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해 직전까지 갔던 남미공동시장이 중남미 전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가스관 공사를 축으로 다시 힘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이들 남미공동시장 정상들이 오는 20일부터 이틀간 아르헨티나의 교육·공업도시 꼬르도바에서 회동한다.
이 회담에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등 정회원국 정상들과 볼리비아와 칠레 등 준회원국 정상, 그리고 최근 건강이상설이 나돌고 있는 특별회원국 쿠바의 카스트로 의장이 깜짝 참석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아르헨 정부는 4000여 명의 경호경찰을 동원해, 회담장 주변을 철통같이 호위할 예정이다.
필자는 현지 풀기자단의 일원으로 남미공동시장 정상회담이 열리는 꼬르도바 현지에서 이들이 중남미의 장래를 위해 어떤 합의를 이끌어내는가와 '중남미 통합을 위한 차베스의 구상'을 직접 들어볼 예정이다.
'시동 걸린 중남미 경제통합'
중남미 대륙을 관통하는 거대한 가스관 공사 프로젝트를 최종 마무리짓는 작업과 역내 국가들간 각종 관세 철폐 등을 논의하기 위한 남미공동시장 정상회담은 당초 지난 3월로 예정되었으나 실무장관들간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8월로 연기됐다가 최종적으로 7월 20일 개최로 확정되는 등 진통을 겪기도 했다.
베네수엘라가 합류한 남미공동시장(MERCOSUR)이 개혁과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가 우선적으로 공동국채를 발행해 남미은행 설립의 시금석을 마련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 국채는 남미공동시장 국가들이 연대보증을 서며 이 기금은 아르헨과 베네수엘라 양국은 물론 남미공동시장 전체 국가들의 경제발전기금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아르헨과 베네수엘라 주도로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남미은행은 IMF 등 국제금융기관을 대신하여 역내에서 서방 금융기관들의 의존도를 대폭 줄이고 중남미 국가들을 위한 실질적인 경제발전 기금을 마련한다는 복안 아래 추진되고 있다.
또한 양국은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 남미군 창설을 주도하고 에너지를 축으로 지역 약소국에 대한 경제지원을 주도한다는 청사진도 마련했다. 중남미 국가들간 지역방위의 든든한 협력 없이는 남미가 또다시 지난 1970년대의 불행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의 이런 협력체제는 마치 지난 1822년 남미의 산 마르틴 장군과 중미의 시몬 볼리바르 장군이 에콰도르의 과자낄에서 회동하여 중남미 통합을 서로 합의한 것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에콰도르의 알프레도 빨라시오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의 특별손님으로 초대받기도 했다.
남미시장을 둘러싼 1차 대결에서 차베스, 부시에 판정승
베네수엘라의 남미공동시장 합류로 상황이 급변하자 그동안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해왔던 우루과이가 최근 미국과의 자유무역구상을 백지화시키고 남미공동시장 가입에 전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우루과이 정부는 "미국과의 FTA가 득보다는 실이 더 클 것"이라는 정치권의 지적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국 정부의 눈치를 살피며 남미공동시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던 칠레 정부도 천연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남미공동시장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칠레 정부는 최근 차베스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 문제에 대해서도, 상황에 따라 미국이 지원하고 있는 과테말라가 아닌 베네수엘라에 표를 던질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볼리비아산 가스 가격에 변동이 없다면 베네수엘라를 지지할 것이라는 조건부 지지론을 펴고 있는 모양새다.
차베스, 안보리 이사국 진출 표대결 앞두고 북한방문 취소
현지 정치평론가들은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남미공동시장이 미국이 추진했던 미주 자유무역지대협정(FTAA)을 무력화시키고 활성화 기미를 보이는 건 순전히 차베스의 노력이 낳은 결과"라며 " 중남미에서 벌어진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1차적인 대결구도는 차베스의 승리로 귀결됐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또한 "중남미 지역에서 미국과의 대결은 차베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모양새이지만 유엔이라는 세계무대에서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대결양상이 더욱 흥미를 끈다" 면서 "한때 화제가 됐던 차베스의 북한방문이 최근 갑자기 취소된 것도 베네수엘라의 안보리 이사국 진출을 위한 투표와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를 받고 있는 차베스로서는 이 미묘한 시기에 북한을 방문해 제3세계 국가들의 표를 깎아먹는 자충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차베스는 이번 꼬르도바 정상회담에서도 중남미 국가들의 결속과 유엔 회원국들의 지지를 호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번 남미공동시장 정상회담장은 그 어느때보다 더 강도가 높은 미국 성토장이 될 것이라고 현지 기자단은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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