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는 제2차 한미 FTA 정부합동 공청회가 열렸으나, '협정문 공개 없는 공청회 자체가 부당하다'며 중단하라는 한미 FTA 저지 운동본부(FTA 범국본)의 항의가 거듭되자 시작한 지 30분만에 중단됐다.
이날 공청회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주최로 서비스업, 농수산업, 제조업, 일반(지적재산권, 정부조달, 노동, 환경) 등 4개 세션에서 통상교섭본부 소속 각 부처 교섭 팀장이 나와 발언하고 총 22명의 업계와 협회, 단체 대표들이 나와 각 10분씩 의견을 전달하는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협상 분과마다 공청회 하나씩은 열려야 하지 않나"
FTA 범국본은 공청회 시작 직전 대한상공회의소 건물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공청회는 한미 FTA를 추진하기 위한 요식절차이고 국민을 기만하는 사기 공청회에 불과하다'며 공청회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말이 공청회지 토론도 없이 각기 10분씩 말하고 정부는 '의견청취'만 하는 것이 무슨 공청회냐"라면서 "지난 2월 2일 있었던 1차 공청회도 정부가 FTA를 일방적으로 홍보하려는 자리여서 무산시켰으나, 2차 공청회에서도 민의를 듣겠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FTA 범국본의 박석운 공동집행위원장은 "공청회를 한다면 무엇에 대해 의견을 진술해야 하는지 알려주어야 할 것 아니냐"면서 "정부는 1차협상을 통해 미국과 합의한 200여 페이지에 달하는 통합협정문 초안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허울뿐인 공청회를 준비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공청회의 발언자들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한미 FTA를 옹호하는 단체 일색으로 꾸려졌다는 지적이다. 양기환 영화인대책위원회 대변인은 "범대위에는 국내 300여개 단체가 가입되어 있는데, 이날 발언 명단에는 전체 22명 중에 5명만이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이들이고, 제조업을 다루는 1세션에는 찬성하는 입장의 단체 대표자들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오늘 공청회에서 반대 의견도 듣는다며 홍보하고 있지만, 사실상 요식절차에 들러리로 세우겠다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들은 △ 한미간 협상이 진행되는 17개 분과와 총론 등 각각의 내용에 대해 최소한 18번 이상의 공청회가 개최되어야 하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도 충분히 개진되어야 하며 △TV 중계 방송 등으로 공청회 내용을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정문 내용 공개해야 진정한 공청회 가능할 것"
FTA 범대위 소속 회원들은 기자회견 이후 공청회장에 들어와 공청회 시작을 잠시 지켜봤다. 그러나 김종훈 한미 FTA 협상수석대표의 개회사 도중 고성이 터져나왔다.
김종훈 수석대표가 개회사에서 "한미 FTA는 개방과 교류를 통해 산업구조를 고부가가치 중심으로 바꾸고자 하는 미래를 위한 전략"이라며 "FTA는 양국 경제를 조건없이 통합하자는 것이 아니라 조약에 따라 특혜를 주고 받자는 것이므로, 미국과 우리가 서로 이득을 볼 수 있다"고 말하자, "2차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미 FTA가 좋은지 나쁜지 어떻게 아느냐"면서 "정부 공청회가 아니라 정책 홍보냐"라고 반발한 것이다.
그 뒤 한미 FTA 범대위 소속 회원들이 단상 위로 올라가 한미 FTA 협상 대표 및 사회자 등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에 흥분한 김종훈 협상수석대표도 고성을 치며 맞대응하기도 했다.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장은 "지난 1차 공청회 때 개회사와 인사말만 하고 중단됐는데도, 이번 공청회가 2차라고 한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정부는 오늘 공청회를 중단하고 다시 날을 잡아서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양기환 영화인 대책위 대변인은 "지금 공청회를 저지하는 FTA 범대위의 모습을 보며 폭력적으로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 할 분이 있을지 모르나, 이런 방식으로 국민의 목소리뿐 아니라 자국민의 생존권과 삶의 터전을 짓밟고 공청회와 한미 FTA 협상을 강행하려는 게 바로 폭력"이라고 말했다.
양기환 대변인은 "미국 정부는 각 업계를 순회하며 설득하면서 공청회를 진행한 데 반해, 한국 정부는 1차 공청회 때 용역 200명을 동원해 앞 좌석을 점거한 상태에서 졸속으로 처리하려 했고, 200페이지 협상안도 거의 보여주지 않으며 공청회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청회를 아예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국민 의견 수렴이 가능한 방식으로 공청회를 하자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정부 측은 정회를 거듭하다 결국 제조업 분야와 노동과 환경 등 기타 분야 의견청취가 예정되어 있던 오전 공청회를 취소하면서 오후에 잡힌 공청회는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으나 실현 여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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