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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적 학문 풍토, 이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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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적 학문 풍토, 이런 겁니다

서길수 교수의 '알타이 답사기' 〈62〉

1492m의 야보간(Yabogan, 57~58㎞) 고개를 넘으면 야보간이란 제법 큰 마을이 나타난다. 이 야보간을 지날 때 시간은 이미 오후 6시 20분을 지난다. 이 지역은 유스띄트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아주 넓은 평야가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꾸르간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스트-칸을 거의 다 가서 차가 길을 벗어나 조그마한 초원길로 들어선다. 우스트-칸을 들어가지 않고 지름길로 오늘의 목적지인 우스트-칸으로 달린다. 석양의 초원길을 제법 심하게 흔들리며 달리던 차가 저녁 7시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동굴 아래(1027m, N50°54'698", E84°48'769")에는 꽤 큰 규모의 발굴팀이 들어와 있었는데 텐트만 10채가 넘어 여기도 군부대 주둔지 같은 분위기다. 발굴대원들이 일부 데니소바라는 다른 발굴장에 가고 발굴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이 자리를 비워 발굴장은 내일 가보기로 하고 우선 우리도 야영준비를 했다.
  
  야영장에는 데니소바에 가지 않고 남아 있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 플루스닌 교수의 딸과 아들도 있었다. 플루스닌 교수는 도착하자마자 텐트 치는 것은 쳐다보지도 않고 오랜만에 만난 딸과 어깨동무를 하고 마치 연인처럼 석양의 강가를 거닐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중에 들어보니 딸이 발굴장에 온 이유가 재미있었다.
  
  플루스닌 교수의 부인은 언어학과 교수인데 딸도 같은 언어학과의 학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난 학기 딸의 성적이 좋지 않아 어머니에게 크게 야단을 맞을까봐 아버지가 친구인 발굴대장에게 부탁해 이곳 발굴에 참가시켰다고 한다. 어머니를 피해 이곳으로 피신 시킨 것이다. 그래서 내심 걱정을 했는데 딸이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하고 좋아하여 다행이라고 한다.
  
  석기시대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 동굴은 바로 옆 산 위에 있는 하얀 절벽 위에 있는데, 발굴된 유물을 씻기 위해 강가에 천막을 쳐 놓고 동굴에서 천막까지는 유물을 나르는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동굴 안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발굴을 진행하고 있었던지 몇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동굴 앞쪽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는데 우리가 차로 따라 왔던 야보간이란 개울과 끠르릑(Kyrlyk)이 만나 차릐쉬(Charysh)강이 되는 합수머리다. 바로 이런 합수머리 옆에 있는 악-따쉬산에 남쪽으로 높은 절벽이 있고 그 절벽 위 동굴에 석기시대 유적이 있는 것이다. 석기시대 홍수와 동물들을 피해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진 동굴이기 때문에 일찍이 인간들이 주거기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 건너에는 마치 잔디 축구장처럼 파란 초원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이곳에서 우스트-칸 축제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축제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강 건너편에 있는 관광숙소를 찾아갔다. 10채 남짓한 건물이 한 울타리 안에 모여 있는데 가운데 식당 겸 본채가 있고 나머지는 방갈로 같은 숙소들이다. 원래 축제가 16일부터 시작된다고 하니 내일 하루 더 묵더라도 이 기회에 알타이 축제를 제대로 조사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축제가 17일부터 시작된다고 하지만 17일에는 참가자들이 도착하는 날이고 실제로는 18~19일 이틀간 벌어진다고 한다. 19일 우리는 서울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고, 앞으로 이틀은 더 가야 비행기를 탈 수 있으니 도저히 불가능한 일정이다. 아쉽지만 접을 수밖에 없었다.
  
  주인을 찾아 얘기해 보니 마침 한국 서울에서 일한 적이 있기 때문에 제법 능숙한 비즈니스를 했다. 그 주인 여인이 내일 이곳에서 결혼식이 있는데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하는 알타이인이 내일 아침이 온다고 한다. 아울러 알타이 춤은 자신이 전문가이기 때문에 내일 직접 보여주겠다는 친절을 베풀었다. 내일 공연을 보기로 하고 돌아왔다.
  
  저녁 시간에는 발굴팀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꾸바레프 교수의 친한 친구가 발굴팀장으로 있는 곳이라 금방 가족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발굴 현장의 여러 사람들이 와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러시아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위스 대학 고고학과에서 온 학생과 프랑스에서 온 아마추어 고고학자까지 함께 발굴에 참여하고 있어 개방적인 학문 풍토를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었다. 석양의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오랜만에 멋진 저녁 경치를 즐긴다. 그런데 그놈의 모기만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밤 10시쯤 긴 저녁밥 시간이 끝났다. 밤이 깊어지니 기온이 갑자기 6~7℃로 떨어진다. 파커를 꺼내 입고 11시 쯤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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