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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추리 투쟁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제3차 범국민대회

'대추리 주민들에게 농사는 인생, 아니 전쟁. 군인들이나 전경들에겐 막아야 할 일이며 정부와 미군에겐 그저 장애물. 때로 가슴을 울리는 뉴스이거나 시민들이 만드는 드라마.'

요즘 유행하는 광고를 패러디해서, 18일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회를 세 번째로 치른 경기도 평택 팽성읍 대추리의 투쟁을 표현하자면 이럴 것이다. 축구와 달리 누구 하나 반기지 않는 싸움인데도, 대추리에서는 다시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월드컵 열기에 국민들이 우리를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경찰은 이날 154개 중대 1만5000여 명의 병력을 배치해 대추리 진입을 원천봉쇄했다. 이 때문에 이날 대추리 평화공원에서 열린 범국민대회는 150명의 인원만이 참석한 가운데 40분만에 끝났다.

지난 6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단식기도를 하고 있는 문정현 신부를 지지하기 위해 8일째 단식하고 있다는 변연식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범국민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토고전 때 대추리 주민들은 마음을 두 번 졸였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이겨줬으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이 월드컵 광풍에 우리를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 4년 전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을 사람들이 몰랐던 것처럼 청와대 앞에서 단식 중인 문정현 신부님도, 여기서 이렇게 열심히 싸우고 있는 대추리 주민들도 사람들이 다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

다음날 새벽에도 프랑스와의 월드컵 경기가 있을 예정이었고, 주민들의 걱정은 한 겹 더해졌다.

대추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문정현 신부님 같은 분이 목숨 걸고 단식까지 해주시니 정말 큰 힘이 된다 싶으면서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데 괜히 사람 몸만 상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며 "저렇게 대추리 들어오는 길목마다 진을 치고 검문을 해대니 더욱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든 곳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 19일 대추리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3차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왼쪽).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는 변연식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오른쪽). ⓒ 프레시안

이날 대추리로 들어가는 길목을 모두 봉쇄한 경찰의 검문은 철저했다. 이날 평화대행진을 취재하기 위해 대추리로 들어가려던 기자들도 다섯 번 정도의 검문을 거쳐야 할 정도였다.

그 때문에 민주노총 노조원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 등 2500여 명은 이날 오후 2시경 충남 아산시 둔포서부농협에 모인 뒤 3km 구간의 농로를 이용해 팽성읍 도두리 방면과 본정농협 방면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역시 전경들과 심한 몸싸움이 있었다.

또 한총련 소속 대학생 13명은 1인용 고무보트 11대에 나눠 타고 기지 이전지역 옆 안성천을 따라 팽성대교~대추리 황새울 들녘 2㎞ 구간에서 수상시위를 벌이다 전원 연행됐다.
▲ 대추리로 들어가는 길목에 전경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왼쪽). 도두리로 들어가려는 시민들이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프레시안

"하루종일 뙤약볕에…전경도 고생이지"

이날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150명 가량의 시민들과 둔포 서부농협에서부터 걸어 들어온 이들은 결국 한 곳에서 만나지 못했다. 군인들이 파놓은 수로와 철조망, 그리고 시위대의 움직임에 따라 곳곳에 설치한 바리케이트 때문이었다.

그 대신 이들은 서로에게 응원의 함성을 보내며 전경을 피해 이리저리 황새울 들판을 누비고 다녔다.

이곳을 지키는 전경들도 매일 반복되는 싸움에 지친 듯했다. 반복되는 검문에서 '지상파 방송이나 중앙 일간지는 그냥 보내주고 인터넷신문은 왜 안 들여보내 주느냐'며 항의하는 기자들과 연신 말싸움을 벌이던 한 경찰은 "서로 다 아는 처지에 이러지 맙시다. 저희라고 좋아서 이러고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 철조망을 치고 땅을 깊이 파낸 흙위에 서 있는 군인들. 각각 긴 대나무 봉을 들고 있다. ⓒ 프레시안

이들을 매일 지켜보는 주민들의 마음이라고 좋을 턱이 없다. 대추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내가 평생 낸 세금으로 군인들이 와 이렇게 내 땅을 짓밟고 있다니 정말 분통이 터진다"면서 "이 땅을 헤집기 위해 그 많은 세금을 다 쓰다니 권력만 잡으면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냐"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아들 군대 보내면 잘 먹고 잘 지내다 오는 줄 알았더니 저 아이들 보니 정말 고생만 죽도록 한다는 걸 알겠다"며 "하루종일 뙤약볕이 내리쬐는 들판에 서 있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 볼 때는 얼굴이 하얗던 애들도 이제는 군밤처럼 얼굴이 까매졌다"고 덧붙였다.

"농사가 아니라 전쟁이야, 전쟁"

농로를 끊어놓은 탓에 탈곡기가 들어올 수 없는 황새울 들판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의원은 보리밭에 들어가 서서 보리를 훑어다 껍질을 후후 불어가며 먹었다.
▲ 보리밭에 서있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 프레시안

또 지난 봄에 건답직파법으로 파종한 벼도 이미 한 뼘씩 자라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김을 매주지 못해 사이사이로 잡초들이 무성했다. 몇몇 농로에는 허리께까지 닿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거미줄까지 처져 있었다. 이미 논밭과 농로를 구분할 수 없게 된 곳도 많았다. 주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전경들에게 "약도 좀 치고 잡초도 좀 뽑으러 들어가겠다"며 항의했다.

하지만 전경들은 결코 길을 내주지 않았다. 주민들은 "농사가 아니라 전쟁"이라며 "이 나이까지 평생 잘만 해오던 농사 한 해 더 짓겠다고 경찰하고 싸우게 될 지 누가 알았나"라며 한탄했다.

"정부는 이 싸움을 끝낼 방안을 내놓아라"

대추리 평화공원에서 황새울 들판을 가로질러 도두리로 찾아간 주민들과 시민들은 5시쯤 중간집회를 다시 가졌다.

이 집회에서 서울에서 왔다는 한 대학생은 "대추리 주민들이나 전경들, 군인들에게 이토록 몹쓸 짓을 시키고 있는 노무현 정부는 정말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는 "문정현 신부님과 대추리, 도두리 주민 모두가 말하듯 미군기지 재협상만이 해답일 것"이라며 "한시바삐 이 싸움이 끝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싸움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하고 싶다"며 "대추리 투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새기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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