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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회 '자유 문화' 억압하는 지적 재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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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회 '자유 문화' 억압하는 지적 재산권"

[화제의 신간] 로렌스 레식의 <자유문화>

미국의 저명한 사이버 법학자인 로렌스 레식(Lawrwnce Lessig) 교수는 이미 <코드: 사이버 공간의 법이론>(김정오 옮김, 나남출판, 2002)이라는 번역서를 통해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된 바 있다. 이번에 번역된 <자유문화(Free Culture)>(이주명 옮김, 필맥, 2005)라는 저술을 통해 다시 한번 레식 교수는 한국의 독자들과 만나게 된 셈이다. 또한 <아이디어의 미래(The Future of Ideas)>가 조만간 번역될 예정이어서, 결과적으로 사이버 공간의 법에 관한 그의 대표 저술들이 모두 한국에 소개될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레식 교수는 많은 이들에게 낯설기만 하다. 따라서 다음에서는 그의 사이버 법이론 저술들이 출간된 순서에 따라 그의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연구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이번에 출판된 <자유문화>라는 저술이 한국 사회에 던져주는 의미를 짚어본다.

사이버 공간에 대한 법학자들의 인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사이버 공간을 현실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로 인식하고, 현실 공간의 법 이론과는 다른 새로운 법 이론을 정립해야 한다는 견해다. 다른 견해는 사이버 공간도 인간이 만들고 활동하는 세계이므로 현실 세계의 법 이론을 통해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는 견해다.

레식 교수는 이러한 두 부류의 극단적인 시각 중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어정쩡한 절충설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는 사이버 현상 전체를 바라보고자 하는 거시적 시각을 가지고 이러한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문제를 심도 있게 파헤치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법리를 발견하고 그 법리를 통해 사이버 공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사이버 공간을 현상적 측면에서 인식하는 차원을 넘어 규범적 처방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첫 번째 견해와 다르고, 현실 세계가 사이버 공간을 규율한다는 차원을 넘어 사이버 공간이 현실 세계에 미칠 영향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두 번째 견해와도 차이가 있다.

***사이버 공간의 법, 코드**

이러한 전제에서 레식 교수는 <코드: 사이버 공간의 법이론>이라는 저술을 통해 사이버 공간의 법리학적 연구와 대안 모색을 위한 기초로 중의적인 '코드(Code)'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동부 연안 코드'와 '서부 연안 코드'가 바로 그것이다.

'동부 연안 코드'란 의회가 제정한 성문법을 의미하며 '서부 연안 코드'란 사이버 공간을 작동하게 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내부에 새겨져 있는 명령들을 의미한다. 레식 교수의 이러한 비유는 성문법 제정이 주로 미국의 동부 연안에 있는 워싱턴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기술적 코드 제작은 주로 미국의 서부 연안에 있는 실리콘 밸리, 레드몬드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데에 착안한 것이다.

즉 사회의 규제를 이야기할 때 과거에는 단지 법이라는 것에 그 초점을 둠으로써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정보기술의 발전에 기반을 둔 지금의 정보화 사회에서는 기술적인 변화까지도 고려해야만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사이버 공간에서는 기술적인 요소인 '코드'라는 것이 법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는 견지에서다. 또한 그는 현재의 사이버 공간의 상황이 자유와 통제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있다고 보고 인간의 선택이라는 것이 이상과 같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 코드에 새겨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레식 교수의 주장은 법이라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법적 원리에 의해 형성된다는 기존 법학자들의 보수적인 관점과 확연하게 구별된다. 이는 레식 교수가 법을 포함한 모든 것은 정치적이라고 주장하는 비판법학(Critical Legal Studies)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레이어'를 통한 사이버 공간의 분석**

레식 교수는 <아이디어의 미래>를 통해 이러한 그의 주장을 더욱 구체화했다. <코드: 사이버 공간의 법이론>에서는 사이버 공간의 구조(architecture) 자체에 주목했다면, 이 저술에서는 이러한 구조와 혁신(innovation)의 관계, 그리고 공유재(commons)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자 했다. 그는 이를 위해 사이버 공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분석할 레이어(layer) 개념을 도입한다.

물리적 레이어(physical layer), 논리적 레이어(logical layer), 컨텐츠 레이어(content layer)가 그것이다. 이는 규범적 분석을 위해 기존에 제시되었던 네트워크의 기술적 분석에서의 레이어의 구분을 단순화한 것이라고 레식 교수는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각 레이어의 영역에서 어떻게 공유적 가치가 상실되고 통제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레이어 구분은 사이버 공간이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분석에 그 목적이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융합 현상'과 접목될 경우 법제적인 측면에서 많은 유용함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즉 과거의 정보통신 관련 법규의 제정 방식은 새로운 서비스가 도입될 때마다 독립 서비스 군을 수평적으로 구분해 그 서비스별로 서로 다른 규제원칙과 수단들을 독자적으로 개발·적용해 왔다.

이러한 법 제정의 경향은 결국 융합된 영역에서 각각 독립적인 규제원칙들이 충돌되거나, 규제가 중첩되는 현상을 발생시켰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대두되는 것이 위에서 레식 교수가 제시한 레이어 구분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레이어 방식의 도입은 각 레이어별로 통합적이고 단일한 규제체계 확립을 가능하게 해 규제비용의 감소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자유문화를 위한 실천적 정치**

위의 두 저술이 사이버 또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문제에 천착했다고 한다면 이번에 번역된 『자유문화』라는 저술은 전통과 문화라는 측면에 인터넷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전반적으로 사이버 공간과 관련한 법적 사례들을 알기 쉬운 이야기 형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또한 레식 교수는 이 책의 핵심적인 문제로서 지적 재산권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에 관한 현재의 대립적 상황을 '전쟁'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그는 "이 전쟁이 계속되도록 방치한다면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커다란 손상을 입을 것이다. 우리는 이 전쟁의 원인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분쟁의 원인을 분석해 내기 위해 "해적행위"와 "재산"의 개념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를 통해 그는 지적 재산권의 형성 및 강화 경향이 '자유 문화'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설명한다. 그렇다고 레식 교수가 지적 재산권을 인정하지 말자는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현재의 균형을 상실한 지적 재산권의 상황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터넷이 만들어낸 혼란의 와중에서 땅 빼앗기가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 지금의 시점은 아주 중요한 시점이다. 지금의 시스템에 대해 각 산업부분이 취하는 선택은 디지털 미디어 시장과 디지털 미디어가 배포되는 방식을 많은 측면에서 규정할 것이다"라고 주장해서 <코드: 사이버 공간의 법이론>에서 보여주었던 비판법학적인 '정치', 즉 '선택'의 관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이러한 선택 기로에 놓인 현재의 상황에 대해 그는 "지적 재산권이라고 불리는 재산권의 힘이 우리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시점이다. 이런 시점에서 법률이 새로운 것에 대항해 오래된 것을 지켜주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없"기에 이러한 지적 재산권의 강화 경향은 결국 '자유문화'에 대항하는 전쟁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내고, 창작자, 혁신가, 시민들을 억압하고 타락시키는 결과를 빚어 낼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레식 교수는 지적 재산권의 균형성 회복을 주장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엘드레드 판결'을 소개하면서 그간 자신의 저작권 강화 경향에 대한 도전이 왜 실패로 돌아갔는가를 분석한다. 엘드레드 판결은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으로 유명한 '소니보노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Sonny Bono Copyright Term Extension Act)'에 대한 위헌 법률심판을 대법원에 제청한 사건으로 레식 교수 본인이 변론에 나섰던 사건이다. 또한 엘드레드 사건에서 패배한 후 이 사건을 통해 얻은 생각들로 소위 '엘드레드 법안'이라는 것을 제안한다. 이 법안의 주요 골자는 저작물이 출판된 뒤 50년이 지나면 저작권 소유자는 그 저작물을 등록하고 소정의 수수료를 내도록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레식 교수는 이 책의 후기를 통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레식 교수의 대안은 최근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Creative Commons) 운동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운동의 목적은 기존의 지적 재산권 제도를 대체한다기보다는 지적 재산권 제도의 보완을 목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정보의 공유재적 가치가 점점 사라져 가는 현재의 지적 재산권 강화 경향을 수정하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 즉 다른 이의 저작물을 이용함에 있어 언제나 허가를 받아야 하는 '허가문화(Permission Culture)'의 변화를 위하여 미리 저작자가 이용의 허락 범위를 저작물에 표시해 두어 이용이 자유로울 수 있는 '자유문화'를 촉진하자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이용 허락 범위의 표시'에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센스(Creative Commons License: CCL)라는 것이 사용된다. 이 책 또한 그 저술 취지에 맞게 CCL의 '저작자표시-비영리 2.0'이라는 조건하에 모든 원문을 출판 전에 웹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말 그대로 '자유문화'의 확산을 위한 첫걸음이었다는 평가를 할 수 있겠다.

레식 교수는 대부분의 그의 저서에서 다른 법학 관련 저술들이 보여주는 딱딱함과는 달리 다양한 사례들을 이야기로 풀어주는 스토리 텔링 기법을 사용한다. 이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좀 더 쉽고, 친밀하게 이해시키기 위한 방책일 것이다. 이번에 번역된 <자유문화>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어쩌면 오히려 기존의 저술들에 비해 더 많은 사례를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으면서도, 쉬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레식 교수의 이러한 저술 방법은 단지 법학자로서의 이론 제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접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론가로서뿐만 아니라, 왕성한 활동가로서의 그의 면모에서도 추론해 볼 수 있다.

***한국에서의 자유문화**

현재 한국에서는 위와 유사한 취지로 '정보공유 라이선스'와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센스'가 대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정보공유 라이선스를 운영하고 있는 정보공유연대는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와 함께 '저작물 이용허락 표시제도'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정보공유라이선스 2.0'을 개발해 홍보하고 있다. 이는 그간 단순하게만 다루어져 왔던 우리나라의 지적 재산권 문제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적 재산권 상황은 레식 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미국의 강화경향과 그다지 다르지 않기에 위와 같은 보완 제도의 도입은 긍정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오히려 기존에 형성되어 왔던 배타성 중심의 지적 재산권 제도를 고착화 시킬 위험성도 안고 있다. 그 이유는 이러한 보완제도가 이용을 촉진한다는 미명 하에 이미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지적재산권 질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한 공유적 가치와 자유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어주는 레식 교수의 <자유문화>라는 저술은 우리에게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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