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기자대회는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동포언론인들과 국내 언론인들 간의 상호정보교류는 물론이고, 유대관계를 맺는 중요한 행사로 5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재외동포기자대회의 중심에는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 정채환회장이 있습니다.
지난해 회장직을 맡은 그는, 재외동포 언론인들의 정체성을 확보해주고, 자긍심을 세워주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한국 바로 알리기를 위해 앞장서고 있습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재외동포언론협의회 정채환 회장을 만나봅니다.
그가 말하는 재외동포언론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리정부가 재외동포언론인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가?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 정채환 회장입니다.
정채환 회장은 외환은행에서 근무하던 1980년 친구인 기자협회장을 숨겨준 사실이 탄로나면서 정부로부터 시달림을 받아오다 1981년 미국이민을 떠났습니다. 이민생활에서 한인들이 인종차별 받는 것을 보면서 언론사경영을 결심했고, 1998년 주간 <코리아나 뉴스>를 창간했습니다. 지난해 6월, 제4회 재외동포기자대회에서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흩어져서 활동하던 재외동포언론인들의 유대관계 증진을 위해 전용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재외동포기자들의 실무교육을 진행하는 등 재외동언론인의 수준향상과 위상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편, 세계에서 한국을 바로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국내와 동포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지난주, 제5회 재외동포기자대회 행사를 위해 입국했고, 오늘 오후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정채환 회장님..
박인규 : 지난 29일에 입국하셨죠? 굉장히 바쁘셨겠습니다.
정채환 회장 : 예. 바쁘고.. 많은 분들을 만나서 즐거운 일정을 보냈습니다.
박인규 : 재외동포기자협의회라는 걸 일반 청취자들은 잘 모르실 것 같아요. 벌써 5회째라고 하는데 어떤 행사인지 소개를 좀 해주십시오.
정채환 회장 : 재외동포기자협의회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입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재외동포를을 불러모아서 한민족공동체를 구축하고, 민족의 동질성유지 정체성 확보 등을 주 아이템으로 해서 매년 봄에 열리고 있습니다.
박인규 : 이번 일정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행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채환 회장 : 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서울에서 첫날 한인대회를 하면서, 그 다음 울릉도, 독도, 설악산, 그 다음에 다시 서울로 와서 한명숙 총리를 만나는 강행군을 하면서도 즐거운 일정이었습니다.
박인규 : 독도는 사실 우리나라 사시는 분들도 가보고 싶어 하지만 잘 가기가 힘든 데라고 하는데, 독도까지 들어가신 겁니까?
정채환 회장 : 예. 저희들은 울릉도에서 독도로 가는데요, 보통 접안이 잘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 날은 날씨도 아주 좋아서 해외동포 기자들이 독도를 밟고 올라섰구요.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가기 어려운 곳인데, 날씨까지 도와줘서 저희들이 감동어린 기회를 가졌고, 또 참석한 모든 기자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독도는 우리땅' 이 말과 함께 월드컵 승리를 기원하는 작은 행사를 가졌습니다.
박인규 : 보통 해외언론인이라고 하면 주로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을 생각하는데, 이번 대회에 참석하신 해외동포언론인이 20개국에 70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정채환 회장 : 예. 모스크바, 사할린, 우즈베키스탄, 이런 쪽의 언론인들. 중국에서 하얼빈에서 시작해서 연변쪽에도 언론인들이 계시고, 또 남미의 파라과이 이런 쪽. 유럽에도 벨기에 같이 교민들이 1000명 미만 사는데 거기도 한인언론인이 계셨습니다. 그런 분들, 그다음 프랑스, 런던.. 전 세계에서 다 왔죠. 아직 아프리카는...
박인규 : 아프리카에도 해외동포언론인이 계시는데 아직 컨택이 안 되는 겁니까?
정채환 회장 : 예. 계시다는 풍문을 들었는데 쉽게 컨택이 잘 안 되고 있어요.
박인규 : 이번 대회에 참가하신 해외동포언론인이 20개국에 70여명인데, 실제로 다 집계를 해보면 백몇개국이라고 들었습니다.
정채환 회장 : 예. 현재 나와 있는 통계가 136개국에 회원수가 한 500여명 됩니다. 지금 현재 저희 회원가입하신 분들이 125개사가 됩니다.
박인규 : 125개사가 재외동포언론인협회에 계시고 실제로는 136개국... 대단히 많은 나라에 있으시네요.
정채환 회장 : 그렇죠. 지금 재외동포가 700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숫자는 부산광역시의 두 배가 되구요, 서울시보다 조금 작은 수칩니다. 서울시가 지금 980만이거든요. 대전시 135만의 한 네 배 정도 되는 엄청난 동포들이 지금 해외에 살고 있죠. 그래서 이 해외동포들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고, 또 재외동포 언론인들은 각 지역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한국으로 신문을 발행하고 있기 때문에 어찌보면 매일 한국어 교과서를 보급하고 있다고 봐도 되는 실정입니다. 또 재외동포들은 그런 새로운 소식이 귀하기 때문에 신문들을 버리지도 않아요. 두고 보기도 하고. 그래서 저희들이 재외동포 육성이 아주 절실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국에도 지방언론육성법이 있듯이 재외동포언론육성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 그런 건의를 했습니다.
박인규 : 지난 2일에 한명숙 총리를 만나신 게, 특히 이 한민족공동체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해외언론을 좀 정부가 도와줘야 되지 않겠느냐. 그런 것 때문에 만나신 건가요?
정채환 회장 : 그렇습니다. 세 가지를 건의드렸습니다. 재외동포 기본법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달라. 그 다음 재외동포언론육성법. 그 다음에 재외국민들.. 재외동포와 재외국민은 조금 개념이 다릅니다. 재외국민에 대한 참정권 문제.
박인규 : 재외국민은, 국적은 한국국적을 갖고 계시되 외국에 나가서 살고 계시는 분들을 말씀하시는 거죠?
정채환 회장 : 그렇습니다. 장기체류자들도 재외국민들인데요, 예를 들어서 지금 지사 상사 요원들, 유학생들 이분들이 투표를 할 수 없거든요. 간단한 예로 주미대사가 투표를 못합니다. 장관급이 자기나라 선거에 참여 못한다는 게 상당히 웃긴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도록 강구를 해야 되는데 여러 가지 작은 이유들로 아주 큰 권한을 박탈하고 있는거죠.
박인규 : 정치권에서도 외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투표권을 주자. 특히 재일동포도 많이 계시기 때문에. 그런데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한명숙 총리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정채환 회장 : 한총리께서는 상당히 재외동포들에 대해서 진정성을 갖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의원시절에도 상당히 훌륭한 정책을 건의했고.. 그런데 저희들도 다시 건의를 했습니다만, 이게 외교부에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박인규 : 왜 그렇죠?
정채환 회장 : 중국, 러시아.. 이래갖고 여러 가지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저희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죠.
박인규 : 중국, 러시아라는 건 무슨 얘깁니까?
정채환 회장 : 중국과의 외교관계..
박인규 : 중국에 사는 우리 동포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을 중국 정부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얘긴가요?
정채환 회장 : 예. 그런 문제도 있고. 러시아, 사할린 쪽에서도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만. 일부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체가 희생될 수도 없고, 그건 그거대로 외교부가 외교력을 발휘해서 해결하고, 지금 미국에도 210만이라는 사람이 있거든요. 정 그렇다면 처음에는 재외국민부터 시작을 하자는 거죠.
박인규 : 제가 알기로는, 연변 사시는 중국동포들이 대개 국적이 중국으로 돼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분들은 참정권이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럼 문제가 안될 것 같은데요.
정채환 회장 : 맞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도 미국 시민권자들에게는 필요 없거든요. 할 수도 없고. 그런데 미국에 사는 영주권자들까지는 하자. 제가 작년에 여야의원들 만나서 합의를 끌어냈습니다. 합의를 끌어내서 하기로 했는데, 또 실무적인 절차로 가는 길이 너무 멀더라구요.
박인규 : 원래 세 가지 요구를 하셨다고 그랬는데, 참정권 문제는 그렇고.. 재외동포언론인 협의회 회장으로서 재외동포언론기본법과 재외동포언론인육성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게 왜 필요한 건지 좀 설명해 주시죠.
정채환 회장 : 지금 재외동포언론기본법은 이렇습니다. 현재 재외동포를 관할하는 단체가 외교부 산하의 재외동포 재단입니다. 거기는 예산이 한 230억원 정도 되구요. 직원이 한 57명.. 60명이 안 됩니다. 그 산하단체 국제협력단, 국제교류재단이 있는데 그 세 단체 중에서도 제일 적은 단체구요. 또 저희들 예산이 국제교류재단에서 출연하는 형탭니다. 정부예산이 아니구요. 그 말은 뭐냐하면, 재외동포들에게 다른 단체가 밥이 좀 많으니까 그 밥을 좀 덜어주는 형태거든요. 덜어서 쓰라는 건데, 처음부터 예산상에서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죠. 그 정도 예산이면, 계산을 하면요, 동포 일인당 일 년에 2불 50센트 꼴입니다. 그 정도밖에 안되다 보니까 아무 것도 안되는 거죠.
박인규 : 재외동포에 관련된 예산을 늘려서 어떤 부분의 도움을 원하시는 겁니까?
정채환 회장 : 돈을 달라는 것은 아니고, 예를 들면 교육이라든지.. 2세들이 자라날 수 있는 모국방문의 기회, 그 다음 주류사회에서 성공해 나갈 수 있는 역사의식의 교육. 훌륭한 연대관계.. 이런 것들입니다.
박인규 : 한 마디로 해외에 사는 한민족 동포에 대해서 정부가 좀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달라.
정채환 회장 : 그렇죠. 사실 요즘 한류 한류 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한류라는 것은 우리의 축적된 문화가 펼쳐지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만, 거기에는 이미 각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의 보이지 않는 문화활동이 많았습니다. 그 베이스 위에 커나가는 거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회오리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외교부 산하에 있는 것을 대통령 직속으로 해달라.
박인규 : 격을 높이고 독립된 예산을 만들어달라..
정채환 회장 : 그리고 언론인 육성법도 한국에 지방언론육성법이 있듯이 그렇게 육성해서 한국어를 항상 보급하고. 또 저희들 언론인들이 해외에서 찾고 있던 자질이 개발이 안 되니까 말이죠.
박인규 : 언론인으로서의 전문성 같은 것을 키울 수 있게 고국에서 좀 도와달라.
정채환 회장 : 그리고 훌륭한 기자들을 만날 수 있는. 그 분들의 사명의식도 배울 수 있고. 김재명 전쟁기자라든지, 정문태 기자.. 이런 훌륭한 분들을 모실 수 있는 기회도 가졌으면 좋겠구요. 그래서 그런 것도 제가 건의를 하고 그랬습니다.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신 거 보면, 136개국이면 굉장히 많은 나라에 동포언론인들이 계신 건데.. 숫자는 500명....
정채환 회장 : 500개 회사..
박인규 : 저는 500명으로 들었는데 500개사군요. 이런 동포언론사들이 재정이나 이런 데서 어려움은 없습니까?
정채환 회장 : 많이 어렵습니다. 영세하고, 가족단위로 비즈니스를 하니까 사실 전문성 보다는... 생활하기에 힘든 경우가 많죠. 그래서 양질의 기사를 생산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각 지역의 동포소식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예를 들어서 KBS나 연합에서 모두 특파원을 보낼 수가 없거든요. 그러면 현지동포들이 그 생생한 소식을 전할 수가 있습니다.
박인규 : 해외에 계신 언론인들이.. 포탈이라고 합니까?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정채환 회장 : 예. 각자 회원사들이 글을 올리고 있고, 저희들이 그걸 연합뉴스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거길 들어가면 각국에 퍼져있는 해외동포들의 소식을 많이 볼 수 있겠군요.
정채환 회장 : 예. 대륙별로 다 볼 수 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 정채환 회장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정채환회장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시기도 한데요, 지금부터는, 어떻게 해서 재외동포 언론인으로 활동하시게 됐는지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1980년 당시 은행원이면 상당히 좋은 직장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하다가 기자협회장과 엮이셔서 고생을 하시게 됐는지요...
정채환 회장 : 아닙니다. 그건 큰 문제는 아니고 그 당시 시대상황이 좀 암울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박인규 : 그때가 광주민주화항쟁이 있고.. 언론계에서는 제작거부라는 걸 해서 제 기억으로는 아마 1000명 정도가 여름에 강제해직 당하고 그럴 때였는데..
정채환 회장 :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직당하고 할 때.. 암울한 시대에 저항할 수 있는 의식만 있었지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심리적인 갈등을 겪고. 또 다른 삶을 한 번 찾아보자 그래서 보따리를 쌌습니다.
박인규 : 그 당시 기자협회장은 저도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신데. 현재 열린우리당에 계신 김태홍위원이신데요, 그 분이 어떻게 해서 정채환 회장님한테까지 도피를 하시게 된 겁니까?
정채환 회장 : 어떻게 해서인지는 모르겠고요, 잡으러 다니니까 도망을 갔고.. 그 양반 주변 친구들도 제 친구들이고. 그래서 아마 첫날 저희한테로 온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첫날이면 5월 18일 정도 됐겠네요?
정채환 회장 : 처음이란 말이 의미가 있다고.. 그래서 조금 시달리고...
박인규 : 그것 때문에 은행을 그만 두신 겁니까?
정채환 회장 : 그것 때문은 아니구요, 그것도 조금 계기가 됐겠죠. 전반적인 암울한 시대를 제가 저항할 능력이 없어서 잠깐 고개를 숙이고 있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81년이면 미국으로 떠나는 것도 제주도 가듯이 하루아침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시간이 좀 걸리는데, 그래서 떠났습니다.
박인규 : 미국 가신 게 81년도고, 지금 현재 LA에서 운영하시는 신문이 시사주간지 '코리아나 뉴스'인데, '코리아나 뉴스'가 창간된 게 98년입니다. 17년 동안은 사실 언론인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셨네요?
정채환 회장 : 네. 일반 사업을 했습니다. 부동산, 무역업을 했구요.. 제가 거기서 주말한글학교 교장직을 한 14년간 맡아서 했고. 미국의 대학입학시험에 한국어가 수능과목으로 들어갈 수 있는 SAT2라는 게 있습니다. 거기에 제가 초대 이사장으로서 전 미국의 대학과 고등학교에 ㄴ한국어반을 많이 개설했습니다. 그 이사장을 하면서 제가 교육부 예산을 확보해서 지금도 그 예산이 유효하고. 많은 한국어학교가 그것 때문에 개선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박인규 : 말하자면 처음에는 정착을 하셔야 되니까 사업을 하시다가.. 교육활동을 주로 하시다가 언론까지 가셨습니다. 언론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신 건 나름대로 계기가..
정채환 회장 : 어떤 계기 보다도 제가 쭉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저희 신문사 캐치프레이즈가 '성한 이에게 깃이 되고 악한 이에게 매가 된다.'입니다. 그 때 당시 제가 미국에 갈 때만 해도 한국의 언론이 정말 언론다운 구실을 못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제 속으로. 그래서 작지만 강한 신문을 한 번 만들어 보자. 그래서 한국의 정치, 경제를 다 커버할 수는 없지만 동포사회에서 진정한 목소리를 내는 매체를 만들어 보자. 그런 뜻이었습니다. 소박한 꿈입니다.
박인규 : 미국 같은 경우 동포들이 하시는 주간지, 월간지, 일간지가 수없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코리아나뉴스는, 자체평가하시긴 그렇지만 많이들 보고 계십니까?
정채환 회장 : 괜찮은 신문입니다. 일간지에는 비교할 수 없구요, 주간지로서는 좀 평판이 있고. 늘 작지만 강한 신문이라는 구호를 외쳤고. 제가 제 1회 때는 청와대에 기자들이 방문하게 돼 있었는데 저희는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 동안의 기사가..
박인규 : 말하자면 너무 비판적이다.. 그런 건가요?
정채환 회장 : 예. 그래서 전 기자는 다 갔는데 저는 뺐습니다.
박인규 : 2002년 첫 번째 모임에 정채환이라는 신문사 운영하시는 분은 너무 비판적이기 때문에 청와대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런 겁니까?
정채환 회장 : 그렇게 됐습니다.
박인규 : 말씀 나왔으니까 여쭤보고 싶은데요, 첫해가 2002년도 재외동포기자대회죠. 어떻게 해서 그게 조직이 될 수 있었나요?
정채환 회장 : 저희들이 조직한 건 아니고, 한국기자협회에서 아마 열심히 섭외를 했을 겁니다. 각 동포사회를 탐문하고 해서, 한국기자협회에서 셀렉트를 해서 왔죠. 그래서 우리가 모인 김에 이건 우리끼리 흩어지면 안 된다.. 해서, 느슨한 관계라고 갖자 해서 첫 회는 강제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회, 3회째는 대륙별로 관사를 두고, 대표관사를 만들고. 그리고 4회째는 좀 더 리더십이 필요한 단체가 돼야 되겠다 해서, 회장체제로 바뀌면서 제가 회장이 됐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초대회장이시네요. 첫 회에는 정부에서 기피인물까지 되셨던 분이 어떻게 회장이 되실 수가 있었습니까?
정채환 회장 : 정부에서 기피한다고 해서 언론인으로서 생명이 다한 것도 아니고. 어떤 부분에서는 그것이 동포주간지로서의 영광스러운 부분도 되죠. 정부에서 인정하는 건 아니니까. 저희들끼리 뽑는 거니까 그런 부분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회장 취임하신 이후에 '대한민국 바로 알리기'를 위한 캠페인을 해보자... 라고 해서 상당히 활발하게 하고 계신데요,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십니까?
정채환 회장 : 웹사이트나 동포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도서관 같은 곳에 있는 한국에 대한 정보 중에 오류가 상당히 많거든요. 그 오류를 저희들아 찾아서 시정하고 해외홍보원에 알려줍니다.
박인규 : 현지에서 보는 한국관련 정보가 틀렸다 그러면 동포언론인들이 알려서..
정채환 회장 : 그렇죠. 알려서 직접 컨택도 하구요. 그래서 시정된 게 백 몇 건이 됩니다. 지금 또 2차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136개국에 흩어져 계시니까 그 분들이 다 찾으면 많이 찾을 수 있겠네요.
정채환 회장 : 대단합니다. 그리고 공무원들을 파견해서 출장가서 한다든지 이런 건 불가능한 얘기고. 영사관에서 가는 것도 불가능한 얘깁니다. 다만 저희 동포들이.. 자녀들도 다 있으니까.. 가서 예사로 넘기던 것을 조금 더 깊게 보게 되는 계기도 되고, 그렇게 해서 많은 오류들을 찾아냈구요.
박인규 : 정채환 회장께서 재외동포기자대회 첫 회에 비판적이란 이유로 청와대에 못 들어가셨다는 얘길 하셨는데, 해외동포 언론 중에서 이른바 친북이다.. 이래서 인터넷 사이트까지 차단당하고. 제가 알기론 미국의 민족통신 같은 데가 있는데,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정채환 회장 : 저희들은 그런 차단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요청문을 냈습니다. 기자협회장과 저와 공동명의로 이걸 해제해 달라고 요청문을 내고, 그 요청문을 한명숙 총리에게 전달했습니다.
박인규 : 혹시 통일부에도 내셨습니까?
정채환 회장 : 통일부에는 대담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여럿 카피를 해서 기자협회에서 다 관계부처에 내거나..
박인규 : 제가 최근에 어떤 세미나 자리에서 이종석 장관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요, 폐쇄한 건 정보통신부에서 친북이나 그런 게 아닌 다른 이유로 폐쇄했는데, 어느 누구한테도 요청이 안 들어오더라. 요청만 하면 조치할 수 있다.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정채환 회장 : 어쨌든 저희들은 나름대로 다 요청을 했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재외동포 입장에서는 재외동포 언론들을 친북이다 반북이다..라고 가르는 건 문제가 있다.
정채환 회장 : 그렇습니다. 이데올로기 문제는........ 옛날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젊었을 때 사회주의 아닌 사람은 바보고, 늙어서 거기 빠지는 사람도 바보다. 그런 것도 있지만, 많은 걸 정부와 교환해야죠. 저희들 학교다닐 시절만 해도 타임지 같은데 검은 줄이 팍팍 그어져 나왔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막아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본인들이 읽고 판단해야죠.
박인규 : 초대회장으로서 임기가 2년. 1년 정도 지나셨는데, 아무래도 초대회장이시기 때문에 재외동포언론인협의회의 기틀을 만들고 싶은 게 상당히 많으실 텐데, 앞으로 1년 동안 꼭 해놓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떤 건지 마무리로 말씀해 주시죠.
정채환 회장 : 제가 꼭 해놓고 싶은 것은.. 해외동포 소식이 포탈뉴스로 팔릴 수 있을 정도의 수준까지 가야겠구요. 그 다음, 가장 시급한 재외동포언론인들의 자질육성. 예를 들어서 한국에서 잦은 세미나들을 베풀어줬으면 좋겠고. 그 다음, 재외동포언론육성법에 대해서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일을 하려고 합니다.
박인규 : 말씀을 듣고 보니까 앞으로 하실 일이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하여튼 재외동포언론인들이 한 데 뭉치면 전 세계에 한민족공동체가 생길 수 있으니까 앞으로 많은 일 하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채환 회장 : 감사합니다.
박인규 :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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