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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턴 양성평등의 내실을 채워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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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제부턴 양성평등의 내실을 채워가야"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6/22]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법률구조기관으로 지난 50년간 경제형편이 어렵거나, 법을 잘 몰라서 불이익을 받는 사회적 약자들.. 특히, 여성들을 위한 무료법률구조사업에 앞장서 왔는데요,

지난 20일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제2회 영산법률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지난 반세기 동안 동성동본 금혼규정을 없애고 호주제를 폐지하는 등 평등한 가정 만들기에 많은 공헌을 해왔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을 초대해,

1956년에 설립해서 50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여성의 권익보호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 들어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입니다.

곽배희 소장은 1969년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73년부터 지금까지 30여 년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근무하면서 수많은 상담을 통해 고통 받는 여성들 편에 섰으며 이혼숙려제도 도입, 호주제 폐지 등 여성권리 향상에 헌신해왔습니다.

그 공로로 대통령상 표창 및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가정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 조정위원,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우선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상을 많이 받으셨겠지만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50주년 되는 해에 큰 상 받으셔서 감회가 남다르시겠습니다.

곽배희 : 네. 굉장히 감격적인데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 50년간 묵묵하게, 알아달라고 하지도 않고 묵묵하게 해온 법률구조사업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겁니다. 사회적으로. 사실 우리나라가 법률구조라는 말이 뭔지도 모르고 개념이 들어오지도 않았을 시절에 이태영 박사님이 이미 법률구조라는 개업을 도입해 정작화 시켰다고 볼 수 있죠.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무료로. 말하자면 법을 모르고 가난해서 자기 권리를 못 찾는 사람들을 위해서 제공해 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감격스럽고. 또 하나는(웃음) 상금이 많아서 감격스러웠고..

박인규 : 상금이 5천만원이라고 들었습니다.

곽배희 : 어떤 사람이나 기관이나 상을 받고 상금을 받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저는 특히 좀 남다른데요, 저희가 지금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원래 건물이 있었는데 너무 낡아서 기능을 못하게 돼서 작년 6월에 기공식을 하고 지금 현재 토목공사가 끝나고 올라오는 중인데, 돈을 가지고 짓는 게 아니라 모아서 짓기 때문에 저희는 기금이 무척 부족하죠. 그런데 마침 이런 거금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것이 씨알이 돼서 내년 8월에 건물이 완공되면 쾌적하고 안락한 가운데 법률구조사업을 질적으로 한 단계 높이고. 그리고 전국적으로 더 많이 확대해서 가정 내에서 자기 권리를 찾지 못하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소외계층, 번민하는 이웃들을 위해서 법률구조사업을 더 활발하게 진행시킬 것입니다.

박인규 : 그 동안의 역할을 인정받은 것도 좋지만 상금을 건물 짓는 데 쓸 수 있어서 좋으시다.. 이번에 받으신 영산법률문화상이란 건 어떤 건지 간단히 소개해 주시죠.

곽배희 : 간단히 말씀드리면,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 구현. 그리고 국가사회발전에 공헌한 기관이나 사람에게 주는 거죠. 저희는 가정 내에서의 가족 구성원간의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요인을 제거하고 가정 내의 민주화와 평등화. 아들과 딸, 남편과 아내, 부모 자식간의 평등화를 이룩해서 튼튼한 가정으로 만드는 데 노력을 많이 했죠. 그러면서 그것을 말하자면 법률구조사업으로 전환시켜서 그들을 도왔기 때문에 국가사회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것도 맞구요. 또 우리사회의 법치주의 구현에 힘썼다는 것도 저는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법률구조, 서비스를 통해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정을 만드는 데 노력을 해왔다고 말씀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가정법률상담소라는 데가 어떤 데인지 소개를 해주시죠.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97.3MHz)'

곽배희 : 일단 가정 내에서 문제가 생기면 가정 내 뿐만 아니라 소위 부모, 형제, 자매, 부부간 또는 친인척간 문제가 생겼을 대 곧바로 법으로 가진 그렇잖아요 우리나라 정서가. 그랬을 때 저희 상담소를 찾아오시면 상담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화해조정을 통해서 재결합 시킬 건 재결합 시키고 화해조정도 도저히 안될 경우는 무료 대서를 해준다거나, 아니면 변호사를 직접 대고 소송구조를 해 드립니다. 그래서 끝까지 판결을 받아서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거죠.

박인규 : 말하자면 가정 내 문제의 해결사 같은 역할..

곽배희 : 그렇죠. 법률적으로, 전문적으로 해결해주는 기관이라고 하면 맞겠습니다. 특히 작금 몇 년동안 뿐 아니라 90년대 들어오면서 가정문제가 굉장히 이혼율이 높아지는 가운데 저희 상담소의 역할이 점점 크고 막중하다고 볼 수 있죠.

박인규 : 상담 내지는 법률구조를 해주시는 상담요원들이 몇 분 게십니까?

곽배희 : 한 10명 정도 되지만 상담만 하는 게 아니고 각자 또 맡은 일이 있습니다. 통계처리를 한다거나 법률구조에 관한 서류정리, 프로그램을 한다거나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하는데 그 사람들이 하루에 여러 상담건수를 다루죠. 그 분들을 통해서 내방자들이 자기가 원하는 해답을 얻고 길을 찾기도 하죠.

박인규 :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걸어온 길을 한 번 되짚어 보죠. 생긴 게 1956년인데 저랑 나이가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죠?

곽배희 : 이태영 변호사님은 최초의 수식어를 많이 받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법학박사, 또는 여성법조인.. 변호사가 되셔서 그 당시로서는 굉장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지만 6.25 이후의 폐허에서 너무나 여성들의 입장이 딱하다는 걸 아시고 여성문제 연구소에 방 하나를 얻어서 여성법률상담소로 간판을 걸고 출발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여성단체였죠. 그게 10년이 지나면서 가정문제가 여성만의 것은 아니라는 데 착안하시고 가정법률상담소로 바꾸셨습니다. 그때 공식적으로 사단법인이 된 거죠. 그 다음 76년에 공익법인으로 다시 바꿔지면서 1988년, 법률구조가 뭔지를 몰랐기 때문에 우리가 법률구조 활동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나 국가로부터 별로 인정을 못받고 있었죠. 뭔지 몰랐으니까. 그래서 정식으로 우리 상담소 주도하에 법률구조법을 만들었고 저희가 1호로 법률구조법인이 됐습니다. 그때부터 국가에서 조금씩 도움을 받으면서 공익법인이면서 법률구조법인이라는 특수법인입니다. 그래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권익을 대변해주는 기관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죠.

박인규 : 이태영박사께서는 원래는 검사나 판사가 되실 건데, 부군 되시는 정일형 의원이 야당이어서 변호사가 됐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곽배희 : 선생님께 듣기로는 임명을 해주지 않아서 변호사로 나왔고, 기왕 될 바에는 억울한 사람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입과 눈이 되어주자. 이렇게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박인규 : 그당시 자유당 정부에서 이태영 여사를 법관이나 판사로 임명했다면 상담소가 상당히 늦게 생겼겠네요?

곽배희 : 안 생겼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크신 분이라고 저희는 지금도 생각하죠.

박인규 : 이태영 여사께서 끌어오시면서 1973년도인가요? 가족법개정을 위한 10목표 같은 걸 설정하시면서...

곽배희 : 사실 가족법개정 운동은 56년 문을 열면서.. 가정문제를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 얘길 들어보니까 그게 전부 다 가족관계를 규율하는 민법 제 4편과 5편 친족상속법에 해당하는 사유들이에요.

박인규 : 호주제라든가..

곽배희 : 그런 것들을 통칭해 가족법이라고 하는데, 그 가족법상에서부터 관습이나 정서도 물론 작용하지만 법 자체가 굉장히 불평등하게 남녀를 규정하는 조항들이 있어서 가족법을 개정해야 되겠다.. 시작이 된 겁니다. 그리고 1973년도에 범여성 가족법개정 촉진위원회라는 걸 여성단체 중심으로 만드셨고. 해서 77년에 2차 가족법개정을 이끌어내신 겁니다. 1958년도부터 1960년대까지 시작된 게 있었고, 77년도에 2차 개정이 있었고, 89년도에 3차 개정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5년인가

박인규 : 여성게에서는 호주제폐지가 굉장한 숙원사업이라고도 할 수 있고.. 굉장히 반발도 많이 생겼지만.

곽배희 : 그 3차례의 큰 가족법개정을 통해서 모든 차별적 조항들이 거의 없어졌는데 유독 차별의 뿌리에 해당하는 동성동본금혼규정과 호주제가 남았던 겁니다. 그 10개 항목을 상정한 것주에. 그래서 그 운동을 다시 시작해서 1976년도 7월달에 동성동본금혼규정이 헌법불합치라는 걸 이끌어냈고. 그리고 2005년 3월에 호주제가 페지된 겁니다.

박인규 : 호주제 폐지와 동성동본금혼규정이 폐지되면서 여성운동을 해오신 많은 분들은 감격의 눈물도 흘리시고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곽배희 : 사실 좀 멍멍했습니다. 아, 이렇게 간단히 끝나는 걸.. 그 조항을 개정하는 데 50여년동안 온갖 비난과 폭언을 듣고 고생하면서 이끌어왔구나 생각하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실감이 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호주제가 폐지됐다는 걸 피부로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호주제를 폐지하고 난 후 새로운 법 시행이 2008년도부텁니다. 막상 2008년도가 돼서 호적관계도 변하고 신분등록이란 것도 생기고 여러 가지 문제가 현실적으로 다가와야 실감을 하시게 될겁니다.

박인규 : 고안의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얘기들이 있는 것 같아요.

곽배희 : 저희는 문제라기 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제도나 법에서 오는 불편함. 그리고 당황스러움이 있을 겁니다.

박인규 : 작년 호주제폐지까지 해서, 가정 내와 사회에서 양성평등과 관련한 법적인 장애들이 다 해소가 됐다고 보십니까?

곽배희 : 아닙니다. 저희가 10개 항목을 내놓고 마지막으로 호주제를 폐지한 것은 큰 흐름에서 법률적으로 남녀가 똑같은 인간이다라는 걸 선언한 것입니다. 이제 그 각론으로 들어가서 내부적으로 호주제에 의한 법들.. 남성을 중심시하는 규정들이 도처에 있거든요. 예를 들어 부부간 재산관계 문제도 그렇고 미혼모의 법적인 문제도 그렇고. 아무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아이 낳고 사는 걸 전제로 한 법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회가 변하고 다양한 가정형태가 나타나는 상황에서는 거기에 맞는 세부규정을 다 고쳐야 됩니다. 그 작업을 지금 저희가 시작을 하죠. 초석을 놓았을 뿐이죠.

박인규 : 가정이나 사회에서 남녀가 평등하다는 큰 원칙은 세워졌지만 구체적인 부분은 아직이다..

곽배희 : 예. 지금부터 시작을 해야죠. 그 남녀가 평등하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세우는 데 50년이 걸린 겁니다.

박인규 : 그런 것 중 하나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작년인가요? 종중의 여성을 중중원으로 인정하라고 대법원에서 판결까지 나왔는데 또 재심을 한다고 합니다.

곽배희 : 그게 7대 6으로 조금 아슬아슬하게 돼서 일단 서울고법에서는 원고승소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피고측에서 지금 재상고를 해놓은 상탭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대법원 판사님들도 그렇고 특히 대법원장님의 진보적인 생각으로 미뤄봐서 절대 그것이 뒤집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성도 종중원 자격을 달라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재상고까지 벌어진다는 건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박인규 : 재상고까지 하는 걸 보면 참 남성분들의 반발도 만만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남녀간에 합리적인 대화를 좀 했으면 좋겠네요.

곽배희 : 그렇죠. 그나마 기판력이 소급돼 가질 않기 때문에, 사실 이미 나눠져 버린 보상금은 또 받지도 못합니다. 다만 이분들은 희생을 통해서 다음 사람들에게 선례를 남겨준 것에 불과하죠.

박인규 : 가정이고 사회고 남녀가 서로 평등하고 화목하게 살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보니까 앞으로 하실 일이 많을 것 같네요.

곽배희 : 법률구조사업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구요. 늘 제가 얘기하는 거지만 통일이 되면 북한에도 지부를 세워서 가족관계를 원만히 해서 국가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또 통일을 촉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곽소장께서 어떻게 이 운동에 뛰어들게 되셨는지 앞으로 반세기동안 또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질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규조를 통한 여성권리 향상, 또 좋은 가정만들기 활동을 해오셨는데 여기 뛰어드신 게, 집안이나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홀대를 받아서 그런게 아니냐..

곽배희 : 저는 그 말 정말 많이 들어요. 저 여성은 분명히 호주제 때문에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동성동본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저는 사실 그런 건 누구보다도, 전혀 모르고 자란 사람입니다. 법을 공부했으니까 차별조항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태영 선생님이 저의 스승님이셨기 때문에. 저희 학장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부름으로 제가 상담소에 들어왔고,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여러 가지 차별과 억울한 일, 우리가 도와줘야 할 일도 많았고 했는데. 처음에 상담할 때는 왜 자기 문제를 자기가 처리하지 저럴까.. 하는 건방진 생각도 가셨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하면서 제가 점점 배우게 되면서, '아, 이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제도적, 법률적인 문제구나, 거기에 도움을 줘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점점 빠져들어가게 됐죠. 73년 5월달에 들어왔으니까 지금 33년째 여기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개인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더라. 그런 데서 좀 필요하다..

곽배희 : 그건 우리 같은 전문기관이 아니면 안되죠.

박인규 : 자라실 때 그런 불평등을 겪지 않으셨군요. 이런 질문도 있는 것 같아요. 여성활동을 하시다 보니 집안에서 부군되시는 분과의 관계는 어떨까.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정을 잘 꾸려가시는지..

곽배희 : 사실 제가 많이 들어본 질문인데 제 남편은 좀 억울할 거예요. 완벽하게 저는 자유롭고 독립된 사람입니다. 오히려 외조를 받았다고 해야 되겠죠. 그런 데다 다행히도 제가 상담소 일 외에 달리 신경쓸 일이 없기 때문에. 그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직 먹고 사는 걸 제외하고는 상담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죠.

박인규 : 부군 되시는 분도 언론인으로 꽤 유명한 분이라고 알고 있는데..

곽배희 : 그렇습니다. 그사람도 그사람 나름대로 또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생각이 있어서 그 운동에 헌신해 왔고 저는 저대로 또 여성운동에 헌신했지만, 지금 현재 저는 여성운동가라기 보다는 저희 단체가 사회단체기 때문에 남녀 누구라도.. 말하자면 소외되고 번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해야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사분담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97.3MHz)'

곽배희 : 죄송한 얘기지만 저희 세대가 상당히 구세대죠. 그래서 저희 남편은 그렇게 가정일에 도움을 주는 사람은 아닙니다.

박인규 : 곽소장님은 거의 슈퍼우먼 역할을 하셨겠네요..

곽배희 : 비교적 이쪽저쪽.. 가정과 직장 일을 하려고 노력했죠.

박인규 : 또 많은 여성들의 어려움. 사례를 보셨기 때문에.. 여성들의 어려움 같은 것도 처음에 상담하셨던 70년대와 30년 후인 지금과는 유형이 상당히 달라졌을 것 같아요.

곽배희 : 내용이 달라진 것도 물론 있지만 사실 내용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든다면 가정 내 문제라는 게 부부간, 배우자 가족과의 문제 이런 거죠. 그런데 시집과의 문제나 처가와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가 달라질 건 없는데 시집과의 문제가 보편적이었던 과거에 비해서 지금은 처가와의 문제도 못지않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위 말하면 이혼사유에 해당했던 배우자의 부정이나 폭력, 이런 것들이 대체적으로 남성에게 많이 일어나는 문제였다면 지금은 아내 입장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내용이 변화됐다면 그 정도고.. 계속 부부간의 문제는 부정이나 폭력 등 문제는 그대로 있는데, 다만 그 상황을 보는 당사자들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특히 여성들의 생각은 엄청나게 바뀌었죠. 예를 들어 과거 부부간의 성생활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법원에서도 그거 가지고 이혼판결을 내거나 그런 적이 없었죠. 지금은 그런 일들이 양성화 돼서 드러나야 된다는 거. 그리고 성격차이, 애정이 없다든지 대화가 없어서 이혼하겠다고 나오는 일이 8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다고 봐야겠죠. 그러나 90년대 이후 2000내 들어오면서는 때리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생활비를 안 주거나.. 그것도 문제가 되지만, 그건 나도 벌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격이나 사고방식, 가치관이 다른 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헤어져야겠다.

박인규 : 보다 개인주의적으로 돼가는 건가요?

곽배희 : 저희는 그걸, 삶이 질적으로 높아졌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러니까 먹고 사는 문제에서 삶의 질 문제로 바뀌었다는 거죠.

박인규 :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예전에는 시집과의 갈등, 남편의 부정, 외도 등이 문제가 됐는데 요즘은 처가와의 갈등, 아내의 부정 등도 문제가 되고 있다구요..

곽배희 : 아직 사회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점진적으로 그런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는 거죠.

박인규 : 어떻게 보면 예전엔 여성들이 대개 피해자 입장이었는데, 남성들도 이제는 피해자 쪽으로 들어가는...

곽배희 : 그러나 저는 아직도 그렇게 말할 순 없다고 봅니다. 여전히 절대다수는 남성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일들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여성들도 많이 자각을 해야 될 것입니다.

박인규 : 이태영 박사께서도 한국이혼연구라는 책을 쓰셨고 곽배희 소장께서도 박사학위 받으신 게 이혼문제인데.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이혼문제...

곽배희 : 심각하죠. 귀가 아프게 들으셨겠지만, 굉장히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작년 재작년부터는 서서히 이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혼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경향이 서서히 번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계적으로도..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저는 걱정이 되죠. 이게 가정적으로 안정되고 남성과 여성이 가정 내에서 완전하게 민주화되고 평등한 관계에서 삶이 정착돼서 그렇다기 보다는 아직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예를 들어 법이 바뀌고 제도가 바뀌고, 이혼해놓고 보니 그렇게 법이 간단하지 않더라.. 등등 여러 요건 때문에 이혼을 좀 더 신중히 해야겠다라는 방향에서 이게 조금씩 바뀌는 거라고 봅니다. 저희가 좀 더 노력을 많이 해야 되겠죠.

박인규 : 예를 들면 이혼숙려제도같은 게 도움이 좀 되나요?

곽배희 : 굉장히 영향을 미치고, 처음에 저희가 그 제도를 도입해야 되고 이혼 전 상담을 도입해야 된다고 말했던 몇 년 전만 해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고 그것의 중요성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한 2,3년 전부터는 정말 그런 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보다 더 완벽하게 법적이나 제도적으로 잘 돼있는 선진국이나 구라파 등에서도, 이름은 좀 다르지만 이혼숙려기간이나 이혼 전 상담제도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같이 법적으로도 좀 불완전한 상태에서는 당연히 그런 제도를 받아들여야 된다는 생각이 확산돼 가면서 이혼에 대한 자각이랄까요, 나름대로 성숙해진 생각을 하는 거죠.

박인규 : 최근 방송 같은 데 많이 보도되고 있긴 하지만, 이혼 말고 부인이나 아동에 대한 폭력, 학대.. 그런 것도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곽배희 : 엄청나죠. 우리가 보통 가정폭력을 세 가지로 말하는데, 부부간의 폭력이 있고 장성한 자녀들의 노부모에 대한 폭력이 있고, 부모의 미성년자녀에 대한 폭력이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제일 많았던 게 부부간의 폭력, 남편의 아내에 대한 폭력이었는데, 한 몇 년 전부터는 자녀의 노부모에 대한 폭력도 많아지지만 부모가 미성년자녀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도 아주 심각하게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경각심과 관심이 많아져서 지금 가정폭력특별법을 98년도에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데 계속 손질을 하면서 법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가정폭력은 절대적으로 범죄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해야 된다는 의식을 확산시켜 가는 중이죠.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시면서 호주제폐지 등을 통해 남녀가 양성평등하다는 대원칙을 설정했지만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앞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신지 마무리 삼아 말씀해 주시죠.

곽배희 : 법에 호주제가 폐지됐기 때문에 완전하게 남녀평등, 부부평등이 이뤄지도록 각론으로 들어가서 조문 하나하나를 고치는 것. 예를 들어 미혼모의 법적권리 문제라든지, 가정 내에서 부부간의 재산분배를 보다 평등한 관계에서 한다든지.. 법적 개정은 그런 차원에서 나가는 거고. 법률구조를 좀 더 확대시키고 질적으로 한 단계 높이고.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통일 전이면 더 좋고 이후에라도 북한에 지부를 둬서 가정문제를 저희가 중간에 나서서 조정해서 우리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지난 50년 동안 해오신 것처럼, 앞으로도 남녀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곽배희 : 고맙습니다.

박인규 :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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