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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3년 버티기'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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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3년 버티기'의 함정

한반도 브리핑 <7> '버틸 역량' 되지만 '그냥 버티기'는 패착

지난 해 베이징에서 발표된 9.19공동성명의 해석과 관련해 미국과 북한 간의 이견이 분출된 이후 6자회담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한반도 비핵화,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 , 양자.다자간 경제협력 증진, 동북아시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 추구 등 공동의 목표를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해 단계적 방식으로 이행하기로 합의했지만, 이행순서와 관련해 동시행동의 원칙을 공동성명에 못박아두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 등 4개 목표의 개별 이행절차에 대해서는 개략적인 설명이 있지만, 목표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언급이 없다는 점은 9.19공동성명의 근본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는 상관 없이 한반도 비핵화부터 추진하자고 하고, 북한은 북한대로 한반도 비핵화 이전에 대북적대정책이 종식되었다는 징표부터 보여달라고 주장할 여지를 남겨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추가적인 협상을 통해 시정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 6자회담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9.19공동성명 발표 직전에 취해진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 건을 필두로 본격 제기된 북한의 불법행위와 인권 문제 때문이다. 미국이 북핵문제에서 '북한문제' 전반으로 관심을 돌려, 협상에 의한 문제 해결 대신 '압박에 의한 항복'이나 정권교체를 꾀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비록 최근 들어 미 국무부 일각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거론하고, 리처드 루가 상원 외교위원장이 가칭 '북한관계법'의 입법을 추진하는 등 협상파에 힘을 실어 주려 하지만, 미국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변화 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아직 때이른 감이 있다. 두 가지 방안 모두 '미국과 북한이 동시행동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교환한다'는 대원칙에서 벗어나 있고,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할 의지가 있다는 증거 또한 없기 때문이다. 북한도 북한대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적대정책이 지속되는 한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출범하는 2009년까지 이른바 '3년 버티기'를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김근식 교수, 관련기사 바로가기☞)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미국이나 북한의 근본적 정책 변화 가능성을 논하기 보다 북미간의 3년 대치가 얼마나 현실성이 있고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특히 북한이 3년을 버틸만한 경제적 역량이 있는지, 또 북미간의 대치 상태가 3년 지속될 경우 각각의 입지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따져 봐야 할 것이다.

북한경제에 대한 미국 내 시각의 퇴행성

북한경제에 대한 미국내 연구자나 논객의 시각은 흥미롭게도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점에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본인들은 북한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하지만, 북한경제에 대한 이들의 진단은 8년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2000년대에 들어 북한이 취하고 있는 개혁.개방 정책에 대해 논하는 경우에도 이와같은 시험적인 조치가 오히려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사회적 안정을 저해하고 있다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1990년대에 북한 경제체제가 사실상 붕괴되었기 때문에 북한이 중국의 경제개혁 등에서 실용적인 교훈을 찾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주장도 있다.

북한경제의 실태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이들의 관점에서 볼 때 위폐, 마약, 위조담배 등의 제조 또는 유통과 관련된 북한의 불법행위는 북한의 경제난을 일정 부분 해소하는 중요한 수입원으로 간주된다. 일부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북한의 경제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북한의 불법행위가 늘어났고 적발사례도 그만큼 늘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는 북한이 해마다 무역수지 적자 전액에 해당하는 5억 달러 정도를 불법행위로 충당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북한경제에 대한 이들의 부정적인 평가는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만약 북한경제가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려운 상태에 처해 있다면, 대북압박을 통해 북한의 항복을 받아낸다는 구상도 상당히 현실성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일부 연구자나 논객의 입장에서는, 북한을 압박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는 정책담당자들에게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정보'를 제공할 유인도 있을 것이다.

'경제성'까지 따지게 된 북한의 경제정책

그렇다면 북한경제의 실상은 어떠한가? 물론 북한이 국민계정 등 기초적인 통계도 갖추고 있지 못한 점을 감안할 때 북한경제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가용한 경제통계와 최근 수년간 북한이 추진한 정책 등을 놓고 볼 때 북한의 '항복'이 임박했다고 믿는 것은 미국내 강경파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판단된다.

북한의 경제통계 중 가장 믿을만한 무역통계에 따르면, 북한경제는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큰 타격을 입고 쇠퇴의 길을 걷다가 1990년대 말을 기점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대외무역과 남북교역을 합한 북한의 총무역액은 1990년 41.9억달러에서 1998년 16.6억 달러로 무려 60%나 감소했으나, 1999년 18.1억 달러로 늘어나기 시작하여 2005년에는 40.8억 달러로 1990년대 초 수준을 회복하였다.

특히 2000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베이징 방문, 6월 남북정상회담, 7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양 방문으로 북한의 대외환경이 크게 개선된 이래 총무액역은 급격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비록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여 체제안정과 경제발전을 도모하려던 북한의 구상은 북핵문제와 일본인 납북문제가 대두하면서 수포로 돌아갔지만, 북한은 중국, 남한, 러시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함으로써 '고난의 행군' 시절의 국제적 고립이 재연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중국, 남한, 러시아도 거의 경쟁적으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핵 문제 등과 관련하여 급격한 상황변화가 없는 한 대북경제제재 조치가 실현될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또, 북한의 경우 비록 1970년대 중국처럼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거시경제의 안정을 바탕으로 '계획' 부문 주변에 '시장' 부문을 점차 키워나가는 식의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할 여건은 갖추고 있지 못하지만, 부분적인 대외관계 개선과 경제회복을 배경으로 경제의 공식부문과 비공식부문 사이에 균형을 찾고 외부자본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북한 경제체제의 붕괴로 인해 의미있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미국 내 일부 지적과는 달리, 1996년 이후 처음으로 북한이 올해 들어 다년 계획을 세웠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또 외부사조의 유입을 차단하기 급급했던 과거와는 달리 개성공단의 예처럼 이제는 경제성을 중시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불법행위 규모에 대한 미국내 일부 주장도 상당히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이 매년 무역수지 적자 전체를 불법행위로 충당한다는 발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무역수지가 마이너스인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북한도 외부투자의 유입이나 해외에서의 송금, 외채의 증가 등을 통해 무역수지 적자를 충당할 여지가 있다. 특히 중국에서 도입하는 석유 등 북한의 일부 수입품목은 차관 형태로 들여오고 있고 대북 지원성 교역도 상당하기 때문에 북한이 실제로 해소해야 하는 무역수지 적자는 매년 5억 달러가 아니라 1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영훈 박사, 관련기사 바로가기☞)

'불법행위' 자체와 그에 대한 제재 모두 제한적인 효과만

위폐, 마약, 위조담배 등 불법행위와 관련해 미국 정부 내에서 그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 기관의 판단도 북한이 불법행위를 통해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의 규모가 제한적임을 시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위폐 문제를 다루는 경호실(Secret Service)이 지난 4월 25일 미 의회 상원 청문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989년 이후 압수된 이른바 '수퍼노트'의 총액은 약 5000만 달러로 연평균 280만 달러 수준이다. 이에 반해 같은 기간 동안 미 경호실이 압수한 콜롬비아산 달러 위폐의 규모는 3억8000만 달러를 초과한다. 참고로 현재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미화의 규모는 7500억 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북한이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수퍼노트'의 경우 그 유통량이 아니라 높은 품질이 미 경호실의 주된 관심사다.(http://hsgac.senate.gov/_files/042506Merritt.pdf) 이는 북한에서 제조하는 위폐의 규모가 해마다 수천만 달러에 이른다는 미국내 일부의 주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또 북한의 마약 및 위조담배 밀매와 관련해서도 미 국무부의 마약 및 사법집행국은 조심스런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북한내 아편 재배 규모에 대해서는 신뢰할 만한 추정치를 제시하기 어렵고, 위조담배의 경우 2002년 이후 중국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자 상당 수의 중국 기술자들이 북한으로 이주하여 불법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http://hsgac.senate.gov/_files/042506Prahar.pdf) 이 경우 위조담배 밀매를 통해 북한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판매대금 전액이 아니라 중국 기술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보상을 받는 수준에 그치게 될 것이다. 위폐, 마약, 위조담배의 제조 또는 유통과 관련된 불법행위가 근절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북한이 불법행위를 통해 조달하는 금액이 어마어마하다는 주장은 근거가 별로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BDA 2400만 달러에 왜 집착하는가

한편 방코델타아시아 등과 관련된 금융제재 조치는 북한의 불법행위뿐만 아니라 정상적 거래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겠지만, 현 단계에서 그 실효성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금융제재조치가 불법행위의 위축은 물론 북한경제 전반의 침체를 가져올 것이라는 미국내 강경파의 '자가발전'에도 불구하고, 대리인 명의로 계좌를 운용하는 등 금융제재조치를 피해나가는 것이 어렵지 않을 뿐 아니라 북한의 대외 실물거래가 지난 해 9월 이후 타격을 받았다는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도 올해 초에는 방코델타아시아 건에 대한 북한의 초기 반응에 고무되어 '드디어 북한의 약점을 찾아냈다'는 견해가 대세를 이루었으나, 이제는 대북금융제재의 경제적 효과가 제한적이고 오히려 그 정치적 상징성이 더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즉, 북한이 방코델타아시아에 예치한 2400만 달러는 그리 큰 돈이 아니지만 북한 고위층의 돈이기 때문에 북한 관리들은 충성심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격앙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고, 계좌동결을 대북 적대정책의 징표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북한의 경제회복세와 개선된 대외환경, 대북 금융제재조치의 제한적 실효성 등을 감안해 볼 때 북한이 앞으로 3년간 버틸 경제적 역량은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의 항복이 임박했다거나, 북한이 먼저 양보하여 6자회담을 재개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북한은 대북 금융제재를 일정 부분 해소하는 가시적 조치가 취해지기 전까지는 관망하는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3년 '그냥 버티기'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고착시켜

하지만 북한의 '3년 버티기'가 실행가능한 전략이라고 해도 이것이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특히 미국 내에서 북한의 불법행위와 인권문제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3년 버티기'를 할 경우,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북한과의 적극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질 것이다. 위폐와 마약 밀매, 정치범 수용, 민간인 납치, 인권유린 등으로 점철된 북한의 부정적 이미지가 향후 3년 동안 고착화될 경우, 설령 차기 행정부가 북핵문제를 해소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른바 '범죄정권'과 협상하는 것에 대해 큰 정치적 부담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미국내 강경파는 비록 북한의 항복이나 정권교체를 끌어내지는 못하더라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지연시키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마치 미국의 어떤 정파도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과 관계 정상화를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것처럼 북한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쿠바와 달리 핵무기를 생산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미국의 관심을 끌 수 있겠지만, 이와 같은 방식은 북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더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북한은 설령 6자회담이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단순히 '3년 버티기'를 고집하기 보다는, 외부와의 교류를 활성화하면서 북한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해 '고백외교'의 부작용을 체험한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불법행위 및 인권문제를 시인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이와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 조처를 취할 여지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위폐나 마약 밀매 대신 외부와의 경제협력을 통해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현 단계에서 정치적 자유권은 허용하기 어렵더라도 인신구속 등과 관련된 기초적 인권은 보장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인권문제와 관련해 1989년 천안문 시위 이후 중국이 '대화' 등 외부 인권단체와의 협조 하에 취한 조치를 참조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6자회담과 관련해서도 비핵화부터 관철하려는 미국에 맞서 관계정상화부터 요구하는 '맞불' 방식을 넘어, '미국과 북한이 동시행동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교환한다'는 대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3년만 그냥 버티면 모든 일이 풀릴 것이라는 착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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