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에 관한 법률 이론에 관한 저명한 법학자인 미국 스탠퍼드대학 로렌스 레식 교수는 26일 서울 광화문 미디어영상센터에서 '한미 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공대위'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미국의 지적재산권 제도는 균형을 잃고 있으며, 균형을 잃은 지적재산권 제도를 FTA 등을 통해 다른 나라에 전파시키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적재산권을 종교처럼 떠받드는 미국"
로렌스 레식 교수는 "저작물에 대한 저작자의 권리는 물론 존중돼야 한다"면서 "그러나 저작자의 창작활동은 반드시 다른 누군가의 저작물이나 사회공동체의 문화유산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지적재산권은 또다른 창조적 활동을 저해하지 않을 수준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의 지적재산권 제도는 '특허권과 지적재산권을 마치 종교처럼 떠받들면서' 문화의 생산적인 창조를 저해하고 있다고 그는 비판했다.
레식 교수는 "미국이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해 맹신하는 배경에는 할리우드라는 커다란 상업적 생산자의 이해관계가 자리잡고 있다"면서 "할리우드의 이데올로기에 전염된 정치인들 또한 저작권 보호가 효과적인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자유문화의 전통을 잊었는가"
레식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미국의 지적재산권 제도는 미국의 전통적인 '자유문화(Free Culture)'에서 벗어난 것이다.
레식 교수의 책 <자유문화>에 따르면 '자유문화'란 '허가문화(Permission Culture)'의 반대말로 "누구든 문화활동을 할 때 자유로이 갖다 쓸 수 있는 공유된 문화유산이나 저작물이 상당히 폭넓게 존재하는 문화"다.
레식 교수는 이 저서에서 "미국의 전통 속에서 지적재산권은 창조성이 풍부한 사회를 위한 토대이지만 창조성이란 가치에 비해서는 종속적인 위치에 있었다"면서 "그러나 현재는 미국의 역사 속에서 문화가 지금보다 더 많이 사적으로 소유됐던 적이 결코 없으며, 문화의 이용을 통제하는 권력의 집중이 지금처럼 무비판적으로 수용됐던 적도 전혀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19세기보다 못한 21세기의 저작권 제도"
이날 강연에서도 레식 교수는 특허가 범람했던 19세기와 자유로운 지적재산 이용의 폭이 다소 넓어진 2차대전 이후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지나친 보호는 문화 창조의 폭을 좁힌다고 역설했다.
그는 "에디슨으로 대표되는 발명의 시기인 19세기에는 특허를 마구잡이로 내주기 시작하면서 1차 발명, 2차 발명 등이 이어져 법정다툼이 일어났고 산업이 혼란에 빠졌다"면서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연방정부가 특허권을 정리하면서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됐고, 그 덕분에 인터넷과 바이오텍산업 등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21세기에는 오히려 19세기 때보다 더한 통제로 모든 산업에서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면서 "미국 정부는 저작권과 특허권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혜택보다 크다면 다시 검토해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시장의 힘을 이용해 FTA 체결에 압박"
레식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와 관련해 "다른 나라들은 미국에 대해 그간 지적재산권과 공정이용(Fair Use) 간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 왔는지를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시장개방이나 FTA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미국은 시장의 힘을 이용해 FTA 체결을 위해 많은 나라들에 압력을 넣고 있으며 많은 나라들이 저항을 못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오히려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대해 그렇게 많은 특허와 지적재산권이 반드시 필요한지, 그 제도가 문화의 창조성을 확장할 수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FTA에 따라 지적재산권이 강화되면 소수의 사람들에게 일정 부분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겠지만, 지적재산권이 훨씬 더 많은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맹신은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인터넷 기술 등의 발달로 왕성한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면서 "한국도 한미 FTA 등으로 인해 지적재산권 제도의 균형을 잃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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