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정부는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소식에 즉각 비난 성명을 발표하고 일본 대사를 초치하는 등 강력 대응 의지를 나타냈다.
고이즈미 "참배일, 8월 피해도 반발 마찬가지"
고이즈미 총리가 도쿄 도심 규단기타(九段北)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시각은 이날 오전 7시 45분.
검은 연미복 상의에 줄무늬 바지 차림의 고이즈미는 도착 즉시 신사 관계자들의 안내로 참배전의 계단을 오르내린 뒤 다소 느린 발걸음으로 한발 한발 본전(本殿)으로 향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본전 앞 계단에서 잠시 고개를 숙인 뒤 본전에 올라 제단 앞에서 한 차례 절했다. 2차례 절하고 1차례 박수친 뒤 다시 1차례 절하는 신도 방식은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문록에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기재해 총리 자격으로 참배했음을 분명히했다.
일반 참배객과 수많은 보도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이즈미는 참배를 마칠 때까지 약 15분간 신사에 머무는 동안 시종 굳은 표정을 보였다.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 후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급 전범 등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전몰자 전반에 대해 추도의 마음을 표한 것"이라며 주변국 등의 비난을 오히려 비판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이 내가) 참배하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또 '8.15 참배'를 선택한 데 대해서는 "8월을 피해도 언제나 비판과 반발에는 변함이 없다"며 "오늘이 적절한 날이 아닌가"라고 강변했다.
'종전기념일 참배' 공약 지키기 위해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2001년 취임 이후 매년 한차례씩 야스쿠니 신사를 찾았다. 그러나 주변국의 반발을 고려해 8월 15일만큼은 피해 왔던 그가 임기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종전 기념일 참배를 강행한 것은 자민당 총재선거 때 공약했던 종전기념일 참배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직 총리가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은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총리 이후 21년만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달 들어 기회 있을 때마다 "공약은 지켜져야 한다" "언제 참배하더라도 비난받는다"며 참배 강행 의사를 피력해 왔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등 인접국가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이 같은 행보를 일본의 과거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강력히 비판, 참배 자제를 촉구해 왔다.
주변국의 이같은 요청을 무시한 고이즈미 총리의 이날 참배 강행은 한국과 중국 등과의 관계 악화는 물론 국민들의 반일(反日) 감정을 한층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통상부, 주한 일본대사 초치…라종일 대사 항의방문
우리 정부는 15일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에 대해 "깊은 실망과 분노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추규호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로 이날 오전 발표한 성명에서 이 같이 밝힌 뒤 "정부는 고이즈미 총리가 국제사회의 거듭된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 국수주의적 자세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써 한일관계를 경색시키고 동북아 역내 우호협력관계를 훼손해 왔다는 점을 엄중히 지적한다"고 강조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은 해외 출타중인 반 장관을 대신해 이날 오전 11시 오시마 쇼타로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강력한 항의의 뜻을 본국 정부에 전달토록 했다.
라종일 주일대사는 이날 중 일본 외무성을 항의 방문할 계획이라고 외교부 당국자는 전했다.
중국 외교부도 고이즈미의 참배 즉시 성명을 내고 "정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난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중국은 일본 군국주의 침략전쟁 피해국 인민들의 감정을 엄중하게 해치고 중일관계의 정치적 기초를 파괴하는 행동에 대해 강력한 항의를 표시한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고이즈미 신사 참배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주일 중국 대사를 소환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아려졌으나 실제 실행에 옮길지는 미지수다.
일본 내부 비판도 쏟아져
한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일본 각계의 비판도 물밀 듯 쏟아졌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간자키 다케노리 대표는 "총리에게 여러 차례 참배를 자제하라고 직접 말했다. 8월 15일은 상징적인 날인만큼 매우 유감"이라며 "안팎의 누구라도 거리낌없이 참배할 수 있도록 국립추도시설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토 고이치 자민당 전 간사장은 "일-중, 일-한 관계, 아시아외교는 붕괴에 가까워졌다. 참배의 영향은 클 것"이라며 "총리에게 공적, 사적의 차이는 없다. 총리의 외교에 관한 행동은 마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교도통신>은 고이즈미가 지난 2001년 참배시 발표한 담화에서 "국내외에 전쟁을 배척하고 평화를 중시한다는 우리나라의 기본적 생각에 의문을 품게 한다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라며 "향후 8.15를 피해 날짜를 선택, 참배하겠다"고 밝혔던 점을 들며 입장이 바뀐 이유를 총리는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공영방송 <NHK>와 민영방송 대부분이 이날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를 시종 생중계했으며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호외를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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