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정치는 '새로운 정치방식'에서 '새로운 혁명이론'으로, 주체사상에 버금가는 '새로운 사상'으로 끊임없이 파생하며 확장해가고 있다. '주체사상 일색화'를 연상케 하는 '선군사상 일색화'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선군정치가 민족공조, 한반도 평화, 세계 평화를 위한 책략이기도 하다는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선군정치는 북한만이 아닌 한반도 전반에 적용되는 전략이고 노선이자 이론으로 격상했다. 북한은 이같이 끊임없이 선군정치를 위한 법·제도 정비, 이론적 체계화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선군정치는 마치 북한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 모든 이론과 노선, 정책을 설명할 수 있는 '메타언어' 처럼 되었다.
'선군정치'란 당에 대한 군의 우위를 뜻하는 게 아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선군정치를 통해 북한을 그 뿌리부터 바꾸어 놓았고, 그래서 북한은 선군정치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길로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정말 선군정치는 요지부동인가? 김정일시대의 북한은 선군정치 말고 '다른 정치'를 할 수 없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선군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선군정치의 본질을 파악한다면, 선군정치가 왜 필요하고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해가 많이 풀렸지만, 한 때 남한 연구자들 사이에 선군정치로 인해 군대의 위상이 조선로동당과 버금가거나 그보다 높아져 당의 지시와 통제를 받는 기존의 당-군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온 것처럼 믿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선군정치로 인해 북한정치구조가 변한 것은 거의 없다. 선군정치는 북한정치 구조의 변화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선군정치는 그 동안 그래 왔듯이 군대를 당의 유용한 도구로 남아 있도록 하고, 나아가 그 도구성을 더욱 벼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선군정치의 정의는 이렇다.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며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 위업 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이다." 군사선행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을 한다는 것은 군을 단지 전쟁의 수단, 조국방위 수단으로가 아니라, 조국수호와 혁명과 경제건설을 다같이 통일적으로 담당하여 수행해 나가게 하고 인민군의 정치사상적, 도덕적 우월성, 혁명성, 전투력에 의거해 전국 전당 전민을 혁명적 앙양에로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이 정의에서 핵심개념이 바로 '혁명의 주력군'이다. 이는 군대를 단지 '전쟁의 수단', '조국방위 수단'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혁명 수호의 최고 보루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조국방위·정권안보·혁명수행에 군을 제1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의미
그러면 왜 혁명수호를 군대에 의존하는가? 이는 선군정치의 기본 정신이 '혁명적 군인정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혁명적 군인정신'이란 수령과 당의 지시라면 산악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군대의 투철한 명령관철의 정신이다. 당이 제시한 과업이라면 군대는 당의 가장 충실한 도구로서 변명 없이 목숨 걸고 관철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 정신에 반영되어 있다. 정권을 위협하는 반체제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당이 명령을 내리면 즉각 동원돼 총을 쏠 수 있는 '믿을 만한 군대'의 유지. 이것이 바로 선군정치의 본질이다. 동유럽사회주의 국가의 군대처럼 유사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군대'가 아닌 '정치화된 군대', 이것이 선군정치의 목적이다.
물론 '군대의 정치화'란 군대의 정치적 개입 및 영향력의 강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군이 당과 일체화되어 당의 지시를 무조건 따른다는 의미에서의 정치화이다. 선군정치를 위한 법과 제도, 이론과 정책의 거품을 걷어내면 남는 것은 바로 이런 '총대철학'이다.
막강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말에서 1990년대초에 이르는 불과 수년 사이에 사회주의 국가들이 완전히 붕괴된 것을 목격한 김정일이 선택한 것이 바로 이런 선군정치이다. 김정일은 군대를 틀어쥐지 않고는 반혁명을 진압하고,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반사회주의 책동"을 무력화시킬 수 없다고 믿고 있다.
최소한 북미관계 정상화까지는 계속된다
이쯤해서 앞에서 제기했던, '선군정치는 계속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자. 이제 우리는 수월하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선군정치가 흔들릴 것인지를 평가하는 기준은 '혁명의 수호' 혹은 안보위협이다. 북한이 군대가 나서지 않으면 혁명을 수호할 수 없거나 안보 위협이 있다고 느끼는 한 선군정치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군대 없이도 혁명수호가 가능하고 안보위협 요소가 사라진다면 순간 선군정치는 종언을 고할 것이다. 북한도 선군정치가 끝나는 시점은 북한을 위협하는 제국주의가 영원히 사라질 때라고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북핵문제가 타결된다 해도 선군정치는 끝나지 않는다. 북핵문제외에 북한인권, 마약, 위조지폐, 미사일, 재래식무기 문제 등을 해결해야 북미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다. 이런 현안들이 모두 해소되지 않는 한, 미국이 "동북아 지역을 자기 세력권에 넣고 세계에 대한 패권적 지배를 위해 조선을 기본 과녁"으로 삼고 있다고 북한이 믿는한 미국은 북한에게 제국주의 세력으로 남아 있을 것이고, 따라서 선군정치 역시 요지부동일 것이다.
그러나 안보위협은 하나의 사실이기 이전에 인식의 문제이고, 정도의 문제이다. 안보위협이 사라지는 때가 언제이고, 그래서 선군정치를 끝내기에 적절한 시점이 언제인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이 질문의 난점은 또 있다. 이 질문은 선군정치와 비(非)선군정치의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과연 그 구분이 가능한가? 국방위원회라는 기구의 위상이 한 단계 격상된 것을 선군정치의 주요한 특징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를 선군정치와 비선군정치의 경계선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당이 지배하는 체제에서 국방위원회라는 헌법상의 기구가 갖는 명백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선군정치의 다른 특징은 김정일 위원장의 군부대 중심 현지지도다. 그러나 군부대 현지지도는 미국의 위협이 높아지면 빈도가 잦고, 위협이 낮아지면 빈도가 떨어지는 등 정세 변화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선군정치 시대라고 해서 항상 군부대 현지지도의 비율이 높은 것은 아니다. 선군정치를 군부대 현지지도의 비율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 임의적이다.
대신 당조직의 정상 운영 여부를 기준으로 고려할 수 있다. 당대회 및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정기적 개최등 당조직의 정상 가동은 선군정치의 종언과 일치할 수 있다. 그러나 선군정치는 당우위를 전제로 하고 있다. 당조직이 정상화될 때 선군정치의 빛이 바래는 것은 불가피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군정치가 끝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어차피 선군정치는 당-군관계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군정치인가'이다
이렇게 양파껍질 벗기듯이 하나하나 벗기다 보면 선군정치라는 정치적 상징만 남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 사실 선군정치는 여러 가지 이질적인 요소들을 포괄할 수 있는 매우 큰 그릇이다. 어떤 구체적인 정책적 지향성을 지시하지 않는다. 군부세력의 강경한 목소리가 반영돼 대내외 정책이 강경 일변도로 갈 수도 있다. 그 반대인 개혁 개방의 길로도 갈 수 있다. 북한은 체제안정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개혁 개방을 추구할 가능성이 없지만, 선군정치를 통해 체제안정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다면 선군정치 하에서 개혁 개방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군정치는 오히려 개혁 개방의 토대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선군정치 아래에서도 여러 가지 하위의 정치방식과 정책을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선군정치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막연한 것이 될 수 있다. 이 질문은 선군정치가 어떤 뚜렷한 노선과 정책을 지향한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노선과 정책지향을 갖고 있는 선군정치인가 하는 등의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 않으면 공허해지기 쉽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이미 김정일의 모든 통치 방식을 선군정치로 명명하고 있다. 이제는 '어떤 선군정치인가'라고 묻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 질문에 별 관심이 없을지 모른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총대'이지 '선군정치'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기획연재 '2006년 북한은 어디로?'는 <프레시안>과 <북한연구학회>의 공동기획으로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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