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빅뱅' 기류에 한나라당도 '꿈틀꿈틀'

'피습사건'후 反朴 긴장도 높아…昌 움직임에도 주목

뻔한 선거가 거의 끝나 간다. 작년 연말부터 한나라당의 압승이 기정사실화 됐던 이번 지방선거에서 16개 광역 단체장 가운데 적어도 11개를 한나라당이 '먹는' 판에는 놀랄 이가 없다. 다 이겨 놓은 승부에 대전과 제주까지 포함되느냐 마느냐는 지엽적 관심사일 뿐이다.
  
  시끌시끌한 곳은 아무래도 여권이지만 한나라당 내에서도 물밑에선 역학관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 여파로 이명박 서울시장의 독주와 박근혜 대표의 힘겨운 추격전으로 요약됐던 당내 대권 구도에 파열음이 났다. 북새통에 이회창 전 총재도 슬그머니 거동을 시작했다.
  
  5.31 이후 정치권에 몰아닥칠 후폭풍이 한나라당이라고 비껴갈 리 없어 보인다.
  
  박근혜의 예상 밖 '독식', 이명박의 선택은?
  
  한 달 전 마감된 지방선거 공천의 결과를 좋고 당 내에는 '재주는 박 대표가 넘고 실속은 이 시장이 챙겼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전국에서 터지는 잡음과 비리를 처리하느라 애를 쓴 사람은 박 대표지만 서울.경기.인천 등 주요 지역에서 공천을 받은 인사들은 이 시장과 더 가깝다는 것이 공통된 풀이였던 것이다. 더욱이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후보가 정해지면서 이런 관측은 더욱 힘을 얻었다.
  
  대권으로 가는 길목에서 당내 후보 다툼부터 거쳐야 하는 양 측으로서는 한 지역의 표심을 가르는 광역단체장을 '누구의 사람이 맡느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대선 전초전'이란 별칭이 붙은 선거를 앞두고 공천에서부터 이 시장이 판정승을 거뒀으니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하더라도 박 대표가 얻을 실익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다시 뒤바뀌었다. 선거전 중반에 박 대표가 피습을 당한 것이 결정적 변수였다. 사고를 당하고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박 대표의 모습이 중점적으로 보도됐고 박 대표에 대한 호감과 동정이 맞물려 한나라당 지지율뿐 아니라 박 대표 개인에 대한 선호도도 수직상승했다.
  
  그것은 대중적인 이미지 각인효과에 그치지 않는다. 주목받고 있는 대전시장과 제주도지사 선거를 뒤집을 경우 박 대표는 여야 대권주자를 통틀어 이번 선거 최대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당분간 최소한 당내에서는 반(反)박근혜 세력이 드러내놓고 박 대표와 각을 세우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표가 지방선거 성과를 '독식'하게 되는 상황은 선거가 끝난 뒤 반(反)박근혜 세력의 긴장과 결집을 촉진하는 매개가 될 것이라는 상반된 전망도 나온다. 이는 대선까지 한나라당의 안전항해 여부가 가늠될 7월 전당대회에 당내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전개와 무관치 않다.
  
  일찌감치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시장 측에서 의욕을 보이고 있는 당권주자군이 떠올랐고, 소장파들도 외부인사영입론을 주장하며 양측의 대리전 성격에 제동을 건 상태여서 3각 갈등의 표면화는 피할 수 없는 수순으로 보인다. 지방선거 분위기를 이어 박 대표 측이 당권 장악에까지 성공할 경우 불안정성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박 대표 측의 인사가 당내 대권경쟁을 관리할 당 대표에 오를 경우 상당한 당내 갈등을 거쳐 이 시장이 결국 탈당하는 시나리오까지 당내에선 공공연하게 거론돼 왔다.
  
  한나라당은 정치권 빅뱅 무풍지대?
  
  기본적으로 한나라당의 향후 진로가 박근혜-이명박 갈등을 축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는 하지만 이를 둘러싼 당 안팎의 변수는 몇 가지 더 있다.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그 중 하나다. 당초 오세훈 후보가 당내 경선을 넘어설 때만 해도 손 지사도 적지않은 이득을 챙겼다는 분석이 많았다. '당심을 넘어선 민심'이라는 오세훈 효과는 손 지사가 대권경쟁에서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희망사항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박근혜-이명박 간의 양강구도가 더욱 고착화된 구조로 지방선거가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손 지사로서도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손 지사가 7월 전당대회까지 어떤 태도를 취해나가느냐도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대목으로 꼽힌다.
  
  이회창 전 총재의 '역할론'도 고려해야 할 변수다. 선거 기간 중 거동을 시작한 이회창 전 총재는 18일에는 고향인 충남·예산을, 21일에는 접전지인 대전·천안을 방문해 후보들을 격려했다. 박 대표가 피습을 당해 입원하자 병원에 모습을 비치기도 했다. 이 전 총재의 시선이 단순히 지방선거에 맞춰져 있는 게 아니라는 분석이 지속적으로 뒤따랐다.
  
  일각에선 이 전 총재는 물론 한나라당 안팎의 보수파들이 현 한나라당의 방향에 심심찮게 불만을 토로해 온 만큼 이들이 대선을 앞두고 당내 노선갈등의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한편 한나라당 외부의 정치권 지각변동도 어떤 식으로건 한나라당에 여파를 미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권과 민주당, 고건 전 총리가 결합하는 통합방식, 즉 반(反)한나라당 전선 구축이 진행된다면 한나라당도 자구책 마련이 필수적이다. 이 경우 뉴라이트 등과의 결합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또한 헤쳐모여식 정계개편으로 파장이 커지고 한나라당 내부 갈등의 강도가 심각할 경우에는 예측불가능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다. 정치권 전반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완전한 새판짜기로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각축전을 벌이는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관심의 핵을 이루고 있긴 하지만 여기에 더해 반등을 모색 중인 손학규 경기도지사,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이회창 전 총재, 그리고 잠재적으로 뉴라이트의 가세에 이르기까지 한나라당의 '선거 이후' 국면은 오히려 태풍의 눈으로 바뀔 가능성마저 있어 뵌다. 이들이 수면 아래에서 벌이는 물질이 언제쯤 수면 위로 파장을 드러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