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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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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와 꽃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3>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선인장

그는 서른이 되기 전에 죽었다.

절망적인 암과 싸우면서 그는 자신의 상징을 만들어냈다. 화분에 담긴 선인장. 그는 이 가시 많은 야생 식물을 자기 손으로 캐서 다듬어 화분에 심었다.

이 상징을 캐내려고, 그는 마지막 2년 동안 오로지 화분에 담긴 작은 선인장만 그렸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이 상징을 완성했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선인장이라는 그들의 상징을 남겨 주었다.

아심 아부 샤크라1)는 움 알파힘에서 1961년에 태어나 1990년에 죽었다. 움 알파힘은 이스라엘에 합병된 팔레스타인 마을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잔해 위에 세워졌다.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 인구의 절반을 고향에서 차내 버렸으나, 소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은 남았다. 이스라엘은 1948년부터 67년까지 이들을 군법 아래 두었다. 이들은 군대가 발행한 허가증이 없으면 자기 마을을 한 발자욱도 벗어날 수 없었다.
▲ 천재적인 팔레스타인 화가 아심 아부 샤크라(왼쪽), 아심 아부 샤크라의 성인장 그림(오른쪽) ⓒ텔아비브 미술박물관

마침내 이들이 마을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일찍이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이 쫓겨나가 버려진 마을들을 길잡이 삼았다. 수백 개의 마을들이 버려져 있었다.

어린 아심 아부 샤크라도 이런 마을들을 지나다녔다. 마을이 있었던 자리를 찾지 못하면 선인장이 그를 안내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선인장을 집과 경작지를 두르는 울타리로 심었다. 그들이 강제로 쫓겨난 후에도 선인장은 남아서, 쫓겨난 집주인 대신 집을 지키고 있는 듯했다.

"당신의 마을과 집을 찾으려면 선인장을 따라가세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미국이나 유럽의 여권을 갖고 선조의 집을 찾아보려고 이스라엘에 온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거기 남아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은 말하곤 했다.

선인장은 봄에 꽃을 피웠다. 그 꽃은 노랗고 붉어서 마치 촛불처럼 보였다. 언젠가 돌아올 농부가 길을 잃지 않도록 집에 불을 밝혀두려는 듯이, 선인장은 촛불을 밝혔다. 아심 아부 샤크라는 이것을 보았다. 동시에 그는 섬세한 눈으로 땅 위에 피어난 상징 또한 보았다. 그는 그 상징을 캐서 화분에 심어 창가에 두었다.

그는 암 투병 중이었으나 자기가 할 일을 마치기 전에는 떠나려 하지 않았다. 창가 화분에서 꽃을 피우는 선인장을 그리고 또 그렸다. 수십, 수백 개의 작은 선인장-촛불이 그의 손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그는 눈을 감았다. 등대와 미나렛2)에 불을 밝혀놓았으니 비로소 그는 떠날 수 있었다.
▲ 아심의 스케치. 이스라엘 병사가 팔레스타인인에게 선인장 가시 위로 걸어가라고 명령하고 있다. 아심에게 가시는 부정적 이미지다. ⓒ사카키니 문화 센터

팔레스타인인들이 보기에는, 선인장 꽃은 이스라엘의 비유에 반대하기 위해 그 불빛을 퍼뜨리고 있다. 20세기 초, 영국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을 세우려고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온 이스라엘 이주자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맨손으로 가시 많은 선인장에서 열매를 따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팔레스타인의 자연과 맺은 돈독한 관계에 질투심을 느꼈으며, 자기들도 그렇게 해보려고 애썼다.

그래서 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자란 첫 세대를 '사브라'라고 불렀다. 사브라는 아랍어 '사비르'에서 온 말로, 선인장과 인내를 뜻한다. 그들에게 사브라란 거친 환경에서 강인하게 버티는 것이었다. 처음에 그것은 문학적 비유였으나, 가시를 바깥으로 뻗치고 익은 열매를 단 선인장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로 전이되었다. 이 이미지는 가시투성이의 잔인한 외면과 달고 부드러운 내면의 대비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가시가 핵심인 이 비유는 유럽에 있었던 유대인 게토와 현재 팔레스타인에 들어선 이스라엘 정착촌, 양자를 반영한다. 이 문화에서는 때로는 달디단 선인장 열매가, 또 때로는 그것과 상반된 적대적이고 경계심이 많은 가시가 드러난다. 게토란 자기들끼리는 똘똘 뭉치지만 바깥으로는 가시를 곤두세우기 마련이다. 팔레스타인에 들어선 첫 번째 유대인 정착촌 또한 일종의 게토였다. 그들은 바깥으로는 가시를 뻗치고 안에서만 달콤함을 누렸다.

반면에 팔레스타인의 상징에서는 꽃-촛불이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부 샤크라의 그림에서 선인장의 가시는 부드럽고, 다른 것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몇 개의 선인장 그림들은 가시 대신에 전깃불의 빛살을 달고 있다. 땅, 자연, 역사에 대한 투쟁은 가시와 꽃의 투쟁이 되었다.

이제 아부 샤크라 그림의 선인장 꽃은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창가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언젠가는 팔레스타인 해안에 닿으리라는 희망의 배를 타고 세상을 정처 없이 항해하는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등대에서 타오르고 있다.

옮긴이 주

1) 아심 아부 샤크라는 천재적인 팔레스타인 화가로 요절했다. 가난해서 유화를 캔버스가 아닌 종이에 그려야 했다.

2) 미나렛(Minaret)은 이슬람 사원에서 불을 밝혀두는 높은 탑.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thebridgetopalestine@gmail.com)' 기획·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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