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론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남부 코모도르 리바다비아로 돌아온 소사 여사는 페론이 재기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지방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았고 순식간에 대통령을 아들로 둔 원주민 소사 여사의 소문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 때부터 수세기 동안 아르헨 남부지방에서 백인들의 눈치를 보며 노예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던 마뿌체, 떼우엘체 부족 대표들이 소사 여사 곁으로 모여들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주권회복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소사 여사는 원주민들의 부당한 인권유린 사태와 라 빰빠스 농장 인부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창구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게 된다. 또한 원주민 부족대표들로 하여금 지역별로 연합회를 조직, 정부의 창구 역할을 하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광활한 대지를 지닌 아르헨티나 농장지대는 중앙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해 그야말로 법보다는 힘이 판을 치는 상황이었다. 소사 여사는 중앙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오지의 농장이나 안데스산맥의 원주민 대표들을 만나 힘있는 자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된 공권력의 부당함을 알리고 원주민 인권피해 상황을 파악, 주민대표로 하여금 사태해결에 앞장 서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소사 여사는 또 대지주와 백인 위주로 운영되던 아르헨티나 목축업계의 원주민들과 노동자들도 농장소유주들, 소위 기득권층들과 동일한 권리를 갖는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원주민 부족대표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소사 여사는 아들인 페론과의 만남은 거절했지만 당시 소외계층 구제 사업에 앞장선 에바와는 남의 눈을 피해 한두 번 은밀하게 대면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회분위기상 대통령이 된 아들은 만날 수 없었지만 며느리를 만나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했던 것이다.
지난 6월4일 로케 페레스 페론 생가지정 기념식장에서 만난 마뿌체족의 부족대표 까치께 우엔쭈빤 회장은 "남부원주민 사회는 아직까지도 철저하게 고립된 북부 원주민 사회에 비하면 대다수가 문명화됐다"면서 "이 모두가 우리의 영웅인 후아나 소사 페론 여사의 은공"이라고 밝혔다.
리오네그로 지역대표 마뿌체 콜루엔체 회장도 "소사 페론 여사는 우리 부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전사였다"고 주장하고 "우리들을 위한 그녀의 숨은 희생과 숭고한 애족정신을 우리후손들에게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콜루엔체 회장은 이어 "소사 여사는 페론이 군부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자신이 페론의 생모였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마르셀리노 까노사와 법정 결혼을 하는 등 자신의 과거사를 철저하게 묻어두려고 노력했다"면서 "소사 여사의 일생은 오로지 페론의 출세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기도 했다.
아르헨 남부지역의 원주민들과 노동자들의 대변자 역할을 자원하는 것으로 노년의 삶을 보내던 소사 여사는 76세를 일기로 지난 1953년 5월 30일 오후 8시 55분 굴곡 많았던 일생을 마감했다.
'부족의 멸종을 막아낸 떼우엘체 여전사'
이 소식을 접한 페론은 자신의 전용기를 급히 현지로 보내 어머니의 시신을 수도로 모셔오도록 조치하고 아르헨 전국에 '애도의 기간'을 선포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2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차까리따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소사 여사는 죽은 다음에서야 비로소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그리운 자식 곁으로 온 것이다. 그리고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들이 보내준 대통령 전용기를 타보는 호강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려 보기도 했다.
당시 현지언론들과 외신들은 페론 모친의 사망 소식을 "깊은 슬픔에 빠진 페론 대통령"이라는 제목으로 긴급타전하고 "전 국민이 애도에 빠졌다"고 보도하면서도 페론의 생모가 원주민이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페론 대통령은 후아나 소사 여사를 자신을 낳은 어머니로 페론가의 호적에 올려 명예회복을 시켜주었다.
생모의 장례식을 마친 페론은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가 일체의 전화나 공식일정을 취소하고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후아나 소사 여사가 거주했던 코모도르 리바다비아 지역주민들은 비록 사회로부터 멸시당하는 원주민 소수민족의 딸이었으나 아르헨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통령을 낳고 키운 소사 여사의 숭고한 뜻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시내 공원에 동상을 건립하기도 했다.
페론 역시 1946년 6월4일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원주민 보호국을 신설하고 토착원주민 농장을 조성해 주었는가 하면 국회에 원주민 위원회를 구성해 부당한 인권 유린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예방토록 했다. 또한 정부가 발행하는 모든 복권수익의 10%를 원주민 복지기금으로 할당하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아르헨티나 전역에서는 원주민거주지를 법적으로 보호해주고 어떤 경우라도 이들을 삶의 현장에서 쫓아내지 못하도록 정부가 지켜주고 있다. 또한 울타리를 벗어난 소와 양들을 원주민들이 잡아먹더라도 그 가죽만 소유주 울타리에 걸어놓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법령을 공포하기도 했다.
유럽 정복군에 의해 멸종되다시피 한 원주민 떼우엘체 부족의 혈통을 가진 소사 여사는 자신이 낳은 아들이 아르헨 대통령이 되어 동족들을 보호케 함으로서 한 맺힌 조상들의 염원을 이루어주었던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