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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교, '샴페인' 터뜨리기엔 너무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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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교, '샴페인' 터뜨리기엔 너무 이르다

알맹이 빠뜨린 안보리 결의안이 '쾌거'인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15일(뉴욕 시간) 대북 비난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자 일본의 정부와 일부 언론은 들뜬 반응이었다. 결의안이 상정되고 만장일치로 통과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처음으로 외교적인 주도권을 행사했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일본 외무성의 관계자들은 "일본이 안보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처음이다" 혹은 "이번엔 일본이 국제 협조를 만들어 내는 것을 지향했다"라며 자화자찬했다.

결의안 통과 직후 일본 언론들의 반응도 대개 비슷했다. 언론들은 특히 스티븐 해들리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북결의안 채택 직전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일본 외교의 위대한 성과이자 승리"라며 "(유엔헌장 7장을 대신하는) 문구는 구속력이 있고, 위협에 대한 인정도 있다"며 일본 외교를 극구 칭찬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일본 외교의 승리'라고 자평했다.

<요미우리신문>은 17일자에서 "1956년 유엔 가입 반세기 만에 유엔외교 무대에서 일찍이 없던 존재감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언론들도 18일 이같은 일본의 분위기를 전하며 '일본이 들떴다' '외교 승리에 고무됐다'고 전했다.

'만장일치 통과' 결과만 가지고 '승리'라 할 수 있나

그러나 일본은 과연 이번 '안보리 결의안 게임'의 승자인가.

일본이 미국의 후원을 받아 대북 제재 결의안을 최초로 상정했고, 내용이야 어찌됐건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데 시종일관 개입해 온 점으로 볼 때 적잖은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 존 볼튼 유엔주재 미국대사(왼쪽)와 오시마 겐조 유엔주재 일본대사가 1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내용의 대북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일본은 그토록 원했던 유엔헌장 7장을 원용하는 데 실패했고, 그에 따라 최초에 제출한 '제재 결의안'은 '비난 결의안'으로 변질되어 한층 완화된 내용으로 통과됐다는 사실로 볼 때 일본의 승리라고 하기에는 무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실제 통과된 결의안은 중국과 러시아가 일본의 제재결의안에 맞서 제출한 비난결의안을 토대로 영국과 프랑스가 중재해 수정된 문안이라는 점도 '일본의 쾌거'라는 주장을 무색케 하고 있다.

일본은 또 당초 자신들을 적극 '밀던' 미국이 이란 핵문제에서 공동보조를 맞추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을 들어 주는 바람에 결정적인 외교적 동력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까지 불사하겠다는 듯 유엔헌장 7장을 끝까지 고집했던 일본은 믿어 왔던 미국이 '딴 생각'을 하면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해들리 보좌관이 아베 장관에게 전화를 건 것도 일본의 승리를 축하하기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따른 미안함을 우회적으로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던 셈이다.

일본 각계, 이틀만에 '대미 추종 외교' 비판

이번 결의안의 통과 과정이 일본 외교의 한계를 보여줬을 뿐이라는 평가는 이같은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외무성의 일부 관료들과 야당, 일부 언론, 한반도 전문가들에게서 이미 나오고 있다.

이들은 제재결의안을 끝까지 고집하는 동시에 '선제공격론'까지 제기해 남북한을 공히 자극했던 일본의 태도는 대북 대응에 관한 국제사회의 대체적 합의수준을 뛰어넘은 것이라고 지적하며 '미국 추종외교'의 한계를 비판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는 17일 한 강연에서 일본이 추진한 유엔헌장 7장이 삭제된 것에 대해 '미국은 일본에 강경한 역할을 맡기고 뒤에서 중국 및 러시아와 담합했다'며 "일본 정부는 미국의 속셈을 읽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는 "미일의 제재결의안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강력히 반대하고 한국도 비판적이었다"며 "여기에는 러일전쟁 이후 북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벽'이 있다. 일미동맹 만으로 그 벽을 넘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그는 "엄한 조치를 취하면 취할수록 동시에 외교해결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며 "근린외교의 재구축에는 이번 미사일 결의안 논의과정에서 더욱 뒤틀린 한·중·러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 타개도 포함된다"며 대(對)아시아 외교의 활성화를 주문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7일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가 일치된 메시지를 발표한 성과를 강조하지만, 고집해 왔던 유엔헌장 7장에 따른 제재는 막판에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일본의 유엔외교의 한계를 노정했다"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도 "일본이 막판에 타협한 것은 이란 핵문제, 중동 사태 등과 관련해 (일본보다) 중국-러시아와의 공동보조를 우선하는 미국의 설득 때문이었다"며 "국제 정치의 현실 속에서 미국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외무성 간부의 말을 인용했다.

일본이 주도한 결의안이 일본의 발목을 잡을 수도

국내 전문가들의 평가도 이와 유사하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18일자 <한겨레> 긴급대담에서 "안보리 결의를 좀 더 적극적으로 평가하면 동북아의 군비 확산에 대한 우려로 볼 수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유엔 결의를 일본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근거로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본이 주도했던 대북 결의안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기회로 군비 확장에 나서고 있는 일본을 오히려 강제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기정 연대 교수도 이 대담에서 "중국이 결의안 통과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동북아 질서 속에서 미사일 발사가 불러올 일본의 군비증강 등 파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김 교수는 또 "일본이 미국에 경도돼 탄력성을 잃어버린 것이 오늘날 미사일 사태를 훨씬 더 경색되게 만든 요인 중 하나"라고도 말했다.

박순성 동국대 교수는 이번 결의안 통과의 진짜 승리자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일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박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결의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북한에 대한 과거 안보리의 성명에 비해 강도가 낮아 미국, 일본이 하고 싶은 것을 이루지 못했다"며 "중국이 국제사회에 일정한 양보를 했지만 기본적인 것은 지켜낸 중국의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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