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양대 주간지 중 하나인 <알 아흐람 위클리 Al-Ahram Weekly>의 전 워싱턴 특파원, 아이만 엘 아미르(Ayman El-Amir)는 4일 <알 아흐람 위클리>에 기고한 글, '부시의 새로운 중동(Bush's New Middle East)'에서 "납치된 이스라엘 병사는 빌미였을 뿐, 레바논 사태는 부시 행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계획된 것이며 최종 타도 목표는 이란"이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자신들이 '악의 축'이라 여기는 이란의 중동 내 영향력을 무력화시키고 대리인 이스라엘의 무력에 의해 중동 전체를 통제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이른바 '새로운 중동(New Middle East)' 계획에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아미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구상은 시작부터 엇나갔다"고 단정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으면 그 빌미를 제공한 헤즈볼라를 비난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했던 레바논 국민들이 오히려 헤즈볼라 편에 서서 이스라엘에 맞서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아랍 전체의 민심이 헤즈볼라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바논에 내전을 일으키고 진압을 명분으로 점령군을 배치하겠다던 미국의 '단꿈'은 '김칫국'에 지나지 않았다.
아미르는 "부시 대통령은 결국 이번 전쟁을 일으킨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레바논 공격에 대해 아랍 전체가 분개하고 있고, 아랍 대 미국·이스라엘의 싸움이 벌어질 경우 미국이 포섭했다고 여기는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까지도 다시 아랍 편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미르의 전망이다.
다음은 이 글의 전문이다. 원문은 <http://weekly.ahram.org.eg/2006/806/op9.htm>에서 볼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새로운 중동'을 만들기 원했지만 헤즈볼라는 그들이 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중동의 미래를 보여주었다. 3주일에 걸친 잔혹한, 미국이 후방 지원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과 집단학살로 레바논이 폐허와 민간인 희생자들의 뒤범벅으로 변해버린 지금, 새로운 중동을 만들려던 부시의 계획도 좌초했다.
이스라엘이 카나에서 저지른 참혹한 인명살상으로 인해 부시 행정부까지 국제적 비난과 압력에 처하게 됐지만, 미국은 정전(停戰)을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에 또 다시 거부권을 행사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로 더 치고 들어가 사실상 군사적 완충지대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이처럼 '오만한 외교술'을 구사한 것이다.
유엔안보리에서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기기도 했으나 이 역시 정전 결의안을 채택하는데 방해만 됐을 뿐이다. 이에 프랑스는 발을 구르며 정전을 위한 정치적 해법을 마련하는 데 유럽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전은 레바논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최상의 방안이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를 헤즈볼라를 제거하기 위한 협상 카드로 이용코자 한다. 그러나 레바논을 이렇게 괴롭히면서까지 미국과 이스라엘이 겨냥하는 최종 목표는 바로 이란이다.
"미국, 레바논 내전 노리고 이스라엘 공격 지원"
'새로운 중동'을 만들겠다는 부시의 전략 전반에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그의 강박관념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그에게 있어 중동 지역의 '팍스 아메리카나'란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헤즈볼라와 하마스,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배에 도전하는 모든 아랍 그룹들을 박멸하는 것을 뜻한다. 미쳐 날뛰는 이스라엘에 맞설 유일한 적수인 헤즈볼라를 박멸하기 위해, 부시 정부는 이스라엘을 부추겨 레바논을 초토화하고 시리아를 자극시키고 이라크와 걸프 지역을 유린하려던 미국의 야욕에 맞선 이란의 영향력을 견제하도록 했다. 부시 행정부는 넝마가 된 이라크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세워놓고선 이란과의 가상 승부가 이제 시작이라고 여기지만, 미국이 좀처럼 이길 것 같지는 않은 승부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이른바 대량 학살을 중단하기 위한 '영구적이고 지속력 있는 정전 계획'을 선전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이 역시 이스라엘의 입맛에 맞춘 것이다. 여기엔 시리아와 맞닿은 레바논 국경에 평화유지군을 배치하고 헤즈볼라는 무장해제하고 납치된 두 명의 이스라엘 병사는 석방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정작 '즉각적인 정전'은 빠져 있다. 레바논이 이웃 국가와 차단되고 헤즈볼라와 전력이 약화된 레바논 군대 사이에 싸움이 붙는 동안 미국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최선이라고 판단한다면 일반 주민까지 학살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은 레바논 카나에서 어린이 37명을 포함한 주민 60명을 죽였다. 최근 10년간 두 번째 일어난 대량학살이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국민들이 사용해야 할 기반시설들을 깡그리 부셔놓았고 레바논 국민 전체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카나에서 일어난 참극은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고 정전 협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그 어떤 정치적 중재도 소용이 없도록 만들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계획에 대해 헤즈볼라가 내놓은 수정안은 남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 군이 철수하고 양국의 포로를 교환하고 이스라엘이 모든 공격을 중단하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다른 전쟁을 벌이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요구도 이와 비슷하다. 1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포로를 석방하고 이스라엘 군대가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철수하고 유엔 결의안에 근거한 최종 분쟁 협약을 맺자는 것이다.
이스라엘 군의 레바논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 헤즈볼라에 의해 이스라엘 점령지역인 셰바 팜스에 억류돼 있는 2명의 이스라엘 병사를 구해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공습은 라이스 장관이 '새로운 중동'이라 명명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원대한 계획대로 진행됐지만, 예상치 못한 차질이 생겼을 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구상대로라면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으로 충격과 공포로 질린 레바논 국민들이 싸움의 빌미를 제공한 헤즈볼라를 비난하고 나왔어야 했다. 이스라엘이 고이 간직해 온 목표대로라면 '반(反) 헤즈볼라' 기류가 형성거나 레바논이 둘로 갈라져 내전이 일어나야 했지만, 두 가지 목표 모두 다 실패하고 만 것이다. 내전은커녕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아랍인들의 마음속에 '이스라엘·미국= 공적(公敵)'이란 등식만 아로새긴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레바논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략이었다. 레바논 정부가 이스라엘의 대량살상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려면 어쩔 수 없이 유엔 안보리의 지휘를 받는 점령군과 국제 제재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게 전제였다. 유엔 안보리의 지휘를 받는 점령군은 유엔 평화유지군과 다른 개념의 군대다. 보스니아와 유고슬라비아를 10년 동안 점령했던 나토안정화군 (Stabilisation Force: SFOR)을 모델로 현지에 맞게 조금 수정했다고 보면 되는데, 나토로부터 인력과 장비를 공급받는 SFOR은 전쟁을 재개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진 막강한 군대였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정부가 이 같은 군대를 받아들이게 할 심산으로 레바논에 최대한의 압력을 가했고, 미국은 유엔의 정전 협약을 저지해 가며 시간을 끌어준 것이다.
"레바논 공격의 최종 목표는 '이란 타도'"
이 모든 전략의 최종 목표는 이란을 깨부수는 것이다. 부시가 만들어 놓은 '악의 축'에서 빠질 수 없는 멤버인 이란의 영향력 확대는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50년간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다른 모든 아랍 군가들의 군사력을 합친 것보다 우세하도록 유지해 온 것은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1958년 이후부터 재래식 무기, 핵무기를 가리지 않고 미국은 이스라엘이 아랍 국가들보다 질적으로 우세한 군사력을 확보하도록 지원해 왔다. 이스라엘이 '무적'이란 평판을 얻으면서 완성됐던 이들의 전략은 1973년 10월 전쟁에서 깨져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하여튼 이란을 억누르려는 이들의 필사적인 전략은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데,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눈 밖에 난 이유는 팔레비 국왕을 몰아낸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이 열과 성을 아끼지 않고 팔레스타인을 지원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전방위 노력에도 불구하고 레바논 사태로 인해 이란이 제압당하는 대신 미국과 이스라엘이 오히려 궁지에 몰리게 되자 아랍 세계 전체에는 활기가 도는 반면, 미국과 동맹을 맺었던 몇몇 정권들은 당황해 마지않는 모습이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의 대부분에는 이미 미국 군대가 주둔해 있다. 동쪽엔 아프가니스탄, 동남쪽엔 파키스탄, 남서쪽엔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서쪽엔 이라크가 있다. 서방 국가들, 특히 미국은 이슬람 계파 중에서도 강경 성향으로 분류되는 시아파 국가인 이란의 영향력과 군사력이 페르시안만 인근 국가들에게 미치는 것을 걱정스레 여겨 왔다. 이슬람 국가들을 통제하는 일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난 한 주 동안 사우디와 카타르, 바레인, 요르단에 대량으로 넘긴 무기가 46억 달러 어치에 달한다는 사실만 봐도 미국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탱크, 아파치 헬리콥터, 군 수송기 등을 합쳐 22억 달러 어치를 사 들였다. 페르시안만 인근 국가들이 갑자기 무기 구입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은 이들 국가와 이란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려는 미국의 계획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1971년부터 이란이 점령 중인 페르시아만 주변의 섬인 아부무사, 대톰, 소톰을 놓고 이란과 인근 국가들이 분쟁을 벌여온 만큼, 이 문제가 불쏘시개가 되길 바라고 있다. '건설적 혼란(constructive chaos)'에 대한 미국의 근시안적 계획에 의해 이들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손 안에 놀아나는 것이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일방적 소망(wishful thinking)에 따라 강행했던 '새로운 중동' 계획이 좌초된 것을 아쉬워하겠지만 결코 실패를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공격해 오자 레바논의 모든 정치적, 종교적 분파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하나가 됐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자신이 아랍이라는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다윗'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이제는 헤즈볼라는 '다윗'이 되어 이스라엘이라는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형국이 된 것이다. 벌써 헤즈볼라의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는 아랍에서 가장 유명한 지도자 중 하나로 부상했다. 곧 미국과 동맹을 맺었던 아랍의 정권들도 이스라엘 대 아랍의 '진짜 전쟁'의 때라는 것을 깨닫고 자동반사적으로 아랍의 편에 설 것이다. 그리고 레바논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일으킨 참극이 알카에다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번역=이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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