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56주년을 앞두고 한국문학평화포럼(회장 임헌영 :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오는 10일 당시 참혹한 역사의 현장 중 하나인 경기도 김포 월곶면 용강리 '애기봉'에서 '분단을 넘어 통일로' 를 주제로 한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제3회 민통선 애기봉 문학축전'을 개최한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은 지난해에도 서부전선 임진강과 6·25 당시 민간인대학살로 상처가 깊은 경상남도 거창 등지에서 문학행사들을 진행한 바 있다. 보랏빛 오동나무 꽃망울과 아카시아 꽃향기도 유난히 짙게 풍겨오는 6월초, 애기봉에서 펼쳐지는 이번 문학행사는 시낭송과 노래, 춤과 민통선 현장 둘러보기로 진행될 예정이다.
포럼측은 이번 행사에 프레시안 네티즌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면서 이날 발표될 김준태 시인(한국문학평화포럼 부회장)의 기조강연 내용을 보내왔다.
참가를 원하는 분은 02-2279-4788로 문의하면 된다. 홈페이지는 http://www.munhakforum.or.kr <편집자>
아들 한번 고구려 사내놈처럼 기골창대하게 낳고 싶은데
통일신라 元曉여, 왜 우리는 남남북녀로 만나지 못하는가
오늘, 이렇게 함께 하니 반갑습니다.
그리고 감개무량하여 가슴 또한 둥글게, 둥글게 부풀어 오릅니다.
북녘땅과 제일로 가까운 이곳 김포 월곶면 용강리 애기봉에서 한국문학평화포럼 행사의 일환으로 <제3회 민통선 애기봉 문학축전>을 열게 되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마음입니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은 한반도 전 지역(금강산은 물론 일정에 잡혀 있지만 머잖아 평양 대동강에서도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을 대상으로 행해지고 있는데 이번 애기봉에서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실천하려는 문학축전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의미와 견결한 자세를 갖도록 해줄 것 같아 그 느낌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서부전선 최전방으로 알려진 애기봉(愛妓峰)이라?! 아름다운 이름과는 달리 동족상잔의 애환이 통곡의 울음소리로 서려 있는 이 산봉우리는 북녘땅과 1.8km 거리밖에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6·25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이곳은 밤과 낮, 하루를 간격으로 남과 북을 달리하는 전투가 되풀이되었습니다. 어제는 북녘 군대가, 오늘은 남녘 군대가 주인이 되면서 그야말로 온 산봉우리가 피의 격전장이었습니다. 중부전선 옛 철원(구 철원)에 위치한 백마고지처럼 애기봉 역시 남과 북에 고향을 둔 꽃 같은 젊은이들의 목숨으로 그 높이를 잴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러했던 곳이 어디 백마고지나 애기봉뿐이었겠습니까. 차이는 있을지언정 국토의 곳곳이 백마고지나 애기봉이 아닌 곳이 없었다는 것을 6·25한국전쟁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8·15해방 61주년, 6·25한국전쟁 56년, 민족분단 58년(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로 형성되기 시작한 1948년을 기점으로 했을 때)을 넘어서고 있는 오늘 역시도 우리의 조국은 두 동강이로 나눠져 있어 차마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박봉우 시인이 '휴전선'에서 가슴을 뜯듯이 노래한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둠 속에서 꼭 한번은 천동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를 언제 어디서나 입술에 올리고 싶음은 한라에서 백두까지 우리들의 너무나 기나긴 분열과 싸움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아! 그게 벌써 민족분단 60여 년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아직도 남과 북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내려놓지 않고 있어 우리를 슬프게 하고, 부끄럽게 하고, 원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국토와 민족분단에 대한 원인제공은 이 땅 한반도를 35년간 강점·식민통치한 일본제국주의와 이후 전격적으로 등장한 외부모순(외세)의 개입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들 자신의 뱃속에 들어앉은 내부모순(민족모순)에도 그 책임이 큽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기나긴 분단의 세월을 앉아서 울먹일 수만은 없는 것이 남과 북 오늘의 우리들이라고 생각할 때 평화통일을 앞당겨야 함은 현단계 이 땅 한반도의 숙명이고 운명입니다. 이제 '통일'은 지상명령(至上命令)만이 아니라 '하늘의 명령'이어야 한다는 것을 한반도 전체 구성원들 모두가 심장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서부전선 남쪽북쪽 경우만 하더라도 "아버지가 총 들고 서 있던 자리에 아들이 총을 들고 서고 손자녀석이 또 총을 들고 서야 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극을 이제는 끝나야 한다고 역사는 우리들을 준엄한 목소리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문학평화포럼이 펼치는 일련의 문화행사는 비록 작은 것이지만 '큰 뜻'이 담겨 있습니다. 독일통일에서 교훈을 얻고 있듯이 정치통일, 경제통일 못지않게 남북의 문화적 통일을 위한 한국문학평화포럼의 이런 작은 몸부림도 사실은 더없이 아름답고 소중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런 문화적 행사는 보다 많이 권장되고 통일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언어적 수사를 붙인다면 이와 같은 문학행사는 '통일문학르네상스' 혹은 '통일문학문예부흥'의 한 전범(典範)으로서 일단은 나름대로의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통일독일이 지금도 풀어가고 있는 숙제, 통일이 이루어진 이후에 와서도 중대사업 중의 하나로 내세우는 것은 바로 '동서독간의 민족동질성 회복'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진정한 통일은 '문화적 통일'에 기저할 때 더욱 성취도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굳이 요즘 유행하는 말로 빗댄다면 정치·경제통일은 하드웨어 컨셉이고 문화통일은 소프트웨어 컨셉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민족과 국토의 통일, 피와 살의 통일과 더불어 한 편의 시나 소설, 그림, 음악의 경우 아주 자연스럽게 지금까지의 서로 다른 체제 속에 살아 온 구성원들에게 진정한 통일에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조성해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문화적 통일이야말로 남북의 정치통일(체제)과 경제통일(가령 화폐통일·경제적 균형조건에 부합한)의 알파와 오메가로 작동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끝으로 오늘 김포 월곶면 용강리 애기봉에서 펼쳐지는 한국문학평화포럼 주최 '민통선 애기봉 문학축전'에 참석하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아울러 우리들의 이와 같은 행사에 앞으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960년대가 끝나가던 어느 날, 베트남 청룡부대에서 귀국한 본인 역시 이곳 애기봉에서 군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 그 감개무량함으로 시 한 편 읽어드리고 인사를 가름할까 합니다. '6·15시대'를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다음과 같은 시가 어쩌면 한 편의 작은 '통일시'였는지 모릅니다. 부끄럽지만 '북한여자'란 제목의 시를 다시 보여드립니다. 통일의 그날까지 늘 건강하시길 축원 올립니다.
밤마다 나는 북한여자와 잠을 자지만
아들 한번 고구려 사내놈처럼 낳으려고
그녀와 대한민국 전체로 보름달로 놀아나지만
딸 한번 평안도 기생같이 쏘옥 빼내려고
그녀의 숨겨진 땅을 진흙덩이로 뒹굴지만
늪수렁에 감춰진 열쇠를 맨주먹으로 비틀지만
첫새벽에 먼저 일어나 잠든 그녀를 보면
육이오 때 밀리어 왔다가 지금은 고작
밥벌이로 술집을 차린 피난민 여자가 아닌가
팽팽했던 몸은 어느덧 전국으로 늙어빠져버려
저무는 공사판이나 좇아다니며 기웃기웃거리는
비 맞은 암탉이 아닌가 쑥구렁의 도둑고양이가 아닌가
나 같은 막벌이나 끙끙 보듬고 식은땀 흘리는
뻣세디 뻣센 늦가을의 쑥이파리가 아닌가
내가 밤마다 만나는 북한여자는
내 살덩이를 삼팔선인 양 물어뜯으며 흐느낀다
육체여, 그날 내려온 북한 여자라도 곁에 있으니까
나 같은 막벌이꾼도 간혹 허전함을 달랜다
내 가슴 구석에도 텅 비어 있는 황량한 북한땅을
남으로 내려온 그녀의 늙은 몸으로나마 채운다
그녀의 쭈그러진 살에서나마 북한땅을 더듬는다.
― 시 '북한여자', 1969년 짓고 노래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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