 사라져가던 우데게이문화를 복원하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우스리스크에서 살면서도 화실을 800키로나 떨어진 자기 고향에 두고 작업을 하는 것부터 종족에 대한 사랑이 남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평소 궁금했던 작은 장승같이 생긴 조각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우데게이인들은 예전에는 춤이라는 아파치 인디안집과 같은 모양의 집을 짓고 살았는데 집에는 가신을 쌍으로 모시고 있었답니다. 가신 이름은 '세벤'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성황신입니다. 가정을 수호하는 신입니다. 우데게이는 사냥하며 이동하면서 사는 종족이라서 그런지 늘 위험과 병마가 집으로 침입할 위험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를 막아내서 심리적 안정을 주는 상징이 세벤입니다. 우데게이의 모든 집에는 세벤이라는 가신이 있었습니다. 동북아 민족의 가정에서 있었던 신앙문화를 짐작하게 합니다. 가정은 일상의 생활공간이며 신성을 모시는 성소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 점은 동북아의 박물관 곳곳에 가보아도 공통으로 보입니다. 작년 유라시아 대장정 때 하바롭스크, 치타, 브리아트 박물관에서도 같은 모양의 집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용이라고 부르는 조각을 들어보였습니다. 이 조각은 하바롭스크 박물관에서도 본 것인데 똑 같은 모양입니다. 호랑이 같이 막강한 힘을 가진 짐승입니다. 등 위에는 뱀이 붙어 있고 옆구리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습니다. 뱀은 대지의 신성을 상징하고 날개는 초월적 힘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숲에서 가장 힘이 센 짐승이 하늘까지 날아서 오를 수 있는 날개를 가진 초월적 힘의 상징입니다. 중국 화족의 용과 다릅니다. 중국의 용은 하천에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데 여기의 용과는 다릅니다. 중화족의 용은 강과 비를 다스리는 상징으로 농경문화권의 상징으로 비늘과 퇴화 한을 발을 가진, 물과 하늘의 영웅이지만 우데게이의 용은 단단한 네발을 가진 뭍짐승이 날개를 달고 있으니 숲과 하늘의 영웅입니다. 동아시아에서 통일제국 치하로 관념체계가 정립되기 이전 모태적 단계에 동북아에서는 남방 농경문화권의 화족과 북방유목문화권 간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집단무의식, 혹은 행동유형의 차별이 드러납니다. 자연의 영웅을 상징하는 것에서 숲과 유목의 문화와 농경문화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 보여줍니다. 북방대륙의 유목족들은 대지의 상징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숲에서 가장 막강한 신성을 호랑이 같은 맹수에게서 찾았고,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것으로 용을 나타냈습니다. 숲의 수렵유목족은 땅의 짐승인 동시에 하늘로 승천할 수 있는 초월성을 가진 짐승의 상징을 네 다리와 날개로 표현하면서 일상의 대극- 새와 호랑이의 한계를 초월케 했습니다. 하늘을 숭배하며 수렵생활을 하는 천손족들, 수렵유목족은 상징의 초월적 기능으로 하늘을 나는 맹수를 택했습니다. 거기에 뱀으로 상징되는 토지의 신까지 합쳐서 천·지·림의 대극을 화해시킵니다. 신화적 상징은 현실의 여러 요소들을 포용하며 초월하는 이미지입니다. 고구려 벽화에도 용이 나오는데 중화족의 용과 우데게이의 용의 중간형태입니다. 농사와 대장장이 신상 치우 같은 얼굴을 하고 우신을 상징하는 비늘을 둘러쓴 몸통을 하고, 바람신이 타고 다니며 비를 몰고 오는 구름을 덮어쓰고, 북방 유목대륙족 말갈족의 용과 같은 뭍짐승의 굳건한 네발 다리를 갖춘 용이 고구려용입니다. 중화족 용의 요소들과 숙신계 말갈족 용의 요소들를 모두 포용하는 상징물입니다. 광개토왕과 같이 동북아 대륙을 통섭한 대제국문화가 고구려용으로 상징하여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북쪽의 현무, 남쪽의 주작, 서쪽의 흰 호랑이, 동쪽의 청룡은 모두 방위의 상징으로 단순히 사악한 것을 막는다는 벽사적 방위의 상징에 그치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각 종족의 대극적 차별을 포용하면서 대통합의 제국을 선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방신상은 천하의 중앙을 상징하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 찾아간 곳은 슬라브인 공예조각가입니다. 비킨강 건너 신마을과 마주한 오론 구마을에 사는 할아버지였습니다. 나이는 78세이고 얼굴은 주름투성이인 아나똘리, 그는 나무로 공예조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1970년에 이곳에 왔는데 담비를 모스크바로 공수하기 위하여 만든 헬기 비행장이 생기면서 서부에서 파견된 슬라브족 군인이었습니다. 공군 기상대로 왔다가 인생 말년까지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연금이 나오고 공예조각을 박물관이나 아트샵에 내다 팔아서 노부부가 그럭저럭 산다고 합니다. | ▲ 아나또리, 그를 연해주 최고의 공예조각가로 추천합니다. ⓒ프레시안 |
조각 양식은 전형적인 슬라브식 공예조각입니다. 촛대나 민속의상을 입은 여인상이나 큰 모자를 쓴 러시아 할아버지 모양들이 낯익은 러시아 민속인형들 모양입니다. 그런데 목공예치고는 예사롭지 않은 경지가 있습니다. 역시 깊은 산속 예술가다운 경지가 느껴집니다. 이곳 나무들의 요상하게 뒤틀린 변화무쌍한 괴목들을 골라서 모양새에 맞는 형상을 찾고 조각을 하는 것이 보통 수준은 아닙니다. 인공의 냄새는 자취 없고 자연의 나무상과 자연적인 인간상이 묘하게 어울린 조각들입니다. 어떤 것은 수변지대에서 물에 잔득 불어 있는 나무로, 갑자기 겨울에 얼었다가 다음 해 봄날 터지면서 울퉁불퉁 해진 나무를 사용한 조각도 있습니다. 그 괴이한 이미지에 맞는 모양을 찾아 슬쩍 손을 대어 조각으로 변화시킵니다. 인공의 손길을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그 노인은 무위자연의 조형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추사가 말년에 제주도의 괴목을 바라보며 '괴의 미학'을 찾아 추사체를 정립했던 것처럼 자연에서 얻은 기괴한 아름다움입니다. 세월의 시련과 역경, 환희와 고난이 기괴하게 물질화한 조각이었습니다. 험난한 기후변화로 생물학적 행동양태가 만든 괴목과 인간의 무의식적 본성이 만나서 괴이한 상징이 나타납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노회한 인생을 해학으로 날려버리려는 달관한 인생은 초월적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이분을 연해주 최고의 목공예가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음으로는 우데게이무용단을 소개하겠습니다. 마을의 젊은 여인들이 모여서 안무가의 지도로 우데게이 민속무용단을 조직하고 있었습니다. 안무가의 이름은 보그다나와 갈리나 알렉산드리아나. 우데게이인인데 러시아식 이름입니다. 이들은 우리를 위해 미리 민속의상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웡뚜(북)를 들고 추는 샤만의 춤을 시작으로 숲 속에 사슴이 모여서 사랑을 나누는 의미를 상징하는 춤, 러시아 현대무용 뚱가이 연주에 맞춰 추는 민속춤 등 5~6가지의 춤을 이어서 보여 주었습니다. 나는 영사기를 가지고 열심히 찍느라고 스냅사진은 놓쳤습니다. 이 춤들은 무대 공연용으로 정리한 우데게이 민속춤들입니다. 깊은 숲 마을에서 우데게이 젊은 여인들이 자기네 민속춤을 열심히 복원하고 창작해서 손님들에게 공연으로 보여주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자기종족문화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기특합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안무가 갈리나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기도 합니다, 우스리스크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한 그녀는 31세의 노처녀로 자기 고향에 와서 우데게이 민속춤을 부흥시키고 있었습니다. 연해주 유일의 우데게이 민속무용단입니다. 이들은 동북아 평화연대와 실학축전이 초대하여 올 가을에 처음으로 한국에 옵니다. 흑수말갈의 민속춤을 한국에서는 최초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이곳 춤을 보면서 저는 동아시아의 웡뚜춤이 팍스몽고리안 샤만 춤으로 보편적인 춤양식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이나 바이칼의 브리아트나 연해주나 웡뚜 춤은 대동소이한 것 같습니다. 뚱가이를 연주하는 것도 비슷했습니다. 동이족들의 무용과 음악의 전형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 고구려의 무용총에 그려진 아낙들의 춤과 지금 우데게이 민속무용단의 그것은 차별점과 공통점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의상도 춤사위도 발돋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고구려를 같이 세운 종족인 만큼 문화적으로 친연할 겁니다. 우리민족이 영·호남 강원 황해 평안 함경 제주의 방언문화가 있었던 것처럼 고려족(고구려는 원래 스스로를 고려라고 불렀답니다. 고구려라는 말은 중국의 후대 사서기록에 따른 개념입니다.)과 말갈 여진 거란이 대동소이한 동북아대륙형의 종족문화를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청춘시절 추었던 봉산 강령 양주 등의 한강 이북의 탈춤들이 북방 대륙의 춤 종류와 유사할 것 같습니다. 특히 북청사자놀이의 애원성은 북방 호족의 문화권과 밀접할 겁니다. 동북방 대륙의 춤은 도무가 많고 회전이 빠르며 엑스타시를 경험하는 춤사위가 특징입니다. 크게 보면 같은 대륙 샤만 문화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마을의 유일한 샤만을 찾았습니다. 이름은 뚱가이 바실리 이바노비치. 1960년생이고 어린이들에게 사냥과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계자연보호단체 WWF의 지원을 받아 문화회관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학생들에게 정규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우데게이 말교육, 자연보호교육을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몸이 비교적 가냘프고 허약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9년 동안 신경증, 두통을 알았다고 합니다. 병원 의사에게 갔으나 원인을 모르겠다며 병을 고치지 못했답니다. 이것은 샤만병이라고 생각하고 막강한 샤만에게 고쳐 달라고 하고 싶었답니다. 그러나 여기 연해주는 샤만이 없어서 바이칼지역에 사는 브리야트의 샤만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했답니다. 그래서 알혼섬에 가서 굿을 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답니다. | ▲ 바이칼 알혼에 가서 입무하고 돌아와 우데게이 샤만이 된 뚱가이 바실리 이바노비치. ⓒ프레시안 |
그에게 샤만이 된 동기를 물으니 샤만은 일부러 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어쩔 도리가 없는 신의 명에 의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강신무 전통과 같습니다. 그러나 정식으로 샤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사는 지역의 신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답니다. 며칠동안 숲에 가서 기도하여 허락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입무의식을 스승 샤만 인도로 치렀답니다. 그 후 마음이 열리고 아픈 것이 다 나았다고 합니다. 땅과 거기 사는 사람들 사이에 놓인 질긴 영혼의 끈 같은 것이 느껴지는 문화입니다. 샤마(여기서 부르는 대로)는 샤마가 되었다고 함부로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답니다. 일부러 하라 하지마라 그런 말은 안하고 선한 일을 하도록 권하는 정도가 자기 일이라고 합니다. 각자가 인생의 주인이기에 충고 식으로 방향만 제시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자기는 30년 사냥을 하는 사람이라 사냥법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는데 사냥은 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하도록 권한답니다. 샤만이 절대권력을 행사한다는 말은 제국의 왕이 된 샤만의 경우일 테고 숲에서 흩어져 사는 흑수말갈에게는 샤만은 영혼을 부르고 지혜를 전하는 지역의 어른 같습니다. 계급적 질서와 무관한 자연의 위엄에 회귀하는 정도의 권위일 겁니다. 우데게이에는 '손도'라는 규칙이 있답니다. 자기가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물건(여기서는 물건이 곧 자연입니다.)을 쓰는 것을 절대 금기시 하는 규칙입니다. 그것을 어기면 신의 벌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남용을 금하는 것이 손도, 즉 타부의 본뜻이었습니다. 그는 자연보호를 샤만의 의무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집에 갔습니다. 슬라브 여인이 아내였습니다. 소박한 방에 티브이와 쇼파가 놓여 있는 집이 여느 오롤마을 집이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웡뚜 등 무구가 걸려 있는 것을 빼고는 평범한 집입니다. 이 마을에서도 굿을 하냐고 물으니 샤마굿을 부활시켜서 매년 여름에 한다고 합니다. 행운의 새(솟대)를 세우고 불을 피우고 제물을 태워서 하늘로 올려 보낸다고 합니다. 굿을 하는데 이 마을 주민 절반은 참여한답니다. 이곳에도 다시 샤만의 문화가 서서히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여름의 축제는 북방유목민의 공통적인 명절 축제일 겁니다. 추석이 남방 농경족의 대표적인 축제라면 북방유목족은 여름의 칠월칠석날이 가장 큰 축제입니다. 예전에는 짐승을 잡으면 마을에서 축제를 벌였답니다. 특히 소년이 혼자서 숲에 들어가 처음 사냥을 해오면 그날이 바로 그 소년의 성년식 날입니다. 짐승을 잡으면 그것을 제물로 조상령과 자연과 하늘에게 감사를 올렸습니다. 이런 의례는 사냥이 가족과 부족의 목숨을 살리는 신성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냥 능력이 생긴 소년으로 컸다는 것은 아주 소중한 시작이었을 겁니다. 여기서 성년식은 일정 나이가 되면 일률적으로 단체로 치르는 성년의례가 아니었습니다. 뚱가이 샤만은 자기 할아버지도 9살 때 멧돼지를 잡아서 성년식을 크게 치렀다고 자랑합니다. 혼례식도 예전에는 아주 화려했다고 합니다. 박물관에 진열된 그들의 민속의상을 보아서도 미루어 짐작할만 합니다. 통과의례 풍속에 대해 더 물어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를 낳으면 바로 본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가명을 지어주었답니다. 악귀를 속이기 위해 엉터리 이름을 지어준답니다. 이것도 우리 풍습과 같습니다. 우리도 개똥이 쇠똥이로 부르다가 병마가 잘 들어오는 갓난이 때가 지난 후에야 본명을 지어주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환갑의례는 있는가 물으니 그것은 모르겠다고 합니다. 이곳 평균수명이 40~50세이니 환갑잔치는 없겠다 싶습니다. 다시 장례풍속을 물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죽음에 따라서 좀 다른데 어린이가 죽으면 자작나무 껍질로 쌓아서 나무에 매달아 풍장을 하고 다시 뼈를 추려서 매장을 한답니다. 어린이는 2차장을 했고 어른들은 1차장, 배 모양으로 통나무를 깎아서 관을 만들어 땅 속에 직접 매장을 한답니다. 영혼을 배로 띄워 보내는 것입니다. 우데게이가 '바다 건너 숲으로 온 사람'이란 뜻을 가졌다는 종족 원류신화와 의미가 같습니다. 죽으면 가는 저승세계는 지난번에 소개 했듯이 '부늬'라고 합니다. 부늬는 이승의 아래 세계랍니다. 거기는 사계절이 거꾸로 있고 이승에서 떠나간 친척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답니다. 그들은 이승에서 바치는 제물로만 생활할 수 있고 후손이 제사를 지내준 것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꿈속에서 조상이 뭔가 부족하다는 내용이 나타나면 바로 부늬의 조상이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제사를 올린답니다.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모들린과 세벤 중에서 어느 신이 더 힘이 센가?" 어리석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그러자 하바롭스크에서 온 극동아시아부족연합회 회장 파시꾼이 옆에서 나섰습니다. "모든 신은 다 소중하다. 우열을 구분하지 못한다. 생각해 보라, 만일 우리가 위험에 닥쳤을 때, 큰 물난리 홍수에 빠진 경우, 사나운 짐승을 만난 경우, 알 수 없는 병에 죽어가는 경우, 산불에 갇힌 경우 상황마다 다른 위험이다. 여기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간절히 빌게 되는 신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동아시아가 범신론이 지배적인 이유는 절대적인 제국의 통치권력 보다 숲에서 살면서 닥치는 자연의 힘이 더 위력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참에 샤마에게 물어서 신의 이름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하늘 신은 '바', 물의 신은 '론니', 집의 신은 '세벤', 대부(大父)신은 '로바또', 대모(大母)신은 '얀냥묘', 그 가운데 있는 신은 '샨신묘',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신은 '하이샌' 등등... . 많은 신을 알려 주었습니다. 범신론의 신앙이 유일신보다 오래된 인류의 신관이면서도 동아시아의 범신론은 신의 공존공영을 중시하는 평화의 신관을 가집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만일 누구에게 도움을 받으면 신의 도움이라고 생각해서 그것과 관련된 신을 모신다고 합니다. 타민족으로부터 도움을 받아도 이것은 타종족의 신 덕분에 그런 것이니 그것도 모셔야 한답니다. 이것은 타 종족문화를 악마로까지 규정하는 배타적 유일신 문화를 가진 문화권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동아시아 고대문화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이제는 샤만문화권의 보편성에서 동아시아의 문화적 근원의 유대감을 회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의 신사에 무수한 신이 모셔지는 풍습도 알고 보면 아시아 대륙 샤만문화의 영향입니다. 크게 보면 아이누족, 우데게이, 고리, 조선족이 모두 동류의 문화입니다. 이와 같은 범신관은 우리민족뿐만 아니라 같은 아시아대륙 샤만문화의 전체적인 신관이고 아시아 태평양, 아메리카 인디안에 이르는 문화가 공통으로 자연의 모든 영혼에는 신성이 있다고 보는 문화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상을 거룩하게 받아들이는 문화입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자연숭배문화는 정체성을 잃었습니다. 각기 자기의 국가주의 안에 갇혀서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확인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일본은 샤만문화인 조령신앙을 국가주의로 환원하여 제국주의로 국민을 결집시키는 데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야스쿠니 신사입니다. 일본도 죽은 조상을 살아 있는 후손이 모셔야 한다는 집단무의식이 강하게 내려옵니다. 중국도 자연정령으로부터 복을 빌고 자연 현상을 숭배하는 도가문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경제개발의 이데올로기로 중화주의를 앞세워 중국 내 다종족 문화를 대중화주의 문화로 환원하는 데에 급급합니다. 러시아는 경찰국가식의 국민통제와 대 슬라브주의가 아직도 지배적입니다. 토착아시아족의 문화가 발흥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한국은 중앙권력기구가 민주화되어도 문화적으로는 자기 정체성을 못 찾고 헤매고 있는 실정입니다. 서구, 일본, 중국의 틈에서 경제만 생각하느라고 자기문화의 소중함을 잊었습니다. 3중의 아류문화라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동북아는 아직도 냉전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동아시아 공통의 보편적 가치를 찾지 못합니다. 샤마니즘이 고대적 문화원형이었으니 거기서 동아시아적 문화 정체성의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예술가란 샤만의 갈래입니다. 우데게이 아론마을에서 공존하는 예술인과 샤만을 보면서 고대의 예술은 샤만으로부터 나왔음을 분명히 알 것 같습니다. 숲에서 흩어져 살면서 조상과 사람을 자연의 영혼과 같은 근원(Archetype)으로 보았습니다. 숲에서 살아 온 사람들로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숲의 생태와 순환과 근원을 직관하면서 전자는 감성적 형식을, 후자는 영혼적 의례를 각각 가진 자들로 분화하였습니다. 모두 다 숲의 자연을 사랑하고 숲의 영혼을 인정하며 숲의 근원에 대해 믿음과 존경을 가지며 살아 왔습니다. 이 세 가지 점- 영혼의 다양성, 자연의 순환성, 원형의 근원성은 숲의 오랜 문명을 이루게 한 특징입니다. 세계를 직선적 진보의 방향에서 보며 자연을 문명의 이용대상으로 간주한 서구와는 달리, 동아시아의 거대한 숲은 인간사회와 숲을 공존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거기서 공존하는 법을 겸허하게 배우며 숲의 문명을 가꾸어 왔습니다. 그 대표적 상징이 숲 속 마을의 솟대-묘입니다. 우데게이는 사회적 통치이념으로 불교, 유교, 도가 등의 형이상학이 지배하지 못하는 환경인 숲의 생활로 1만5000년 가까이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숲의 생활이 소련 사회주의의 강력한 중앙통치식 동방지배로 막을 내렸습니다. 오롤마을의 우데게이인들은 지금 러시아식 근대 교육을 받으며 러시아 티브이를 시청하고 러시아식 음식을 먹고 러시아 관청에서 연금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집단촌으로 강제된 결과입니다. 이들의 의식계가 러시아식 근대주의에 동화되었어도 그들의 집단무의식 속에는 고대의 원형이 살아 숨쉽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다시 일상 속으로 튀어 나오려 하고 있습니다. 무의식계는 의식계가 본성을 가로 막으려 할 때면 의식계를 배반하고 전복하려는 반란을 늘 꿈꾸기 마련입니다. 저는 동아시아의 신화에서 '행복한 반란'을 기대하고 싶습니다. 특히 동아시아 창세신화들은 창조신화 처럼 생명을 창조한 신화라기보다 개벽신화입니다. 없는 것을 절대자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고 아득하게 텅빈 태허에서 생명이 태어났다고 봅니다. 여기서의 신화는 회귀 중재 다원주의 종합의 모태 신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갈등과 전쟁을 넘어 지구평화을 갈망하는 시대정신과 동일한 의미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날 새로운 문명은 전통(조상)과 자연과 영혼에 대한 신령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데게이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족들이 차츰 자기민족의 원형에서 창조력의 원천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런 예술가와 샤만은 신화 신물 그림 춤 의례 등으로 원형을 재현하면서 근대의 실증주의, 이성주의, 세속주의의 한계를 넘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보트를 타고 비킨강을 올라 상류로 갈 것입니다. 얼추 40키로미터는 되는 먼 길입니다. 우기 직후라서 강물이 불고 물살이 빠릅니다. 저 깊은 강을 작은 나무배로 오를 수 있을까, 배가 뒤집히기라도 하면 어쩌나, 갑자기 걱정이 밀려옵니다. 나는 깊은 강 물살만 보면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소년시절 기억 때문에 겁부터 덜컥 납니다. 내 무의식에는 물길 사나운 강 이미지, 저승사자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개인 신화입니다. 내일 타고 갈 비킨강의 검붉은 물결이 보면 볼수록 더 빠르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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