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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후계자 준비'를 진짜 하고 있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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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한은 '후계자 준비'를 진짜 하고 있긴 하나?

'2006년 북한은 어디로?' 정치편 <4> 주목되는 제7차 당대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환갑의 나이를 넘기면서 국내외 언론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서 북한군의 내부 강연자료 문건이 공개되고, 김 위원장의 요리사를 지냈다는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의 책이 나오면서 단지 '설'로 끝났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김정남과 김정철의 후계경쟁설', '김정철 후계자 부상설', '김정철 후계자 확정설', '김정운 후계자 부상설'등 다양한 설이 그럴 듯하게 포장돼 제기되었다. 대체로 김 위원장의 아들로 후계구도가 짜여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이 나오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60세 넘기면서 '후계자 문제' 관심 증폭

최근 북한 내부의 후계자 문제에 대한 관심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등장하던 시기와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북한은 1972년 김일성 주석의 60세 생일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후계자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김정일 위원장도 2002년 환갑을 넘겼다. 실제로 김 위원장이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에 들어간 것이 1964년으로 당시 만 22살이었고, 25살 되던 1967년부터 정치적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해 32세가 후계자로 공식 지명됐다(김정철의 현재 나이는 만 25살).

둘째, 김일성 주석이 아들인 김 위원장에게 후계 자리를 넘겨주었듯이 이번에도 아들을 후계자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봉건적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아들 대신 다른 인물 가운데 후계자를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주요한 논거다.

북한은 '혁명의 계승과 완성'을 위해 무엇보다도 후계자 선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 등 다른 사회주의권에서 권력 승계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에 자극 받아 1960년대 후반부터 후계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1970년대에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후계자 승계를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했다.

아직은 '소문' '추측' 수준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환갑을 넘기면서 '후계자'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EPA

그러나 김 위원장의 뒤를 잇는 차기 후계자는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의 권력승계가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북한체제가 급격하게 혼란에 빠질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만큼 후계자 문제는 북한 체제의 지속 여부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더 나아가 동북아 정세에도 파장을 미칠 중요 사안이다. 이런 점에서 국제사회가 북한의 권력승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김 위원장이 회갑을 넘겨도 후계구도가 확정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일각에서는 북한 체제 내부의 '권력이상설' '권력투쟁설'까지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60주년 때 김정철이 후계자로 공식화될 것이라는 외국 언론의 추측 보도가 난무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지난해 말 국내 언론은 김 위원장이 후계 문제에 대한 언급을 중단하도록 특별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해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러나 이 보도들은 확인되지 않은 전언, 신뢰할 수 없는 첩보, 검증되지 않은 문건 등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언론뿐만 아니라 국내 북한학계에서도 2004년 초 세종연구소 정성장 연구위원과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이기동 연구위원 간의 논쟁 이후 후계자 문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두 연구위원 모두 근거는 다르지만 김정철이 후계자로 내정됐거나 후계자로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철 후계설?
▲ 최근 독일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차남 김정철.

정성장 연구위원은 2002년 초 "북한은 김정일의 60회 생일을 계기로 김정일의 권위를 더욱 절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내부적으로 김정일의 후계자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 것을 시작으로 계속 '김정철 후계설'을 주장하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2004년 8월에 발표한 한 정책보고서에서도 향후 권력의 향배와 관련,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인물들의 자질보다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직책"이라면서 "김정남은 개인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지만 당내 핵심부서에서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김정철의 자질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가 '노동당의 참모부'이자 최고 핵심부서인 당 조직지도부에 근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정 연구위원은 북한이 후계자 결정을 위한 사전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근거로 △군부대에서 김정일의 부인 고영희에 대한 개인숭배가 체계적으로 진행된 점 △김일성 사후 실질적으로 제2인자 역할을 했던 장성택(김정일의 매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공개활동 중단 및 그 측근들에 대한 정리 △현재 '온 사회의 선군사상화'가 추진되고 있는 점 △1990년대 중반 이후 활동이 없었던 3대혁명소조의 재파견, 세대교체의 급진전 등을 들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이 지난 1974년 김일성이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하기 전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주장의 근거가 되는 '사실' 또는 '정보'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성장 연구위원이 주목하는 '혁명의 수뇌부'란 단어도 김정일과 후계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혁명의 수뇌부'란 명칭은 1990년대 중반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 김정일을 수령으로 부르지 않고 다른 명칭으로 부르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신년사설에서 '혁명의 수뇌부'란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그해 9월 말~10월 초 노동신문에 '수뇌부의 유일적 영도'란 단어가 쓰인 것은 국제정세에 대한 위기의식, 일심단결의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장성택 제1부부장의 실각도 2년이 지난 올해 그가 복권되면서 후계자 등장의 근거로 보기는 어려워졌다.

정성장, 이기동 연구위원이 주목하고 있는 '백세봉 신임 국방위원'도 김정철을 지칭하는 이명(異名)일 가능성보다는 50대 중반의 군부 인사일 가능성이 크다. 이기동 연구위원은 "백세봉은 '백두산의 세 봉우리'의 약자일 수 있고, 백두산 세 봉우리는 백두산 3대장군(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며 "백세봉이 바로 후계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2003년 8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고 한 달 후에 국방위원으로 선출된 백세봉은 조선노동당의 이론잡지인 ≪근로자≫에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선군혁명실록은 우리 혁명의 고귀한 재부(2004년 3호)>, 〈선군의 위력으로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 것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철석의 의지(2005년 3호)>란 제목으로 2차례 글을 기고했다. 글을 내용을 볼 때 그는 김 위원장의 아들이나 후계자가 아니고, 군대 계통의 인물로 추정된다.

김정일의 세 아들, 후계자로서의 능력 검증 미흡

지금까지 나온 북한의 후계자 문제와 관련된 보도나 논의는 한 가지 치명적인 한계를 보이고 있다. 바로 북한 내부의 '후계자 검증' 문제다. 김 위원장은 1967년 '박금철, 이효순사건'을 통해 정치적으로 급부상했고, 그 뒤 문화예술분야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다졌다. 이른바 '북한식 검증과정'을 거친 후 '후계자 후보군'에 포함된 것이다. 또한 노동당의 핵심부서인 조직지도부를 거쳐 선전선동부의 문화예술과장, 부부장으로 승진했다. 이때까지 5~6년의 시간이 흘렀고, 김일성 주석이 '후계자의 필요성'을 언급한 뒤로 확정되기까지 다시 3년이 소요됐다.

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아들이긴 하지만 오랜 기간의 활동을 통해 검증과정을 거친 셈이다. 따라서 김정철이나 김정운이 유력한 후계자라고 거명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김 위원장의 아들이라는 근거 외에 납득할 만한 '업적'이 확인돼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들의 노동당 내 직책이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특별히 활동 상황이 잡히지도 않고 있다.

우리나라 정보기관들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제출한 공식보고에도 "김정철은 스위스 국제학교에 유학 후 귀국해 대학과정을 마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까지 공식직책에 임명된 동향은 없다. 김정운도 스위스 국제학교에 유학 후 귀국하였으며 북한 내부동향은 파악된 바 없다"라고 기록돼 있다.

필자가 방북 했을 때 만난 북측의 관계자들도 "후계자 문제는 '혁명의 계승'과 '영도의 계승'에서 제기되는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장군님과 우리 당의 결정, 우리 인민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였다.

국내외 언론의 호들갑과 달리 아직 북한의 내부에서는 뚜렷한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고 있고, 후계자 문제와 관련된 '권력투쟁' 기미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반드시 김 위원장의 아들 중 하나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견해도 아직은 추론에 불과하다. 김 위원장의 아들들이 모두 해외유학을 했고, 노동당 내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이들이 후계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제7차 당대회 주목해야

후계자 논의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 열리지 못하고 있는 노동당 7차대회가 어느 시점에 열리는가 하는 점이다. 2000년 당대회 개최 준비를 하다 국내외 정세로 연기했던 북한이 어느 시점에 당대회를 여느냐가 앞으로 새로운 세대의 전면 등장과 후계구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내부적으로 노동당 대회가 시급해 열려야 하는 상황이고, 당대회가 열려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정치국 (후보)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공식적으로 임명해 당 개편작업을 마무리해야 후계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북한이 후계자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징후는 있지만 후계자가 이미 지명됐거나 당내에서 공식 논의가 시작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북이 경제 현대화와 개방을 통한 '경제 비약'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여기서 가시적 성과를 얻고, 7차 당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야 북한 내부의 후계자 논의도 수면 위로 떠오를 것 같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세 아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왼쪽), 연합뉴스 김정철과 김정운의 생모인 고영희(오른쪽). ⓒ연합뉴스

○ 장남 김정남


김정남은 1971년 생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의 배우 출신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김 위원장의 장남이다.

○ 차남 김정철

김 위원장의 둘째 아들인 김정철은 1981년 생으로 2004년 유방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 고영희(1953년 생)가 낳은 첫째 아들이다.

○ 삼남 김정운

김정운은 1983년 태어난 김 위원장의 셋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고영희이며 스위스 국제학교 유학 후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 노동당 내의 특별한 직책이나 활동 상황이 잡히지는 않고 있다.

* 기획연재 '2006년 북한은 어디로?'는 <프레시안>과 <북한연구학회>의 공동기획으로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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