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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보" 목청 높인 '軍원로'들 면면을 보니…

재임 땐 "환수추진" 말바꾸기…'전과자'도 수두룩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둘러싼 논란의 와중에, 전직 국방장관들이 연일 보수 언론들의 지면을 독차지 하고 있다. 지난 2일 윤광웅 현 장관과 자리를 함께한 전직 국방장관 13명이 작통권 환수 추진을 당장 중단하라고 압력을 가한데 이어, 10일에는 17명으로 머릿수를 늘인 이들이 성명을 내고 "작통권을 단독행사 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보수언론들은 이들이 "국민의 생존과 국가의 존망"을 거론하며 늘어놓는 '안보 걱정'을 지상중계하다시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전력을 살펴보면 쿠데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거나 비위에 연루되는 등으로 불명예 퇴진한 인사들이 상당수인데다가, 현직에 있을 때는 작통권 환수를 추진했던 인물도 있어 이를 모를 리 없으면서도 '군원로'라고 치켜세우며 이들의 발언을 대서특필하는 보수언론들의 속내가 의심될 정도다.

"2000년까지 작통권 이양" 말할 땐 언제고…

노태우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최세창(91.12~93.2) 전 장관은 재임 당시이던 92년 9월, 국방대학원 특강에서 "주한미군의 평시 작전통제권을 93~95년 중에 이양 받은 뒤 전시 작통권도 96년부터 2000년 사이에 한국이 이양 받게 될 것"이라며 "한국군이 전시 작통권을 넘겨받더라도 미군은 동북아 지역 분쟁의 억제를 위해 한반도에 계속 주둔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10일 전직 장관 모임에서는 "가장 자주적인 체, 가장 민족적인 체 하면서 전시 작통권을 단독 행사함으로써 한미연합사의 해체를 가져오고 결국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며 "언제든지 전시 작통권을 단독 행사할 수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전날 발언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15년 전 자신의 발언은 까맣게 잊은 듯, 현 정권의 작통권 환수 방침을 "자주와 민족을 내세워 재야 세력의 구미 맞추기", "정치적 제스처로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것" 등으로 비판하며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현 정권의 국방장관 출신으로 보수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조영길(2003.2~2004.7) 전 장관은 정작 현 정권의 '자주국방 기조'를 만든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 전 장관은 현직에 있으면서 "미국에 의존 중인 핵심전력에서부터 자주적 방위 역량을 조기에 확충해 나가겠다", "한국군의 능력 향상을 고려해 (주한미군이 맡던) 일부 임무를 한국군에서 담당하겠다"는 등의 발언을 수시로 했다. 2003년 6월 럼스펠드 국방장관과의 워싱턴 회담에서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직접 논의하기도 했다.

윤 장관의 전언에 따르면, 조 전 장관은 2일 회동에서 "정부의 요직을 경험한 분들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오히려 다른 전 장관들을 중재하는 듯 비쳐졌고, 10일에도 "현 정부와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서 사석에서 뭐라 언급하는 것은 공직자 윤리 등에 비춰볼 때 적절치 않다"며 언급을 피했으나, 작통권 환수를 비난하는 성명에는 버젓이 이름을 올려둬 "입장이 모호하다"는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 전직 국방장관들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에 대한 대책회의 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12·12 주역, 5·18 양민학살 가담자도

현직에서 물러난 뒤 입장을 바꾼 최 전 장관은, 79년 12·12 당시 특전사 3공수여단장으로 쿠데타에 병력을 동원하는 등 군사반란에 가담해 반란모의 참여죄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기도 한 인사다.

최 전 장관은 이 밖에도 재직 시 스페인 카사사가 제작한 중형수송기 12대를 1억9900만 달러(한화 약 1500억 원)에 도입키로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국내 무기거래상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는 등 개인 비리가 적발되기도 했다.

쿠데타 가담과 비리연루 등의 과거는 '군원로'로 추앙받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그러나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지닌 '군원로'들은 최 전 장관만이 아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마지막 국방장관을 지낸 노재현(77.12~79.12) 전 장관은 12 12 쿠데타 당시 국방장관으로서 진압은커녕 육본 벙커로 도망갔다가, 나중에 신군부에 체포돼 쿠데타 세력이 협조한 전력을 갖고 있다.

김동진(96.10~98.3) 전 장관은 5.18 당시 연대장으로 광주~목포간 도로를 차단하는 진압 작전에 참가했다가, 시위대 차량들과 교전을 벌였는데 이로 인해 시위대 14명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김 전 장관은 96년 장관이 되기 전 합참의장 시절부터 5.18 유족회와 야권으로부터 "도의적 책임을 지고 용퇴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으나 "우발적인 사고로 과잉진압과는 무관하다"며 끝내 이를 외면했다.

서종철(73.12~77.12) 전 장관은 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당시 군법회의에서 도예종씨 등 8명이 사형판결을 받자 그 즉시 사형집행명령서에 서명을 해 이들을 사형시킨 인물이다. 이들의 사형이 집행된 날은 국제적으로 이른바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불리는 오명을 아직도 쓰고 있다.

'린다 김 스캔들' 이양호… 율곡비리 이상훈, 이종구도 동참

율곡비리 등 군수품 관련 대형비리에 연루돼 구속으로 현직을 마무리한 인사도 적잖다.

노태우 정권 초반의 이상훈(88.12~90.10) 전 장관은 군납과 관련해 진로건설로부터 1억5000만 원을, 현대정공 정몽구 회장으로부터는 3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 뒤를 이은 이종구(90.10~91.12) 전 장관 역시 율곡사업과 관련해 진로건설 등 업체로부터 7억8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양호(94.12~96.10) 전 장관은 무기중개상으로부터 경전투기헬기사업이 원활히 추진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를 통해 대우 측으로부터 1억5000만 원을 받는 한편, 국방부가 심의 중인 사업 추진 상황을 알려준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이 과정에서 로비스트 린다 김에게 보낸 연애편지지가 뒤늦게 공개되는 등 '몸로비 스캔들'로 사회적 망신을 사기도 했다.

2일 회동에는 참석치 않았다가 뒤늦게 가담한 이병태(93.12~94.12) 전 장관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경남고 동문 인맥으로 기용돼, 국회에서 양말을 벗어 보이는 등 몇 차례의 기행과 실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이 전 장관은 결국 "새로이 건설되는 신도시를 유사시 장애물로 활용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도시계획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발언으로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평을 들으며 불명예 퇴진했다.

이밖에도 정래혁(70.3~71.8) 전 장관은 89년 민정당 대표위원 당시 비리투서 사건으로 개인재산 중 32억을 국가에 헌납하고 정계은퇴하기도 했고, 오자복(88.2~88.12) 전 장관은 2005년 새 병역기피 규제를 목적으로 한 새 국적법 발효 직전 발표된 국적포기자 명단에 손자 두 명이 포함돼 예비역 장군 모임인 '성우회' 회장직을 사퇴하는 등 뒤늦게 '스타일을 구긴' 인사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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