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 4.0?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자, 사람들은 자본주의(Capitalism)를 마치 프로그램의 버전(version)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자본주의 4.0 이라고도 합니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초기 산업자본주의(자본주의 1.0)를 거쳐 대공황(1929)을 기점으로 케인즈 혁명을 지나 경제적 번영의 길로 들어선 1970년대까지의 수정자본주의(Revised Capitalism : 자본주의 2.0), 이후 만연한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의 기능을 강조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신자본주의(자본주의 3.0) 등을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시장이나 정부 모두가 방만하고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젖어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분노도 폭발하였습니다.
2011년은 세계 금융자본들의 파렴치한 행각과 병적인 탐욕에 대해서 모두가 분노했던 한 해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반(反)월가' 시위였습니다. 그들은 1%의 부자에 대항하여 "월가를 점거하라(Occupy Wall Street)"고 외칩니다. 타깃(target)은 주로 투자회사, 금융지주사, 증권사, 은행들이었습니다. 경제를 시장에만 맡겼을 때 어떤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지 깨달으면서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논의가 시작된 것이죠. 이것을 자본주의 4.0 이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2012년 새해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시장 특히 금융 시장(financial market)이 제 기능을 상실한 채 탐욕으로 병들어 더 이상 자본주의를 지탱하기 힘들어 보이는 듯도 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4.0은 '성장'과 '발전'은 지양(止揚)하고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에 초점을 맞춰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모색해야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그래서 중소기업과 대기업, 실물산업과 금융 산업, 국내 자본과 외국 자본,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 등 '상생하는 복지(positive-sum welfare)' 구도를 만드는 것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 자본주의의 하드코어(hardcore)가 온존하는 상황에서는 동화 같은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동반성장 위원회' 이끌었던 정운찬 교수(전 국무총리)는 그 동안의 사정을 "전경련은 그들밖에 모른다. 잘 사는 형님이 동생 챙겨 화목한 가정 만들어야하는데 그들은 그럴 생각 전혀 없다. 동반성장은 한 발짝도 못 떼었다."라고 정리했습니다. (1)
(1) 포스트 포디즘
1970년대의 자본주의는 다시 혼란에 빠집니다. 이른 바 포디즘(Fordism)의 위기인 것이죠. 자본주의는 1950~1960년대의 지속적 고성장 시기를 거쳐 1970년대 이후 불안정 저성장에 돌입하고 당시까지 보지 못했던 스태그플레이션 현상(Stagflation)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즉 이전까지 인플레이션이 되면 실업률은 하락하는데 이 시기에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동반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죠. 이것은 매우 심각한 현상으로 무언가 큰 변화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같은 포디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의 시도들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을 두고서 이른바 포스트 포디즘(Post Fordism)이라고 합니다.
포스트 포디즘을 단순한 시각에서 먼저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우리의 논의를 시작합시다.
▲ 포디즘과 포스트 포디즘의 단순 비교. 책 <포드주의와 포스트포드주의> (이영희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45쪽을 재구성한 표. ⓒ프레시안 |
위의 표를 보면, 포디즘의 위기에 대응하여 각 기업들은 경직된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기업의 조직 면에서도 중앙 집중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분산적 네트워크(network)를 구축하고 의사소통(communication)을 강화하면서, 대립적인 노사관계도 협조적으로 변화시키려고 많은 시도를 합니다. 노동의 직무들도 세분화보다는 통합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한 이전의 노동과는 달리 생산 전 과정에서 지루하지 않고 능력을 최고조로 발휘할 수 있도록 노동의 인간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상품 생산의 전체 과정을 이해하고 이 이해를 기반으로 아래로 부터의 혁신(innovation)과 끝없는 개선(improvement : 예를 들면, 도요타 생산방식)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시도들이 오히려 성격이 다른 형태의 포디즘을 강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예컨대 포스트 포디즘(Post Fordism)의 대명사였던 도요타 생산방식(TPS : Toyota Production System)으로 인하여 오히려 노동의 극심한 소외(Alienation) 현상이 발생하더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도요타 방식이란 인재를 육성하고 지혜의 결집, 인간성 존중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2) 오히려 '초과밀 노동 강도'를 부추겨 과도한 개선에 시달린 노동자가 "자동차 전조등을 켜고 집에 가고 싶다(날 새기 전에 퇴근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의미 : 필자 주석)"라는 말을 남기고 숨지고 도요타의 이직률(퇴사율)은 상당히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1991년 4월에 채용된 젊은 노동자들의 25%가 그해에 이직하였다고 합니다.(3) 특히 조립라인이 멈추면 끝없이 "장미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음악이 흘러나와 해당 라인의 근로자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4) 포스트 포디즘(Post Fordism)이란 어떤 의미에서 보면 하나의 구호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게 합니다.
▲ 도요타 전시관. ⓒ위키피디아 |
애쉬 아민(Ash Amin)은 포디즘 이후의 시대 즉 포스트 포디즘(Post Fordism)을 분석하는 이론적 흐름을 크게 ① 조절이론(Regulation theory) 또는 조정접근법(Regulation approach), ② 신(新)슘페터적 접근법(neo Schumpeterian approach), ③ 유연전문화 접근법(Flexible specialization approach) 등으로 요약합니다.(5)
여기서 이들 이론들 가운데 이미 검토했던 유연전문화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패러다임의 시각에서 간단히 검토하고 넘어갑시다.
첫째, 조절이론(Regulation theory)이란 주로 프랑스의 이론가들에 의해 제시된 것입니다. 조절 이론의 발상은 항시 위기와 모순이 가득한 자본주의가 어떻게 이를 극복하면서 일정 기간 동안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고 자기 재생산을 할 수 있는가를 탐구해 가는 것입니다. 나아가 어떤 구체적인 자본주의 경제체제(6)가 유지되는 것은 그것을 사회적으로 조절하는 '제도적 앙상블(ensemble·제도적 조절양식)'이 있고 이것의 다양한 양태를 추적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미래와 운명을 밝히는 것이죠. 말이 너무 어려우니 좀 더 쉽게 이해해 봅시다.
조절이론가들은 자본주의 자체가 그 내부에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는데 이론가들이 그것을 무시하고 자본주의 그 자체를 일반론적으로 이해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자본주의는 외형적으로 변화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끊임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이론을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이 다양한 변화들은 국제적 정치경제관계, 생산형태, 금융관계, 경쟁방식, 노사관계 등의 주요 부문들이 어떤 방식으로 맞물려서 돌아가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절이론가들은 '접합(configuration)'이라고 합니다.
가령 노사관계가 상호투쟁에서 상호협력으로 바뀐다든가 정보통신혁명으로 생산형태가 바뀌면, 자본주의 자체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같은 자본주의라도 이 접합 양식에 따라서 나라별로 다양한 모습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지요.
호베르 브와예(Robert Boyer)는 2차 대전 후 세계 경제의 장기적인 호황은 정부가 외부 자본을 관리하고 고금리를 억제함으로써 투자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였고, 국내시장의 활성화에 주력하면서 케인즈의 이론에 입각하여 경기를 적절히 조절한 결과였다고 합니다.(7)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장기적 호황의 결과 나라별로 공급 과잉이 나타나자 수출 압력이 증대하고 임금의 상승으로 인한 국제적인 자본이동 압박이 세계화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이 지금의 체제라는 것입니다.
조절이론은 자본주의 내부의 미세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정제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자본주의의 진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장의 변화에 대해 조절 기구가 불안정하여 제 구실을 못하면 바로 체제의 위기로 나타나게 됩니다. 즉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을 구성하는 노동관계, 상품소비관계, 국민경제의 재생산구조가 기존의 사회제도적 장치로 더 이상 조절될 수 없게 되면서 체제 위기가 나타난다는 것이죠. 현대에는 조절 기구들이 제대로 구실하지 못하는 이른 바 '탈조절화(Deregularization)'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세계화, 정보화, 탈산업화, 탈국가화 등이 만연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세계화와 더불어 국가의 탈조절화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국가의 조절 역량이 약화되고 있거나 아니면 해체가 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세계화(Globalization)는 세계 전체가 하나의 경제시스템으로 편성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상품의 생산 - 유통 - 소비 등의 일련의 과정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현상이지요.
세계화가 이 같이 급격히 진행되면, 그 동안 첨예하게 대립했던 각종 이데올로기적인 논쟁은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 한 국가 내부에서 진보니 보수니 하는 논쟁들은 근대 국민국가의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적이 모호해진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비판할 것입니까?
조절이론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가진 근본적인 패러독스(paradox)를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케인즈 혁명 이후 자본주의는 외형적으로 보면, 경제적 안정성(stability)을 충분히 유지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 내부에 끊임없이 불안정성(instability)과 위기(crisis)를 발생시키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경향성(inherent tendency)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이에 대응하여 신속하게 필요한 각종 규율(regulation)과 통제 능력을 강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강한 생명력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자본주의는 내부적으로 가진 파괴적 위험 성향과 이를 억제하려는 정부나 각종 제도들이 항구적으로 긴장상태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정권 교체가 빈번히 일어나고 단기적인 포퓰리즘(Populism)이 만연하는 상황이라면 이 균형은 항시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조절이론가들이 사용하는 좀 더 어려운 전문용어로 표현하면, 시장의 안정성을 파괴하는 역동적 성격인 축적 레짐(regime of accumulation)과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시장을 조절하려는 조정모드(mode of regulation) 사이에 끝없는 긴장이 있다는 말이지요)
떤 의미에서 시장(market)이라는 것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매우 견고하게 유지된 것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장 내부에 끊임없이 시장의 안정성(stability)을 파괴하려는 속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마르크스나 슘페터, 폴라니 등 대부분의 이론가들이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다만 그 용어들이 다를 뿐이지요. 가령 자본주의 시장 내부에는 항상 격렬하게 독점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또 그 독점적인 생산력이 야기하는 문제를 통제하려는 것 또한 자본주의의 속성이라는 말입니다.
조절이론은 자본주의에 대한 정교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중심부에 대한 논의에 집중되어있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대부분의 저개발 국가와 관련한 패러다임의 구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보다 더 큰 성찰이 결여되었다는 말이지요. 세상은 미국인과 유럽인들만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죠.
둘째 신(新)슘페터적 접근법(neo Schumpeterian approach)은 조절이론과 많은 유사성도 있지만 1980년대 중반의 많은 혁신(innovation)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신슘페터주의자들은 기술 변화가 경제변동의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브로델(Braudel)은 "역사는 기술을 설명하고, 반대로 기술은 역사를 설명한다 …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기술이다"라고 요약합니다.(8) 신슘페터주의에서 말하는 기술이란 "실제적 및 이론적 지식, 노하우(know-how), 절차, 경험 및 물적 인적 장비의 집합"등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합니다.(9)
그런데 신슘페터주의자들은 그 기술 변화가 아무런 방향 없이 제멋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범주를 유지한 채, 진화적 단계를 따라 발전하는 속성을 가진다고 봅니다. 이렇게 방향성을 가진 기술혁신의 과정을 기술 시스템(technological system) 또는 기술패러다임(technological paradigm)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도 상호 독립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술들이 서로 긴밀한 네트워크(network)를 형성하면서 발전하는 유기적 긴밀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기술 진화(technological evolution) 과정의 어떤 특정 시점에서 기술혁신이 집적되어 나타나게 되고, 그것이 자기 강화 현상을 일으키면서 기존의 기술 시스템의 질서를 파괴하고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술 시스템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같은 기술 시스템의 불연속적 도약이 바로 기술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것입니다.(10)
나아가 이 기술 시스템은 경제 시스템 내부에서 재생산되고 각종 경제적 조절 기구와 제도에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이 시스템이 파괴되면 경제 변동이 일어나게 된다고 신슘페터주의자들은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제도가 제대로 흡수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 생산방식과 소비 형태, 이윤의 추구 행태도 바뀌면서 결국은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몰락 이후 IT 분야의 국방기술들이 민간에 공개되면서 인터넷혁명(Internet Revolution)과 같은 현상이 갑자기 나타났는데 이를 통제할만한 조절기구나 제도가 없으면, 이내 정치경제적 변화가 발생하고 사회는 다른 방향으로 급격히 이동하게 됩니다. 우리는 인터넷 이전의 시대에서 인터넷 시대를 상상할 수는 없습니다. 인터넷 이전의 시대와 인터넷 이후의 시대 사이에는 마치 한국과 일본을 갈라놓은 바다와 같은 엄청난 괴리가 있습니다. 시공간적 개념도 급격히 변화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인터넷 시대의 패러다임 수준으로 미래를 논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신슘페터주의는 단순히 기술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그 시스템 내부에서 발생하는 기술혁신과 조화되는 경제 시스템과 제도를 고안해 내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조절이론과 어떤 정도 비슷한 맥락이 있습니다. 다만 그 포커스를 기술변화 즉 혁신에 맞추고 있는 것이지요.
이들의 이론을 요약한다면, 하나의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성공적으로 이전해가는 데는 산업 생산성에 있어서 비약적인 진보(quantum leaps)가 있어야 하고 그 같은 진보의 성공적인 확산(diffusion)은 그 사회제도의 틀 내부에 그 혁신에 부합하는 조절기구나 제도의 혁신(innovation)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은 단순히 그 경제에만 국한된 내용이 아니라 사회제도적인 요소가 같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新)슘페터적 접근법은 조절이론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내부의 미시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서는 매우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기술 결정론적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같은 기술결정론적인 요소는 마르크스적인 시각과도 일맥상통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통합적인 시각으로 볼 때, 조절이론과 마찬가지로, 신슘페터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가진 전체 문제를 파악한다기보다는 자본주의 중심부의 변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조절이론과 신슘페터 이론은 자본주의 중심부의 변화와 그것의 현상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고, 조절이론은 그 분석틀을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하고 있어 자본주의에 대해 냉정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반면, 신슘페터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2) 여덟 가지 새로운 시대
포디즘의 위기에서 세계는 다양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각종 경제 통합(Economic Integration)과 세계화(Globalization)의 진전으로 국민 자본주의 (특정한 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쇠퇴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에 파생되는 각종 문제들은 그 국가의 몫으로 남아있습니다. 저개발 국가들이나 체질이 약한 국가들은 더욱 더 위태로운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제도적으로 유연전문화가 대량생산을 대체하고 경제 조직들도 슬림화되고 수평화 되면서 조직들은 상하 명령계통보다 조직 내외부의 네트워크 형성과 의사소통(Communication)이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노동(Labor)도 매우 다양한 변모를 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가 늘고 시간제 근로, 기간제 근로 등 불완전 고용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에 대해 통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 책임은 점점 더 커져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노동의 성격변화와 서비스 산업의 증가와 확산, 기업의 슬림화 등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의 동질성(homogeneity)이 해체됨에 따라 계급기반의 정당들도 쇠퇴하고 사회적 루저(Loser)들의 고립화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사회는 더욱 진보하는 듯한데, 루저들은 더 증가하고 정부도 힘을 쓰기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오히려 소통(communication)은 안 되고 사유와 행동의 개인주의적 모델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포퓰리스트(Populist)들도 도대체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헤맬 지경입니다.
스턴버그(Ernest Sternberg)는 현대 자본주의의는 적어도 8가지의 새로운 시대(new age)라고 정리합니다. 구체적으로 스턴버그가 말하는 현대 사회의 특징은 ① 정보의 시대(the information age), ② 포스트 모던의 시대(post-modernity), ③ 세계적 상호의존의 시대(global interdependence), ④ 신중상주의의 시대(new mercantilism), ⑤ 신기업 지배의 시대(new age of corporate control)(11), ⑥ 유연한 특성화(flexible specialization), ⑦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시대(social movement), ⑧ 근본주의자들의 반대의 시대(fundamentalist rejection)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12)
스턴버그의 분석은 일관된 체계는 없다할지라도 우리가 살아가야할 시대가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확실히 포디즘(Fordism)과 결별하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물론 포디즘은 언젠가는 다시 부활할 지도 모릅니다.
새 시대(new times)라는 말은 단순히 '경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적 패턴(cultural pattern)을 의미하기도 하고 보다 큰 의미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의미하기도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할 대목은 바로 포스트 모던(post-modernity), 신중상주의(new mercantilism), 상호의존(interdependence), 반대(rejection) 등의 개념들입니다. 중상주의는 철저히 자기 이익만 관철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호의존은 현대경제의 절대 명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결코 양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럽의 중상주의는 세계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모든 동기들을 무시한 채 이윤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민감한 경제조직이 있었고, 타국에의 침략은 자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른바 '인근 궁핍화 정책(Beggaring-my-neighbor policy)'을 옹호하는 광범위한 지적 토대가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유럽의 국가들은 원래 아시아에서 평화적인 목적으로 개발된 나침반과 항해술·조선술의 발전과 화약의 보급과 더불어 즉각 비유럽 지역을 침략하기 시작합니다. 세계적인 비극의 시작입니다. 이로써 대부분의 비서구지역 문명들이 파괴되기 시작한 것이죠.
▲ 중상주의 시대의 삼각무역과 당시의 항구풍경(Claude Lorrain 1637년 경) ⓒ위키피디아 |
우리에게 근대 민주주의의 화신으로 알려진 존 로크(John Locke·1632∼1704)도 예외는 아닙니다. 로크는 "광산을 갖지 않은 나라가 부유해지려면 정복 혹은 무역의 두 길이 있을 뿐이다. 국부(國富)는 보다 더 많은 금과 은을 가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국가들 혹은 세계 나머지의 국가들보다 더 많이 보유하는 데 있다."라고 합니다. 중상주의자로 또 당대 프랑스를 이끈 정치가로 널리 알려진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1619~1683)는 상업은 하나의 화폐전쟁이라고 지적하면서 무역은 공공재정의 원천이고 그 공공재정은 전쟁의 불가결한 신경과도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장 잘 함축한 이는 몽크레티앙(Montchrestien·1575∼1621)으로 "한 사람의 이익은 타인의 손해에서 비롯된다."고 요약하였습니다.(13)
▲ 존 로크(John Locke)와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 ⓒ위키피디아 |
이 같이 "내 이웃의 가난은 나의 부의 원천"이라는 식의 '인근 궁핍화 정책(Beggaring-my-neighbor policy)'이 보편적인 국가 정책인 상황에서 "개인의 이익의 극대화는 사회적 선(善)"이라는 아담스미스(Adam Smith)의 논리가 결합하여 근대 경제학(Economics)이 태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은 좌파나 우파나 할 것 없이 제로섬 게임(zero-sum game)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됩니다.
경제학은 인간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중요한 학문으로, 민생안정(民生安定)과 도덕성(道德性), 공공성(公共性) 등을 바탕으로 세계평화를 지향해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학의 근원은 오로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인근궁핍화 이론과 이를 지지하는 아수라(阿修羅, asura)들의(14) 이론들을 바탕으로 성립되었고, 그것이 학문의 이름으로 강제적으로 적용되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학의 성자(聖者)들로 추앙받는 초기의 대표적인 이론가들 즉 맬서스(Thomas Malthus, 1766~1834), 시니어(Nassau Senior·1790~1864) 칼 멩거(Carl Menger·1840~1921) 등을 비롯하여 현대 자본주의 경제학의 솔로몬(Solomon)이요 예수(Jesus)였던 케인즈(Keynse·1883∼1946)도 예외는 아닙니다. 케인즈는 시니어와 더불어 맬서스(Thomas Malthus·1766~1834)의 가장 탁월한 제자였습니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출생배경에 관한 비윤리성을 도외시하고 사유재산 및 소득분배에 관한 제법칙을 윤리적 쟁점(倫理的爭点)과는 무관하게 위치 지움으로써 사회적 갈등관계들을 안개 속으로 몰고 가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였습니다.(15)
우리에게는 인구론(人口論,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으로만 유명한 맬서스(Thomas Malthus, 영국 최초의 경제학 교수)는 구빈법(救貧法, Poor laws)을 반대하고 노동자들이 가난한 것은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사유재산제도는 인류의 모든 위대한 문화에 기여하였고 자본가들은 높은 절욕의 덕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반면 노동자들은 더럽고 천함을 상기시키면서 저 유명한 인구법칙을 제창합니다. 그에 의하면, 식량은 산술적으로 늘어나는 데 반하여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구빈법을 실시하면 노동자의 타락을 부채질하여 출산율만 증가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본주의에 공급과잉이 내재함을 지적하고 이러한 잠재된 위기는 보다 신사적이고 문화적 소양이 높은 지주들의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맬서스의 탁월한 제자인 시니어(Nassau Senior)는 이윤을 불로소득이라고 하는 사회주의자들의 경제학을 빈민의 경제학이라고 경멸하고 맬서스와 마찬가지로 구빈법의 폐지를 주장합니다. 즉 구빈법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오만화를 촉진하고 노동의욕을 감소시켜 빈곤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생산성 향상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경제학의 골치 아픈 논쟁들은 경제학자들이 사회복지를 논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므로 경제학이 과학(pure science)이기 위해서는 몰가치적(沒價値的 value free)이고 가치중립적(價値中立的 value neutral)이어야 함을 천명합니다. 따라서 경제학자는 간과하면 치명적인 것을 추천 혹은 삼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서술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the business of political economist is neither to recommend nor to dissuade, but to state general principles, which it is fatal to neglect). 이 같은 사고는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계승되어 경제학이 몰가치적이 됨으로써 누구를 위한 경제학인가를 의심스럽게 합니다.
후대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로부터 그 업적이 사회과학사의 코페르니쿠스적인 것으로 추앙받았던 멩거(Carl Menger)는 소득은 절대적 필요이고 필연이므로 논의할 필요도 없다고 전제한 뒤, 사회 제도와 법은 간섭받을 수도 없고 간섭받아서도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시니어와 마찬가지로 경제학도 과학인 한 몰가치적인 것임을 앵무새처럼 반복한 후, 정치 경제에 있어서 윤리적 지향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 학문의 이론적·실제적 문제들에 관해서 심오한 의미(deeper meaning)를 생각하지 못한 사상적 혼동(confusion in thought)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정신이 없는 것이죠.
케인즈는 맬서스를 자본주의 경제학의 시조로 옹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케인즈는 자본주의가 인류 최선의 선택이며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구제( salvation of capitalism)하는데 몰두하지 않고 오히려 자본주의를 전복(overthrow of capitalism)하는데 주력한다고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약 19세기까지 발달해온 경제학의 시조(始祖)가 리카도가 아니라 단지 맬서스이기만 했었더라면, 오늘날 이 세계는 얼마나 더 현명하고 풍요로운 곳이 되었을까? (If only Malthus, instead of Ricardo, had been the parent stem from which nineteenth-century economics proceeded, what a much wiser and richer place the world would be today)"(16)
이들 자본주의 초기 이론가들에 대해서 마르크스는 '현실 특히 사회·정치적 현실을 왜곡하거나 위장하는 관념과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이라고 통박하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자기 만족적 부르주아가 자신들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진부한 사상을 현학적으로 체계화하고 또 영속적인 진리라고 주장하는 데 자신을 몰두시키고 있다고 비판하였습니다.(17)
이와 같이 자본주의 경제학의 근원이 아수라들의 사상들을 바탕으로 정립되면서 자본주의가 행하는 모두 행태들이 정당화되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은 세계를 아수라장(阿修羅場)으로 만들더니 급기야 1, 2차 세계 대전으로 폭발합니다. 여러 형태의 제노사이드(genocide, 민족 집단 대학살)가 자행됩니다.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제가 왜 자본주의 경제학 전체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회의하고 있는 지 이제는 여러분들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른바 자본주의 근대 경제학이 말하는 경제활동과 당시의 동아시아의 평화적인 경제활동과는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경제적 특성은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가 강자의 패권적(覇權的) 질서(秩序)를 일정한 부분 인정해 줌과 동시에 강자는 많은 자원을 제공해주는 조공(朝貢)의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이 관계는 상호협력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특성을 바탕으로 천하(天下)의 평화를 지향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 외교와 전쟁의 특성도 주로 대의명분(大義名分)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서유럽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 있으면 무조건 때려잡고 보는 야차(夜叉 : 팔부의 하나로 사람을 보면 괴롭히거나 해친다는 사나운 귀신)들과는 달리, 명분이 없는 전쟁은 누구에게도 환영을 받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50만도 안 되는 만주족의 청나라가 3억 한족(漢族)의 중국 정벌을 하면서 내세운 것도 명나라를 멸망하게 한 이자성(李自成·1606~1645)으로부터 명나라 황족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내용이야 중국 대륙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청나라는 중국을 통치하면서 약탈정책이 아니라 철저한 민생안정(民生安定)을 위한 경제정책을 시행하면서 중국 역사상 가장 큰 번영을 누리기도 합니다. 이 점은 미국이나 서유럽의 제국주의(imperialism) 행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동아시아의 패권국들은 이 같은 조공 무역 때문에 극심한 재정적자를 초래하여 국체가 흔들리고 왕조가 교체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비한다면 서유럽 중상주의와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은 야만적이고 동물적인 약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 자본주의의 학문적 패러다임이라는 것은 시작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저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은 동양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정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점을 세계인들은 반드시 이해하고 제대로 인식해야합니다. 이제 다시 중상주의로 돌아갑시다.
물론 고전적인 중상주의가 오늘날 그대로 횡행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사용하고 있는 신중상주의(new mercantilism)라는 용어도 누가 특별히 사용했다기보다는 여러 이론가들이 그 같은 경향을 지적한 것이어서 개념적으로 분명한 말은 아닙니다. 다만 과거의 중상주의처럼 약탈적(predatory)이진 않지만 고전적 중상주의와 유사한 행태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앞서 본대로 중상주의는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유럽 국가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근대국가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였습니다. 한 마디로 부국강병(富國强兵, Power and Plenty)이 이들의 목표였지요. 그러나 오늘날에도 형태만 다를 뿐 이 같은 현상은 만연한 것도 사실입니다. 앞에서 검토했던 블락(Fred Block)이 지적한 국민자본주의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합니다. 오늘날에는 주로 국내의 산업보호나 유치산업보호, 지역주의, 무역정책의 일방주의(unilateralism) 등의 형태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에는 철저히 신중상주의적인 경제정책으로 경제적 성공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18) 한국은 수출력 강화를 위해 광범위한 저임금 노동력의 확보 및 숙련 노동력의 양성, 저금리의 자본들을 빌리는 한편 1차 산품인 원료 수출의 억제하고 완성품 수입의 제한하면서 산업기반을 건설하였고, 강력한 국산품 소비의 장려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제가 1970년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외국 담배를 피우다 발각되면, 많은 벌금을 물어야했고 중산층조차도 그 흔한 바나나(banana)를 구경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신중상주의는 다른 나라를 궁핍화하려는 전략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당시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미칠만한 수준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한국은 오로지 생존을 위한 철저한 보호무역과 유치산업 보호 정책을 시행했던 것입니다. 한국은 북한(DPRK)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부국강병을 구현하기 위해 부족한 자본을 조달하고 공기업을 통해 직접 생산을 담당하기도 하며, 임금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저항하는 노동세력 등을 탄압하여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였습니다.
당시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이 오로지 생존을 목적으로 신중상주의적 경제개발을 한 것은 당연히 용납되어야 하고 저는 이 패러다임을 현재에도 최빈국 그룹에서는 적용해야만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이 경제개발 방식을 저개발 국가들을 위한 모형으로 더욱 개발하여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권고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우는 다릅니다. 선진국은 이미 일정 궤도에 올라있기 때문에 중상주의적 경향은 세계경제에 바로 파급되어 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개발 국가에 바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일정한 궤도에 오른 후 세계 경제 질서들을 수용했듯이 선진국들은 저개발 국가들이 일정 궤도에 오를 수 있을 때까지 인내심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세계 평화를 모색하는 길입니다.
제가 분명히 드리는 말씀은 현대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일원론(一元論, monism) 적인 패러다임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선진국과 후진국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단일의 패러다임(Monistic Paradigm)은 없다는 것입니다. 선진국은 자기에게만 유리한 패러다임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니 신현실주의(Neo-realism)니 하는 말 자체가 후진국들에게는 감언요설(甘言妖說)이요 허구(虛構)입니다(다음 장에서 다시 분석할 것입니다). 후진국은 막연히 세계적인 추세나 선진국형 패러다임을 따라가서는 안 되고 자국의 경제 현실과 자원 부존도, 생산 요소 및 기술 수준에 합당한 패러다임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이원론(二元論, dualism)적 또는 다원론(多元論, pluralism)적 패러다임을 지향해 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상호의존(相互依存, interdependence)의 문제를 살펴봅시다. 상호의존에 대한 관심이 증대한 것은 ① 1970년대 미국의 월남전 패배로 군사력의 한계와 전쟁에 대한 혐오, ② 유럽과 일본의 경제적 도약, ③ 다국적 기업의 역할의 증대로 세계 교역량 의 급증 등의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이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인지는 명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상호(相互)라는 말이 균등하게 평형적인 상호간의 의존(evenly balanced mutual dependence)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확실히 힘이 센 나라가 있고 약한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코헤인(Keohane)과 나이(Nye)는 이 시기에 비군사력의 역할과 영향력이 증대하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민감성(sensibility)(19)'과 '취약성(vulnerability)(20)'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하고 상호의존이란 어떤 당사자들이 모두 일정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관계라고 보았습니다. 코헤인과 나이에 있어 강대국은 한마디로 취약성이 적은 나라입니다. 즉 강대국은 의존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의존하면 그만큼 그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반해, 약소국은 의존을 하지 않으면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나라에 대해 상호의존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그만큼 취약성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상호의존성은 국제관계로 확장이 되면, 복합적인 상호의존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즉 현대의 국제 관계는 타국 정부에 대해 군사력이 사용되지 않으며, 사용된다 해도 효율성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복합적 상호의존 시대의 국제정치는 군사력 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권력요소가 있으며 의제정치(agenda politics)(21), 연계전략(linkage strategies)의 보편화(22), 내정과 외교의 상호침투 등의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이와 같이 상호의존과 신중상주의는 서로 상반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특성들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은 결국 블록화(Block) 현상이 나타난다는 말이 됩니다. 즉 중상주의는 이기적 배타성을 가진 말이고 상호의존은 상호협력과 기존 질서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의미인데 이 두 가지가 모순 없이 공존하려면 "마음 맞는 사람끼리 연계하는" 방법 외에는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 유난히 경제 협력(Cooperation)과 통합(Integration)의 논의가 활발합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중하고 주의 깊게 관찰해 갈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가 무정부 상태이고 이 현상이 걷잡을 수 없이 나타난 것이 바로 1, 2차 세계대전이 아닙니까?
여기에 현대 사회가 포스트 모던(post-modernity)적인 특성이 극심하게 나타난다고 하면 그것은 세계경제가 혼돈(confusion) 그 자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포스트 모던이란 우리가 가진 모든 인식체계를 버리고 발가벗은 몸으로 사물을 새롭게 보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엔 현대는 새로운 카오스의 아침(Morning of New Chaos)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포디즘 이후 나타나는 산업적 패러다임의 변화 이론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더 이상 상세히 논의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포디즘 또는 케인즈 이론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패러다임은 거대한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기에 1990년대를 기점으로 인터넷 혁명이 일어남으로써 패러다임은 다시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필자주석
1. 정운찬 교수는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대기업들의 싹쓸이식 기업행태의 출발점이 언제부턴지 아나? 원래 대기업이 중소기업 고유 업종으로 못 넘어오게 만드는 제도는 박정희 대통령 때 생겼다. 그게 어느 정도 지켜져 오다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 2006년 노무현 대통령 때다. 진보라고 하면서도 대통령 주변을 포위한 경제적 신자유주의자들에게 홀딱 넘어가 대기업들에게 길을 터준 거다. 참여정부의 과도한 기업 간 경쟁유도 정책이 양극화를 키운 기본 원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선일보> 2012.4.7.
2. 임재화, "도요타 생산방식(TPS)과 NEW JIT에 관한 이론적 연구", 『산학경영연구(2006)』 19권, 1호, 93~115쪽
3. 이영희, "신기술과 작업조직의 변화: 도요타형과 볼보형의 비교",『한국사회학 제28집(1994)』 가을호, 73쪽
4. "조립라인을 옥죄는 공포의 노래 '장미꽃이 피었습니다.'" <한겨레신문> 2006. 5.1.
5. Ash Amin(ed), Post Fordism: A Reader (Cambridge MA : Blackwell·1994)
6. 이들 조절 이론가들이 사용하는 용어로는 Regimes of Accumulation(축적 체제)이다.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입각한 개념들이다.
7. Robert Boye La Theorie de la regulation analyse critique, (Agalma·1986)
8. Braudel, Fernand(1979), Civilization materielle, economew et capitalisme, XVe-XVIIIe siecle; tome I, Les Structures de Quotidien : Le Possible et L'Impossible, Paris: Librairie Armand Colin, 주경철 옮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일상생활의 구조> (까치 펴냄·1995) 473쪽, 624쪽
9. Giovanni Dosi, Technical Change and Industrial Transformation, (New York: St. Martin's Press·1984), p11.
10. Freeman, C. and Perez, C. (1988), "Structural Crises of Adjustment, Business Cycles and Investment Behaviour" in DOSI et al., eds., pp.38∼66.
11. 즉 세계적인 회사들과 은행들이 시장에 대해서 조직적인 힘을 행사하는 것(in which global corporations and banks will exercise systematic power over market)을 말한다.
12. E. Sternberg., 'Preparing for the hybrideconomy : The new world of public-private partnerships'. Business Horizons26(6) 1993
13. Cole G.W, Colbert and Century of French Mercantilism 2Vols, 1939. Locke, Some consideration of the consequences of the lowering of interest and raising the value of money. Coleman, e.d, Revisions in Mercantilism, 1969
14. 아수라(阿修羅, asura)는 인도 신화에서 등장하는 것으로 선신(善神)들의 적(敵)에 대한 총칭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주로 불교용어로 사용된다. 불교에서는 육도(六道)의 하나에 아수라도(阿修羅道)를 꼽고 있는데 아수라도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를 말한다.
15. 이하의 내용들은 Thomas Malthus,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1798) ,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considered with a view to their practical application. Nassau Senior. Three Lectures on the rale of wages. (New York, Augustus M.Kelly, 1966), An Outline of Science of Political Economy. Carl Menger, Problems of Economics and Sociology, Principles of Eocnomics. Schumpeter. Ten Greal Economist From Marx to Keynse, (1951). E.K.Hunt,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s.(1979) 등을 참고.
16. John Maynard Keynse, Essays in biography(New York : Norton, 1963) p120.
17. R.N.Berki, <The Marxian concept of Bourgeosie Ideology : some aspects and perspectives> Robert Benewick and R.N.Berki & Bhikhu Parekh eds, Knowlegy Belief in Politics : The Problem of Ideology, (London, Allen & Unwin·1973) p88.
18. 이와 관련하여 백종국(2009)은 박정희 정권의 통치 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끈 이 세력을 '신중상주의 지배연합'이라고 부른다. 즉 박정희 정부는 국민주력기업으로서 재벌을 육성하였고, 이들이 전 국가적인 지원을 받으며 한국 경제의 성장을 주도했다고 한다. 신중상주의 지배연합은 정부 주도로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수출대체 산업화로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재벌들이 해외에서 자본을 빌려오고자 했을 때도 정부가 앞장서 보증해주었다. 이들 신중상주의 지배연합의 성공요인은 ① 성공적인 토지개혁과 자영농의 등장, ② 높은 교육열로 질 좋은 노동력의 산업 현장 투입 가능, ③ 냉전체제에서 미국의 막대한 원조(미국은 40여 년 동안 150억 달러를 지원), ④ 지배연합의 단결력과 시의적절한 전략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한국은 자립적이고 경쟁력 있는 후발산업화를 달성했다고 한다. 백종국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후발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주력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을 정부와 재벌기업의 노력, 즉 '지배연합의 단결'에서 찾았다. 멕시코는 자동차산업을 주력산업으로 육성하려 했지만 실패한 반면, 후발주자 가운데 한국만이 유일하게 자동차산업을 주력수출산업으로 육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백종국 『한국자본주의의 선택』(한길사·2009)
19. 민감성(sensibility)은 민감한 상호의존(sensible interdependence) 관계를 말하는데, 어떤 외부적 변화에 대응함에 있어서 기존의 정책을 바꿀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든지 혹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해도 대안이 없다든지 등의 기타의 이유로 인하여 새로운 정책이 마련되기 이전에 외부의 변화에 의해 치러야하는 대가의 정도를 의미한다.
20. 취약한 상호의존(vulnerable interdependence)이란 어떤 외부적 변화에 직면하여 그 대응책이 마련된 이후에도 치러야 할 대가가 있는 상호의존 관계를 말한다.
21. 전통적인 분석에 있어서 정치가들은 정치·군사적인 문제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구체성이 강한 의제(agenda)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각 분야별로 필요에 따라 발생하는 요구를 정부가 이를 수용하여 공식화하고 정책 담당자들이 논의를 시작하는데 이렇게 정책담당자나 전문가들이 논의를 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슈들을 의제라고 한다. 복합적인 상호의존을 특징으로 하는 국제체계에서는 불만을 가지고 있는 국내의 정치세력이 이슈를 정치화하고 나아가 국제적인 의제화 함으로써 국제적인 의제로 설정할 수 있다.
22. 군사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지는 국제정치의 경우에서 강대국은 오히려 불리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즉 강대국들은 각각의 쟁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연계를 맺기가 어렵게 되는 반면에 약소국의 경우는 연계의 수단으로써 국제기구와 같은 것을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이슈들을 연계시켜 강대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가 보다 용이해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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