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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단식으로 평화의 화두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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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단식으로 평화의 화두를 던지다

[기고] 문정현 신부의 '미군기지 재협상' 단식을 지켜보며

문정현 신부가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재협상을 위한 단식기도를 시작한 지 15일로 열흘이 됐다. 67세의 고령에다 협심증까지 있는 문 신부로서는 목숨을 건 단식이 아닐 수 없다.

문정현 신부를 가까이서 지켜보아 온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최종수 신부가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최종수 신부는 '노사제가 한반도의 가냘픈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며 문 신부가 던지는 '평화의 화두'를 되새겼다. <편집자>

전투기는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

얼마전 F-15K 전투기가 추락한 사건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1000억 원 짜리 전투기의 블랙박스에 발신장치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F-15K를 차세대 전투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F-15K 추락사고를 접하면서 그 원인이 엔진을 포함한 '기체결함'이든 조종사의 '비행착각'이든 전투기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남한 사회 안에도 점심을 굶어야 하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몇 만 명에 달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한 대에 1000억이라는 F-15K. 이러한 전투기들이 왜 필요한지 다시금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투기로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간단명료한 진리는 온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 때문입니다.

군사력과 같이 평화롭지 못한 방법으로 얻는 평화는 거짓평화이며 오래 가지 않습니다.

약자의 평화를 말살하는 거짓평화

평택은 한국의 평화는 물론 세계 평화의 현주소입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두고 평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군사기지는 평화를 학살하는 전쟁이 시작되는 곳에 불과합니다.

'평택 사태'는 평화를 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는 주민들의 평화를 말살하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내 평화를 위해 다른 사람의 평화를 짓밟는 것은 거짓 평화에 불과합니다. 사회적 평화는 개인적 평화 위에서만 가능한 명제이며 소수의 평화가 없는 다수의 평화는 거짓평화일 따름입니다.
▲ 평택 주민들이 "평택의 쌀이 얼마나 좋은 쌀인지 대통령께서 직접 드셔보라"고 청와대 관계자에게 맡기려다 좌절되자 허탈한 심정으로 앉아 있다.(왼쪽) 할머니 한 분이 청와대 관계자에게 울분을 토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 최종수 신부

평화는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홍시가 아닙니다. 평화를 말살하는 그 어떤 세력에 맞서 싸울 때 비로소 평화가 찾아오고 유지됩니다.

사회적 평화를 위해 자신의 평화를 바쳐 싸우는 사람들, 그들을 평화의 사도라고 말합니다. 평화의 사도인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화는 사회적 평화를 위해 때때로 개인적 평화를 도구로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1219년에 십자군 전쟁이 치열한 시리아로 떠납니다. 그는 동료 한 사람과 사라센의 이슬람교도 군주인 술탄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이슬람교도 군주에게 가까이 가기까지 이슬람 군인들에게 붙들려 창피를 당하고 매질을 당했으나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고문하겠다고 위협해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죽인다고 해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적대심과 증오심이 가득한 이슬람군인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았지만, 회교도 군주에게는 매우 영예로운 환대를 받았습니다.

술탄은 전쟁을 중단하려는, 평화를 향한 열망으로 적진까지 찾아온 성인의 순수한 마음을 알고 성인의 말을 기꺼이 경청하였습니다. 그는 성인의 평화에 대한 간절한 호소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프란치스코를 해치지 말라는 편지를 써주어 이슬람교도들의 진지를 무사히 빠져나가게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런 행동은 생명에 대한 경애와 평화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꽃과 나무와 새들도 가족으로 생각했기에 인간을 죽이는 전쟁을 바라만 볼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서로 죽이는 전쟁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적진까지 들어가 술탄을 만나 설득했던 것입니다.

가냘픈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건 단식을
▲ 지난 12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회원이 문정현 신부를 진찰하고 있는 모습. ⓒ 최종수 신부

이 땅의 평화의 사도 중의 한 사람인 문정현 신부. 그는 전쟁을 원하는 이들이나 그 편에 동조하는 이들에게 '빨갱이 신부'라 불립니다. 전쟁의 참상을 겪은 이들에게 더 많은 비난을 받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고 공언한 사람에게서조차 그러한 비난을 받는 것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문정현 신부는 청와대 분수대 앞 작은 공원에서 단식 10일 째를 맞고 있습니다. 평택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평화를 도구로 삼아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일본과 미국, 그 제국의 이름으로 한반도에 2번의 폭력이 가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국정부에 의한 폭력 앞에 한반도의 평화가 등잔불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제는 이 가냘픈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전쟁을 부추기는 미국과 군사력에 의한 폭력적인 절망에 온 몸으로 항거하는 문정현 신부를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을 것입니다. 평화를 외치지 않고, 전쟁에 침묵하는 자신들에게 그 비난하는 손가락을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67세이면 은퇴해서 편안한 삶을 누릴 연세입니다. 그러나 20~30대의 젊은 열정으로 평화에 무관심한 사람들, 무딘 양심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 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농사를 짓지 못하는 주민들의 고통을 더 이상 바라만 볼 수 없기에 다시 길 위에서 목숨을 걸고 있는 사제가 쏟아내는 평화의 화두들….

노사제가 길위에서 목숨 걸고 던지는 평화의 화두들

"군부대와 경찰은 마을과 농지에서 철수하라. 주민들의 농사를 보장하라. 김지태 이장과 모든 구속자를 석방하라.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 재검토하라. 자국민의 평화를 말살하지 말라.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집단학살을 중단하라."

농사 짓고 싶은 염원을 담아 할머니 몇 분이 화단에 심어놓은 그 벼포기들이 논에서 자라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여우도 고향으로 머리를 돌리고 죽는다는 수구초심, 하물며 인간이 고향 땅에서 남은 생을 마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 내 논에 들어가 농사 짓고 싶다는 철조망 위에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울고 있다. 공원 화단에 심어놓은 벼포기가 푸르다. ⓒ 최종수 신부

그의 단식은 잠자고 있는 평화를 깨우고 있으며 평화를 부르고 있습니다. 평택에서 시작된 평화와 반전에 대한 바람이 온 국민의 가슴 속의 평화를 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을 믿으며 길 위에서 투쟁하다가 그 길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사제. 순식간에 협심증이 악화되어 심근경색으로 진행되어 길 위에서 죽는다면 그 죽음이야 복된 죽음이라 여기는 사제의 그 꿈만큼은 이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노사제가 월드컵 블랙홀에 빠진 우리들에게 화두를 던집니다.

"나는 민중의 편에 선 평화는 기어이 승리한다는 역사의 진리를 믿는다. 역사의 퇴보는 없고 단지 실패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진리는 지금껏 승리해 왔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유신독재가 그러하다. 평화를 향한 지금 나의 선택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실패한 삶일 수 있지만 민중의 편에 살다간 죽음, 그 죽음은 후세에 영원히 기록될 영광일 것이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아니하든 길은 가야 한다. 그 길이 억압받는 사람들의 길이라면, 평화의 길이라면 말이다."
▲ 문정현신부의 단식에 함께 하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회원들이 효자동 동사무소 인도에서 단식기도를 하고 있다. 저 길거리에서 곧 잠을 청할 것이다. ⓒ 최종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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